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외와함께남양성모성지순례를다녀왔습니다..
예전에여러번다녀온성지여서한번더성지순례한다는게나와아내의느낌이지만
커다란역병을이겨내고,삶의의미가더커진아우..
TV평화방송묵주의시간에함께올라오는이미지…그이미지가성지방문을앞당겼습니다.
남양성모성지후원은여러번했지만직접방문하기는처음이라는아우…
성모동산운동장가의아랫길은묵주기도의길..더위에큰길은십사처기도의길
오늘형제는묵주기도의길에서짧은기도를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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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봉헌소에서아내는촛불두자루를봉헌합니다..
조금은의아..
오늘첫아들생일이고,내일은첫아들결혼기념일…
어제아내는미역국끓이라고미역을보냈고
아비된나는문자메시지를넣었습니다..
‘밝은얼굴은아주커다란자산이다’
몇가지기원과함께넣은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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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좋아하시는분들에겐고마운포토존입니다.
사철어느때와도아이템은무궁합니다
어느종교시설에서도같은얘기이지만
신앙대상물엔최소한의예의를지키는것은문명인의긍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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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를신앙하는저도절에가면대웅전불상을향하여읍하고
행동거지를천천히바르게하려고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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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속에는아우부부의얼굴이자주나옵니다
우리들신앙중심으로촬영하였기에조금지루할수있습니다
다보아주시면제가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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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병인년(1866년)대박해때이름없이순교하신많은순교자들을현양하는순교성지이며
1991년10월7일,로사리오의복되신동정마리아축일에성모마리아께봉헌되어한국천주교회내에서는처음으로성모성지로공식선포된곳이다
순교지남양은
조선조당시남양은도호부가있던곳으로행정과사법권을부여받은종삼품의도호부사가다스렸다.
박해당시,남양포교들이잡아들인천주교인들중,양반신분인분들은한양이나공주로
이첩이되어그곳에서재판을받고처형되었지만,신분이낮은분들은남양부사의재량에맡겨졌다.
남양부사는모진매질로배교를강요하다가이에응하지않는신자들은
바로지금의남양성모성지자리에서목매달아죽였다.
치명일기와증언록에남양의순교자들로김필립보와박마리아부부,정필립,김홍서토마네분의이름만이기록되어전하고있지만,다음의몇가지사실들로미루어더많은신자들이남양에서순교했을것이라고추정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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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한국최초의신학생으로선발되어,중국마카오에서공부하다가열병으로숨진최방제프란치스코신학생이남양사람이었다.
둘째,한국최초의영세자이승훈베드로의손자로1868년,외국인주교와김대건안드레아신부의국내인도를도왔다는죄로체포되어서소문밖에서참수당한이재의토마스순교자가성장한곳이남양부의백학교우촌이었다
셋째,남양은지리적으로신앙활동이자유로웠던중국과의연락이용이한서해안에위치해있었고,
주변에백학과활초리등교우촌이형성되어있었다…
..위의자료는남양성지사무소에서제공한인쇄물에서퍼오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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