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李霆,1541-1622이후),호는탄은(灘隱) 아래그림은간송소장품은찾을수없어대신올립니다 우리들은서양화에큰그림에너무익숙해진것같아요 묵죽화…정말감동적이었습니다. 지난주에봐낸네델란드화의원화들도생각보다얼마나작았던지요 ◈이정◈122.4×51.6Cm◈호암미술관소장 이정의대(竹)그림은수직구도이건대각선구도이건 따라서그의대(竹)그림에서는꿋꿋한기상을느끼게하는 윤두서
풍만한얼굴에반듯한눈썹,정면을응시하는눈,
패러디그림출처:김희수홈에서
문월도(問月圖)
묵죽(대나무를먹으로만그림)은조선초기에
화원의중요과목으로채택될만큼중요한분야로여겼다.
활발하게제작되었는데대나무화가로서
가장널리알려진인물이이정이다.
세종의현손으로왕실출신인이정은
임진왜란때에왜병의칼에오른팔을상하여
그후로는왼팔로그렸으나
그림의격이오히려높아졌다고전해진다.
대의생태와기후조건에따라변화하는양태를
다양하게묘사하고있는데이번전시에는그중에서
고죽,통죽(筒竹),신죽풍죽난죽(蘭竹)이었는데
조선묵죽화의최고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고합니다
분위기만아시도록…어제본작품은그의기년작(記年作)으로
검은비단바탕에금니(金泥)로그린만력갑오(萬曆甲午),
즉1594년에해당하여연대가가장이른작품이랍니다.
서양화에익숙하신우리들의눈을몇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준걸작이었습니다만
저를비롯한대부분사람들은
건성으로보는것같아좀아쉬웠습니다.
사이즈를매번올리는저이지만건성이었던걸새삼반성했답니다.
허지만그림이작으니자세히드려다봐야하는잇점이있습디다
아가들새끼발톱반만한들꽃들은눈가차히가져다봐야보이딕기…^^
저는진짜로덩치에안어울리게왜작은것이더좋을까요?
등그소재의변용이매우다양하고여러기법을잘소화하여
자유자재로그려내고있다는중요한특징이있다.
이를테면<풍죽도>에서는섬세한운필로뻗어올라가는댓잎이
날렵하고맵시있는모습이강조되어있지만<통죽도>에서는
묵직하게끊어치면서노죽(老竹)의연륜을나타내고있다.
일정한울림의여백으로써서정적인분위기가
연출되면서대나무줄기나잎에서는고결한기품을
한껏강조하는사의화(寫意畵)로서대(竹)그림의요체를
잃지않고있다는점이중요한특색으로지목되고있다.
엄숙함과함께한편으로는부드러우면서도은은한분위기가
자리하고있어서중국의대나무그림과는명백한차이를보인다.
본관은해남(海南)이며,자는효언(孝彦),호는공재(恭齋)로,
〈어부사시사〉로유명한고산윤선도의증손이자
다산(茶山)정약용(丁若鏞)의외증조이다.
1693년스물다섯살에진사가되었으나당쟁으로
세상이어지러워지자벼슬을포기하고시서화로일생을보냈다.
1712년45세때에는전라남도해남의연동(蓮洞)으로낙향하여
그림과글씨를벗하며보냈는데,특히인물화와말그림을잘그렸다.
30.2cmx25cm/해남녹우당소장
비스듬히흐르는언덕에서나물캐는여인을그렸는데,
아래쪽의여인은망태기와칼을들고캘나물을찾는지허리를굽힌모습이다.
위쪽의여인은서서고개를뒤로젖혀주변을둘러보는모습이다.
일하기편하도록치마를걷어올려묶고,머리에수건을쓰고있다.
지금도시골에서가끔볼수있는일하는여인의모습이다.
간략한선으로묘사하였지만나물캐는여인네의특징을잘드러내보여준다.
인물은사실적인반면가파른산은매우관념적이다.
공간에균형을이루며,화면의크기를무한히확장시켜준다.
인물화에뛰어난윤두서의재치와기량을잘볼수있으며,
농촌에서일하는사람에대한관심을보여주는점이뜻깊다
자화상/종이에담채
38.5cmx20.5cm/
그의풍모에압도당하는느낌이다
전신상이나반신상도아닌얼굴만을화면에떠올린자화상을보면
세계어느초상화에서도느끼지못했던강렬한느낌을지울수없다.
그리고화면의절반을차지하는긴수염등은
선비의굳건한의지를담고있고,
마치살아있는얼굴을보는듯하다.
그의인간적인내면세계를그대로드러내보여주는듯한이작품에서
그의세심한관찰력과뛰어난묘사력을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