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아이들은떨어지는꽃잎을머리에이고고무줄놀이를하고어떤아이들은떨어지는꽃잎을손으로잡으려고하고,또어떤아이들은떨어지는꽃잎을입으로받아먹기도한다.사사사사사피던살구꽃이바람이불어우수수수지면교실까지꽃잎들이붕붕날아들었다.공부하는아이들책상위로꽃잎이날아와앉으면아이들은고개를들어살구나무를바라보았다.꽃잎들이눈송이처럼하얗게날아다녔다.
꽃이피고,새잎이돋는/봄이되면,그리고/너는예쁜종아리를다드러내놓고/나비처럼하늘거리는/옷을입고나타나겠지.//한그루의나무가온통꽃을그리는/그날이오면,그러면/너는그꽃그늘아래서서웃겠지./하얀팔목을/다드러내놓고/온몸으로웃겠지./나를사랑하겠지.//봄빛은/돌속에/숨은꽃도찾아낸다./봄날이,그렇게되면/너는내앞으로걸어와/어서나좀봐달라고조르겠지./바람속에연분홍꽃가지를살랑대며/봄바람이/나를채가기전에/어서나를가져달라고채근대겠지.-<문학동네>2008여름호,‘살구나무’전문,김용택지음
내가초등학교에입학했을때,학교에는교실이없었다.전쟁으로모두소실되었기때문이다.운동장가에는군인들의막사가있었고,운동장에서는군인들이훈련을받고있었다.교실이없던우리들은운동장가에있는벚나무에다가흑판을달아놓고공부를했다.오래된벚나무들이학교를삥둘러싸고있었다.봄이되자벚꽃이피어났다.학교가구름속에파묻힌것처럼환했다.벚나무들이꽃을피울때같이꽃피는나무가하나있었는데,가만히보니살구나무였다.살구나무나이나벚나무나이나같아보였다.살구나무는벚나무보다조금일찍꽃이핀다.벚꽃이피기시작한날보다한사나흘쯤일찍핀다.어떨때는거의동시에피기도한다.봄에피는꽃들은날씨만좋으면아침다르고저녁다르다.조금놀다가살구나무를바라보면아까와는다르게보인다.
살구나무아래서있으면꽃피는소리가‘사사사사사’들리는것같다.아니,정말들린다.살구꽃은또툭툭터지는옥수수튀밥같다.그래서아이들은살구꽃을옥수수튀밥꽃이라고도한다.그렇게살구꽃이환하게피어나면아이들은그살구나무밑에서긴갈래머리를나풀거리며고무줄놀이를했다.환하게핀살구나무는벚꽃보다먼저꽃잎을날린다.처음에는이따금한잎두잎떨어지는꽃그늘아래에서아이들이놀고있는것을보면동화속에나오는그림같았다.
며칠이지나면꽃잎들이우수수수떨어진다.어떤아이들은떨어지는꽃잎을머리에이고고무줄놀이를하고어떤아이들은떨어지는꽃잎을손으로잡으려고하고,또어떤아이들은떨어지는꽃잎을입으로받아먹기도한다.사사사사사피던살구꽃이바람이불어우수수수지면교실까지꽃잎들이붕붕날아들었다.공부하는아이들책상위로꽃잎이날아와앉으면아이들은고개를들어살구나무를바라보았다.꽃잎들이눈송이처럼하얗게날아다녔다.살구꽃이피면나는살구나무꽃그늘에앉아아이들이노는모습을바라보며놀았다.어느해에는예쁜여선생이새로왔는데,둘이친해져서나는꽃그늘에앉아그여선생에게편지를쓰기도했다.아이들이내편지를가지고그여선생을향해뛰어가던모습이지금도눈에선하다.
‘봄이어요./바라보는곳마다꽃은피어나며/갈데없이나를가둡니다./숨막혀요./내몸깊은데까지꽃빛이파고들어/내몸은지금떨려요./나혼자견디기힘들어요./이러다가는나도몰래/나혼자쓸쓸히꽃피겠어요.//싫어요./이런날나혼자꽃피긴죽어도싫어요./꽃피기전에올수없다면/고개들어잠시먼산보셔요./꽃피어나지요.//꽃보며스치는그많은생각중에서/제생각에머무셔요./머무는그곳,그순간에내가꽃피겠어요.//꽃들이나를가둬,갈수없어/꽃그늘아래앉아그리운편지씁니다.’-시집<그리운꽃편지>,‘그리운꽃편지’전문,김용택지음
어느해나는그여선생을생각하며이시를썼다.그렇다고그여선생을사랑한건아니고,그때를생각하며편지를쓴것이다.살구꽃이지고나면새잎이피고살구들이열렸다.살구가어른들엄지손가락첫째마디만큼커지면아이들이살구를따먹기위해살구나무밑으로모여들기시작했다.풋살구도아이들에게는군것질이되던시절이었다.살구가커가며노릇노릇하게익어가기시작하면아이들은밤낮으로극성을부렸다.조금만방심하면학교밑마을에있는아이들이밤에학교로와서살구를따먹었고,조금만방심하면아이들이쉬는시간에돌멩이나나무막대기를던져살구를땄다.살구나무밑에는늘작은돌멩이에맞은이파리들이널려있었다.너무심하게살구나무에돌멩이를던지다선생님들에게들키면선생님들은아이들을손들고서있게했다.
나는미술시간에살구나무아래손들고있는아이들을그리게했다.그렇게저렇게선생님들이살구를지켜살구가완전히익으면살구나무밑에넓은포장을깔고선생님들이살구를털어각반으로나누어주었다.그때우리학교학급수가열두학급이었는데,한반에양동이로한양동이씩나누어주고도살구가남을정도였다.열매가열리는모든나무가다그러하듯이살구나무도해걸이를했다.올해살구가많이열리면내년에는살구가적게열렸다.적게열린해에는살구가아주컸다.그렇게나는초등학교1학년때부터선생이되어서까지그살구나무를보며살았다.
그런데어느해부터살구나무가꽃을적게피우기시작하더니,내가선생을그만둔2008년에는셀수있을정도로꽃이적게피었다.살구나무가늙어버린것이다.살구가익어노랗게떨어져있어도아이들은이제살구를먹지않았다.땅에떨어져노랗게썩어가는살구를볼때마다나는옛날생각이나눈시울이더워질때도있었다.학교를그만둔그이듬해내가학교에갔을때에는살구나무가없었다.늙어,베어버린것이다.학교를그만두면서나는살구나무를되돌아다보았었다.그와함께살아온40여년이주마등처럼지나갔던것이다.‘살구나무’라는시는내가학교를그만두기전에쓴시다.학교앞을지나던어떤모르는여자가학교로들어와꽃이피는살구나무아래를지나가고있었다.그여자는더운지윗옷을벗고있었다.하얀팔이보였다.옛날내가편지를썼던,하늘거리는화사한원피스를입고살구나무아래를지나던그여선생이모습이생각났던것이다.
출처:KB레인보우인문학4월호/국민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