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십자가’진11세소년산동네오르며사제의길로
○연탄배달이라는십자가
차동엽신부는크지않다.키가한창클나이에연탄지게가그의어깨를내리눌렀다.경기화성,서해바닷가염전이늘어섰던마을에서난곡으로올라온그의집은연탄장사를했다.초등학교4학년부터시작된그의연탄배달은6학년이되면서본격화됐다.큰형이군에가고,둘째형은권투를하겠다며밖으로나돌자그밖에손이비지않았다.따로일꾼을둘형편도아니었다.
‘시커먼십자가’진11세소년산동네오르며사제의길로
○연탄배달이라는십자가
차동엽신부는크지않다.키가한창클나이에연탄지게가그의어깨를내리눌렀다.경기화성,서해바닷가염전이늘어섰던마을에서난곡으로올라온그의집은연탄장사를했다.초등학교4학년부터시작된그의연탄배달은6학년이되면서본격화됐다.큰형이군에가고,둘째형은권투를하겠다며밖으로나돌자그밖에손이비지않았다.따로일꾼을둘형편도아니었다.
“아버지는몰락한지식인이었어요.연탄장사를하면서도연탄에손가락하나까딱하지않으셨지요.”
학교에서돌아오면기다리는건배달해야할연탄수백장.등에지고손에들고묵묵히비탈을오르내리다보면해가저물었다.당시난곡버스정류장에는성인지게꾼들이있었다.승객들의무거운짐을대신짊어지고언덕을오르내리며삯을받는그들의하루치일보다더하면더했지결코덜하지않은노동이열세살남자아이의몫이었다.
하지만한번도부모를원망해본적이없었다.어느날연탄배달을하는그앞에조그마한전단지가떨어져있었다.산수전문참고서를소개하는내용이었다.산수를잘하고재미있어하던그는눈이동그래져냉큼집어주머니에넣었다.집에돌아와그종이를보이며사달라고했지만어머니의대답은“안돼”였다.‘하나사주면어디덧나나.’마음속으로한마디한게그가한저항의전부였다.
“지금돌이켜보니까(우리부모님이)해도너무했다고.일은그렇게부려먹고말이지요.그래도그때불평하나하지않았어요.지금생각해보면내가왜원망을하지않았는지이해가안가요.”
희한하게도공부는잘했다.수업시간에선생님말씀듣는게그가하는공부의처음이자마지막이었다.거친일을하면서도삐딱하게굴지않았다.반듯하고조신했다.“아이스케키장사를하면돈을꽤번다더라”며같이가출하자는친구들의‘유혹’을받기도했지만10분정도고민하고는접었다.학교가는게훨씬재미있어서였다.어머니들은“동엽이좀봐라.쟤는일도잘하고공부도잘하지않느냐”며자신의아이들을닦달하곤했다.그의한초등학교친구는최근그에게편지를보내‘그때너좀본받으라며어머니한테혼난적이한두번이아니었다’고털어놓기도했다.
뜻밖에도그는다시태어나면다시는연탄짐을지고싶지않다고했다.나이를먹으면서어렸을적연탄배달의후유증이그의몸에고난의십자가로다가왔기때문이다.중학교3학년때까지성장기에짊어진연탄은그의척추를오그라뜨렸다.이른바척추협착증.그때문에간에이상이생겨피로가쉽게오고면역력이약해져간염에걸리기도쉽다.
하지만연탄배달이라는황소걸음이그의정신에새긴내공(內功)은그로하여금그보다더한십자가도거뜬히짊어지게했다.
○골방에서홀로기도하다
그의부모는대를이은가톨릭가문출신이었다.서해염전마을에살때그의집은공소(公所·천주교에서신부가상주하지않는예배소나그구역)역할을했다.본당에서1년에두어번신부가오면그의집에머무르며미사를봤다.그는그곳에서영세를받았다.온식구가서울에올라와어렵게살면서어쩔수없이,천주교를믿지만성당에는나가지못하는‘생존형냉담자’가됐을뿐이었다.그는신의존재를의심해본적이없었다.
유신말기서울대공대에입학한그는학년을더해갈수록전공(기계설계)에서의미를찾지못했다.사회에나가돈을버는것까지의의미는알수있었지만거기서끝이었다.매학기평균B학점이상을받아야모교(유한공고)에서주는전액장학금이끊기지않았기때문에중간,기말시험공부는했지만조금씩전공과거리를두게됐다.
“이어렵고힘든시기에내가가야할길이무엇인지를고민했어요.한평생이런문제의식으로살아갈수있는길이무엇인가를생각하게됐지요.”
1980년5월17일전국비상계엄령과함께모든대학에는휴교령이내려졌다.그때서울정릉의한수녀원에서‘성서의가난한사람들’이라는책을쓴서강대서인석교수의성경예언서강의가있었다.그책은당시대학가에서종교성을띤운동권학생들의필독서였다.서교수의강의를5일간들은대학4학년그의가슴에‘사제의길’이슬며시,그러나아주뜨겁게비집고들어왔다.“그후그길밖에안보였어요.”문제는결단이었다.결단까지는2년이더필요했다.
1982년8월,그는방문을잠그고기도를마친뒤손에잡히는대로성경을펼쳤다.루카복음(누가복음)19장.예수가예루살렘입성을앞두고예루살렘을바라보면서통곡하는대목에눈이가서멈췄다.장차예루살렘에닥칠비극을안타까워하는예수의마음이시대상황을걱정하는그의마음에그대로와닿았다.눈물과콧물이비오듯흘러내렸다.그때그는사제(司祭)가되기로최종결정했다.
“자신이없었어요.내가사제의직을선택해서가는것만으로는자신이없었어요.신(神)이불러주셔야신이나는거지,나혼자간다고해서신이나겠나.그래서홀로기도를했던거지요.”
꼭닫힌방에서홀로기도를하며절대자의응답을간절히바란적은그뒤로한번더있었다.제대를하고신학교에편입해학사과정을마친뒤오스트리아로유학가서6개월째됐을때였다.갑자기변비가5일간지속되며극심한불면증과스트레스에정서장애까지왔다.절망이었다.한국행보따리를쌌다.한국에서온한신부가그에게하루라도더고민해보라고만류했다.그는“하느님,단하루만입니다”하고는기숙사방에서철야기도에들어갔다.결과는?그는이튿날정상적으로배변을봤고수년뒤신학박사학위를땄다.
“제배속이갑자기꿈틀거리기시작했고,미친듯이웃다가울다가고꾸라져잠에빠져들었어요.객관적으로설명할수없는영역이에요.”
○예수님도약장수였다
차신부는인천교구에속한가톨릭신부다.2003년까지는교구내몇개본당의주임신부를맡기도했다.하지만지금은‘인생해설가’라는호칭의대중강연자로더잘알려져있다.희망차게살아갈수있는인생의원리를설명한책‘무지개원리’는100만부이상팔렸고,뒤이은‘바보Zone’도10만부넘게나갔다.삶에서의미를찾아내긍정적이고적극적으로살아가자는취지의대중강연을전국각지에서연600회정도한다.
한신문기자가그런그에게말했다.“저는신부님을보면떠돌이약장수가떠오릅니다.”차신부가답했다.“예수님이약장수였어요.저잣거리를다니고밑바닥인생으로들어가서거기서그들하고어울리면서(유대의율법가나권세부리던자들에게)먹었던욕이약장수였습니다.스승이들은소리를(내가)들으니영광입니다.”
그는본당을맡아신도들을인도하는일과대중을직접대면하는일사이에어떤괴리도없다고확신한다.1988년오스트리아빈대학에입학해후일지도교수가되는줄레노박사의신학강의첫시간에서였다.레노박사는칠판에‘사목(司牧)이란?’이라고쓰고는뒤이어‘사람을살리는길’이라고적었다.절망,상처,고통이라는이름으로사람에게드리운각종‘죽음’을치유하고어루만지는일이사제가할일이라는뜻이었다.
“그때생각했지요.‘저게전부다.’나머지는각론인거였어요.지금도제가그말덕분에교회울타리안에만갇혀있는사람이아니라누구든지만날수있고,도와줄수있는사제가됐습니다.”그에게사제의길이란세상을버리는것이아니었다.그는세상속으로더잘들어가기위해사제를택했다.그길에서그는편안해보였다.
민동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