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시인…김용택

그집어느방에서문을열어도앞산과강물의세월이보인다.그집에내방이있었다.내가밖으로나와눈부신세상의햇살을바라볼수있을때까지그방은나를두꺼운껍질로둘러싸고있는알이었다.나는어느날그알을깨고세상에나왔다.내가세상에나가자사람들이그집에찾아오기시작했다.내가그집을소중하고귀하게여겼으므로많은사람도그집을모두좋아하고아꼈다.
그집은동네의가운데쯤에있다.그집앞에는고추밭,무밭그리고강냉이잎이여름과가을을정확하게알려준다.달이뜬여름밤강냉이잎에바람이불면넓적한강냉이잎에떨어진달빛이은가루처럼잎을타고흘러내린다.집앞고추밭지나면큰길이있고,그아래강변,다음에강이다.강언덕에는아름드리느티나무가두그루서있다.
그집마루에앉거나눕거나서거나간에강물이보인다.그마루에서는안보이는게없다.산도,물도,강물로떨어지는눈송이도,강물로날려오는앞산꽃잎이나단풍물든낙엽들도다보인다.그집에는방이셋,부엌,키작은내가세로로누우면내키하고딱맞는마루와엉덩이폭만한툇마루가있다.툇마루는일터에서돌아오신아버님께서잠깐땀을식히시며앉아앞산의단풍과꽃과강물을바라보시던곳이다.
그집어느방에서문을열어도앞산과강물의세월이보인다.부엌문을열고어머님이허드렛물을버리시며,앞산의단풍과봄과눈오는것을알리시곤하셨다.“하따나,저새잎피는것좀봐라,꽃보다더이쁘다잉”하시거나“하이고,눈도곱게도오신다”하시곤하셨다.그러면나는얼른방문을열고꽃보다고운앞산의새잎이나강물로사라지는꽃잎같은눈송이들을보다가문을닫곤했다.

그집세개의방중에한칸은내방이었다.내방엔창호지문이여섯짝이나있었다.추석이나설에새로문을바르고누워있으면참으로방이환했다.나는그방에서평생을보냈다.나의어떤시구절처럼나는그방에서“기뻤고슬펐고사랑의외로움에두어깨를들먹였다.”세월이가며그방에는책들이쌓여가고내생각이자라나밖으로나갔다.
달이뜬밤에는불을끄고창호지문으로들어온달빛에괴로워했고잠못들어했고그리워했고간절하게무엇인가를원했다.달빛에견디지못하면툇마루에나가앉아달을보거나강변에나가헤매거나징검다리를건너며징검다리물소리를들었다.어떤때소쩍새까지울어대면참으로혼자견디기힘들었다.숱한밤을그렇게나는그방에서지냈다.
달빛으로시를쓰고겨울밤앞산과뒷산밤바람소리로나는자랐다.내방에서도문을열면아침강물이보였고봄과여름햇빛과가을바람,겨울흰눈내리는것들이다보였다.내가밖으로나와눈부신세상의햇살을바라볼수있을때까지그방은나를두꺼운껍질로둘러싸고있는알이었다.나는어느날그알을깨고세상에나왔다.내가세상에나가자사람들이그집에찾아오기시작했다.내가그집을소중하고귀하게여겼으므로많은사람도그집을모두좋아하고아꼈다.

동생들이다커서객지로가고아버님은그집아버님의방에서돌아가셨다.아버님과어머님이사셨던그방,내가어쩌다새벽까지자지않고책을보고있으면새벽에깨신아버님과어머님은도란도란이이야기,저이야기로날을밝히시곤하셨다.자식걱정,강건너밭에곡식걱정.때론웃음소리가,어쩔땐근심어린목소리가내방을찾아오기도했다.
어느해봄,그집에한여자가찾아왔다.아버님이돌아가시고나서일년이되던날이었다.그여자는그집에서살기로작정을했는지그집으로자기의인생을옮겼다.그녀는그집가난한방과부엌에서살았다.부엌에서는불을때서밥을했다.부엌에연기가캄캄하게날때면그여자는눈물을흘리며밖으로나와바람을쐬었다.날이가물면나는강가에있는샘에서물을길어왔다.퇴근길아내가강에서빨래를하고있으면나는얼른달려가빨아놓은빨래를내머리에이고돌아와빨랫줄에널었다.그여자는내아내가되어갔고촌사람이되어갔다.아내는동네나이든할머니들의며느리였다.

어느해첫째가태어났고,또몇년있다가둘째가태어났다.어머님은무척행복해하셨다.손자를얻어날마다안아주고업어줄수있었으니얼마나좋으셨을까.지금도그렇지만시골어머니들중에손자를안고업고키우는일이극히드무니말이다.들에갔다오시면어머님은얼른둘째를업고다른일을하시거나마실을다니곤하셨다.겨울철이면늘어머님이아이들을보셨고아이들은할머니방에서할머니의쭈글쭈글한젖을만지며잤다.이따금“너그아부지가다뜯어먹어서이렇게생겼다”그러시면민세나민해가“뜯어먹어”하는말을따라하며웃음소리가함께새어나오곤했다.
나는그집에서가까운조그마한초등학교선생이었기때문에도시락을싸들고학교에다녔다.자전거를가지고학교에다닐때는자전거뒤에서밥이어찌나흔들리던지반찬이엉망이될때도있었고빈도시락을싣고집에올때는시끄러운소리가집에까지따라왔다.어쩌다아내가한가해서둘째는업고첫째는손을잡고마을에서훨씬벗어나들가에있는느티나무아래까지마중을나올때도있었다.어떤때에는첫째와둘째가코를이만큼코에물고훌쩍훌쩍울며마중을나오기도했다.
집에오면나는아이둘을보았다.둘째는업고첫째는손잡고강변에나가강변꽃밭에서뒹굴거나물가에서놀다가집에와서씻기고밥먹여잠을재웠다.첫째는업고길을걸으며“호랭이온다호랭이와”라고하면내등에딱붙어잠이들었다.내가신문을보거나글을써야할눈치를보이면아내는얼른아이들을데리고자리를피해주곤했다.우리는그렇게그집에서살았다.아,지금티없이고운하늘아래단풍물든산속에묻힌집,아름다운그집우리집.그집은나무와풀과흙으로된아주작은집이다.

아버님은/풀과나무와흙과바람과물과햇빛으로/집을지으시고/그집에살며/곡식을가꾸셨다./나는/무엇으로시를쓰는가./나도아버지처럼/풀과나무와흙과바람과물과햇빛으로/시를쓰고/그시속에서살고싶다.-‘농부와시인’,김용택지음

퍼온데…KB레인보우문학/2013.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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