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코트를입고가는여행을
오래전부터꿈꿔왔는데 참우연히도이번에그꿈이이뤄졌으니…
하필그곳이무엇으로도설명될수없는
많은사연이젊음의한페이지에고스란히남아있는
제주하고도서귀포였다니
‘꿈★은이루어진다’는말을실감하기도…
평일에도자유로운백수인관계로어쩌면동행하게되어
잊지못할여행으로추억될것같습니다
몇년전변시지의작품을볼때부터가보고싶었던
기당미술관,우리나라시립미술관의효시라는
사실을이번여행으로알게되었구요
역사적으로도의미있는미술관이더군요
(안내팜플렛지금다시확인하니19877월1일개관)
기당강구범씨개인이소장한강용범선생의유작과유품을기증
강용범상성전시실과미술관명예관장인우성변시지선생의
작품을전시하는상설전시공간을마련하고있었으니
세상에태어나서이런멋진문화유산을남긴기당선생께
고마움을전하며전시장안팎을둘러보았습니다.
다른전시실에는국내외조각공예서예작품560여점이
소장되어있고장우성서세옥송수남이왈종박서보
김원이대원민경갑장리석김기창의그림등등
그리고매년3~4차례기획전시를개최하며
일정기관지역작가들에게대관도한다합니다.
수려한삼매봉기슭에자리하고있어주변경관도장관이었구요
이중섭미술관은하필우리가간날
‘이중섭백남준전’준비로수리중이라
이중섭이주거하던초가주위와
남인수가부른’서귀포칠십리’가사가적혀있는
현판의버튼을누르자둘러보는내내
구성지게흐르고있어서아쉬움을달랬습니다.
(시간내어이중섭기념관자료는찾아보겠습니다)
다행히이런블로그가검색되어올립니다
▲제주도서귀포시에위치한이중섭전시관./고병윤인턴기자
굵고강한색채로표현한역동적인‘소’그림과,담배갑의속지로쓰이는은박지에송곳으로눌러그림을그린‘은박지화’로유명한고(故)이중섭화백.이비운의천재이름을딴‘이중섭거리’와‘이중섭미술관’이있다는사실을아는이는많지않다.
▲이중섭이은박지에그린그림.
이중섭미술관은국민화가로꼽히는이중섭을기리기위해서2002년도에서귀포시가개관했다.그의명성에도불구하고,작품을전시할만한제대로된미술관하나없음을안타까워한사람들이세운것. 미술관직원에따르면하루500명정도의관람객이미술관을찾고있는데,그중80%가외지에서‘일부러’이중섭의작품을보러온사람湧繭箚?한다. 이중섭미술관에서는요즘특별한전시회가열리고있다. 연말까지계속되는‘이중섭에서백남준까지’라는기획전이바로그것이다.이기간동안에는이중섭이서귀포시절에그린‘파란게와어린이’를비롯한그의작품4점과,그와같은시대의작가38명의작품54점을감상할수있다. 세계적인비디오아티스트백남준의그림및비디오아트도원본으로감상할수있음은물론이다.
▲제주도로피난온이중섭가족을거두어준김순복씨와이중섭이머물렀던집./고병윤인턴기자
기획전을찾은한관람객은,“관광차제주도에왔는데,이중섭미술관이서귀포에있다는거에요.설마하면서왔는데이중섭화백의원화를볼수있는행운을잡게되었네요. 그의그림이제주도에큰영향을받았다는사실도이번에알았어요”라고밝혔다. 그러면서제주도의또다른면을보게되었다고한다. 미술관밑으로는이중섭이제주도피난시절에기거했던집을볼수있다. 골격만남아있었으나,이중섭과그의가족이머물렀다는사실이알려지면서지난1997년에복원됐다.복원후에,조그만공간을마련해서이중섭의작품을전시했었는데,찾는사람들이줄을잇자정식으로이중섭미술관을마련하게되었다고한다. 이중섭에대한산증인도만날수있었다.피난온이중섭가족을거두어주었던집주인김순복씨가아직도그집에살고있는것이다.여든넷의나이에도김순복씨는이중섭을또렷이기억하고있었다. “아주순한사람이었지.말도없고얌전한것이말야.그런데당체집에는붙어있질않고,여기저기다니면서그림만그리더라고.그런데그양반이이렇게유명해질지는몰랐지.저기집밖에길말이야,거기가이중섭하고마사코(이중섭의일본인부인)가걷던길이야.” 작가이중섭은1951년도에한국전쟁을피해제주도서귀포에서10여개월동안피난생활을하게된다.이중섭의불행한인생중에서도특히고난스러웠던이시절에,그는제주도에서많은예술적영감을받게된다.그결과이중섭은서귀포에머물면서‘서귀포의환상’,‘섶섬이보이는풍경’등을그리게된다. 실제로이중섭이머물렀던집에서보면‘섶섬이보이는풍경’의배경이된섶섬을그림과같은구도에서볼수있다.가장어려웠던시절에제주도는이중섭에게얼마간의안식과창작욕을자극하는아름다운풍경을제공했던것이다.
▲이중섭미술관약도이중섭미술관주소-서귀포시서귀동532-1/이중섭미술관전화번호064-733-3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