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레인보우문학 7월호]나주 순교성지..무학당
BY jungkwan128 ON 7. 24, 2013
[구본준의한국의현대건축]선으로되살려낸‘기억의건축’-나주순교성지,무학당
구본준의한국의현대건축2013.07.12
점과선과면의3차원적인개념으로우리는공간을가두고이해한다.하지만공간은넓고무한하다.공간은사람들의기억속에있다.역사를품고잊혀진주춧돌위에다시기억으로역사를세웠다.선으로개념을짓고상상으로공간을채웠다.건축은언제나기억을담는다.기억은언제나건축을통해떠오르기마련이다.예나지금이나그리고앞으로도우리는뜻깊고중요한가치를건축으로기억할것이다.
2000년대초반,전남나주에묘한건축이생겼다.나주성당과사제관,수녀원이있는가톨릭구역안,수녀원뒤편언덕에넓은마당이펼쳐지고,그마당뒤로다시봉긋솟은비탈에건축물이있다.
처음보면집은보이지않는다.언덕가운데20톤짜리돌두개를기둥처럼나란히세운뒤그위에또돌한덩이를더얹어만든문만보인다.거친돌덩어리가고인돌처럼포개진모습이마치원시시대의제단같기도하고,고대고분의입구를연상시키기도한다.
가는쇠파이프로육면체의모서리만만들고그위에배모양의지붕을얹은무학당의모습©박영채건축전문사진가
그안에검디검은방이있다.방은검은오석(烏石)으로사방을메워침묵이감싼다.벽에옴폭하게파낸작은벽감(壁龕)속하얀호롱불빛이반질거리는돌표면에어른거리고,반대편한국전통창호에선역광이투과되어들어온다.침묵과빛을담아흙속에파묻힌건축이다.
돌과흙과빛으로순교자들을기억하다
김원건축가가설계한나주순교성지기념경당은지금부터100여년전믿음을지키기위해목숨을잃은이춘화,강영원,유치성,유문보네순교자를기리는종교건축물이다.
건축가는결코많은어휘를가져와집을짓지않았다.적은예산의한계탓이기도했지만,평생건축을해온중진건축가로서개념이란여러가지를섞을때보다하나를강조할때더강해진다는것을잘알고있었기때문이었다.앞서그가설계했던공주황새바위순교성지처럼이기념경당에서도그는종교에서가장숭고한존재인순교자들을돌과흙과빛이란세가지재료만으로기렸다.
검은오석으로메워침묵이감싸는경당안에호롱불빛이반짝거린다©박영채건축전문사진가
극도로단순하면서도자연과재료와빛이어우러져만들어내는공간의분위기는작지만강력하고,거칠면서정갈하다.삶과죽음이란운명,전통과현대그리고자연과건축이란개념이충돌하듯교차한다.경당의면적은가로6m,세로6m로불과11평남짓한넓은방하나크기의작은집이지만종교건축이자무덤건축이며기도공간도되고건축이면서조형물이기도한,실로다양한용도와개념을동시에지니고있다.
종교에서가장숭고한존재인순교자들을기리기위해돌과흙과빛이란세가지재료만으로세운경당©박영채건축전문사진가
이경당아래수녀원부근에는무덤같은경당과짝을이루는더묘한건축물이있다.과연이것이건축이라고할수있을까?모양은집이되집이란실체는없다.집의테두리를보여주는‘구조체’뿐인집이다.가는쇠파이프로육면체의모서리만만들고그위에배모양의지붕을얹었다.처음보면짓다가중단한집이거나,아직천을씌우지않은천막골조로오해하기십상이다.실제이독특한건축물이지어지고난뒤건축가가가장많이받은질문은“도대체언제완성되느냐”였다고한다.
벽도없고,지붕도없고,심지어바닥도없는이집의이름은무학당.구한말천주교신자들이갇혔던감옥이자처형당했던사형장으로쓰인건물이다.
원래무학당은나주동헌의부속건물이었다.이름그대로동헌소속군인들이무예를배우고익히는곳이었다.그러나무학당은일제강점기때사라졌다.일제는전국의읍성과관아를헐고그자리에학교건물을주로지었다.나주무학당도이때헐렸고,그자리엔나주초등학교가들어섰다.
주춧돌위에쇠파이프로선만되살려완성한무학당©박영채건축전문사진가
처음건축설계를의뢰받고건축가는나주를찾아갔다.건물은오간데없이자취를감췄지만,뜻밖에도그흔적을발견할수있었다.본체를잃어버린주춧돌들은학교구석에방치되어나뒹굴고있었다.돌을본건축가는사라진순교의현장을건축으로되살리고싶었다.그래서12개의주춧돌중에4개는원래터를알리는의미로남겨놓고,나머지8개를나주순교성지로가져와그위에쇠파이프로선만되살려무학당을얹었다.
기억으로지은건축,건축으로기억한가치
이무학당을보면건축전공자들은미국의유명건축가로버트벤투리가‘프랭클린코트’에남긴철골조만으로지은집을떠올릴것이다.
프랭클린코트는‘미국의국부’로불리는벤저민프랭클린이세상을떠나기전인18세기까지살았던집일대다.1970년대,미국독립200주년을맞아이곳은미국의중요한역사적현장으로정비되고,건축가벤투리는사라진벤저민프랭클린의집을쇠파이프로윤곽선만복원했다.집이있던터에쇠파이프로기둥과문만표현한기념물이었다.뼈대로만재현한집이어서‘고스트스트럭처(유령구조체,GhostStructure)’라고불린다.
건축가로버트벤투리가쇠파이프로윤곽선만복원해완성한벤저민프랭클린의집©필라델피아주프레스룸
김원건축가의무학당은고스트스트럭처의한국판과도같다.뼈대만재현해사라진기억을되살리는점에서두건물은개념과방식이동일하다.건축가역시처음무학당을구상할때벤투리의이구조물을떠올렸다.
그러나그가이방식을가져온것은결코단순한차용이아니었다.벤투리의프랭클린집이원래자리에있다가사라진옛집을추상화해보여주는것이었다면,김원의무학당은그뼈대자체가목적이아니라주춧돌의의미를되살리기위한디자인적해법이었다.
건축가는주춧돌을순교의증언자라고생각했다.끔찍했지만숭고한순교의순간을지켜본무학당의본체는없어졌지만주춧돌이유일하게남아당시의일을전하고있다고봤다.그래서주춧돌을원래의기능대로건물을받치는역할로돌려놓고자했다.하지만무학당을제대로복원할예산은없었고,그래서파이프로표현한가상의건물,개념의건물,기억의건물을지어올렸던것이었다.버려졌던주춧돌은예전무학당시절처럼다시집을지탱하는역할로돌아왔고,이번에는집의일부가아니라진정한주인공으로격상되었다.주춧돌에담긴기억때문이었다.
원시시대의제단같기도하고,고대고분의입구를연상시키기도하는경당입구©박영채건축전문사진가
건축은언제나기억을담는다.기억은언제나건축을통해떠오르기마련이다.예나지금이나그리고앞으로도우리는뜻깊고중요한가치를건축으로기억할것이다.나주순교성지무학당은우리가기억하고기념할가치를상징하는구체적인증거물이사라졌어도건축으로기억을상징화해계승할수있음을보여주는건축이다.실체는사라졌어도개념으로지은건축,건축으로다시불러낸기억이자기억으로지은건축이기에쇠파이프무학당에담긴기억은더욱특별하고강렬하게다가와우리기억속에남는다.
사진|박영채건축전문사진가,필라델피아주프레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