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복무,인생에도움되는디딤돌
졸병생활,밑바닥부터시작…좌절겪을땐그시절이떠올라
軍복무를자랑스럽게여기고청년들이적극적으로임했으면
나는바퀴18개달린초대형트레일러를한번에후진주차할수있다.근40년전수도군단수송부운전병하영구가갈고닦은기술이다. 그시절군대는훈련도힘들었지만,’얼차려’라고불렸던가혹행위와구타가아무렇지도않게벌어졌다.거의매일’엎드려뻗쳐’를하고고무호스로엉덩이를맞았다.대형트럭에주유할때쓰는지름20㎝짜리굵은호스였다.한번맞으면엉덩이와허벅지에시퍼렇게멍이들었다. 어느날밤에는침상에서자고있는데얼굴에뭔가뜨거운게쏟아져잠이깼다.술마시고들어온고참이침상에누운내얼굴에대고오줌을누고있었다.지금군대에선말도안되는일이지만,그땐참아야했고"남자답게버티는거다"며이겨냈다.하루하루가고역이었다.운전병업무도만만치않았다.통신장비를싣고다니는트럭을주로운전했는데산과들안가본데가없었다.버스까지온갖차량을다몰아봤다.
- 하영구은행연합회장은“군생활34개월동안보안사·수도군단등일곱부대를거치면서사회생활에필요한밑거름을얻었다”며“지금도힘들때면군시절을떠올리며‘이까짓것쯤이겨낼수있다’고스스로를다잡곤한다”고말했다.24일서울은행회관집무실에서./김지호기자
수송부에배치될때까지도우여곡절이있었다.1976년대학을졸업하고스물넷에군에입대했다.뒤늦은입대였다.주변에서장교에지원하라고했지만난’짧고굵게군생활을하겠다’는생각에사병으로입대했다.훈련소에서는네댓살어린동기들과훈련을받았다.무릎이안좋아신체검사에서2급판정을받았던터라훈련을따라가기가고역이었다.
훈련을마친뒤부대배치를받았는데,무려일곱부대를거쳤다.행정병으로출발해운전병,통신병,통역병등을거치면서34개월복무를마칠수있었다.훈련소에서나와처음보안사령부에배치됐다.행정병으로번역일을맡았으나얼마지나지않아비밀취급인가증발급을거부당해다른부대로옮겨야했다.학생운동이문제된것같았다.보안교육대와103보충대를거쳐서울문래동의수도군단에재배치됐다.군단사령부에서도비밀취급인가증이없으면웬만한보직은얻기힘들었다.결국나는수송부운전병으로배치됐다.
1977년봄경기도김포청룡부대에서있었던일이다.얼굴이벌겋게상기된주한미군병장이다급하게나를불렀다.일부미군병사가부대한편에몰래대마초를키우고있었는데,한국군병사들이일부러제초작업을핑계로대마초를모조리뽑아버려화가머리꼭대기까지난것이다.당시해병청룡부대에서는육군과주한미군이합류해함께생활하고있었다.전년도인1976년북한군의판문점도끼만행사건으로데프콘(전투준비태세)3단계가발령중이었기때문이다.나는육군통신차량수송병으로복무하다가청룡부대에서파견근무를하고있었다.병사들가운데영어를잘하는편이어서통역역할도했다.대마초사건이난그날우리쪽병사들은"잡초를제거했는데왜시비냐"며맞섰다.양국병사들은육탄전직전까지갔다.당시일병이었던나는영어좀한다는죄(?)로해병대와미군사이에끼어서싸움을말리느라진땀을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