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집 – 김용택
한겨울지붕위에눈이쌓이면어머니는방에서베를짰다.나는책을읽었다.책을읽으니세상의소리가들렸다.눈위에눈이내리는소리가들렸다.그소리에잠이깨눈을뚝뜨면창호지문이환했다.그런날아침일어나마루에서면세상은온통눈이었다.나는내가사는집에내린눈에대한시들을많이썼다.눈오는겨울의적막은나에게시를가져주었다.하얀눈이이세상의모든길들을막아버리면나는이불속에엎디어시를썼다.
전쟁때나는두살이었다.전쟁이나자우리동네사람들은강을건너앞산으로피난을갔다.거기서굴을파고살았다.굴속에서날이새면집으로돌아와먹을것들을챙겨갔고,밤이되면굴속으로돌아왔다.밤이되면우리마을을끼고있는회문산에사는빨치산들이밤을차지했다.낮과밤의세상이달랐다.어느날우리마을은소각되었다.어른들의말에의하면한집도남지않고모든집이다불태워졌다고한다.그날밤,눈이내렸다고한다.
일본에서돌아와결혼한아버지는큰집에서살다가제금(딴살림)을나오면서네칸짜리집을근사하게지었다고한다.초가집이었다.어렸을때자다가일어나보면아버지는가을달빛을이용해서나래(이엉)를엮으셨다.나래를엮고지붕을이은다음처마를가지런히모양좋게다듬으셨다.가지런한처마끝지붕속에참새들이집을짓고살았다.어렸을때참새들이사는초가집처마끝지붕속으로손을깊숙이넣어참새를잡으려다가구렁이를만진적도있다.참새와구렁이와굼벵이와우리가살던그집이불타버린것이다.
전쟁이심해지니군인들은우리마을사람들을다른고장으로피난시켰다.우리집안은순창으로피난을갔다.전쟁이끝나자사람들은고향으로돌아왔다.그리고집을짓기시작했다.내가기억한최초의우리집은방한칸,부엌한칸의초가였다.집은엉성했다.천장으로구렁이들이지나다니고쥐들이지나다녔다.어머니는그방에서베를짰다.방한칸,부엌한칸집지붕위로눈이쌓이면집은쓰러질것처럼예뻤다.어머니는그방에서베를짰다.호롱불을밝혀놓고밤을새워철거덕철거덕베를짰다.눈속을뚫고빨치산들이찾아와문을두드렸다.

식구들이불어나자아버지는그집옆에방두개,부엌한칸집을지었다.방옆으로골목길이었다.문을열면바로길이었다.여름에비가많이오면산에서내려온도랑물소리가머리맡에서밤을새웠다.아침에일어나문을열고문턱에앉아서맑은도랑물로세수를하고걸레를빨았다.
어느겨울,눈이많이온날어머니는샘물을길어오다가넘어져다리뼈가부러졌다.어머니말에의하면물동이를깨지않으려고하다가다리를다쳤다고한다.샘까지가는길눈을쓸고우리가물을길어오고큰집수남이누님이밥을해주었다.
그리고마루가있는,방이세칸,부엌한칸의지금우리집이지어졌다.초등학교6학년때쯤이었을것이다.그후,나는중고등학교를졸업하고선생이되어그집방한칸을차지하고살기시작했다.고등학생때까지교과서외에책을읽지못한나는월부로책을사서읽기시작했다.책을보기시작하자세상이자세히보이기시작하고세상의소리가들리기시작했다.강가에있는돌멩이하나,강굽이에서있는나무한그루가다시보였다.자세히보이고자세히들리는소리가많아지니생각이많아져서나는글을쓰기시작했다.
그방에서는모든소리가들렸다.앞산겨울참나무잎들이부딪치는소리가강을건너왔다.새벽물소리가들리고,강건너밭에서어머니가호미로자갈밭을매는소리가들리고,언땅을스쳐지나가는지푸라기소리가들리고,눈위에눈이오는소리가들렸다.눈위에눈이오는소리가들려눈을뚝뜨면창호지문이환했다.그런날아침일어나마루에서면세상은온통눈이었다.강물만검은붓자국처럼산을휘돌아나갔다.강에서는하얀김이뭉게뭉게일었다.아버지가마당눈을쓸고우리도아버지를도와마당의눈을지게에짊어지고마당을나가텃논에부렸다.나는내가사는집에오는눈에대한시들을많이썼다.눈오는겨울의적막은나에게시를가져다주었다.

아침밥먹고/또밥먹는다/문열고마루에나가/숟가락들고서서/눈위에눈이오는눈을보다가/방에들어와/또/밥먹는다.-‘눈오는집의하루’,김용택지음

하루종일눈이오고그이튿날도눈이오고또그이튿날도눈이왔다.어느날나는어디갔다가늦게마을에도착했다.눈이오고있었다.

저녁눈오는마을에들어서보았느냐./하늘에서눈이내리고/마을이조용히그눈을다맞는/눈오는마을을보았느냐/논과밭과세상에난길이란길들이/마을에들어서며조용히끝나고/내가걸어온길도/뒤돌아볼것없다하얗게눕는다./이제아무것도더는소용없다돌아설수없는삶이/길없이내앞에가만히놓인다./저녁하늘가득오는눈이여/가만히눈발을헤치고들여다보면/이세상에보이지않는것하나없다./다만/하늘에서살다가이세상에온눈들이두눈을감으며/조심조심하얀발을이세상어두운지붕위에내릴뿐이다.-‘눈오는마을’,김용택지음

하얀눈이이세상의모든길들을막아버리면나는이불속에엎디어시를썼다.

밤이빨리도찾아오는/산속마을에/며칠간이고눈이내리면/밤마다산노루가산을헤매며울다가/을뒤안까지내려와바스락거리고/부엉이는부엉부엉울었다배가고팠던것일까/나는잠을빼앗겨버리고는/이따금씩마루에나가가만히서지곤하는것이다/어쩔때는눈보라가마루까지들이치고/내얼굴에,내맨발의발등에눈송이가와닿아/나는깜짝깜짝놀라곤하였다/처마끝에는눈송이들이몰려다니고/어둔밤강물은/큰붓자국같이검게그어져있는것이다-중략-그이듬해봄이온어느날강에나가발을씻고/풀밭을맨발로걸으며/샛노랗고새하얀작은풀꽃들에게내눈길이가머물때/또그산노루의울음소리를나는/거짓말같이들었던것이다/눈을오래오래바라보며마루에서있던나도/맨살에날아와흰꽃잎같이닿던그차디찬눈송이도잠/못들고뒤척이던내모습도/불때는아버님의환한가슴과환한얼굴도/잔잔한물결에다밀려오는것이다/참,그렇지그랬었지그생각들이봄물결처럼푸르게/일어나는것이다.-‘그해그겨울그집’,김용택지음
퍼온데….KB문학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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