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M 소회 – 취향과 기질

식구들이-식구래야고작남자두명이지만-나가고청소빨래또는내작업하면서텅빈공간에음악이없다면어떨까싶다.말이났으니말이지집에아무도없다면종일을틀러놓는게f.m이다몇년전부터아이들이들락거린이후에죄고장트려만만한오디오하나없고공들여모우던L.P판도정리한지오래…내가의존하는건f.m라디오가유일한음향기기다

가끔기분내고싶을때는거실부엌-싱크대아래의아주조악한-내방의라듸오를동시에틀어울리는게호사의모두다그나마거실의오디오는또망가져처분한지오래여서지금은겨우둘이지만누구처럼값비싼오디오기기를탐해본적도없다.그리고인너넷의스피커가모두다.컴이망가질때아주조금더돈을들여스피커를구입했더니경운기타다비행기타는기분이이랬을까싶었을정도였다(옛날스피커가얼마나조악했으면…;;)

방송이란게더러는텀을두고반복할때도있어짜증나기도하지만cd갈아끼우는수고선곡하는수고없이누가나를위해다양한음악을선물하리…하며고맙게듣는수준이다때로는모프로에고마움이우러나잡글도한번보냈더니상으로책도타본적도있고꼭가고싶은공연응모하여당선되기도해서고맙게공짜로본적도두어번있었지만지금은안한다-나이값해야지도대체,부끄럽기시작해서(아이구야비밀하나를또폭로하다니…지금은안한다니깐요^^)

그러다보니프로중에도아끼는프로도진행자도생기기마련이지만방송이란게변화를추구한다는명목인지개편을마구마구하는바람에맛나게쪽쪽빨던막대사탕폭력으로빼앗긴애들마냥허무하기짝이없을때도더러있었지만요즘은그냥그러나보다…맘을비우기도한다.진행자보단음악이우선이다하고맘을먹으면편해지기도하고…그런중에도시작한지얼마안되는프로중에음악진행자둘다맘에드는프로를만나서좋아죽겠는프로가하나생겼다.

‘…생존적인거는최하로문화적인것은최고로즐겼다..’고고백하던김갑수씨가바로그다(그가방송중멘트로’대단히건방질지모르지만’을부쳤으니오해없으시도록….)그가좋은이유는방송부적격용어라도스스럼없이쏟아내는다소비주얼한솔직함에다정말로음악사랑을몸으로실천하는정직함때문이다그가예전에모은L.P들도간혹보이는지적허영심이아니라라면을먹어가며그야말로생존은최하로하면서모운것들이란다.

방송중에청취자가가난한생활을고백하면적당적소에다그도얼마전까지도비가새는집에서어두운생활을한걸결코숨기지않으며어려움을고민해오는청취자들을위하여’우지마라,우지마라’가아니고같이바닥에주저앉아울어주는하심을가진사람처럼느껴졌기때문이다

올여름남편이개장국-어제부터왜개타령인지…;;-먹고싶어하는것같아동행하여꾸어다논보리자루처럼앉아있기뭣해서맛없는보리냉면을같이먹어줬더니-아어찌나맛이없었는지그여름이후우리집에서는’개장국집에서파는보리냉면처럼’이란긴부사를하나만들어내고야말았다-많이고마웠는지어쨌는지집으로돌아오는길가도로변에서만원짜리샌달을하나사준적이있었다(애개개^^)

그런데그신발이어찌나편한지여름내내나는그신발만애용하면서신발신을때마다‘남편이사준신발’을강조했더니속으로되게좋아하는게눈으로읽어질정도였다아…단세포적인우리집남자!아니아니세상의모든남편은애기같더라친구들말을종합해본결과로도…그런데진짜거짓말이아니라근래에신어본신발중에제일맘에드는신발이었다맨발로장시간걸어다녀도물집하나안생기고(살이풍년두부처럼물러터져서새신발신어서물집안생긴적이한번도없었는데이신발만예외였으니…또옆으로새는군)

아…김갑수그소탈한남자도만원짜리남방으로한계절을살았단말을전파로들었을때우리같은서민이란동지감이생겨정이더가더란말을하려다…어쩌면맘졸이고들을그프로P.D들이걱정할지도모르는어눌한말솜씨에도정이가지만그래도내가좋아하는것은그의성숙한문화의식과맘에딱와닿는글솜씨때문이아닐까한다짧은글솜씨로괜히더해봐야오히려누가될까겁나그의글이나한편올려본다.

아…아그리고취향과기질로먹고사는그가정말부럽다
취미가직업인사람이그리쉬운가말이지내말은…주제를빠뜨릴뻔하다니…;;


[제목]:내일생의타이틀
번호12글쓴이김갑수(아당)날짜2004-08-26오전4:31:29

‘살아진다’는말이문법적으로가능한말인지모르겠다.지나온삶을돌이켜볼때마다나는’살아왔다’라는능동태보다’살아져왔다’쯤의수동태에가까운모습이아니었던게아닌가싶다.하고있는일,삶의방식심지어가치관이나세계관의성격까지도무엇엔가떠밀려서혹은계속되는우연의연속으로이어져온듯싶으니말이다.나는스스로의삶을선택하고결정해본기억이별로없다.

내이름아래대략다섯개의타이틀이붙어다닌다.시인,문화평론가,출판평론가,방송인,음악칼럼니스트.타이틀이여러개라는건어느것하나뚜렷한것이없다는것을의미한다.서평을쓰면출판평론가,음악원고를쓰면음악칼럼니스트,장르가애매하면문화평론가하는식이다.원고를쓰거나방송에출연할때마다같은질문을받고는한다.’직함을뭘로달아야할까요?’.민망한일이다.이럴때내대답도언제나같다.’아무거나편한대로쓰세요…’

며칠전에는세운상가앞에서전경들에게불심검문을당했다.부스스하고초라한차림에장발을휘날리는외양이아마도범죄자가망치나칼같은범죄도구를구입하러서성거리는모습으로비쳤던모양이다.그런데아,창피하여라.잔뜩주눅이든채주민등록증을건네면서나는’저어방송진행자인데요…’라고말하고말았다.전경셋의반응인즉’아,방송이요…’하면서저희들끼리비쭉웃는다.어쨌든아무일없이풀려나긴했지만아마가면서그들끼리킬킬거렸을것이다.’니가방송이면나는방송할애비다…’.혹은요즘버전으로’니가방송이면나는박신양이다’라고.

전경들은비웃지만실제로나는현재세개의프로그램을진행하고있는현역방송인이맞다.매일아침두시간씩FM에서음악DJ를하고,주간으로TV토론프로그램하나,라디오책프로를또하나진행한다.그럼에도’니가방송이면…’식의반응을받는까닭은아마도너무나비(非)방송스러운내행색때문일것이다.자동차도없고싸구려밥집만드나들고1만원짜리남방으로계절을때우며산다.어쩌면백화점에가서근사한옷을사입을수있을지도모른다.고급식당에서점잖은식사를할능력이있을수도있다.하지만그것은내게참으로쉽지않은일이다.이른바품위있게,고급스럽게살아본적이없으니까.

방송일이직업의하나가된것은정말우연의연속이었다.회사원시절에책좋아한다고라디오에서10분짜리책소개를하고,음악좋아한다고FM방송에서선곡아르바이트를한게시작이었다.뜻밖에진행자자리를제의받고회사월급과출연료사이에서고민하다많은쪽을택한게방송이었다.하지만단6개월만에잘리고나서의그황당함이라니.어찌할바모르는가운데서도한회5만원짜리작은패널요청이이어져한때는매주일곱군데씩을출연하기도했다.그래저래9년째다.이제는다른선택이없을것처럼여겨질만큼익숙해지기는했지만언제잘릴지,잘리면또일이생기기나할지막연하고불안한마음은언제나같다.나는어떤이유로프로그램을’선택’했다고인터뷰에서말하는방송인이정말부럽고존경스럽다.

출판평론가타이틀역시우연이안겨줬다.’책하고놀자’라는국내방송사상최초의데일리책프로가생겼는데그진행자가됐기때문이다.심야에록음악DJ를하던때였다.기존의책프로진행자들이저자혹은전문가의고견을듣고전하는방식으로진행한데반해나는약간건방을떨어서내용에적극적으로관여하는토론형진행자노릇을했다.프로그램은꽤성공적이었고내게는각종서평요청이이어졌다.심지어동아일보에서는출판자문위원이라는타이틀까지안겨줘서한동안막연한원고를꽤나휘날린적도있다.대학교수가아니면전문가일수가없는국내풍토에서가령담배의역사,성의풍속,법정스님에세이같이,분야가애매한책은온통내차지였다.내어찌담배와성과스님의고담준론에대해알겠는가.심지어어떤지면에서는김치에대한글까지쓴일도있다.던져지면쓴다.다른도리가없었다.

문화평론가라는타이틀에는약간의역사성이있는것같다.1980년초신군부의언론대학살이후’자유기고가’라고부르는일군의필자가등장했다.신문사에서잘린기자출신들이생계방편으로각종지면에글을쓰기시작했는데이들을일컫는칭호가자유기고가라는생소한명칭이었다.기자도작가도아닌글쟁이를일컫기엔적절한용어가아니었나싶다.자유기고가당사자들은그게백수라는뜻이라고말하고는했다.90년대접어들어백수자유기고가를약간격상시켜표현하기시작한게문화평론가다.여기엔감히교수도아니면서지식사회의일원이라는함의도포함하고있었다.박사실업자가양산된이후의현상으로도볼수가있다.어쨌든어떤잡지에서내이름아래문화평론가라고타이틀을붙여준이래막연한원고를쓸때면그명칭을쓰고는했다.그걸붙여준젊은여기자의변이지금도귀에쟁쟁하다.그때까지는주로’시인’이라는타이틀을붙여왔는데그기자왈’시인은너무고리타분하잖아요…’.시인이이세상에서가장존귀하고멋진것으로알고성장기를보내온내게그말은충격이었다.’그래,고리타분하다니벗어버려야지.이제나는문화평론가야…’내가나에게속삭이듯설득했다.

가장적극성을갖고있는내분야라면시와음악을들수가있다.시를쓰지않으니’시인김갑수’가잊혀져버리는건당연한이치인데도아직나는웬만하면시인으로불리길바란다.사춘기시절,시에서워낙강력한불세례를받았기때문이아닌가싶다.미친듯한열광이사그라든것은1989년첫시집을내고부터였다.일생을시에서원하고봉헌하리라던거룩한결심도눈녹듯이사라져버리고나는어느새읽지도쓰지도않은채10여년을지내왔다.의지를갖고무엇을하지못하는기질의산물이다.그래도간혹시인이라는타이틀을이름밑에걸면서옛여자를떠올리는심정이되고는한다.그녀를다시만날길이없듯이시도그러할까.시가다시내게되돌아와줄지적이궁금하다.

아마모든것을바쳤다는표현을쓴다면그것이내게는음악일것이다.이때의’모든’은시간과돈을의미한다.시든문화든출판이든방송이든그어떤분야와겨루어봐도내가음악에바친정열을능가할수는없다.중학교시절이래정말많은음반을사들였고수없이오디오를교체했다.최근에작업실에있는음반을전부집으로옮기는대역사를감행했는데추산해서대략2만장으로알았던음반수가인부들의계산으로그보다훨씬넘는다는걸알게됐다.집에있던것까지합치면그양이대체얼마란말인가.물론이중에제대로들은것은극히일부에지나지않는다.내귀는흡사자석과도같아서판가게나오디오숍에서전화만오면모든일을제치고달려가야한다.그런데그전화가끊임이없다.

작년말부터여러가지일로꽤수입이늘어났다.처음으로통장에잔고가쌓이기시작해서심지어는땅을사볼까아파트에투자할까하는삿된마음까지품게도되었다.친구들과의자리에서호탕하게계산을치르기시작한것도그즈음부터였다.하지만잠시였다.늘해오던일이긴하지만나는최근두달에걸쳐네조의스피커,다섯대의앰프그리고대략1천여장의LP를새로구입했다.세운상가를서성대다불심검문에걸린것도대개그런사정의연장이었다.훌륭한사람이었다면그돈을이웃돕기성금에희사했을테지만나는그러지못했다.처음으로가져본여유로한풀이를한셈이다.고교시절을온통채웠던무교동르네쌍스의바로그스피커’하츠필드’오리지널이들어왔고,알텍발렌시아,JBL에베레스트,알텍-웨스턴풀레인지755A스피커들이작업실과거실을그득채웠고마침내탄노이오토그라프실버까지도들어오게되었다.300B,EL34,6550등의화려한진공관불빛이밤하늘의별처럼스피커주위를빛낸다.

하지만내원고에기자가’음악평론가’라고붙이면기를쓰고고쳐달란다.평론가는무슨…’음악애호가’가적절할텐데아무래도이상한직함이니타협한게’음악칼럼니스트’라는명칭이다.작년부터어떤신문사객원기자가되어음악회리뷰를담당하고있으니’기자’라는타이틀이하나더붙은셈이다.

대여섯개타이틀로살아가는내삶에대해자조도자부도하지않으련다.살다보니그렇게돼버린것인데남들도크게다르지않을듯싶다.다만산만신경계를가진특질때문에좀많아져버린것이고,취향과기질로먹고산다는게행운이라면행운이다.
이모든것의공통점은없을까.돌이켜보니나는꽤나집요한편이었던것같다.소리가마음에들지않아오디오세팅을시작하면며칠밤을새우는건보통이다.황당한원고청탁을받고도어떻게든써버리는것이나,거의원수처럼마음이맞지않는피디와일하게됐을때도이를악물고버텼다.
앞으로한10년후가궁금하다.그때도지금처럼종잡을수없는여러타이틀로살고있을까?

[내일생의타이틀,신동아9월호]

*꽤오래작업실을등한히했군요.시선을받다보니오히려더피해다니고싶은그런심정아실랑가…

출처:cbs.co.kr
삶을詩처럼음악을삶처럼’김갑수의아름다운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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