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피란길총맞은아버지옆구리에서피고름흘러
보다못한어머니매일입으로빨아냈는데…
역겨운냄새없애라며친척어른이담배건네줘
어린시절,어머니는늘담배를피우고계셨다.서른넘었을무렵부터태우신담배라고했다.젊은여인이담배를피워문모습은당시로선드문일이었다.1917년생인어머니가개방적이거나진취적인신여성이라서담배를즐기신것도아니었다.더의아했던것은젊은어머니가담배피우는것을보고도대소친척어른들이한번도흉보거나나무라는일이없었다는점이다.당시에는"어른이니담배를피우시나보다"했을뿐,별다른생각은없었다.그러다한참나이든후,어머니께어떻게담배를피우게됐는지,그리고왜누구도그걸시비하는사람이없었는지사연을여쭤봤다가가슴아픈얘기를들었다.
인천상륙작전을감행한유엔군과우리군(軍)이서울을되찾기위해시가전을벌이고,인민군이북으로후퇴하기시작하던9월26일밤에아버지는집으로돌아왔다.이젠안전할것이라고낙관하신것같았다.막잠이들었을무렵,방문이열리며장정몇사람이들어섰다.아버지는그밤그렇게붙잡혀갔다.
아버지는남산자락인한남동맞은편,성터가있는산속으로끌려갔다.같이잡혀간사람은다섯명이었는데,한사람씩나무에묶어놓고’직결총살형’을집행했다.총소리가들리고아버지는정신을잃었다.얼마나지났는지모르지만의식이돌아오고,멀리사람들이두런두런이야기를하며가는소리가들려왔다.두런거리는소리가들리지않을때까지이를악물고기다리다가,아버지는묶인줄을비벼풀고는피가나는옆구리를손으로막으며산길을내려와인근의아는사람집으로들어가몸을의탁했다.
▲ 일러스트=이철원기자burbuck@chosun.com
경험이부족한소년병들이고참들이시키는대로캄캄한어둠속에서총질을했는데,아버지만운좋게옆구리를관통하고잠시의식을잃었던것이다.만약의식을잃지않고신음소리를조금이라도냈다면다시총질을당했을텐데,천만다행으로의식을잃어신음소리조차내지못한것이다.
아버지는구사일생으로살아났으나,총상(銃傷)때문에내내고생했다.변변한약도없던시절이라더욱어려웠다.게다가가을을지나맞이한겨울,우리는다시1·4후퇴로인하여피란을가야만했다.우리가족은청주인근어머니고모부댁에가머물게되었다.그때그동네에서어린아이가전염병으로죽는상사(喪事)가났다.그러나시신을수습할사람이없었다.피란민이마을에머무는것을곱지않은눈으로보는마을사람들의눈치도있고해서아버지는자청해서시신을수습하고매장했다.
아버지의아물어가던총상은그날이후다시덧나서퉁퉁부어올랐다.상처에는고름이가득했고,서울에서가져온항생제는거의바닥났다.어쩔수없이남은항생제를가루로만들어창호지에발라심지를만들어상처부위에집어넣었다가저녁이면그심지를빼고항생제를바른다른심지로바꿔끼우는식으로치료를했다.하지만상처는좋아지지않고점점부어올랐다.보다못한어머니는심지를빼고,아버지옆구리의상처부위를입으로빨아피고름을제거하기시작했다.이렇게며칠을하니다소차도가있었다.그러나냄새조차맡기역겨운피고름을입으로빨아냈으니,어머니의고생은참으로말이아니었을것이다.
어느날어머니고모부께서"얘야,그렇게피고름을입으로빠니오죽허것냐?담배를피우면그래도좀나을게다"하시며말린담배한두름을방안에밀어넣으셨다.어머니는피고름을입으로빨아낸뒤,그담배를종이에말아피우셨다.이것이어머니가일흔이넘도록담배를태우게된단초였다.어머니는담배를말아태우면피고름의역한냄새가어느정도사그러들었다고하셨다.막서른줄에들어선젊디젊은어머니가담배를배우게된데는이처럼그세대가견뎌내야했던아픈역사가담겨져있었다.
연세많은친정어머니와어린자식들에,총상을입은남편까지건사하며피란생활을하셨던어머니의어깨가얼마나무거웠을지헤아릴길없다.어머니가뿜어낸담배연기에는역겨운고름냄새뿐아니라혼자짊어져야했던가족의삶의무게까지담겨있었을것이다.어머니의극진한보살핌을받은아버지는여든넘어사셨다.어머니도아흔넘게장수하시다가3년전돌아가셨다.어머니의담배연기에실린그아픔과막막함을나는이제서야실감하고있는중이다.
퍼온데…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