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창고를 서제로….

책창고를書齋로바꾸면서圓徹해인사스님

서고에쌓여있던책들꺼내고말려
외바퀴손수레실어서재로나르다
잊었던책만나반갑고,추억살아나

책은읽어야생명이살아나는법
사방에서정보쏟아지는세상이지만
내책들은내살아온궤적보여줘

圓徹해인사스님

이제야비로소제대로된서재(書齋)가생겼다는기쁨도잠시,책을옮기는일은그야말로고행이었다.작은암자지만끝에서다시끝으로옮기는작업인까닭이다.경내에서동선길이가가장길었다.이삿짐센터에서제일싫어하는화물이책이라고하더니그것또한분명한사실임을확인했다.어느새댁의’내아이니까키운다’던말도겹쳐졌다.애키우는것이나책옮기는것이나힘들긴마찬가지라는의미였다.아닌게아니라자식같은(?)책이니까칙칙하고후덥지근한날씨에도땀흘리는수고를마다않고기쁜마음으로옮겼으리라.아마남의책이라면당장고물상에전화해빨리싣고가라고할판이다.

외바퀴손수레에담을수있을만큼가득담아서쉬지않고아침부터저녁까지오고감에도사나흘은족히걸렸다.이미지쳐버린수레가무게를이기지못하고비틀거리는가했더니이내책이땅바닥으로쏟아지기를몇번반복했다.거풍(擧風)하기위해이미며칠동안건조시킨터이지만오락가락하는비에노출되니습기가다시책갈피속으로스며든다.송나라범중엄(范仲淹·989~1052)선비는"책을햇볕에말릴때는반드시곁에서서마음을쏟았고,이동할때는반드시나무상자에담아옮겼다"고했다.그런귀하신책을짐짝취급하듯택배아저씨처럼옮겼다.일을마친후늦게사책에대한미안한마음이일어난다.

그책들은바람도제대로통하지않는컴컴한구석방에쌓여있다시피했다.여름장마철만되면스스로곰팡내를풍기며쾌적한곳으로옮겨달라고나름시위를해댄다.그럼에도공간에여유가없어십여년을모른체하며그냥지나쳤다.이절로저절로주인이옮겨다닐때마다같이이사다니지않는것만해도감지덕지하라고면박을준셈이다.하지만거의서고(書庫·책창고)에가까운지라필요한책을한권찾으려면처음부터끝까지손전등을비춰가며책꽂이칸칸을확인해야했다.두세번찾다가결국포기하는일도허다했다.돌이켜생각하니처음이암자에오게된가장큰이유는적지않은양의책때문이었다.결국따지고보면이터의주인공은그책인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기자

바람이잘통하고양명한공간에서분류작업을했다.그렇게애타게찾다가포기한책을발견하고는’여기있었구나!’하며반가움에두세번어루만진다.진짜무소유학인시절에전집류를구입한다는것은언감생심이었다.그바람에복사를한짝퉁전집이두질이나된다.이제는강원(講院)졸업반시절을증명하는유물이되었다.영국유학을고학하다시피어렵게마친선배스님은먼훗날개인도서관설립을염두에두고서비싸긴하지만오리지널본만모았다고하던말이떠올라’억지로라도원본을구할걸’하는후회감도함께일어난다.어쨌거나그이후에도무리를한덕분에국내에서유통되는어지간한대장경류는모두소장할수있게되었다.가장자리에보란듯이빙둘러진열했다.약간의경제적여유만생겨도책을샀던시절이었노라고자랑삼아펼쳐놓았다.

그땐필요도없는책을남따라구입한것도있었고,유통업자의"출판산업기여"라는읍소에못이겨마지못해들여놓은것도더러보인다.하지만지금은모두귀한책들이다.나름대로하나같이살아온궤적을대변해준다.여행다닐때마다여기저기서구입한화보집은그자체가볼만한구경거리다.서가를정리하고있다는사실조차망각하고그풍광을추억하면서선채로마지막페이지까지넘겼다.구입한장소와날짜가적혀있는자필사인은역사성(?)까지더해주었다.

어쨌거나책이란수집이아니라읽을때생명이살아난다.그래서가장좋은책은자기손때가반질반질묻은책이라고하지않았던가?특히경전류는삶의길을알려주는길라잡이다.하지만인생길안내책자속에모든내용을담아낸다는것은불가능하다.기록너머있는것은현장에서온몸으로부딪쳐야만비로소체득할수있는까닭이다.그래서기록할수없는내용이더많다는사실을일찍이선지식들은’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이름붙였던것이다.

문자만뒤따라가다보면결국글자에걸려자빠지기마련이다.당나라때만권책을읽었다는이발(李渤)거사는"작은겨자씨속에큰산이들어간다"는화엄경구절에막혔다.그래서찾아간귀종(歸宗)선사에게"수박만한그머릿속에만권책이어디에들어있느냐"는꾸중을듣고서야당신의속살림을다시금살피게된다.또읽던대로읽으면백날읽어봐야아무이익이없다.그래서법화경을삼천번읽었노라고주변에자랑하던법달(法達)화상은혜능(慧能)선사에게’경을읽은것이아니라도리어경에게읽힘을당한것’이라는핀잔을들어야만했다.

마무리로선인들처럼"오천권책을읽지않았다면이방에들어오지도말라(不讀五千卷書毋得入此室)"거나혹은"이문안에들어오면알음알이를내지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는주련(柱聯)을거는것은생략했다.책아니더라도사방에서정보가홍수처럼쏟아지는,이미안팎이없는세상인까닭이다. 퍼온데…조선일보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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