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모두 잠재적으로 폭력 남편이 될 수 있다?

엄마를 이해하려면 앉아서 두어시간만 이야기하면 되지만 아빠는 아빠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서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여자와 속으로 삭이는 남자의 차이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괜시리 일이 커지는 것은 대책도 없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남자 때문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근본적으로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바다 건너 일본이나 중국에만 가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판에 서로 다른 별에서 왔으니 오죽하겠는가. 대화는 고사하고 서로 자신의 입장만 주장할 뿐이다. 그럴수록 여자의 목청은 더욱 커지고 그 소리에 질린 남자는 자꾸 안으로 움추어 들려고 한다. 남자들이 자신만의 동굴을 찾는 것도 그래서일게다.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고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가 다른 별에서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자가 하는 말을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가 하는 말을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왜 사람말을 알아먹지 못하냐면서 고래고래 소리쳐봐야 소용없다. 외계어로 떠들면서 상대가 알아 듣지 못한다고 성내는 것처럼 바보같은 짓도 없다.

중앙일보 토요칼럼 중에 ‘남자를 위하여’라는 칼럼이 있다.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의 작가 김형경이 남자에 대해서 말하는 코너다. 사실 칼럼의 제목만 봤을 때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남자를 위로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남자에게 힘을 주기 위한 글인 줄 알았다. ‘남자를 위하여’라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칼럼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위한 글이라고 한다. 저자는 2013년 동명의 책을 냈고 2년 후인 2015년에는 ‘오늘의 남자'(2015)라는 제목으로 후속편을 펴내기도 했다. 2013년 책에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반면 2015년 책에는 ‘다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위한 글임이 분명해 보인다.

뭐 아무려면 어떠랴. 정작 문제는 그게 아니다. 글의 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가정 폭력에 대해서 다뤘던 지난 토요일(13일) 글을 보자.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칼럼은 가정 해체의 원인으로 가장의 폭력을 들었고 미국 심리학자 제드 다이아몬드의 ‘남자의 이상심리’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언급했다.

Woman in fear of domestic abuse

  1.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모두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다.
  2.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의 내밀한 폭력은 모든 문화·국가·사회계층에서 예외 없이 발생한다.
  3. 전 세계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당사자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특정 요구가 거절당했을 때이다.
  4. 부부간 논쟁의 80%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했을 때 발생한다. 음주 시 폭력 발생 가능성은 평소의 18배에 이른다.
  5. 남자는 폭력 행위의 정도나 결과를 축소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가정폭력 혐의로 구속된 남자들을 상대로 분노 다스리는 방법을 교육하는 강사로 제드 다이아몬드가 만난 남자들의 특징도 소개한다. 대부분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며,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을 주었고 동시에, 경찰이 출동할 만큼 심각한 폭력사건을 일으켰으면서도 “별일 아니었다”고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냥 살짝 밀쳤을 뿐이다”라거나, “경찰만 오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칼럼은 “예전 어머니들은 ‘자식 때문에’ 남편의 폭력을 참고 살았다. 온전한 가정이라는 이미지를 수호하기 위해, 폭력도 사랑의 일부라 믿으며 그렇게 했다. 요즈음 아내들은 남편의 폭력을 감수하지 않는다. 폭력 남편을 떠나거나 최소한 폭력 현장에서 몸을 피한다. 그 순간 제어하지 못하는 가장의 폭력성이 어린 자녀를 향한다. ‘그냥 살짝 밀쳤을 뿐’이지만 오늘도 아버지의 폭력에 목숨 잃은 아이 이야기가 들린다.”라며 끝맺고 있다.

도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tvN 월화드라마 ‘치인트(치즈 인 더 트랩)’에서 홍설(한고은)이 말하듯 해맑게 웃고있는 남자의 “미소에 속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남자들은 모두 잠재적으로 폭력 남편이 될 수 있으니 결혼 결정에 신중하라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편의 폭력에 순응하라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이해하고 보듬자는 것인가.

13일 한국일보에 의하면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이별을 요구한 연인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이모(26)씨는 평소 여자친구를 자주 폭행해 손가락을 부러뜨리기까지 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일반 살인과 달리 연인 살인 사건은 작은 다툼에서 갈등이 싹트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잦은 접촉을 하는 연인관계의 특성상 감정이 통제되지 않을수록 폭력의 강도를 끌어 올리기 때문”이라며 경찰청 관계자의 설명도 덧붙였다.

가정 폭력이건 데이트 폭력이건 세상에 존재하는 현실인 건 분명하다. 이런 폭력을 몰아내기 위해서 사회가 나서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칼럼이 기분 나쁜 것은 ‘남자를 위하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를 위하여’라면 그야말로 ‘남자를 위한’ 글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가 알아야 할’이라는 애매한 수식어를 앞세워 오히려 남자에 대한 오해를 부축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나저나 이번 칼럼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혹시 나만 모르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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