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응팔의 참사

어차피 보이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보이기 마련이다.

‘어남택’이 보기에 ‘어차피 남편은 택이’일 것으로 보였겠지만, ‘어남류’가 보기에는 ‘어차피 남편은 정환이’일 것으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김주혁이 택(박보검)이와 같은 왼손잡이라는 것도, 김주혁의 성격이 택이 보다는 정환(류준열)에 가까웠다는 것도 가정에 불과할 뿐이다. 드라마의 결론은 시청자가 아니라 제작진의 손에 달려있으므로 제삼자 간의 설전은 무의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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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응답하라’ 시리즈는 과도한 남편 찾기로 보는 이들의 진을 빼놓곤 했었다. 첫 작품인 ‘응답하라 1997(응칠)’에서는 시원이(정은지)의 남편 자리를 놓고 윤제(서인국)와 태웅(송종호) 형제에게 줄다리기를 시키더니, ‘응답하라 1994(응사)’에서는 나정이(고아라) 신랑 자리를 두고 쓰레기(정우)와 칠봉이(유연석)에게 힘겨루기를 시켰다. 그렇기는 해도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신랑의 정체가 드라마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응답하라 1988(응팔)’은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전작들은 누가 남편이 되든 대부분이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이었기에 별다른 잡음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유례없는 후폭풍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남편 찾기’가 아니라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끌고 가겠다는 당초의 취지가 무색하게 결국에는 이번에도 덕선(혜리)이 ‘남편 찾기’로 끝나고 말았고 개연성 없는 전개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제작진들의 안일함이 가져온 참사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남편 찾기’가 아니라 ‘가족’을 내세우려 했다면 덕선의 남편을 초반부터 공개하거나 중반 정도에는 의혹을 해소시켰어야 했다. 그래야만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가족’이나 ‘지나간 청춘’이라는 주제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회에 가서야 ‘자신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 몰랐다’는 말로 아리송하게 정체를 밝히고는 우리가 의도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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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결말을 유포하면 형사처벌도 불사하겠다며 철저한 비밀유지의 강력한 의지를 보였었다. 이는 ‘남편 찾기’로 보게 된 짭짤한 시청률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공군회관에서 결혼식 장면을 찍어 은근히 ‘어남류’로 분위기를 몰아가기까지 했다. 여기에 국회의원 김광진 사무실에서 올린 “지금 공군회관에서 ‘응팔’ 류준열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리트윗 수 1000이 넘으면 알려드릴게요”라는 글이 가세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공개한 결혼식 장면은 덕선이와 정환이도 아니었고 덕선이와 택이도 아니었다. 선우(고경표)와 보라(류혜영)였다. 결국, 공군회관에서의 결혼식은 정환이가 공군 소위라는 점을 이용해서 입소문을 노린 치사한 속임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덕선이의 신랑은 택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며 뜬금없이 19회에 그 정체를 넌지시 밝힌다. 마치 누가 덕선이의 신랑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야말로 관객 모독 수준이다.

이 드라마의 결론이 최악인 것은 덕선이의 감정이 뚜렷이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택이가 신랑이라면 택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부분을 명확히 보여주거나, 정환이 물러서는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특히 정환이 피앙세 반지를 덕선에게 주면서 고백하는 장면에서마저 덕선의 표정은 진지하지 못했다. 정환의 고백을 지켜보고 있던 동룡(이동휘)과 선우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놀라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주변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당사자는 얼마나 놀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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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결론이라면 ‘지붕 뚫고 하이킥’을 빼놓을 수 없다. 지훈이(최다니엘) 세경(신세경)을 공항에 데려다주다 교통사고로 둘 다 사망한다는 설정은 많은 사람을 혼란 속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결론은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그 드라마는 지훈을 향한 세경의 안타까운 사랑을 꾸준히 묘사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둘의 사랑이 맺어지게 된다면 그 또한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응팔’은 설익은 밥이라고 해야겠다.

앞으로 ‘응팔’ 제작진들은 시청자들을 낚으려거든 좀 더 신선한 미끼를 던져주기 바란다. 이번처럼 얼토당토않은 수준 미달의 미끼로는 앞으로 시청자들을 낚기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낚시에 재미 들린 ‘응답하라’ 제작진에게는 사상 최고의 케이블 채널 시청률이라는 기록만 눈에 보이고 시청자들의 분노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시청자를 납득시켜 달라는 요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공산이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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