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우리가사랑한다는것은-류근
이제우리가사랑한다는것은
사랑때문에서로를외롭게하지않는일
사랑때문에서로를
기다리게하지않는일
이제우리가사랑한다는것은
사랑때문에오히려슬픔을슬픔답게
껴안을수있는일
아픔을아픔답게
앓아낼수있는일
먼길의별이여
우리너무오래떠돌았다
우리한번눈맞춘그순간에
지상의모든봄이꽃피었느니
이제우리가사랑한다는것은
푸른종흔들어헹구는
저녁답안개마저물빛처럼
씻어해맑게갈무리할줄아는일
사랑때문에
사랑아닌것마저부드럽게
감싸안을줄아는일
녹비綠肥-정일근
자운영은꽃이만발했을때갈아엎는다
붉은꽃이며푸른잎싹쓸이하여땅에묻는다
저걸어쩌나저걸어쩌나당신이탄식할지라도
그건농부의야만이아니라꽃의자비다
꽃피워서꿀벌에게모두공양하고
가장아름다운시간에자운영은땅에묻혀
땅의향기롭고부드러운연인이된다
그래서자운영을녹비라고부른다는것
나는은현리농부에서배웠다,녹비
나는아름다운말하나를꽃에게서배웠다
그땅위에지금푸른벼가자라고있다
[책읽어주는남자]가을에떠오르는’가슴먹먹한사람’있으세요?
김광일기자kikim@chosun.com
입력:2005.09.0716:0656′
마지막파란색버스와지하철마저끊긴시각은하얀토사물같은선택의순간입니다.젤리스니커즈가적어도한두켤레쯤있는젊은축들은그렇게학습돼있습니다.결혼을미친짓이라고생각하든말든상관없습니다.조금치사하지만“택시비보다여관비가쌀것같다”는‘재래식작업’을받아들입니다.
이런원나잇스탠드같은요즘사랑과는달리,그러니까한40년쯤기다리는사랑도있습니다.나카가와요이치가쓴‘하늘의박꽃’(샘터)을권해드립니다.소설은이렇게시작합니다.
‘믿기어려우시겠지요.믿는다는것이현대인에게얼마나어려운일인지는저도잘알고있습니다.그러면서가장믿기어려운일을가장열렬하게믿는이광기에가까운이야기를뭐라판단해주시기바랍니다.’(7쪽)
주인공남자는우연히알게된하숙집딸아키코를무려23년동안이나기다리고사랑합니다.일곱살연상인그녀는이미결혼하여아이까지있고남편은외국에나가있습니다.주인공남자는자신을채찍질하며세월을인고합니다.
한번은이웃집처녀와인연을맺어결혼을하기도하지만그뿐입니다.사랑이아니라육체관계에서비롯된양심선언같은결혼이었기때문이지요.결국늑막염에걸린젊은아내를2년동안성심껏간병하다가헤어지고맙니다.
‘이세상에서가장사랑하는사람과같이살지못하고,지금나는이런생활을하고있구나…’라고탄식하는병에걸리면치유방법이달리없는것같습니다.
지구위에태어난모든연애소설가운데최고의자리를차지하고있다는톨스토이의‘안나카레니나’도이번기회에다시한번들춰보시지요.안나와브론스키백작의간통사건을안나의파멸에이르기까지추적하는이작품은인간의위선적가치를거부하는모습을장엄하게표출하고있습니다.
도도한문체와장대한스케일은쿨하고라이트한풍선껌사랑과는너무도달라서우리를까마득히잊어버린고전의세계로안내합니다.시공을뛰어넘게해주는것이지요.
‘하늘의박꽃’에서하숙집딸아키코가주인공남자에게번역본책을빌려주는데그책이바로‘안나카레니나’입니다.안나가눈쌓인기차역에내려불행하나마더할나위없는기쁨에넘쳐브론스키를만나는장면이적힌페이지에아키코는조그만명함한장을끼워놓습니다.그명함엔‘늘만나고싶은마음뿐!’이라고쓰여있습니다.
감전이라도된것처럼몸속에서무슨끔찍한일이일어나는느낌을받을때,이성을잃고서로매달리고싶은심정일때,하지만잠시후몸을돌려계단을내려오고,미쳐버릴듯한마음으로언덕길을뛰어내려온적이있으신지요.(26쪽)
좁은대합실구석에서주인공남자는아키코에게작은소리로다급하게말합니다.“안아주십시오.”그녀가대답합니다.“제가나중에더힘들어져요.”
단념할래야단념할수없는지상의아름다움은죽어서도눈을감지못합니다.자갈돌위를흐르는물속에그녀의발이하얀물고기처럼보일때,고삐풀린마음의환희를위해주인공처럼폭죽사를데리고가을밤들판에서보세요.그리고흡사박꽃을닮은,검푸른밤하늘을향해화려한불꽃을쏘아올려보십시오.책읽어주는남자가그폭죽사가돼드리겠습니다.
감-허영자
이맑은가을햇살속에선
누구라도어쩔수없다
그냥나이먹고철이들수밖에는
젊은날
떫고비리던내피도
저붉은단감으로익을수밖에는…
하늘의박꽃(샘터)
나카가와요이치지음
166쪽|2005년08월발행
P.S:책읽어주는남자가가을에떠오르는’가슴먹먹한사람’있냐고묻는다…….
HilaryHahn-브람스바이올린협주곡D장조
3악장Allegrogiocoso,manontroppoviv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