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과하륜은익히알려진인물이다.일반인들에게상대적으로덜알려진박상의는선조와광해군때조정에서활약한지관(地官)이었다.임진왜란당시명나라군대를따라조선에왔던중국의풍수사들과당당하게어깨를겨눈풍수사였다.현재서울종로구숭인동에있는동묘(東廟)터는그가잡은것이다.단재신채호선생이쓴소설’박상희(朴象羲)’는바로이인물을다루었다.해방이후최초의풍수학자인고(故)배종호교수(연세대철학과)는박상의를"국풍(國風)의지위에앉음으로써조정고관,부귀권세가의존숭(尊崇)을한몸에모았던사람"으로평했다.현재그의무덤은전남장성호호숫가에서잘관리되고있는데,박상의가한시대를풍미했음을보여주는흔적이다.
문제는노자키교수가’실천풍수’의대가로소개한정만인이다.그는분명실존인물이었다.충남예산군덕산면에있는’두명의천자가나올터(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를흥선군에게소개했고,그명당발복(發福)으로고종과순종황제가태어나게했다는주인공이다.정만인은흥선군의아버지남연군묘를이곳에이장해주고"계해년(癸亥年)에흥선군의둘째아들이국왕이된다"고예언했다.
동시대를살았던황현과윤효정같은지식인과관리가남긴기록에언급되어있는것을보면뜬소문이라할수없다.황현은그의친구이건창(조선말대학자)에게서이에대해들었는데,이건창은흥선대원군에게직접들었다고한다.따라서거짓일리없다.
그런데지금으로부터150여년밖에거슬러올라가지않은19세기에실존했던정만인의흔적이없다는점이무언가이상하다.남연군묘는1868년독일인오페르트가도굴을시도한일로당시조선을깜짝놀라게했다.도굴범오페르트는훗날독일로귀국한뒤’굳게닫힌나라조선여행(EinVerschlossenesLand,ReisennachKorea)’이라는책을출간해당시자신의도굴을변명했다(1880년).그렇게유명한남연군묘를잡아준당사자가정만인이었다.쉽게세간의관심에서멀어질인물이아니었다.내포지역(충남서북부가야산주변을통칭하는지역)사람이라고그곳향토사지는기록하지만전설임을전제한글이다.
선배풍수학자인최창조전서울대교수는그가여진족이라고확신한다.만주로귀향했기때문에흔적이없다는것이다.권력을잡은흥선대원군이천기누설을우려해그를죽였다는이야기도전해진다.죽임을당했다하더라도그후손은남아있지않을까?만약스스로자취를감추었다면그이유가무엇일까?후배풍수학인의입장에서필자가선배풍수사정만인의입장을헤아려다음과같이변명해본다.
‘소생정만인은2명의천자가나올자리를흥선군에게잡아드렸습니다.일본과중국에휘둘리지않는당당한천자의나라조선이되기를바라는마음에서였습니다.그러나권력을잡은그는세계화의흐름을읽지못했고,부국강병보다권력지키기에급급한모습이었습니다.천자국의기회를놓친것입니다.후회하였습니다.하여소생은가족과함께흔적을감추었습니다.’
조선풍수사(風水史)에서정만인의실종은최대미스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