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유문(梅窓遺文)
잘아는지인의글입니다

본인은부끄러워하는글이라퍼가는건금지해주시길

아주긴글죄송하지만허균의짧은詩만몇줄올려

좀꺼림직하고그의불우하던生에미안해서그냥..

이이야기는허균보다공식戀人유희경에더비중을둔

글이라그점도저는가슴아프답니다사실은…

슈발리에가’진주귀고리소녀’을자기房에걸어두고

오래오래보다가정들고사랑하게되어

소설’진주귀고리의소녀’를완성해서영화까지만든것처럼

이매창을좋아하다보니이런소설을시도한모양입니다

글쓴이는초등학교저학년여자아이한명을둔40代주붑니다

물론문학전공한…요즘은EBST.V동영상논술(?)강의도한답니다.

매창유문(梅窓遺文)


매창(梅窓)

1573년출생1610년38세로죽은부안명기(名妓)
타고난시재와기예와인품으로시인묵객들의사
랑을받았으며인조반정의기수연평부원군이귀,
홍길동전의저자허균,위항시인촌은유희경등
과더불어시문과교류의정이깊었다.

등잔불그무러갈제,문풍지가떨립니다.

때이르게찾아온가을바람에잎사귀속절없이떨어져요.소슬한
바람결이뒤돌아보는제생과어쩌면저리도닮았을까요.아무래도
이승이저를오래붙들어두지않으려나봅니다.박정한세월에떠
밀려천길낭애로떨어지듯수시로몸의고통이엄습합니다.바짝여
윈손가락에헐거워진가락지가안맞아요.조석으로이몸뚱이지탱
하기도버거워요.

불혹을이태앞둔나이.남은건고작병들고늙은몸뚱이밖에없
지만내규방의안온함을한번이라도부러워한적없답니다.칼날
같은아스라한생을나는사랑하였더랍니다.

간혹간직한옛비파홀로뜯노라면생각은흘러흘러끝이없습니
다.거문고를처음제게쥐어주시던아비의고의적삼자락이아직도
눈에선합니다.아비는한문과시문을익히게하셨지요.아비는시를
좋아하고거문고를잘타는숨은풍류객이셨습니다.어미는저를세
상에내놓은지석달만에산욕열로세상을버리셨으니아비는저에
겐둘도없는분이셨습니다.아전의옹색한자리에머무셨지만저에
대한애정은참으로각별하셨지요.핏덩이같은딸을애지중지손수
기르셨고세살적부터몸소거문고를배워주셨으며다섯살때부터
글을가르치셨습니다.

한때그자리마저내어놓았을때아비는떠돌이훈장노릇을했답
니다.가난하고궁벽한살림이었기에한때는남장을하여아비를따
라이곳저곳서당을떠돌기도했어요.남복을하면서구걸하듯글을
읽었지만자청하여글배우기를마다하지않았습니다.

아비는왜제게거문고를가르쳐주셨을까요?갈갈이심장을도려
내는듯한애끊는심정을저는거문고의가락에싣곤하였습니다.
창창한날소리는덧없이흐르는세월이었고가는비보슬보슬내리
는해저물어갈즈음소리는가없는그리움이었습니다.
시절가며느는것은상념뿐,생각은수풀처럼무성합니다.바라
보는꽃에도한숨일고제비소리에도옛시름자아낸답니다.

매화나무창가.
계생,계랑,향금,제가불리운많은이름이있었지만저는‘매창
(梅窓)’을사랑하였답니다.스스로매창이라불렀어요.찬바람,눈
발속에서이른봄온갖꽃들의선두로피어오르는매화의고결함과
품위를사랑하였답니다.창(窓)이란기다림과다름없지요.또한창
에는하늘이있고별이있고스쳐가는바람이있습니다.창은어쩌면
제가숨쉬며살아가는생명의호흡일지도몰라요.

꽃다운시절기적에이름을올리고교방에들어가동기(童伎)로서
수업을시작했던기억이떠올라요.근자엔앞날을꿈꾸기보단걸어
온길을되짚는시간이잦아졌답니다.노래와춤,그림과예악을배
웠지요.음률과가무,시화는제몸의일부였고흐르는피였답니다.
청풍유수,유유자적의삶을동경했어요.

그시절가슴은설레고하늘은청청하기만했지요.
어릴적부터버선만지길좋아했답니다.추녀의선처럼,

소매의둥근곡선같은완만한선의이어짐은왠지모를정감을

느끼게했어요.또한미묘한운치를주곤해서저는

가늘고부드러운외씨버선을자주만지작거리곤했어요.

그언젠가나의버선을벗길이를,

고목같은사랑을주실이를상상하며홍안을살짝붉힐때도있었지요.

적어도우관서진사를만나머리를얹을때까지는요.

아,첫날밤은내어둔기억의그늘속에아직도잠겨있답니다.

그는나를범했을뿐이었지요.권력과완력이라는하찮은힘으로.

그는마음을넘어뜨리는위대한힘을알지못하는자였습니다.

제머리가얹히던그날,창호지에새벽빛이새어들기시작할

무렵까지저는잠들지못했답니다.

너무어린나이에깨우쳐버린생의서글픔.
그럼에도첫정에이끌려저는서진사를찾아한양을향하였답니다.
냉정히닫힌대문앞에서제아둔함의끝을본뒤에야저는돌아설
수있었답니다.아,무슨회한이이리도굽이굽이이어지는것일까요.

하많은시절중어쩌면맨먼저제상념속을찾아오시는분.
나는푸르른소매걷고붉은치마여미어해기울어갈무렵대나무
울타리에기대고선여인,삶의슬픔을이미알아채버린여인의표정
으로정인을기다리는그시절의모습으로돌아간듯합니다

잔들어시름은풀곳없고
-정인(情人),묵재이귀前에

어르신께서저를찾아주시기까지저는줄곧자리에누워있었습니
다.뜬세상괴로움말하기도싫어져요.저는입에곰팡이가피도록
말을잃었고오랜시간을침상에서일어날수없었답니다.달포전
이었던가요?

취객이갑자기술상을살피던저를난데없이끌어당기려했었지요.
당혹스러워손을뿌리치자이번엔억센손아귀로사정없이날끌었
습니다.어떤오기가발동한것일까요?순간취객의눈을뚫어지게
노려보았습니다.이따금씩뵈어낯이익던점잖은선비였습니다.취
기에기대어저를능멸함이견딜수없이분하였습니다.

허나명치를관통하듯아프게턱걸리는자각.
저는한갓노류장화(路柳墻花)에불과한기녀가아니던가요?그날
저는끝내취객의손을뿌리쳤습니다.그바람에비단적삼이찢어졌
지요.찢어진비단적삼위에제눈물한움큼떨어졌답니다.그하얀
비단적삼은바느질솜씨가야무진업동네가이레전가져다준것을
그날처음입었더랬지요.내적삼하날아껴서그러는게아니었어요.

그동안맺힌정마저끊어질까서글프고슬펐던게지요.

남녀의거리를한숨에좁히려달려들었던선비의무모함을이해못
한바는아니었어요.선비의오랜시선을외면했던터이나잠잠히주
시는정에살픗고마움을느끼지않은것은아니었답니다.허나일개
해어화(기생)에게주는사랑이란고작적삼을찢어놓는욕망에불과
했던것이었을까요.

술취한객들이저를희롱하려하면저는늘상시를지어쫓아내곤
했답니다.객들은치졸하고품과격이낮은시로제마음을사로잡으
려했습니다.

간혹고매한정취와진심어린마음으로제사랑을구하던이들도
있기는했지요.매창이라는이름하나에이끌려한양서먼변산의부
안까지발걸음을옮겨제게시를노래하던이도있었습니다.그러나
그또한나의뜻과정을얻을수는없었답니다.

평생에동쪽집에서먹는일배우지않고
오직매창(梅窓)에달그림자비침을사랑했지
시인은여인의맑은뜻알지못하고
부질없이뜬구름만잡으려하네

그러나여인네의소중한적삼자락이찢긴그날은어쩐지만사에염
증이느껴졌답니다.그날로저는문을굳게닫고자리에누웠던게지
요.모든회환이한꺼번에몰려왔더이다.그동안꾹꾹억눌려져있던
서러움이태산같이덮쳐들었더이다.떠나신지몇해동안소식돈절
한유희경이그립고미웠습니다.떠난정못이겨문닫고앉으니눈
물은속절없이소매를적시고서러움으로베개는마를날이없었더
랍니다.

저를찾으시던날직접가마를보내시어제손을잡아일으키셨지요.

어르신께선일찍이율곡선생의제자로문명을떨치셨어요.

임난때는서애(유성룡)선생의종사관으로전세를만회케하는데

공을세우셨습니다.어르신께서는작은불의도참지못하셨지만

그품성은한없이부드러우셨습니다.호걸스러운기상은푸르렀구요.

부안이가까운김제군수로부임하시어저와인연이닿음은참으로
고마운일이었습니다.
저의외로움과고적함을누구보다깊이헤아리셨던분.
내한번도이귀를온마음으로사랑하지못하였나이다.

그러나언제나제손을잡으시며나의정인(情人)이라부르셨어요.

허박한들풀한송이돌보듯저를다독이셨습니다.

혹독하고어려운시절늘제곁에서둥지속작은새처럼저를보듬으셨던분.

따스한날개안에서저는겨우다시거문고를울리고시를고를수
있었답니다.마당의느티나무새잎을돋아내는것도,

못속연잎사이피어오르는연꽃도,

해거름서늘한기운도다시오감으로느낄수있었지요.

지친제혼이겨우일어설수있었던그몇해를제가

어찌눈물겹도록고마워하지않을수있겠습니까.

제게어떤요구도아니하시고간섭도아니하셨더이다.
네마음가는대로움직이거라.네몸을진정으로아끼거라.
입버릇처럼말씀하셨습니다.그럴때마다헤아릴길없는사랑에

저는고꾸라지듯무릎꿇곤했어요.그럼에도불구하고

제마음의길은줄곧다른곳을향하고있었으니……

어르신께서주시던그깊은은정(恩情)에제속은

늘가시덩쿨한아름떼놓지못하고살았더이다.
굳이마음을쓰지말거라.어찌꽃잎포개지듯

네가나와온전히합치되길내바랐겠느냐.

그저해아래함께서있음이나는좋을뿐이니라.

가끔말씀하실때마다얼굴붉어지고마음한켠이저리듯휘청거렸나이다.

손끝에힘이달리는이즈음,유문이라도남겨볼까종이를펼치니

그첫장에이귀이름두자가먼저새겨짐은무슨까닭일까요?

때로정은사랑보다웅숭깊은것이었더이다.

뒷산은붉게물들고앞산은맑아
-문우(文友),교산허균前에

그날이생각나시는지요?첫만남에서우리는한나절시를노래하
고거문고를뜯었습니다.제가시한수자아내면미리내흐르듯유
유히이어노래를부르셨습니다.탄금소리가락가락마다직소폭포
물줄기소리와섞여졌지요.며칠동안내리던비로씻겨진산과나무
들에서촉촉한향내가감돌았어요.여름오후한나절은깊은정적속
에싸여있었고,우리들의시가(詩歌)는마치정중동(正中動)의세계
를가르는듯했어요.골짜기엔오로지계곡물소리와우리들의가락
만이흐를뿐이었지요.

아,이런순간들이있기에나는살아내고있는것이아닐까?그한
나절의정밀감과평화가저를말할수없이행복하게했고우리가빚
어내는풍류는점입가경으로내달리곤했습니다.제나이스물여덟,
교산께선한창이신서른둘의나이셨습니다.

드높은문벌가문이시며당대의거유(巨儒)요문장가이신교산이요,

한갓중인형리의딸에불과한천기인매창이었건만우리에겐벽이없었어요.

그호협한기상을달리무엇에비하리오.

교산께선늘말씀하셨어요.예술과풍류에는귀천이없느니라.
참으로인생을알고사람을알고예술과철학을,

사람이중심인정치를아시던분이셨습니다.

이후십여년함께어우러짐에도우린한번도남녀간의어지러운
정에파묻힌일없습니다.우리의관계가오래흘러도시들지않음은
항시일정한거리를유지하며서로를아꼈던까닭일까요?

욕망을달관하고다함없는자연에몸을묻히던지난세월이었습니
다.제가관속에잠들었을때그누구보다깊이애달파할분이

바로교산임을저어찌모르겠습니까.제재주를사랑하시고

성품의고결함을칭찬하셨지요.풍류를알고여자를아는교산께서

저에대해초연할수있었음은정분보다의리와인생을소중히여기신

탓이었습니다.한평생문우로,벗으로지내자말씀하시던눈빛이

저으기그윽하였더이다.첫만남의깊은호감도묻어두고우리는

항용그거리를밟지아니하였습니다.

그날은참흐렸어요.정유년에벼슬을내어놓고동작나루를건너

부안에도착하셨을무렵엔비가억수같이쏟아졌지요.

그장대비소리가어찌나크던지섬돌에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낙수소리에문득문득놀라곤했어요.

그날저는버선을꺼내었습니다.마름질을정갈하게끝낸외씨버선
을만지작거리며한땀한땀바느질을시작했지요.빗소리는더욱
굵어지고이상하게도제심장은가볍게뛰곤했습니다.어떤예감때
문이었을까요?제남은일생을함께할,제정신의한부분을점령할
사람을만나기까지의두근거림이전조(前兆)처럼제게다가온것이
었을까요?

그로부터며칠뒤뵈었을때"가히너와종일토록더불어시와노
래로써주고받으며어울려즐기리라"호방하게웃으셨어요.훗날재
주있고정이많은여자라자주말씀하셨지요.성정(性情)이절개가
있고깨끗하여세상의어지러움에물들지않았다고말씀하실적마다
민망하기이를데없었습니다.

처음뵈온그날저녁다른기녀를방에들여보내고슬며시자리를
피했지요.그아이에게정성껏천침(잠자리를돌봄)할것을당부하
기를잊지않았습니다.운우의지묘한멋과풍류를아시던교산이아
니십니까.한때는풍류를넘치게즐기시어황해도사로있을때서울
의창기들을데려갔다가파직까지당했던교산이아니십니까.또한
그일을호탕하게껄껄웃으시며말씀하실수있는분이바로교산이
시지요.

여자를교산께서머무시던방에들여보내고사그락사그락치맛자
락여미며물러나오는데뜰에활짝핀백일홍이어찌그리아름답던
지요.하마터면눈물이쏟아질뻔했답니다.
독처럼스며드는사랑……치명적인아름다움.
휘황한달밤의백일홍붉은잎잎은바로그것이었습니다.촌은유
희경을떠올렸지요.긴세월함께한시간은적었으되그그림자는
제평생을함께했답니다.

기녀를들여보낸다음날유달리제게아무말씀도없으셨어요.그
러나부드러운눈길은제마음을헤아리고계셨습니다.
교산께서는부안우반골을참사랑하셨지요.우반골정사암에서조
용히지내시던시절은제게도꽃봉오리맺히듯아름다운시절이었습
니다.이곳에서여생을보내고싶다말씀하셨지요.

언문으로홍길동전을쓰실때저는놀랐답니다.당대의거벽이신
교산께서저자거리와같은국문소설을쓰시다니요.허나탈고하신
직후제게보여주신홍길동전을읽고나서야저는비로소당신을이
해하게되었습니다.그심중에안은원대한이상과지향하는정치의
꿈을저는엿보았지요.그러나일순간소설속길동과달리혁명적
이상이좌절되지는않을까,이조선사회속에서당신의꿈이굴절되
거나소외되지는않을까하는염려가불안한예감과함께몰려오기도
했답니다.

제게참선을,자연을관조할것을자주말씀하셨어요.돌이켜보면
서른중턱을넘어서며저는줄곧당신의영향을지대하게받았습니
다.근래몇년동안제관심은오롯이깊은호흡속고요한내적합
일과자연과의친화에있었으니까요.십여년간더불어시를논하고
자연의무궁하고신비로운세계를이야기할때면우리도언제나자
연의일부가되어갔습니다.호방한정취를지니신분이라신선사상
에도꽤나경도되셨지요.

이몇년간저도자연의오묘한질서와섭리에잠겨있답니다.선
계(仙界)를꿈꾸기도하고불교적내세를희구하게도되니비록몸
은병치레가잦지만마음만은평온하답니다.순리대로가고오는,
멈추고흐르는자연에의탁하는제마음엔항시수국한송이탐스럽
게벙글고있답니다.

생각나시나요?천층암에올라천년사에서보낸가을을말입니다.
천층높은산위에자리한천년사.그곳엔상서로운구름이맴돌고구
름속으로난돌길을따라소롯한고찰에이르면풍경소리가정밀함
을더해주곤했어요.그대로신선의세계에오를것만같던순간들
이었습니다.맑은풍경소리스러지듯울리는가운데별빛달빛만비
처럼내리곤했어요.산이란산마다단풍들어가을소리로가득했구
요.구름에잠긴나무에선학이울고자욱한안개속에새벽달이희
미하고상서로운기운은온산에가득어리었습니다.천년사석탑에
기대면한세상시름도간곳없고무한한자연만이펼쳐져있었지요.
제손을잡으시며말씀하셨어요.매창아,이한순간을그대로사로잡
아등짐매고돌아가고싶구나.

허나우리는알고있었습니다.우리가다시하계에발을내딛는순
간붉은먼지로신발이어지럽혀질것이라는것을.그즈음바로한
양으로올라가시어중국사신들을접대하느라바쁜나날을보내셨
습니다.사직은당신의재능을불러들였고광활하게달리는당신의
정치적꿈은시속을등진신선세계에만발을담그고있지못하게
했습니다.이곳부안에서몇달을사시다가은둔생활을버리고다시
벼슬에붙들린자신을몹시부끄러워하셨지만교산께선할일이,해
야할일이있으셨던겝니다.

작년이었나요?기유년9월에보내신서찰을회상합니다.
봉래산가을빛이한창짙어가니돌아가고픈생각이문득문득난다
오.내자연으로돌아가겠단약속을저버렸다고매창은반드시웃을
거외다……언제라야이마음을다털어놓을수있으리까.종이를
대할때마다서글퍼진다오.

마지막구절을오랫동안바라보았습니다.한때는시속의뜬소문으
로난처한입장이되신교산께서저를오해하시고꾸짖는내용의서
신을보내기도하셨습니다.눈물이왈칵쏟아질정도로억울하고혹
독하게만여겨지던편지였습니다.그런데그서신의마지막구절에
담은당신의마음은참으로엉뚱하셨지요.

요즘도참선을하시는지.그리움이사무친다오.
당신께선언제나서찰의마지막구절에서속절없이마음을풀어놓
곤하셨어요.문우(文友)로서우정과사랑을키워간지난십여년간
을떠올려봅니다.시간이흐를수록우리의내면은깊어지고부요해
져갔지요.지난삼여년간어쩌면저와가장가까이지낸분이아니
시던가요.

우리의만남은어쩌면대결이기도했습니다.많은것들과맞서야했
던……자신과,상대와,감정과,유혹과……그러나그것은아름다
운대결이었습니다.저만치떨어져있었기에더욱애틋하고간절한..
….

이화우(梨花雨)흩날릴제
-연인,촌은유희경前에

어젯밤꿈을꾸었어요.이녁은술한병손에쥐고한손에는매화
가지를들고계셨지요.마치아무일도없었던듯웃으시며제게다
가오셨어요.어질어질한기운으로부스스일어나이녁이건네는꽃
가지를잡으려는순간몸서리치며잠에서깨어났답니다.그리곤비
몽사몽간에혼곤한취기에싸여박명에닭이홰를치기까지몸을엎
치락뒤치락했지요.

임진년왜구가새까맣게밀려오고이듬해봄의병을모아서애선
생(유성룡)을돕겠다며떠나실적,이녁의두루마기뒷자락에비처
럼흩날리던배꽃을기억합니다.그한순간이억겁마냥까마득하고
아련하여순간심장이멈추는듯하였습니다.뒤도돌아보지아니하
시고성큼성큼큰걸음옮기시던이녁이밟는황토먼지가내려앉는
배꽃과뒤섞여분분하였지요.

울며잡고이별했지만풍전등화의사직앞에이녁을눈물로어찌
붙잡을수있었겠습니까.사사로운정으로어찌이녁의마음을어지
럽힐수있었겠습니까.

그해가을추풍낙엽흩날릴즈음봄날의배꽃을떠올렸답니다.처
연한심정어찌필설로이루다말하오리까.연지빛치자빛으로붉
어지고노랗게물들어가는강산앞에저는풀썩주저앉았더랍니다.
전쟁은그끝을알수없고인간사에아랑곳않고절로푸르러오고
붉어져가는산하에,절로드넓어지고높아져가는가을하늘아래제
수심또한날로깊어져갔지요.

무엇을말하겠습니까?천리에외로운꿈만오락가락하는것을.

이녁을뵙지못했을시절에도한양서시로유명하다는풍문을익
히듣고있었답니다.천민신분임에도그지극한효성과예론에밝
으심은자자한소문으로끊임없이들려왔지요.이녁은어려서부터
책읽기를즐겼습니다.모친께서오래도록병을앓으며출입을못하
게되자,변을볼때마다자리에다기저귀를대어서받아내었지요.
그리고동소문밖으로나가손수빨래를하며치마바위에다널어놓
은뒤그옆에앉아서하루종일책을읽곤했다는이녁이들려주시
는이야기에저는가만히그얼굴을응시하였답니다.온건하고자애
로운모습이봄바다같이잔잔하였지요.천민이었기에과거에나아
가벼슬을할수없었습니다.그러나기술을배워직업을얻기보다
는일찍부터시를기웃거리셨지요.많은사대부들과시를주고받았
으며그들이이녁을깊이사랑하였음은그순숙함때문이었을겝니
다.

위항시인으로이녁과백대붕두분을평소흠모해왔지만처음만
났을당시제질문은너무당돌하지않았던가요?
"유희경과백대붕중어느분이십니까?"
지금도그순간을생각하면슬그머니옅은미소가번져요.
문재(文才)를접해보고싶어서였을까요?미천한출신이라는동병
상련의심정에의지하는마음때문이었을까요?혹은기예를시험해
보고싶어서였을까요?

두해동안내려와머무시다떠난뒤이몸의상사(相思)와시름이
야그누구에게호소하리이까.거문고옆에끼고외로운난새의노
랠뜯으며삼청세계에계실그대를멍하니그리곤할뿐이었습니다.
이팔의꿈을갓지난앳된제가불혹하고도여섯해를넘긴이녁
앞에납작하게엎디어제마음을송두리째던졌더이다.
저를계랑이라부르시며다함없는사랑과정을주셨던분.
내숨이붙어있는한내마음은오직촌은유희경뿐이었습니다.

장안의북촌에정업원(淨業院)이란명소가있지요.땅이외지고
산이가까이있으며,맑은샘물한줄기가바위사이로흘러내렸습
니다.그땅에다손수복사,살구네댓그루를심고는돌을쌓아작
은집을지으셨습니다.날마다그위에나와앉고는침류대(沈流臺)
라이름지으셨고요.오류선생(도연명)이부럽지않았지요.당대의
이름난시인재상들이그곳에모여들었고,침류대주인촌은유희경
의이름은온나라에알려졌습니다.

허봉과허성(허균의형들)께서도어찌나이녁을아끼셨던지임난
이일어나기전일본의정세를살피러갈때에이녁을데리고가고
싶어하셨지요.이름난선비허성께서이녁을사랑하심은각별하셨
습니다.

저를만나한평생살아오셨던절제의틀을파기하시었습니다.예
학에밝은군자였기에아내외에다른여자를가까이하지아니하
시던이녁이시지않으셨나요?
처음뵙던그날감격스러워하시며제게시한수지어주셨어요.
이녁께서도풍문으로만듣고그토록보고싶었던매창이라하셨지
요.
제게주신여러편의시중에는장난스럽고짓궂은시도있었어요.
버들꽃붉은몸매도잠시동안봄이라서고운얼굴에주름이지면
고치기어려우니운우(雲雨)의정자주내리자는말씀에귓불까지
얼굴이붉어졌더랍니다.선녀인들동수공방을어이참겠냐고말씀
하시는이녁은참인간적이셨지요.

긴긴날소식한자받지못했던나날들이까마득합니다.그리움이
날로더해지던차,받았던서신한통에제눈물은그칠줄몰랐습
니다.
그대는부안에있고나는한양에있어그리움사무쳐도서로못보
고오동나무에비뿌릴제애가끊겨라……그래요,어찌보이는것
에만마음을두리이까.진정함은외려보이지않는것에있는걸요.
서역삼만리마냥먼곳에계시는이녁의마음도제마음과같은것
을……서로에대한굳은믿음은한시도흔들린적이없습니다.

길을가면서도매창이그리워시를지으셨고저와노닐던곳을다
시들려옛일을추억하며지은시도있었지만정작저는이녁의소
식한자받지못한채파뿌리마냥앙상한독수공방의세월에갇혀
있었답니다.

제시를가만들으시고는말씀하셨어요.
흩어진듯하면서정돈되고부산한듯싶으면서도고요한번민을
노래했구나……천갈래만갈래찢어지고파헤쳐진네심정을깊은
사념과함께아름답게조화시켰구나……인생속에펼쳐진자연을
잘관조하였구나.너는자연을네운명처럼서럽게정관하고있구
나.그것은때로읍소하는듯하고때로물결치는듯하구나.
저의시재(詩才)를극진히도아끼고사랑하셨습니다.

이따금춤을추었어요.너울너울,나비야청산가자범나비너도
가자가다가저물거든꽃에서자고가자꽃에서푸대접하거든잎에
서자고가자.유장한가락에몸을실었어요.나도모를기운에이
끌려소매를뻗었고열두폭치마는스르르휘감기었지요.이녁이
내안에심은불꽃을밝히고나는저물도록초경이다하도록춤사
위를쉬지않은적도있답니다.시간과공간과내면이합일을이루
는지점에서나는한없는꿈을꾸었어요.쉼없고다함없는무한한
바다……아,나의내면에는물결이일렁이고또넘실대었어요.

내살은이녁의몸을기억합니다.등잔불사위어갈때창(窓)앞
을짚고들어서신이녁은저를아스러지듯안으셨습니다.목마름
을해갈하려는듯서두는이녁의마음과달리그손길은섬세하고
부드러우셨지요.마음이뜨거울수록아끼듯천천히제몸을어루
만지셨습니다.복사꽃벙글듯열리던내몸.

창밖엔때까치우는소리가어둠속을지났습니다.무너져내리
듯한정없이이녁의몸안으로파고들던그촉각이기억하는몸
의무늬와따스한기운.우리의살과마음밖에는자주눈발이함
박눈되어날리고아름다운풍경을이루곤했습니다.개나리진달
래만발한산등에나비파르르떼지어놀았습니다.오경종(五更
鍾새벽3시)나리올제다시안고눕는님을내한시라도어찌잊
을수있으리.

정미년긴격조의세월을열고다행히서로만났건만서러운눈
물이옷을적셔견딜수없었답니다.처음만난지열여덟해를넘
겼지만우리는서로를잊지못하고있었던게지요.예로부터님
찾는것은때가있다했는데이녁께선무슨일로이리도늦으셨는
지요.그때간곡히청하였습니다.열흘만묵으면서시를나누었으
면좋겠다구요……또어느때후일을기약하겠습니까.또다시잔
들어이녁을보내기참으로사람으론못할일이어……이렇게뜰
바에야오시지말지……사무침이굽이쳤답니다.

저를위해나귀한필몰고오셨지요.부안일대와변산풍광속
에서함께보낸그몇날.제기억은십팔년전이녁과함께내소
사일대를유람하던시간으로자주거슬러올라가곤했습니다.과
거와현재가어우러져빚어내는환상속에곧잘잠기곤했답니다.
어느순간도놓을수없는아름다운시절의추억.용안대(龍安臺)
바위위에우리는나란히앉아서굽이치던서해를바라보며긴정
담을나누었지요.

만남보다기다림이많았던사랑.
산사태같은그리움이치밀어오를때면,세상살이시름에겨울
때면저는거문고를들고총총걸음을옮기곤하였습니다.상소
산기슭에이르러커다란바위를찾아그위에앉아거문고를타
곤했답니다.저는이바위를금대(琴臺)라부르며사랑하였더랍
니다.바위에앉아거문고에시름을띄워보내노라면언덕에청
청하게우거진대나무서걱이는소리가거문고소리와뒤섞여졌
지요.그럴때면그옛날이녁이난리로제곁을떠나실적흩날
리던배꽃이내마음에비내리듯흩뿌려지곤했습니다.

옥같은배꽃에두견새우는데달빛은어쩌자고뜰을덮는지….
..변산의파도는변함이없고바람은불어대는데내마음속꽃
잎은어쩌자고이리도흩날리는지……

사무치는옛생각둘곳없어이밤을고스란히지새웁니다.지난날
을속절없이떠올리다가볕드는창가에앉아버선을깁습니다.숙인
머리에눈물떨어져옮기는실귀가말없이젖어요……내정령(精靈)
을술에섞어님속에흘러들어구곡간장(九曲肝腸)을마디마디찾아
가며날잊고님향한마음을다스리려했던내젊은날들.

나죽걸랑마디마디손때묻은거문고도함께묻어주오.
고질적인해수병은깊은물에잠기듯내몸안을날로파고듭니다.
이병을이기지못하여서해가내려다보이는곳에조그만초막을지
은지몇해.날마다거문고와시로보낸한유(閑裕)의세월이었습니
다.해가질무렵이면변산바닷가로걸어나가곤하지요.노을빛에
내몸흠뻑적시고낮게포말을일으키는파도소리에마음을씻곤하
는나날.

서책들을무한정포개놓은듯한채석강의수천수만바위들.그것은
마치겹겹에워싸인세월같아요.내마음을포개놓으면저리도서리
서리사연많은형용을이룰까요?한없는바다를응시하다가쭈그리
고앉아지는해를또하염없이보고어둑신해져서야문득생각난듯
초막으로돌아오곤한답니다.

송백같은절개도,동백꽃같은애절한사랑도,배꽃같은그리움도
저넓디넓은바다에뒤섞여두런거리며찰랑거려요.돌이켜보면이
몇해는얼마나조촐하고고마운시절인지요.

몸서리치도록사나운번뇌는갈수록자취를감추고가을하늘에떠
도는한조각흰구름처럼맑고도깨끗한그리움만이가슴속깊이
감돌아요.걸러질것은모두걸러지고응축될것은모두응축되어가
듯마음은한량없는제길을,일망무제의바다위를걸어갑니다.
돌밭에작은초막사립문사이로꽃은피고지곤하지요.사람없
는바닷가한낮은또얼마나그리도깊은지……언제나물흐르듯
시간속에나를맡겨두곤합니다.호심(湖心)을닮아가듯평정심만
고인내마음……하루종일말건넬이하나없건만왠지모를충일
감으로차오르곤해요.

병은이미골수에까지깊이들어버린탓인지입춘지나한풀꺾인
추위에도몸이오가리처럼오그라들어기나긴삼동을이불속에서만
보내었답니다.몸은피골이상접할정도로쇠약해졌건만정신은향
맑은옥돌처럼맑아져요.몸이오그라들어도거문고를쥐는제손엔
아직옛풍취남아있답니다.거문고한가락에자고새울고말없는
빗돌엔달빛만스며들어요.파도소리곁에두고초막에서흐르는거
문고소리,날마다달아래흘러간답니다.

가득한사랑속에서도옹골진외로움속에서도언제나생의벅찬
희열이내안에서꿈틀대었답니다.그래요,그건바로생명의힘이
었어요.사랑과자연이내게헌사하는그환한빛.
삶의쓸쓸함이란……피해갈수없는문이었습니다.그문을여닫
으며나는사랑을만났고,이별을감내했으며나를성찰하고자연을
정관했지요.그쓸쓸함의뒷자락은어쩌면감미롭기까지하답니다.
인생세간에태어나서러움잦고불러서풀어볼사람없지만나는이
쓸쓸함을또한사랑했답니다.아마도거문고는알테지요.이생의
사랑과쓸쓸함이이루는정취와깊이를……

무엇이었을까요?고통조차생명처럼껴안게되는이삶의비밀은.
면면히물줄기이어지다여울을이루듯불현듯한가닥감동이가슴
에울컥일렁거려요…….내가받은많은사랑앞에두손모아큰절
을올립니다.

애달프다동녘으로흐르는물은
그언제나서북으로돌아가오리

배멈춰불러보는서러운노래
잔들어옛날을생각하노라

인생은백대(百代)의과객(過客)이요,생사(生死)는물체의표리
(表裏)라지요……나죽거들랑내무덤을매창뜸이라불러주오.동
백꽃처럼피다간여인이있었노라고술한잔기울여주오…….

여윈손끝으로가만거문고줄을골라봅니다.


*꿈/소프라노배행숙*황진이시,김성태곡꿈길밖에길이없어꿈길로가니그임은나를찾아길떠나셨네
이뒤엘랑밤마다어긋나는꿈같이떠나노중에서만나를지고꿈길따라그임을만나러가니길떠났네그임은나를찾으러
밤마다어긋나는꿈일양이면같이떠난노중에서만나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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