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기사]”나로우주센터는 10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의 첩보 전쟁터였다”
    "나로우주센터는10년동안한국과러시아의첩보전쟁터였다" 정병선
    디지털뉴스본부차장
    E-mail:bschung@chosun.com

    평범한삶을거부하는기자다.늘뭔가를생각하며추구한다… 평범한삶을거부하는기자다.늘뭔가를생각하며추구한다.
    조선일보에입사한뒤편집부,국제부,사회부,정치부를거쳐,지난2001년부터2006년까지모스크바특파원.기획취재부,스포츠부를거쳤다.
    동유럽이무너지며급변하던시기인1990년헝가리부다페스트에서유학하며세계의흐름을읽었다.옛유고연방코소보내전,러시아체첸내전등종군취재경험이있고시베리아횡단취재,북극해취재등대형기획기사를썼다.영역구분없이늘생동감있는현장을즐기는기자다.

  • 서울대노어노문학(러시아)과졸.러시아국립모스크바대학원언론학부석사.동대학원박사과정수료.

입력:2015.04.0208:05|수정:2015.04.0210:45

“한국은러시아가수십년동안개발해얻은발사체개발기술을10년만에확보했을것이다.”
나로호개발에참여한러시아연구원예브게니부킨(46·가명)은“한국에는10년전발사체액체로켓엔진을이해하는자가한명도없을정도로‘나비쵸크(초보자)’였다”며“당시한국기술진은초등학생수준이었지만지금은우리가경계할수준이됐다”고놀라워했다.

그는“1·2차나로호발사가실패하자러시아엔지니어들사이에는‘한국이러시아의발사체기술을확보하려고의도적으로실패로몰아갔다’는말이나돌았다”며“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측이제작한2단로켓이시험발사때는한차례도실패한적없는데유일하게발사당일문제가발생했기때문이었다”고했다.

2013년1월30일오후4시전남고흥군나로우주센터에서발사된우주로켓나로호가불꽃을뿜으며하늘로올라가고있다.나로호는2009년,2010년두차례실패후이날세번째도전에서성공했다.우리나라최초우주발사체나로호(KSLV-1)가30일고흥우주센터발사대에서우주를향해힘차게비행하고있다.항우연제공

한국측은러시아측주장에반발했다.한영민한국형발사체추진시험팀장은“러시아는우리가2단로켓의페어링(로켓덮개)분리실험을진공상태에서하지않은것을문제삼은것”이라고했다.지난10년동안한국과러시아연구진들간의설전은이래저래끊임없이전개돼왔다.

전남고흥외나로도나로우주센터는총성없는전장(戰場)이었다.특히,2층발사체조립장은나로호발사당시발사체를조립했던곳으로출입통제가가장심했던보안구역이었다.이곳은러시아보안요원들이상주하면서최후의순간까지감시를늦추지않았던곳이다.24시간감시카메라가작동했다.러시아에서반입한장비일체에대한감시체제를유지하고있었다.

1-2차나로호발사실패로양국여론이악화되면서한국과러시아발사팀들은긴장감을느끼지않을수없었다.항우연제공

러시아보안요원드미트리포노마료프(55·가명)는“나로호발사이후에도철수때까지감시망을소홀히할수없었다”고말했다.그는동료엘례나표도로바(53·가명)와2인1조로발사대주변과발사통제센터,발사체조립장내러시아장비들이있는모든보안구역을대형모니터를통해스크린했다.

러시아는나로호발사때까지지나칠정도로엄격한규정을내세우면서러시아엔지니어와한국항우연직원들과의사소한접촉마저차단했었다.러시아엔지니어들이한국엔지니어들과조금만밀착해대화를나누는듯하면어디선가나타나제지했다.발사체조립장은물론식당,회의장등러시아인들의움직이는동선에서는예외가없었다.대화채널은발사체제작사흐루니체프의프로젝트매니저인콘스탄틴샤이비치로일원화했다.

러시아측은나로호모형주위로러시아로철수할물품들을봉인한채선적순위를매겼다.정병선기자

나로우주센터는러시아인들이철수하기까지한국이아닌러시아의우주센터를방불케했다.지난2013년1월30일나로호발사를전후로러시아에서온연구원과엔지니어는200명이넘어설정도였다.당시블라디미르포포프킨러시아연방우주청(로스코스모스)청장을비롯한우주사업핵심요인들도총출동했었다.

부킨은“나로호발사과정에서한국은러시아가제작한1단액체로켓엔진기술이최대관심사였다”며“러시아엔진제작사에네르고마쉬가만든RD-151엔진은한국이반드시보유해야하는최첨단기술의복합체였다”고했다.이엔진은170t으로140t의나로호를196㎞상공까지쏘아올리는강력한것이었다.액체상태연료와산화제를분사한뒤혼합시켜연소시킬때나오는추진력의비결을알면한국도당장발사체개발성공을의미하는것이었기때문이다.

러시아보안요원들의24시간밀착감시가진행됐던발사체종합조립동.정병선기자

이런이유로러시아측은엔진작업하는날엔어느때보다감시를철저히했다.긴장감이넘쳤다.한국연구원들이엔진에대한질문을하면러시아연구원들은하나같이“나는너를믿는데너는나를믿지않는다”며답했다.“물어보면답을할수없다는것을뻔히알고도질문을하면곤란하지않으냐”는의미였다.

한국과러시아연구원들은서로알고지내면서도우주센터에서는보이지않는팽팽히긴장감을유지해야했다.그와중에서눈으로보고귀로듣는보이지않는정보전이진행될수밖에없었다.

나로호발사이후러시아로반입할물품을24시간감시하는최후의감시자.정병선기자

항우연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서견수책임연구원은“한국은나로호후속작인75t급한국형발사체(KLSV-2)의설계와액체로켓엔진기술을나로호발사를통해확보한것이나다름없다”며“러시아와의나로호공동제작을하면서KLSV-2에대한선행연구를해왔다”고말했다.그는“러시아도한국의집요한발사체개발의지에혀를내두를정도였다”고말했다.

러시아는‘미사일통제시스템(MTCR)’과‘우주기술보호협정(TSA)’등국제규정때문에로켓기술유출이불가능했지만한국으로서는러시아측의조립·시험과정을하나라도눈으로보기위해노력할수밖에없었다.러시아와한국의연구원들은모두“나로우주센터는어찌보면지난10년동안한국과러시아의첩보전쟁터였다”며“정보를주지않으려는러시아와정보를입수하려는한국의치열한기싸움이24시간펼쳐진현장이었다”고했다.

당초러시아발사팀은2009년나로호1차발사를성공적으로마무리하고서둘러한국에서철수하려고했다.나로호발사계약당시발사실패때러시아측이부담금(계약금의5%인1050만달러)을내게돼있어1차발사에사활을걸어야했다.하지만3차까지발사가이어지면서4년동안한국에추가체류하며엄청난손실을보았다.러시아연구원들은나로호발사가성공하자“후련하다”는입장을보이면서도향후한국과의협력에기대감을나타내기도했었다.

러시아측의모니터링실.항상봉인하면서보안에만전을기한흔적이남아있다.정병선기자

러시아전문가들은“지난10년동안한국은러시아발사체기술을날로먹은것이나마찬가지다”며“러시아가직접기술이전은하지않았지만전작업과정을눈으로만봐도기술이전효과를충분히누렸을것”이라고했다.이철형전항우연나로우주센터장도“1차발사에성공했으면좋았겠지만두차례발사실패로오히려러시아로부터더많은기술접촉을할수있는계기가됐다”며러시아측의주장을부인하지않았다.

러시아엔지니어들과나로호제작에나서면서나로호에관련된설계시스템제작,2만5000쪽에이르는시험평가자료를접하면서한국형로켓을개발할수있는기반을확보했다는것이다.

러시아로반입직전봉인된궤짝들.정병선기자

항우연팀들은국가프로젝트를위해사활을걸었다.서견수책임연구원은“처음에는러시아로켓제작사후르니체프,엔진제작사에네르고마쉬,지상발사대개발설계국모두가일사불란하게한국에설계도조차보여주지않을정도였다”며“하지만1·2차나로호발사실패가오히려우리에게는러시아의설계개발검증시스템과기술을접할수있는더할나위없는기회로작용했다”고말했다.

나로우주센터는지난10년동안약1000여명에이르는러시아인이다녀갔을정도로북적였다.이때문에우주센터가위치한고흥의호텔과모텔모두러시아인차지였고동네가게에서도보드카를팔정도로흥청했다.‘말렌카야라시야(미니러시아)’였다.

모든종이기록을파쇄한뒤폐기직전의모습.정병선기자

나로호발사를위해파견된러시아엔지니어들과장비는2013년완전히철수했다.그해6월50여명의엔지니어가발사체관련장비1~2차포장작업과더불어장비선적을끝으로나로우주센터에서더이상러시아인들을볼수가없다.

하지만러시아인이떠난지금나로우주센터는여전히긴장감이넘친다.2019년예정된나로호후속작한국형발사체(KLSV-2)시험발사를위한엔진개발이한창이다.

정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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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본기사는프리미엄조선에서작성된기사입니다

퍼온데…다음/메일/프리미엄조선/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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