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연상, 단어 하나로…

바람소리곁에누워

소소하게바람에창이덜컹이는소리가들립니다.
이제바람은차서맨살에닿으면으스스합니다.
낮에보니까나뭇잎들도다져서숲은그만큼맑아졌습니다.
언젠가당신과함께겨울숲길을걸을적에바람에나뭇잎하나가
당신의이마에날아와붙었다가는귀밑머리께에가서잠시걸려
있다날아가던순간이생각납니다.
당신은아마도바람결에옷깃을여미느라고알아차리지못했던
듯합니다.아니잠시눈을마주치고웃었던것도같군요.
너무먼기억은쉽게구부러지기도하는것이지요.

찬바람이부니까국화꽃생각이납니다.
국화는밤길을오래걸어서귀가시릴때쯤이면피는꽃이지요.
언젠가읽었던다산茶山선생의국화에대한글도생각이납니다.
[국영시서菊影詩序]라는글이었습니다.
국화는다른꽃보다네가지가뛰어나오래견디는것과,향기와,
요염하지않으며고운것과,깨끗하나싸늘하지않은점을취하여
즐긴다고했는데선생은이네가지에한가지를더해촛불앞의
국화그림자를즐겼다는내용입니다.
밤마다그것을위하여담장벽을쓸고등잔불을켜고쓸쓸히그
가운데앉아서스스로즐겼다는것입니다.

지난가을엔마른국화꽃한다발쯤내방에마련해두고싶었는데,
국화향은얼마나깊이깊이마음에새겨지는것인지요.
가을꽃이라유난히그런지도모릅니다.
또한해를살았군요,하고옆구리를찌르는듯한향기입니다.
그향기는지난한해는어떠했습니까,얼마나향기로웠나요하고
묻는것만같습니다.화려하지않고그만저만한모양과향으로깊은
숲을쉬게하는그꽃을한다발벽에걸어두고겨우내내삶과도
견주며즐기고싶었으나그만때를놓치고말았습니다.
또한당신에게도그렇게해보라권해보고도싶었는데.

당신방의바람벽이궁금합니다.
예전그대로인가요.작은창옆의미술책에서오려낸박수근그림은
아직그대로걸려있나요.
혹이번겨울나기는좀색다른무엇이있나요?
지금은바람소리들이걸려있겠군요.
이곳도이렇게바람들이부니그곳인들이바람의계절에서빗겨있겠어요?
혹누워서백석白石이그러했던것처럼보고싶은이들을활동사진처럼
돌려가며바람벽에비춰보고있지나않는지모르겠군요.

-장석남著[‘물의정거장’中]이레|2000년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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