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3월중순판아메리칸고속도로(알래스카에서아르헨티나까지종단하는국제도로)칠레구간.임택(55)씨가모는‘12번마을버스은수’가대형버스를제치며시원하게내달렸다.임씨는쾌재를불렀다.
“은수는폐차를앞둔버스예요.평생좁은골목을오가던,시속60㎞도경험해보지못했던은수가120㎞속도로세계를질주했어요.마을버스의역사를다시쓴셈이죠.여러분도자신의능력을믿어보세요.”
임씨는당시현장을찍은동영상을본인의페이스북(nulbo1019)에올려놓았다.지난해10월22일경기도파주시임진각‘출정식’으로스타트를끊은‘버스로떠나는세계여행프로젝트’다.은수는평택항에서페루로보내졌고,임씨는지난해12월17일페루의수도리마에서‘부르릉~’남미일주의시동을걸었다.6개월여의남미여행을마친그는현재멕시코에들어와있다.
몇차례e메일과메신저로소식을주고받았던그에게지난22일전화를걸었다.밝고씩씩한목소리가수화기를타고흘렀다.
“아,기자님,저는지금멕시코남부국경도시이달고에있습니다.멕시코시티를거쳐미국마이애미로올라갈예정입니다.은수는과테말라의푸에르토바리오스항구에서마이애미로먼저배로보냈고요.”
-왜은수와동행하지않는거죠.
“정말하늘이무너지는것같았어요.멕시코에선3.5t넘는외국여행차량은통과를불허한다는겁니다.은수는4.8t이거든요.세관에아무리하소연을해도소용이없었어요.과테말라로되돌아가려했는데다시입국이거부됐습니다.한번나간외국차는3개월이지나야재입국할수있다는규정이있다나요.청천벽력,진퇴양난이었죠.그때천사를만났어요.과테말라관세사루돌프와멕시코아가씨파비가애써준덕분에은수를여행차가아닌‘수출품’자격으로과테말라항구로보낼수있었습니다.솟아날구멍을찾은셈이죠.”
-매우당황스러웠겠습니다.
“파비와루돌프얘기는책한권을쓸정도예요.어떤경험과도바꿀수없는,감동자체입니다.자기일처럼얼마나성심껏도와줬는지몰라요.파비는딸처럼가까워졌고요.저를‘파파’라고불러요.헤어질때부둥켜안고얼마나울었는지….이산가족이따로없었죠.여행은그런것이죠.계획대로풀리지만은않죠.일반관광에서는맛볼수없는,여행만의참맛입니다.”
-여행의최고선물은역시사람이죠.
“그렇죠.전혀예상못했던휴먼스토리가생겨납니다.한편한편이드라마같죠.볼리비아사막에서길을잃은적이있었어요.사방에모래폭풍이불고,기름은떨어지고,밤은다가오고….그때사막의노동자들이저희를구해주었습니다.밥을주고,재워주고,기름도넣어주고.콜롬비아안데스고원도로에선차에이상이생겼는데,지나가던트럭기사들이서로고치려고달려들었어요.차밑을살펴보고회의도하더니연료필터에문제가있다는겁니다.”
-왜하필마을버스입니까.
“마을버스는평생좁고가파른골목을다닙니다.가장큰세상이2차로,간혹4차로죠.은수도10년간46만㎞를달렸습니다.마을버스는우리네서민을닮았어요.쳇바퀴같이살아온5060세대에게새길을보여주고싶었어요.은수도도전을하지않았다면자신의능력이무엇인지모르고사라졌을겁니다.”
-은수는어떻게만나게됐나요.
“종로12번마을버스‘은수교통’의준말이에요.주로서울대병원을오가는사람을실어날랐습니다.환자와그가족들의애환을품고있죠.어릴적친구의사촌누나이름도은수였고요.저를꽤예뻐해주었죠.일종의운명같아요.이번여행을위해요리교실도다니고정비수업도받았습니다.출발전여기저기은수의‘아픈곳’을수리하고내부도개조해침대·주방등을만들었습니다.”
-그동안경비도제법들어갔겠죠.
“이번여행은5년전에기획했습니다.서울평창동언덕길을힘겹게올라가는마을버스를보고나이50줄에들어선제삶을돌아보게됐죠.2년전멤버다섯을구성,각자3000만원씩내자고뜻을모았는데한명한명포기하더니결국둘만남게됐죠.막판에다른한분이동참해셋이함께떠났다가그중한명이파나마에서그만두는바람에현재둘이다니고있어요.중간중간희망자가있으면언제라도환영입니다.기름값만조금대세요.”
-원래여행가가되고싶었나요.
“고향이경기도김포입니다.어릴적부터뜨고내리는비행기를보며언젠가는별나라저편으로가보겠다는꿈을키워왔어요.수입오퍼상으로일해오다가2년전세계여행뜻을굳혔습니다.인생2모작이죠.20여년전에이미휴대전화끝자리번호를5060으로정해놓았습니다.늦어도50대에는하고싶은일을하며살자고결심한거죠.앞으론번호를7080으로바꿔야할것같아요.하하하.”
-반퇴사회,노령화문제가심각합니다.
“요즘나이50이면청년입니다.75세도경로당(실버센터)에서담배심부름을하는세상이죠.은퇴한다음에도무언가에몰두할일을찾아야해요.너도나도치킨집을하다주저앉을수는없잖아요.은수의메시지도바로그것이죠.노인이젊어지면나라가젊어집니다.요즘청춘에게우리도늙어저렇게살수있겠구나,하는자극이될수있고요.”
-갑자기돈키호테가생각납니다.
“돈키호테는그냥뛰어나갔지만저는5년을고민한겁니다.은수의별명이‘타키’,즉몽골의작은말이라는뜻인데,돈키호테가타고다녔던로시난테를닮은것도같네요.”
-가장힘들었던순간을든다면요.
“정비를한다고했어도은수가자주멈춰섰어요.가장큰원인은기름이었어요.남미지역연료에는우리나라의100배가넘는유황이함유돼있다고합니다.사막미세먼지와섞여연료파이프가막혔던거죠.동료간의갈등도있었습니다.여행을떠난개념이서로달랐기때문이죠.저도관광을생각했다면견디기어려웠을지몰라요.”
-중남미에서한국의이미지는어떤가요.
“은수와제가한류스타가된기분입니다.사람들이기념사진을찍겠다고법석을떨어요.은수를함께타고가며‘강남스타일’춤을추기도했고요.한국어사인을하는사람도많았습니다.지나가던사람들도현대나삼성은다알아요.현대자동차정비소는대규모공장처럼크고,사람들손에는삼성모바일폰이들려있죠.”
-이제여행의반을마쳤습니다.
“미국을보름정도돈다음독일로갑니다.시즌2의시작이죠.유럽과북아프리카를거쳐이번여행의하이라이트인아시아10개국을관통합니다.내년3월께5대륙48개국순례에마침표를찍을예정이에요.아시안하이웨이1번도로(터키에서일본을잇는도로)를탑니다.세계인구의절반이이도로가지나가는나라에서살죠.최종목표는북한을거쳐판문점으로되돌아오는겁니다.북한청년을만나고싶은마음은굴뚝같지만어떻게될지는알수없죠.결과에관계없이이시대움츠러든어른과청년모두에게기를불어넣을수있다면대만족입니다.국가대표마을버스이자저의연인,은수도끄떡없이달려주겠죠.”
[SBOX]웃음의힘…치안불안중남미서무사고,경찰도체포했다풀어줘
“미소만큼강력한소통은없습니다.”
임씨는이번여행에서아무런‘사고’를당하지않았다.치안이불안한곳으로알려진중남미지역을순례했지만말이다.그는웃음의힘을꼽았다.누구든눈만마주쳐도‘부에나(buena·스페인어로‘좋은’이란뜻)’라고인사를건넨다고했다.“간단한먹거리를사서아이들입에무조건넣어줘요.강도도자식은있잖아요.애들하고친해지면어른들은절로가까워집니다.”
임씨는여행자가아닌친구가돼라고권했다.웃음은기본조건이다.위기의순간에서도보호받을수있다고했다.그가사례하나를들었다.
“지난해말볼리비아광산지역을지나다시위대와진압경찰사이에끼인적인있었습니다.시위대는다이너마이트까지들고있었어요.제가차에서내려‘페리스나비다(FelizNavida·성탄축하)’라고외쳤더니사람들이‘뭐저런인간이다있어’라는표정을지으며웃음을터뜨렸죠.동행했던남미동포가수박우물씨의즉석공연을열었어요.‘아리랑’도불렀고요.사람들이박수를치고,사진을찍자며달려들고,완전난리였죠.”
웃음앞에선경찰도친구가된다.지난달임씨는멕시코무장경찰에게체포된적이있다.멕시코에선유니폼차림의학생이나경찰·군인촬영이금지됐는데김씨가무심코학교안의초등학생을찍었던것.그는예의웃는얼굴로경찰에대한칭찬을아끼지않았다.‘당신영어잘한다’‘예쁘게생겼다’등.
“오해가풀렸는지,휴대전화를꺼내셀카를찍어댔어요.잡혀온건지,놀러온건지구분이안될정도였죠.제숙소까지경찰차로데려다주기도하고.하하하.”
박정호문화·스포츠·섹션에디터jhlogo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