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서정시가 이 땅에 씌어지는 일을 신기해하며

빈약한상상력속에서

오규원

1.
어제나는술을마셨고
마신뒤에는취해서유행가
몇가닥을뽑았고,어제
나는술을마셨고그래서
세상이형편없이보였고,또
세상이형편없었으므로안심하고
네다리를쭉뻗고잤다.

어제나는다른때와다름없이정오에출근했고
출근하면서버스를타고옆에앉은
여자의얼굴을한번훔쳐보았고
이여자또한다른여자와마찬가지로
한남자의사랑을받으리라는점을
한남자의사랑을받으면
이여자의눈에도별이뜨리라는점을확신했다.

나는어제버스가쉽게달리는것을느꼈고
쉽게달리는버스때문에이시대의우리들이얼마나무능한가를느꼈고,
쉽게달리는버스속에서보아도
거리에선우리들의상상력은빈약해보였고
그옆에선아이들조차
다시태어나리라는상상력을방해했고,
나는다시태어나기위해
버스가고장이나기를희망했다.
버스가탈선되기를,탈선의장치의
거리가준비되기를,
허락받은사람들은허락받은냄새와지랄의아름다움을위해
세방이라도하나얻기를희망했다.

이모든것을사랑의이름으로나는갈구했고,그리고
사랑의말에는모두구린내가나기를희망했다.
냄새가나지않는사랑이란
맹물이라는점을
우리는너무완벽하게잊어버려서
이제는떠올리기조차너무나먼
이제는그사실을떠올리려면
세방을얻어주는그방법밖에더있겠느냐고
나에게질문하며.

2.
어제나는술을마셨고
술과함께오기도좀,개뿔도좀,흰소리도좀,십원짜리도좀마셨고
그러나오늘새벽잠이깨었을때는
오기도개뿔도다어디로가고
후줄근히젖은시간이구겨져있었다.
구겨진새벽의창문과뜰과
이웃집지붕위로
그만그만한어제의오늘하루가내복바람으로나를보았고,
나는일어나있었고,
찬물을한사발마신후
오늘하루그것의사랑에박힌
티눈의정체에게안부를나는물었다.
카세트에녹음된금강경의독경을
한번듣고,뒤집어서
반야경을한번듣고.

오늘나는오늘의어제처럼출근했고
출근하자마자커피를한잔마셨고
전화두통화를받았고
전화한통화를걸었다.
담배를피워물고새삼어제
집에무사히도착한일을신기해하며
아직도서정시가이땅에씌어지는일을신기해하며
아직도사랑의말에냄새가나면
사랑이아니라고하는
맹물사랑의신도들을신기해하며.

3.
내일나는출근을할것이고
살것이고
사는일이사랑하는일이므로
내일나는사랑할것이고,
친구가오면술을마시고
주소도알려주지않는우리의희망에게
계속편지를쓸것이다.

손님이오면차를마실것이고
죄없는책을들었다놓았다할것이고
밥을먹을것이고
밥을먹는일만큼배부른일을
궁리할것이고,
맥주값이없으면소주를마실것이고
맥주를먹으면자주화장실에갈것이고
그리고이모든것을
사랑하며만질것이다.

보이지않는미래에게전화도몇통할것이고,
전화가불통이면
편지쓰는일을사랑할것이다.

오규원시집[이땅에씌어지는抒情詩]에서
1981년作[빈약한상상력속에서]

시인의말처럼
아직도서정시가이땅에씌어지는일을신기해하며

신기해하며
………………….

덜컹덜컹유리창…바람소리…
서정시한편찍어보는
이새벽서늘함

전율하며

‘가야할때가언제인가를
분명히알고가는이의
뒷모습은얼마나아름다운가’
소풍끝나고…이제편안하실까…


-2005.2.4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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