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난 은퇴를 기다린다, 요리사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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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일:2010.01.14/여론/독자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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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를하면,나는제일먼저요리학원에등록할생각이다.그리고요리사가될것이다.

    아내는20여년전미국유학시절때딸아이를낳았다.물론문화의차이겠지만,힘든출산을마친아내에게당시미국의병원에서내온산모음식은빵조각과수프가전부다였다.장모님이오시기로했지만시간이필요했고그때까지계속빵만먹게할수는없었다.조금이라도산후조리를시켜야겠다는생각에,나는직접미역국과밥을해병원으로나르기시작했다.

    그런데음식을해보니의외로재미있었다.똑같은재료로똑같은시간에수많은사람이요리를해도백이면백그맛과모양이다르다.이건가장창조적인예술행위의하나가아닌가.

    이게내요리인생의시작이었다.그후에영국런던으로전근을가게됐는데,7년넘게주말이면수퍼에서장을보고요리를했다.즐거웠다.일요일아침정성껏음식을준비한후아내와딸을깨워함께식사하는아침시간의풍경이야말로내가느껴본최고의행복이었다.

    좋아하는요리는회사의영업에도도움을줬다.마침가족들이잠시한국에들어갔을때스코틀랜드에서고객부부가집을방문했다.자연스럽게부엌으로들어가최고의불고기를만들어대접했다.이들은나의최대고객이됐다.

    그러나10여년전에한국으로돌아오고,회사에서도부사장·사장이라는직위를맡게된이후부터는나는이좋아하는요리를제대로해본적이별로없다."아빠,1년에한두번어쩌다하는건취미가아니에요"라는딸아이의말이맞을지도모른다.

    그래서나는다시자유로워질은퇴를기다린다.

    요리를배우게되면우선상대적으로간단하고여러사람이나누어먹기편리한이태리요리부터시작하는게좋을것이다.가족이나가까운벗들을초대해내가직접만든음식을대접한다는것은예나지금이나정말즐거운일이다.이들과함께할나만의공간을따로만들어내가만든음식에술까지한잔곁들인다면세상에무엇이부러울까.

    은퇴후또다른계획도있다.나만의방법으로전세계를두루여행하는것이다.나는여행을다른사람보다수배더즐기는방법을알고있다.좋아하는취미와인연이있는여행지를찾는것이다.

    나는어릴때부터광적으로영화를좋아했다.그중에서도가장좋아했던영화를꼽으라면주저없이뮤지컬영화의대명사로불리는’사운드오브뮤직’이다.1991년이영화의배경인오스트리아의잘츠부르크를처음찾았을때느꼈던짜릿함은아직도잊을수가없다.촬영배경이된장소들을둘러볼때마다영화의장면들이그대로살아나는듯한아찔한감흥에,그이후오스트리아인근을지나칠때마다잘츠부르크를찾았으니벌써일곱번도넘게간것같다.

    그이후여행을떠나기전에는해당지역을배경으로찍은영화를미리골라서보고떠나곤했다.요리를취미라고여기고있고스스로미식가로자처하는사람으로서각지방고유의전통음식을찾아그에얽힌스토리까지챙겨가며먹는것은여행이주는또다른별미였다.그래서은퇴후에는’영화와함께하는세계여행,식도락과함께하는세계여행’이라는제목의책도한번써보고싶다.

    돈이너무많이드는계획이라고?물론맞는얘기다.이런계획들을실천에옮기자면경제적인뒷받침과건강이필요하다.모든사람들에게가능한일은아닐것이다.그러나어떤가?이런상상을하는것만으로즐겁지않은가?

    요즘내스트레스해소법은이렇게신나는노후생활을상상하는것이다.그러면온몸에엔도르핀이절로솟는것을느낀다.상상을통해서라도지금의생활이풍요로워진다면그또한좋은일이아니겠는가.또이런계획을갖고있다는것이현실의힘든상황을버텨나갈수있는원동력이되고,더열심히살수있는힘이된다면일석이조가아닐까.

    나는오래전부터인생의장기계획의하나로은퇴후인생을설계하는데많은시간을할애해왔다.앞으로현직에얼마나더있을지몰라도조만간평균수명이90을훌쩍넘어설수도있다고하니은퇴후의삶이어쩌면진짜인생이라는생각이들었기때문이다.

    지금과는다른차원의새로운사회생활이나나자신만을위한시간,그리고가족들과함께추억만들기등그어느것하나소중하고신나지않은것이없다.그래서나는은퇴가기다려진다.

    왜우리나라에서는자발적으로후계자에게자리를물려주고은퇴하거나,아니면새로운자리에연연해하지않는멋진CEO나리더를찾아보기어려운걸까.사람의욕심이끝이없어서일수도있겠지만아마은퇴후의멋진인생을미리미리준비해두지못해서는아닐까싶다.현직에서의부담이나스트레스보다더나은삶이기다리고있다면두려울것이없을것이다.

    은퇴후의내꿈은’행복을나눠주는요리사’다.그러다혹시누가알겠는가?영화를테마로한레스토랑을차리게돼주방장겸레스토랑CEO가될지.

    유상호한국투자증권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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