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500원 동전과 결혼 30주년 여행

[죽기전에이것만은…/최평균]
종이학대신500원짜리동전…1000개모아아내와결혼30주년여행을

동아닷컴2011-09-14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기자soojin@donga.com

최평균아파트경비원,수필가

나는작년가을부터500원짜리동전을모으고있다.1년이다되어가는지금의돼지저금통에는동전이제법그득하다.그동전에새겨진학을내년12월까지1000마리를목표로사냥하고있는것이다.밤마다내돼지저금통속에는희망찬학의하얀날갯짓이가득찬다.

내가하던사업이10여년전부터곤두박질치더니급기야모든것을잃고더군다나혹같은부채를떠안고내삶의터전을떠나야만했었다.결국가족을떠나이곳저곳기웃대다건설현장의노무자로몇년을견뎠다.그러다가작년초에면책판결을받고여름부터경기도의한아파트단지에서경비로일하고있다.다른동료들은박한월급의경비직이인생의최막장이라말을하나고된일과뿐만아니라복지나환경이극도로척박한건설노동을경험한나에게는한단계발전된풍요롭고고마운직장이라생각하고있다.

내가시절이좋을때는가족들과여행도자주가고각종기념일을빼놓지않고챙겼으며,특히결혼기념일은그냥넘기질않았다.정말힘들때에도두아들의지원으로SG워너비의콘서트를관람하러갔으니그나마참행복한나날을지낸건틀림없는사실이다.

그런데이제얼마후인내년겨울에는결혼한지30주년이되는진주혼식이도래한다.따라서그에걸맞은특별한이벤트를생각하고있던나에게지난가을초소에서혼자근무할때라디오의심야음악프로그램에서한애청자가올린사연하나가나의오랜아이디어구상의브레이크를밟아버렸다.‘1000마리의종이학을접어서사랑하는사람에게선물하고사랑을구하면이루어진다고하는데,종이학을접을줄모르니500원짜리동전을1000개모아거기새겨진1000마리학을내세워그녀에게구애를하겠다’는것이었다.

그사연을듣고나는곧바로결혼30주년의이벤트목표를학1000마리의포획으로정했다.500원짜리1000개면금액으로50만원이니국내여행2박3일정도의경비로는적당하고부담도적고학1000마리의의미도특별하니가난한나의진주혼식이벤트로는손색이없을터였다.

다음날가족이모두모인자리에서내계획을말하였더니모두좋은생각이라고기뻐하였다.아내는따로1000마리의학을모아서이벤트의질을높이겠다고곧바로저금통을마련하여학을사냥하고있으며,두아들도500원짜리를구해적극후원하고있다.기념일까지는800여일남았으니하루한개이상씩만모은다면내계획은큰무리가없는것이다.전에는가족들과여행이나낚시등여가를알차게즐기며살았는데사회적지위나경제적실탄을대부분상실해버린지금은행복에드는원가는저렴해졌으나질은결코낮아지지않았다.그러고보면하나님은항상공정하셔서나의경제적무장을해제하시더니그대신값싸고질좋은행복을내게배려해주시는것같다.

사람이살아가는게어찌사람의의지대로되겠는가.내가어느순간명을다할줄모르는데원대한꿈을버킷리스트로잡았다가그계획에도리어볼모로잡혀작은행복의부스러기들을놓쳐버린다면인생의후반을살아가는나로서는참으로애석한일이될것이다.더군다나그계획을다이루기도전에불행을당한다면버킷리스트는한갓계획으로만그칠것은자명한일이다.나는되도록기간이짧고크기는작지만차별화되고가슴이따뜻한계획을세우고실행을하며,그계획이이루어졌을때비로소또다른짧고작은다음의버킷리스트를마련할뿐이다.

이제돌아오는내년겨울의진주혼식기념여행에서는고난에도불구하고변치않고내곁을지켜준아내에게두번째프러포즈를해야겠다.“다시태어나도나랑같이살아줄래요?샐리님(사이버공간에서의아내의별명)”하고.1000마리의학은사랑을이루어준다고했으니까.이것이지금나의유일하고소박한버킷리스트이다.

최평균아파트경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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