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9/2918:14
제목:포도주의주재료가뭐지요?
작가를지망하는젊은이의질문에
옛날당신의은사얘기로대변하던박완서님의답변이랍니다.
그스승은답을계속추궁하더랍니다.
포도…설탕…술…계속답변을이끌어내면종래에는
술담는병…항아리,까지나온답니다.
.
.
.
그스승이원하던답은[시간]이었답니다.
참아라,참아라계속참아라
속으로궁굴려라
내안에서충분히발효될때까지굴리고굴러서
이젠도저히참을수없을…
"그때시작하라"…였답니다.
어제토요일원주토지문화관에서열리는박완서님의문학강연엘다녀왔답니다.
난생처음가본원주…역시나혼자다녀온가을바람차원이었지요
손녀딸family가시댁에잠시간3일을마지막으로보낸날이기도하구요
그의강연내용중(3시~5시반정도까지수많은내용중에서)
소설을쓸수밖에없었던이유두가지만두서없이보관차원으로풀어둘까합니다
(괄호안만제소견입니다)
어느날그녀는박수근의"나목"을모상업화랑에서만납니다.
굉장히화가나더랍니다
그림값은그야말로대한민국에서최고라는이중섭과막상막하할때였다고…
(제가알기로지금은대한민국에서박수근그림이제일최고지요)
유가족한테는스켓치한장도없다는데…
"그외의사람들"에게돌아갈차익을생각하니미치겠더랍니다.
이중섭주위에는시인구상을비롯한많은문인친구들이나
지인들이써포트를잘해주고있는반면
양구보통학교출신,생전엔찢어지게가난했던그화가를
가장어려웠던전후에미군P.X에서만난인연으로
증언할사람이당신밖에없다란생각에
그당시신동아월간지에2~300자분량의논픽션으로응모하려했다가
(그시절은응모아니면추천제로문단에데뷔를하던시절이었지요…
그래서최소한의자격들은있었는데…;;)
다시사명감을가지고자서전형식으로풀어나가려했지만
그러기엔아는게약해서취재를더해야만하는데그때나지금이나
취재당하는걸싫어함과동시에취재하기는더힘이들겠단생각이들더랍니다.
그런데그(박수근)의이야기만풀어놓으면당신이읽기도삭막하고
쓰는동안에도신명이안나고…해서
자전적(박완서)이야기도겸했는데당신이야기를쓸때는속도감도붙고
다시읽어도재미도났었고,또한편으론무대에서보고싶은욕망도생겨서…
(스포트라이트를받고싶었는지…로표현했는데이부분에서
1,2층에꽉찬독자들의폭소를자아내기로했답니다.)
(그외나목에관한에피소드는지난번유홍준교수의박수근전시회
설명회에서들은얘기랑겹쳤고
촌철살인하듯요점정리를딱하시는강연이아니고그냥삼삼오오둘러앉아
자근자근얘기하는형식이라자꾸겹치고…해서생략합니다.
상상력을동원해서쓴데뷰작"나목"이그렇게해서
그해여성동아장편소설부문에뽑혀서화려한등단을하셨지요…)
그리고또하나,소설을쓰게된동기는
꿈많던시절에당한6.25동란.
그시절에당신이겪어낸혹독한시련들…
인간이버러지가된것같았던그시절에
최소한의인간적자존심을유지한것은
"나는언젠가는글을쓰리라…"
강도높은복수의칼을갈면서저악인들을만천하에공개해서
모든사람들이미워하게끔만들자…
저인간을어떻게형상화할까….가
20살먹은처녀의앙심이었노라고.
그후에당신이너무악인이아닌가란자책의념도없지않았는데
작가도아닌어떤동시대인도그가겪은최악의30일하루하루를
글보다훨씬더정확하게고세세하게기억하고있는걸로봐서
그생지옥의처절함을실감케했다고.
허지만증오심복수심은세월이지나면서희석되버리고문학이되진않더랍니다.
팬으로복수해서는아니되겠더란얘기였지요
-증오도사랑의반대가절절해서태어난다합디다.
많이생략하구요
그보다는정신의탄력성을유지하는게소설쓰기다
끊임없이반복하는정신의훈련이다.
늘어지지않고감수성을잃으면안사니만못하다.등으로임했다합디다.
40대에등단해서쉬임없이나오는다작으로그동안을어떻게참았느냐고…
혹자들은당신의작품이그냥술술나오는줄로알지만
안풀려서억지로쥐어짜낼때는
라듸오볼륨을크게엎해서"아아악!"고함을지르기도하신다시며
그렇게난산되는작품들은감동도없다고…
그모습을조용조용자근자근얘기하는모습과비교하면서
창작의어려움을가름해보기도했답니다.
사족:
혹개인적인사견과내공부족으로잘못표현된부분이있을까두려워
(딴강연처럼미리강연내용이수록된프린트를나눠주는형식이아니고
녹취를해서다음번에나눠주는방법이더군요)
따라서지난달의[신경림시인]의프린트를어제나눠주더군요.
박완서님의프린트물이공개되면제가다시한번알려야누가되지않겠지요
혹시토지문화관홈페이지에공개될까링크해둡니다.
강연내용과독자와의대담전문포함
나에게소설이란무엇인가
박완서
박경리선생님이토지문화관에와서강연을해달라고하시기에원주에있는문학애호가를만나는줄알고왔습니다.그런데와보니까서울에서도오시고대구에서도오시고해서부담스럽고,한꺼번에이렇게많은카메라세례를받는것도생전처음당해보는일이라눈을어디다둬야할지모르겠습니다.어릿어릿하고정신도없고그래요.양해해주세요.
오늘여러분들이여기저기서오시고,저도멀리서왔는데제가허튼소리를하거나너무빨리끝내버린다면’저작가한테는이런말을듣고싶었는데공연한헛걸음했다’고생각하실분도있으실지모르겠습니다.그럴때는속으로만아쉬워하시지말고질문을해주세요.저는학교교단이나대학강단에서본경험이없어서그냥혼자서한시간두시간을내리말하는것은자신이없어요.
오늘제목은’나에게소설이란무엇인가’입니다.나이가들고보니까보통사람으로살아온세월이나소설가로살아온세월이나비슷해지고말았습니다.그래서이제목은여러분들을위한제목이아니라제가자신에게내반생,일생을돌아보는의미에서붙인제목입니다.
우선제가소설에의해서받은혜택은많죠.모든것에서물러날나이인일흔을넘어서도모든여성들이갖고싶어하는<일>을가졌다는건굉장한행운이죠.또제얘기를들으러이렇게많이와주실만큼작가로서의명성도어느정도가졌습니다.또돈에연연하지않아도될만한부도가졌습니다.그부라는것을요즘말하는갑부들하고비교하지말아주세요.
저는워낙욕망이작습니다.원하는게별로많지않아요.갖고싶은것도별로없고먹는것도소박한걸로조금먹습니다.다만노후를걱정안해도될만큼넉넉하게갖고있다는얘기입니다.사는데돈이얼마안드니까,더늙어몹쓸병이나치매에걸린다해도인간적인대접과돌봄을받을수있을만큼의저축이생겼고,그만하면부자라고생각합니다.
늦게등단을했다고했는데저는40세에등단을했습니다.제가작가가되기전까지생활은무의미했느냐하면그때도사실저는행복했어요.어쩌면제가작가생활을나이먹은후까지도오래유지할수있는것은40세까지제가보통여자로살았기때문이라고봐도과언이아닙니다.작가생활을하는데있어서보통여자로서보통시민으로서의삶과경험은퍼내어도퍼내어도마르지않는샘물노릇을해주었습니다.
특히농촌에서태어나고서울올라온20세까지농촌에서지낸경험이그래요.지역적인고향이라기보다제가마음을의탁할수있는고장으로서의고향의의미는매우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제인간성속에조금이라도좋은점이있다면죄다농촌공동체에서얻은경험이라고생각해요.
여기오면서도느꼈지만논빛깔이지금도너무좋아요.이맘때의들판도좋지만,한없이걸어도파란,푸른비단결같은한여름의논은보기좋다못해감동스럽기까지합니다.그건아마농사꾼의노고와쌀을하늘처럼귀하게여기는우리고향마을의심성이아직도내마음속에남아있기때문이아닐른지요.
쌀이왜그렇게좋았던지….6.25때라던가일제말기,쌀이극도로부족했을때도우리민족이굶어죽는사람없이다살아남았다는것은제생각으로는우리문화가쌀문화이기때문이아닌가싶어요.만일빵을먹고살았다면빵이라는것은군식구가생겼을때뚝잘라주면자리가나잖아요.그러나밥은안그렇지요.생각하면,쌀은나눠먹으라고있는것같아요.누구든지끼니때집에오는사람은우선밥먹고가라고불러앉히잖아요?밥이라는것은얼마든지늘려먹을수있어요.어려울때는잡곡을섞어먹고그래도안되면물에말고,죽을쑤고한없이늘려먹을수있는게쌀인것같아요.먹을적에항상이웃을배려합니다.화수분이라는말이있지만쌀을볼때면저는쌀자체가화수분이아닌가생각해요.셋이먹을것을잘하면열명도먹을수있으니까요.
쌀과어머니를연관지어서잊을수없는것이있습니다.저희는개성사람이었는데,6.25때피난민들이우리집엘들려가는수가많았어요.그러면덮어놓고먹고가라고붙드는거예요.저는올케하고부엌에서가난한밥상을차리고있을때우리어머니가우린넉넉하다면서군식구를붙들면너무싫었어요.겨우수제비나끓일때식구가늘어나면어쩌겠어요.밀가루를아끼려고물하고우거지만더넣고끓이는거예요.손님한테는하얀수제비를많이넣고우리먹을건시커먼우거지가대부분이었지만,손님이미안해할까봐위에만살짝하얀수제비를서너개얹는거죠.그런것이다밥,쌀에서배운지혜가아닌가싶어요.
또한쌀을중요시하는것중에는쌀을만들기위해서얼마나많은사람들이참여했나하는것입니다.모낼때나추수할때나혼자서는절대로못하는것이벼농사잖아요.몇달전여기올때어떤청년이이앙기로혼자농사짓는것을보면서’논농사라는것은저렇게고독한노동이아니었는데’싶더라고요.모낼때도추수할때도온동네사람들이어울려서신명나게하던일을어떻게저렇게혼자서할수있을까.저사람은혼자커피도시켜먹고자장면도시켜먹고그렇겠구나싶더라고요.농사가딴노동과다른미덕이있다면그건고독하지않은거라고생각했는데그것도이젠옛날얘기가돼버렸네요.
제가고향을상실한건6.25가나고부터입니다.제고향개성땅은6.25전까지는38선이남땅이었다가휴전이되면서휴전선이북땅이돼버렸습니다.그때누가고생안한사람이있겠습니까만제가본경험중에가장끔찍한것은6.25였다고생각합니다.그때는같은어머니의자식이인민군도되고국군도되고,반동분자도되고빨갱이도됐습니다.마을공동체도주인,상전이라는계급으로갈라지고,같은혈육끼리이념의이름으로서로쏴죽이는문자그대로동족상잔의피비린내나는비극이벌어진겁니다.오빠가좌익운동하다가전향한후6.25를맞은우리집사정은더나빴습니다.인민군이들어왔을때는반동분자로,국군이들어왔을때는빨갱이로몰리기십상인성분이었지요.저는그때군인보다도경찰이무섭고경찰보다는청년단이더무섭고그랬어요.서울이몇번씩뒤바뀌는상황에서,국군이들어오거나인민군이들어오거나성분이수상한집의스무살처녀가당해야했던수모,인간이하의모욕이라는것은말도못합니다.저는대학에들어간해에6.25가났어요.저는서울대학교에들어갔는데,그때저는서울대학이면굉장한줄알았어요.그것도여자애가들어갔으니기고만장해서나외에는누구도없는줄알다가별안간나락으로빠진거죠.
인간이라기보다는버러지처럼기어야했던상황에서제가마음속까지버러지가안되고최소한도의인간적인자존심이나마유지할수있었던것은,언젠가는내가이것을글로쓰리라,하는다짐이었습니다.인간같지않은인간들에대한복수심같은것이었죠.
레미제라블을보면테나르디에같은악인이나오지않습니까.그것처럼저인간을형상화해서나만미워할게아니라모든사람이미워하도록만들어야겠다고하는생각이나로하여금그시간과상황을기억하도록했던거죠.스무살먹은처녀의복수심이었고앙심이었던거예요.제가그때를잊지못하는것도그때문입니다.그시기가그렇게지독했던시기였어요.
그렇지만복수심,증오가직접적인글이되는것은아니더라고요.그시기를넘기고스물셋에결혼을해서아주무사안일하고평온한생활이계속되니까복수심,증오같은것은다가라앉더라고요.제가문학을좋아하긴했지만글을써야한다고생각한것은아니었어요.
어릴때우리어머니가제게바란것은학교선생님이되는것이었습니다.아마도일찍과부가되신어머니가바느질품을팔아서저에게좋은교육을시키시면서당시어머니가가장우러러본직업이선생님이었던같아요.그러나당시만해도초등학교졸업하고사범학교로진학할수있으려면공부를특별하게잘하지않으면안되었습니다.우리어머니는저를똑똑한애라고생각했지만저는공부를잘못했어요.줄곧중하위권으로돌다가고학년이되면서공부를잘하게됐지만사범학교갈만하지는못해숙명여고에진학했습니다.그러나어머니는당신의꿈을접기는커녕오히려한단계높이셨습니다.어디서들으셨는지숙명에서일등으로졸업하면장학금으로동경유학을시켜준다더라,그러면중학교선생도할수있다고저를격려하셨지요.숙명이학년때해방이됐으니동경유학의꿈도수포로돌아갔지만선생님이돼야한다는어머니의꿈에서벗어날엄두는내지못했습니다.전쟁때문에학업을중단하게되니어머니의꿈은자연히무산되고말았습니다.
그후저는결혼하고평온하게살게됐는데그시기,살림만하면서애를오남매나낳아기르던시기도저에겐아주중요한시기라고생각합니다.그동안에앙심과복수심으로글을쓰고싶어한열망의부질없음을깨달아갔으니까요.앙심이나복수심은위무받아야지급하게표현되어서는안된다고생각합니다.
그러다가40세에’나목’이라는작품을처음쓰게됐습니다.거기에는화가가주인공인데처음에는전기를쓰려고준비한것이었어요.박수근화백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좀거슬러올라가는데,좌우대립속에우리오빠도비참한최후를맞고제가가장이됐습니다.어머니,올케,어린조카,저까지다섯식구를아무도돌볼사람이없어서제가학교도그만두고집안식구를먹여살리기위해서어찌어찌하다가미8군피엑스(PX)에취직을하게됐습니다.
미8군피엑스라는데가지금서울의신세계백화점자리입니다.그때는휴전되기전시민은물론정부기관도부산대구에피난가있고서울은텅빈최전방도시일적이라취직할만한데라고는없었어요.그런데피엑스를중심으로해서남대문시장일대는PX에서흘러나온미제물품으로특수한경기를누리고있었죠.그활기넘치는곳을배회하다가뜻하지않은행운을잡게되었는데,PX에취직이된겁니다.당시PX에취직하기는어렵다고도할수있고쉽다고도할수있습니다.특히젊은여직원들은미군을시켜물건을사서빼돌려서암시장에팔면큰이익을남길수있기때문에떼돈을벌수있는선망의직업이었지만,그대신들키면당장내쫓고그때그때충원을하니까요.결원이생겼을때를기다리고있는사람중에섞였다가제가대학생이라고하고하니까의외로쉽게뽑혀서취직이된겁니다.첫날은임시패스만주었는데도나는이제부터먹고사는건해결됐다고마음을놓았고우리집형편을걱정하던동네사람까지도’저집이제좀살게됐다’면서우리집에아부를다할정도였어요.
그런데그다음날출근해보니까같이충원된사람들은다들좋은데가는데저는제일나중까지남겨놨어요.그러다가데려간데가가장구석지고후줄근한커튼이쳐있는곳이었어요.그곳이어디냐하면초상화그리는곳입니다.저에게그림을그리라는게아니고지나가는미군들을꼬셔서초상화를그리도록하라는겁니다.
저는정말기가막히죠.물건파는것이라면정가대로돈받고거슬러주면되는거니까벙어리라도할수있는것인데,이건무심하게지나가는사람붙들고초상화를그리도록하라니,그건저처럼영어도못하고비시사교적인꽁한성격에아랑곳인가요.제고난의날이시작됐죠.전임자가맡아놓은주문이있으니까아직은화가들이그림을그리고있지만그건자꾸줄어드는데저는새로운주문을하나도못받는거예요.그러니까불안해진화가들이막아우성을치는거예요.아니,미스박은누구목구멍에거미줄치는거보고싶어취직한거냐,맨날벙어리노릇만하고있으니,이런소리를들으면앉은자리가가시방석이죠.그래도저는속으로한달만하자.한달만있으면월급을받을테니까.이런뱃장으로그냥버텨나갔죠.화가들은일한만큼돈을받지만저는월급제였거든요.그러나일안하고월급만받을얌체짓도아무나하는게아니죠.저에게도그자리가밥줄이지만화가들에게도그자리가밥줄아니겠어요.여러식구의밥줄이란무섭고도신성한거죠.조금씩말문이열리면서주문도받을수있게됐죠.
그런데이직업이물건파는것보다고약한것은물건은한번파는것으로끝나는데그림은찾으러와서만족스러워하는이가별로없다는거예요.다시그려달래기도하고수정을요구하기도하고,그런불평달래기가또보통일이아니죠.미군들도자기얼굴그려달라는이는거의없어요.대개여자친구나아내,여동생의사진을맡기고그려달라는건데다된그림을보고마음에안들어하는까닭의대부분은사진보다덜예쁘다는거죠.웬만한불만은잘다둑거려수정을해주는정도로끝내지만완전히다시그려줘야할때도있는데그런경우는그손해가고스란히화가들에게돌아갑니다.주로스카프에다그렸는데화가들은두번일에다가스카프값까지물어내야하니까요.어떻게보면화가도살아야하고나도살아야하는상부상조의상황인데도항상상극하는사이가돼요.저는’왜이렇게밖에못그리냐,사진보다조금만더예쁘게그리면될텐데그것도못하느냐’고하고,화가들은저에게’애교도부릴줄알고화장도하고파마도하고다녀라.여기가대학인줄아냐’고하죠.
전쟁나기전엔극장간판을그리던화가들을저는속으로은근히무시하는마음이있었나봐요.나이로봐서아버지벌도되는어른들이니까선생님이나아저씨로불러도될걸이씨,김씨하는식으로마구대했죠.그림을마음에안들어하는미군과다투기라도하고나면마구신경질을부리면서이것도그림이라고그렸냐고마치초등학교선생님이열등생다루듯이화가들을몰아붙였습니다.내가어쩌다이지경이됐나,하는자기모멸때문이었지만화가들한테도견디기힘든수모였겠지요.
어느날,저에게이런수모를받던화가한사람이두꺼운화집을하나끼고왔어요.저는속으로같잖게여겼죠.모든것이짜증나고신경질만나고세상다산것같을때니까,’제까짓게화집이나끼고다닌다고누가진짜화가로봐줄줄아남’이렇게얕잡는마음으로바라봤죠.
그런데그화가가저한테화집을펼쳐보여줬어요.보니까일제시대때’조선미술전람회’에입선했던작품들을모은화집이었는데거기실린그림하나가자기작품이라는거예요.그사람이박수근화백입니다.그대단한화가가거기서싸구려초상화를그리면서저같은철부지한테그런수모까지당했던거죠.그때저는굉장히부끄러웠습니다.
그사건은저에게어떤전기가되었습니다.훗날그사람을모델로해서소설을씀으로써변신의계기가되기도했지만세상다산것처럼아무렇게나마구살던제삶도반성이있는삶이되고,마음을열고주변사람들을살펴볼여유도생기게됐습니다.내가어쩌다이지경이됐나하는마음도결국은제잘난맛이었는데그안에서저보다훨씬못한막일에종사하는분들도다나보다잘난사람들이었습니다.청소하는아주머니들중에는우리어머니가그렇게선망하는여학교선생님도계셨고,우리학교3학년영문과선배,은행지점장하던이도보일러실이나창고에서막일을하고있었습니다.전쟁에서살아남기위해,식구들굶기지않으려고그런일이라도밥벌이가있다는걸고마워하며다들열심히일하더라구요.
박수근씨는양구출신입니다.양구는격전지였어요.전선에서온군인들에게어디서왔느냐고물어보면’갓뎀양구’라고할정도였죠.그소리를들으면서양구출신의화가가그곳에앉아서싸구려그림을그렸습니다.그때박수근화백이싸구려인조스카프에그려서받은초상화값이6달러였습니다.
우리매장에서받은정가가그러했으니화가에게그중얼마가돌아갔겠습니까.
저는그분이어렵게살았다는얘기,돌아가셨다는얘기를소문으로만듣다가69년경에유작전을했는데이중섭화가와막상막하의그림값을받더라고요.제가유작전을보고나서그렇게속이부글댈수가없는거예요.샘이나서부글댔다는것이아니라그사람이얼마나싸구려그림을그리고가난하게살았는가를생각하니그랬습니다.그것이그렇게속이상하더라고요.
제가속물이라그런지’진정한예술가는죽고나서평가를받는다.’고하는말도헛소리로들리더라구요.고생도보통고생이어야말이죠.이왕이면살아서평가도받고호강도좀하고그랬으면얼마나좋았을까,가족들도그사람그림을가진게없는데그사람그림값을올려받으면서이득을취하는사람들은누구일까,이런생각으로마음이들끓다보니그분이어떻게살았는가를증언하고싶더라고요.그분은미술학교도제대로안나온분이라제생각에다른누구도증언해줄사람이없다고생각했어요.양구에서소학교만나왔던것같아요.그래서처음에제가의도한건그분의전기를쓰는거였습니다.
전기를소설로바꾸는동안이저에게는자기발견의아주중요한시기가되었다고생각합니다.전기라는것은그사람의실제생활,사실을가지고써야되는거아니겠어요.그런데그사람에대해서제가아는것이라고는일끝나서퇴근할때을지로입구까지전차타러걸어가면서나눈얘기,추울때어묵국물마시면서나눈쓸쓸한얘기,이놈의전쟁이언제나끝나나하는출구없는절망의추억외에구체적인것을아는게없어요.그러다보니까억지로이것저것실지로는있지도않았던거짓말을보태게되고,그러면훨씬잘써지더라구요.잘써진날은다음날다시읽어보면이건아닌데싶은꾸며진얘기천지고.그래서다덜어내고사실만가지고쓰려고하면또너무삭막하고재미가없어져요.
그러다가제가아,이건안되겠다.이왕이면쓸때기쁨도느끼고싶고,그사람얘기중에제얘기도끼워넣고싶더라고요.상상력을보태자는생각으로여태까지쓴것을다파기하고소설로쓰니까너무편하고쓰는데보람이느껴지더라고요.그래서’나목’에는그분모습도나오지만저를투사한여주인공얘기도나오는거죠.그분의모습도사실만가지고쓴것보다상상력을보태니까내가이해하고좋아한그분과훨씬더가까워지더라구요.
긴얘기를했는데,이런말을하는이유는증오심,복수심이런것이소설이되는것은결코아니라는얘기를하려는겁니다.그때는그런것이정열인줄알았는데,역시소설이되는것은사랑이아닌가싶어요.증오로소설이쓰여지는것은아니더라고요.물론증오만가지고쓴소설도없으란법은없죠.불의에대한증오가그좋은예인데그런경우도반대되는상황에대한절절한사랑이증오로나타나는것이지순전히증오만가지고쓴소설은없다고생각합니다.거듭말하지만증오심이나복수심은위무받아순화될시간을기다려야지즉각표현되어서는안된다고생각합니다.인간에대한,이세상에대한사랑이보다나은세상에대한그리움이되고소설을쓰는동력이된다고생각합니다.
아까소설이나에게도움이되는것으로일,명예,돈등을말씀드렸는데또하나,정신의힘,젊음을유지할수있도록하는것이소설쓰기라고생각해요.여기서젊음이란용모나체력을말하는게아니라감수성을말하는겁니다.글을쓴다는것은고도의집중력을요하는일입니다.신인시절선배들이’글쓰는일이란뼈를깎고피를말리는작업’이라고말하는걸들었을때첫작품을너무기쁨을가지고빨리썼기때문인지저렇게까지말할게뭐있나싶었어요.그러나이후글을쓰면서는피보다더한것이빠지는듯한느낌이들었어요.진이빠진다고할까….내가다바스러지고아무것도안남은느낌이나요.어떤때는비참할만큼힘든일이예요.그러니까작품하나쓰고나면한동안은정신을이완시키고풀어줘야해요.머리를비우기위해휴식도취하고멋대로방만하게살아보는거죠.긴장과이완의적절한반복은정신의탄력을잃지않는운동같은것이죠.그런것때문에아직도제가이나이에도젊은감수성을가지고사는것같아요.기쁜것을보고기뻐하고슬픈것을보고슬픔을느낄수있는감수성이저는젊음이라고생각합니다.그것은끊임없이반복하는정신의운동에의해가능한것이아닌가싶고누구에게나필요한것이라고생각합니다.
얘기를많이했네요.여러분들의욕구에맞추기보다는나는무엇인가하는생각,내문학의뿌리에대한생각을하다보니’나에게소설이란무엇인가’를이런식으로말하게됐습니다.
독자와의대담
산본에서온한영섭입니다.선생님의신산스럽고때론옥실옥실재미있는이야기들잘들었습니다.소설을써오시면서길어올린표현들중에가장인상깊고,소중하게아끼는표현이나구절,말이있다면소개해주십시오.
아이고그럴줄알았더라면무슨책이라도하나가지고올것을그랬어요.모르겠는데요.저는회심의미소를짓고선택한단어도독자에게가서아무런울림도못준다면아무것도아닌게되겠지요.생각나는게없는데요.오히려제가기대하는건독자가어휴이런표현은좋더란말씀을해주셨으면좋겠는데요.
원주에있는고창령입니다.사람은태어나면서부터여성이든남성이든성을주어받는데우리사회에서는드러내놓고성을이야기하는것은불측하고망측한것처럼이중적인모습들을보이는데요.선생님께서바라보는문학속에서의인간의성은무엇인지듣고싶습니다.
저는거의여성이주인공인걸많이썼습니다.그래서절보고페미니즘작가라고하는사람도있고그러는데전페미니즘이론에대해서는잘모릅니다.그런데제가등단한때가70년이고70년대에70년대작가군이라고해서기라성같은젊은작가들이많이나왔어요.그작가들의소설속에나타난여성상을보면서이건뭇남상들이여자는모름지기이래야한다,또는이러저러했으면하고바라는순정적창녀적모성적여성상일뿐주체적인여성은아니란생각이들었습니다.저는소설에서여성도그냥솔직하게여성의목소리를내게한작가라고생각합니다.여성도똑같이여성이욕구하는남성도그릴수있고여성도이시대를보는눈이있고그런것이페미니즘으로비쳐졌다면저는페미니즘작가라고분류가되도이의없습니다.또제가남성작가로부터들은비판의소리중에는’왜당신이그리는여성은왜그렇게드세고상대적으로남성은소심하고왜소하냐?’는건데그건아마제가살아온시대의영향이아닌가싶습니다.우리어머니도물론드센분이었지만,저는우리의근세사가여성을드세게만든게아닌가,그만큼우리근세사는여성에게빚진바가많다고생각합니다.한마디로6.25때남자를살아남기기위해서,아들을살아남기기위해서어머니의치마폭이얼마나넓었고눈물겨웠던가를우리는잊어서도안되겠고,또전쟁중과그후의극도로궁핍했을때유일한외화벌이수단이양공주라는성상품이었다는것도잊어서는안된다고생각합니다.그후버스차장,구로공단의저임금여성노동력등현재누리고있는경제발전은여성에게빚진게굉장히많습니다.그후엄마들의치맛바람이런것도나중에우리의근대화를촉구하는데큰역할을했지요.드셌기때문에,아까쌀문화때문에고비를넘겼다고했는데어려울때무한히나눌수있는지혜와사랑이바로여성성이라고생각합니다.
충주에서온권오국입니다.올해문학상수상작에서친척동생이진짜친척동생이십니까?선생님글에서막판되짚기처럼참오묘하게써내려가신것중에사촌동생이나중에섬에가서결혼한다고했는데그것이너무좀상상을못했던설정으로갔는데그분이진짜친척인가가정말궁금합니다.(웃음)
진짜사촌동생이고진짜지금도거기서삽니다.(웃음)"
단양에서온김순례입니다.사람에게는여러가지재능이복합적으로갖고있는데그중하나를끄집어내서쓴다는말을들었는데선생님께서생각하실때작가는재능과삶의경험중어느것에더비중이크다고생각하십니까.
글쎄요.작가지망생에겐가혹하게들릴지모르지만요샌글을쓰겠다는사람이참많잖아요.그러면전’아이고참으세요.당신이안써도쓸사람너무많으니까요.’라고말해버리는적이많아요.참아도안되는것이있으면뭔가되는게아닌가싶어요.떠도는이야기지만요새는강남의부모들이학교에서엄마의직업도물으니까이왕이면시인이라든가수필가라고하면그럴듯할것같아서,많이들글을쓰고싶어한다고도해요.장신구를고르듯이하는문학,액세서리로서의문학은하지말았으면싶어요.
저는대학을다니다말았기때문에전통적인문학교육을받은적이없지만,고등학교때나중에좌익으로몰려서사형당해서거의문학사에서지워지다시피한소설가가문과담임을하신적이있는데그때기억이저에겐지금도소중합니다.우리는어떤세대냐하면중학교2학년때해방이되었기때문에사춘기때달콤한일본의연애소설을많이읽었죠.거기서영향받은,우리의체험이실리지않은공허한미사여구를그선생님은지나치다싶을만큼혐오스러워하시고야단을치셨어요.그때그분이우리에게한말씀중에잊혀지지않는게있는데’포도주만들때무엇이무엇이필요하다고생각하느냐?’는질문이었어요.그러면우리가포도요,설탕이요,소주요하면’또,또’하시면나중에는병이다항아리다라는소리까지나왔는데그러면’시간이다’그러니까항아리도없고설탕도없고소주도없어서포도를땅에버려도시간이지나서발효가되면폭발하게되어있다.너희들이쓰고싶은것이있다고해도그냥참아라,그냥참아지면그것은소화되어서대소변이되어서나올것이나안참아지는건폭발하게돼있다이런말씀이었던같습니다.그때는잘못알아들은대신지금까지도유효합니다.아무리남다른체험과상상력과글재주가있다고해도그게밀도높은문장이되기위해서는참고기다리는시간이필요하다고생각합니다.
연세대학교국문과김미영이라고합니다.과거로서기억하게되는시대의아픔이나한반도란공간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살아가는모습들을지금선생님작품에서상처를어루만지고다시따뜻하게치유하고있지만그리움이나향수로서묻어두기에는아직도진행형의역사란생각이듭니다.글쓴다는사람이,사회적인지도가있는사람에게던져지는사회적책임과역할에대해서는어떻게생각하시는지요.
동감입니다.625는오십년전에일어난전쟁이지만마무리되지않고현재진행형의전쟁입니다.양쪽이서로를불구대천의원수로미워하던극한대립은많이완화되어이산가족들이서로오가며만나는좋은세상이됐지만아직도우리마음속엔레드콤플렉스가있고,북쪽도마찬가지일겁니다.그러나이정도로나마서로교류하고이해하는데자그마치50년이걸렸습니다.저도625이야기를몇번씩반복해서썼는데시대에눈치를봐가며창작의자유를조금씩확대시켜나가느라그리됐다고도볼수있습니다.
어떤때는통일을외치는소리를들으면서,이건벌받을소리일지도모르지만내가죽은후에통일이되었으면하는생각이들때도있어요.왜냐하면원한에사무친세대가여기에도살아있고저쪽에도아직살아있는상태에서무조건용서하고화합하는게,구호를외치는것처럼그렇게쉬운일은아닐겁니다.조금더뎌도좋으니서로다방면으로교류의폭을넓혀가면서경제적격차와정서적이질감이비슷한수준으로줄어든후에진짜통일은했으면하는것이저의솔직한심정입니다.제생전에는그저외국여행하듯서로비자를발급해도좋으니여행의자유라도보장되는걸보다가죽었으면좋겠습니다.
원주를사랑하는김정희라고합니다.문학을통해일과명예와돈을얻었다고하셨는데지금은예전과환경이달라졌습니다.매체가많아져책을많이읽지않게되고,여러가지영상적인즐거움들이많다보니까이제소설은죽음에이르렀다고생각하는사람이많습니다.그런상태에서앞으로21세기소설과문학의진로를어떻게보시는지,또젊은사람들이문학을꿈꿀때많이절망하는경우가많습니다.예술이지만한사람의노동으로서소중한일로서선택하게될때많이망설이게되고,대가도충분하지못한경우가많습니다.특별한각오와소박하고가난한삶을택할수밖에없는경우가많은데문학을꿈꾸는젊은이들이용기를잃지않도록소설의미래어떻게보시는지궁금합니다.
저는그렇게어둡게보지않습니다.소설만써서먹고살기어렵다는것도예전과비슷하지근래에갑자기나빠진건아닙니다.소설로큰돈을번작가도적지않게생겨난건오히려예전보다근래에자주눈에띄는현상입니다.그런성공사례가갓등단한신인도여태까지종사하던생업을걷어치우고전업작가로나서게용기를주는것도사실이나그런행운이자주있는건아닙니다.그러나열정과소신을다해쓴작품은잘안팔려도본인에게는궁핍을위로하고보상해주는보물이요긍지가되는게아닐까요.긍지와자신감만있다면딴일을가져서먹고사는문제를해결하는것도나쁘지않다고생각합니다.특히육체적인막노동같은것과글쓰기를겸하는건다양한경험을위해권하고싶기도합니다.그게성급하게팔리는소설을쓰려고문학을타락시키는것보다훨씬낫다고생각합니다.이건듣기좋으라고하는소리가아니라제경험에서우러난소리입니다.저는가정주부로있다가등단을했기때문에처음부터전업작가인줄알지만실은주부노릇과작가노릇을겸업한거죠.열식구나되는대가족의주부노릇이얼마나중노동인지알기나하십니까.작가가된지는32년이되지만잠자는시간을줄여서밤에만글을썼지낮에당당히서재에서글을읽고쓴지는15년밖에안됩니다.또한국사회는작가에게호의적이고음으로양으로많은혜택을주고있다고생각합니다.
저는충북제천에서온전호진이라고합니다.저는꿈이소설가인데저에게필요한말한가지만해주시기바랍니다.(초등학교어린이의질문)
요새꿈이소설가라고하는아이참드문데너무반가워.(웃음)오늘네가나에게가장큰수확이야.그런데부모님에게가장많이듣는말이공부하란말이지?그말씀맞아.우선공부열심히해.문학을모르고도다른거얼마든지할수있어.변호사도할수있고,의사도할수있고,장사도할수있고.그렇지만소설을쓰려면다방면으로뭐든지다알아야돼.그러니까나는이다음에소설가가될테니까동화책만읽자,그러고는수학이나과학같은건못해도된다고생각하면안돼.그러니까공부도잘하고좋은책도많이골라서읽고운동도열심히해서체력도단련하고.마음만먹으면그럴시간얼마든지있을거야.네가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