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기사] 소녀와 노인

[지평선]소녀와노인

기사등록:2015.12.1620:00

한국일보

이것은실화다.얼마전이른아침,서울시내버스안,기사와세명의승객이있었다.50대신사와회사원차림의젊은이,중학교1~2학년쯤돼보이는소녀가있었다.한정류장에서80세전후로보이는노인이탔다.그는양손에묵직한비닐봉지를끌고힘겹게버스에올랐다.노인은“요금이없어서미안하다.조금만태워달라”며기사뒷자리에걸터앉았다.기사는“요금도없이버스를타시면안됩니다”면서“다음정류에서내리세요”라고말했다.일순버스엔긴장감이돌았다.

▦노인은자리에제대로앉지도못한채거듭“미안하다”고했고,기사는“그러시면안된다,내리시라”고했다.여기까진낯설지않은풍경이다.중간쯤앉아있던소녀가갑자기소리를질렀다.“기사아저씨,할아버지내리라고하지마세요!차비가없다고하시잖아요.”더놀란것은소녀의다음행동이었다.소녀는버스요금박스에만원짜리지폐한장을집어넣었다.뜨악한표정을짓는기사에게“잔돈은할아버지같은분들이타시면요금으로계산하세요”라고말했다.침묵이흘렀다.

▦진정당혹스러운쪽은신사였다.자신의지갑에있는몇장의지폐가떠올랐다.슬며시한장을빼냈다.다행히소녀는내리지않았고,아무일도없었다는듯휴대폰을만지고있었다.신사는목적지에서버스문이열리자소녀의외투주머니에만원짜리한장을슬쩍집어넣고는죄인처럼도망치듯버스에서내렸다.신사의만원을소녀가어찌했는지,소녀의만원을기사가어찌했는지알지못한다.신사는여기까지의얘기를한라디오방송을통해고백하면서소녀에대한어른의죄책감을씻고싶다고했다.

▦한아주머니가빵을사러동네제과점에들렀다.한노인이케이크를주문하면서집까지배달해줄수없느냐고묻고있었다.그는심각한파킨슨병환자였다.부인이깜짝놀라게생일파티를해주고싶었던모양이다.종업원은규정상배달이불가능하다고했다.아주머니는자신의일을팽개치고노인을부축하여함께케이크를집까지들어다주었다.그아주머니는‘버스안소녀와노인’얘기를들었다고했다.그신사의말이생각난다.“세상을바꾸는힘은그소녀가갖고있는DNA같은게아닐까요?”

/정병진논설고문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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