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잎난분분…(내가아는박경리..너무거창해서제목고쳤어요)
토지가세상에나오고한참후kBS(?)에서드라마를할즈음대하소설답게
거의모든인간군상들도당연히많아친구들이나우리집에서까지도
등장인물누구는누구닮았다…그런게유행하던시절이있었다.
꿈도야무지지울남편은자기가’구천이다’라며여러사람을웃기기도했다.
농담이지만난그때"그럼난별당아씨네"
(자신들은누구를닮고싶지만예를들면내가별당아씨를꿈꾸듯..아유,너무심했나?
다른이들눈에는어떤사람으로보일지…여러사람들께묻기도하며…)
우리는월선이랑용이의러브스토리에애잔해하고
귀녀를향한강포수의불같은사랑에매료되고그랬다.
칡넝쿨처럼질긴임이네를흉보기도하며…
구천이는서희엄마별당아씨를보쌈해서어디로도망을간다.
깊은산속에서사랑하는여인별당아씨머리를감길때
주위의풍경을작가는’진달래난분분…’이라는표현을해서
난그때부터지금까지토지하면’진달래난분분…’그장면부터먼저떠오른다
(OutofAfrica…머리감기는장면?과는
요즘은청소년토지도출간된모양이다.
어떤이가아직토지를못읽어서그걸읽겠다는말을듣고말린적이있다.
어느부분을어떻게요약했는지알길이없지만괜히’진달래난분분’그부분이없을것같은예감때문에
(*혹시’청소년토지’읽으신분그부분있으면꼭알려주시길…
#세친구
엄마,박경리,은희.세분아주머님은진주여고(일신여고)동창이었다.
셋은유난히친했치만경리아주머님은결석이잦았단다.
가정환경때문에
박경리(이하작가나당신..)의어린시절…
열네살(?)에네살연상아버지와결혼하여열여덟(?)에당신을낳고
그아버지는당신이태어나자마자어머니를버리고다른여자랑살림을차렸단다
그아버지는어느날여자애가학교다니면팔자세다고그만두라하자
아버지께대놓고’당신이날학교보냈냐왜가라마라난리냐…’해서뚜디리맞고
당차고맺고끊는데가있는성격의작가는토지의최치수(서희아버지)가
가장당신과닮았다는고백을한참뒤에들은기억이난다.
-최치수같은무서운강단으로우리문학사에한획을그은게아닐까…
엄마랑나는방학하면어디로여행을많이다녔는데
서울가면은희아주머님집이나정능청수장근처작가의집에서잔기도했다.
당신이현대문학에김동리씨추천으로겨우작가라는명맥만유지하며
노모와딸을책임져야하는힘든가장이었던시절의에피소드하나만더…
어느날엄마는돈암동은희아주머님댁화장실휴지박스에서
쪽지를발견…(그당시는수세식이아니어서신문지등속…)
그쪽지내용…
"xxxx(창씨개명한이름..생각안남)야분粉이또떨어졌다.영주(김지하시인부인)편으로분조금만보내줘…"
그당시돈암동산비알(써먹어야지조흔우리말)에서셋방살이로궁핍했고
분을빌릴정도로세분들은친해서이런일화를늘어놓는다
생전처음이다.
혹시생존해계시는작가에게누가될까봐그동안은쉬쉬했다.
그리고작가는그이후창창일로를달리고…
신문에연재되던’노을진들녘”가을에온여인’등등
그소설중에묘사된토스카장면으로나는맨처음’토스카’라는오페라가있는줄알았고
‘오묘한조화”별은빛나건만’도가사를다이해해서유별나게좋아했다.
‘노래에살고사랑에살고’를부른마리아칼라스도그때부터좋아했다.
평론계에선私소설작가란평도들었지만또한편에선당신의문학이좁고깊다고도했다.
작가가원주가기전까지청수장뒷편여자三代가사는국민주택에가면
안볶고안지진머리(전혜린수필어느부분…)로정원일을하고있을때가많았다.
손이엉망이라며굴뚝곁에서죽어가는참새를살려낸이야기도해주시고…
어린나는그런이야기에도괜히감동받고그랬다.
(원주집도자갈과세멘일을직접하며담을쌓기도했듯바깥막일도좋아하셨다.)
미장원가길정말싫어해서면도날로당신이직접쓱싹머리카락을잘라냈지만
지성미가있어선지회색터틀넥도썩잘어울리고
한여름엔*무무도잘소화해낼정도로멋쟁이셨다.
요즘모습?정말로나에겐생소하기짝이없다.
나는오랜만에만난두분이소근소근나누는얘길그냥눈만감고잠결에다들었다.
당신어머님흉보는얘기까지도…
북어찜하나는일품이지…했지만다른음식도잘하시는
작가의어머님도키작고손도작은천상통영여자셨다.
유달리당신의어머님을싫어한더깊은이유는알길이없지만…
연재를미리미리쓰지못할때피말리는작가의고통등을얘기하시며
엄마가들려주는교단일지같은이야기를듣고는
"*구마모도너는그리좋은소재를왜썩히냐…"
*창씨개명(創氏改名)한엄마의일본이름..세분은항상일제시대학생때부르던이름을사용했다
엄마도그당시’새교실'(교사들을위한)문학월간지에가끔글도올리곤했지만그리적극적이진않았다.
중략………
학교를졸업하고인천전매국에근무하던남편과만나결혼해
어두웠던가정사의그늘에서벗어나는가했으나,그남편이
`공산주의자`로몰려투옥되고,6·25때월북하면서다시홀로되고말았다.
평화신문과서울신문의문화부기자를거치며,기자가부족해혼자서이리뛰고저리
뛰어야했던그는일년뒤힘들다는이유로신문사를그만두고다시글을쓰기시작했다.
1969년『토지』를집필하면서그는일년간세상과철저히담을쌓고살았다.
원래『토지』는지금처럼방대한분량의대하소설로계획되었던것이아니다.
외할머니에게서들은얘기를토대로한권분량으로써서
탈고까지마친후에야세상에공개하기로작정했던작품이었다.
독하게마음먹고서전화도끊고신문도끊고원고청탁도일체받지않은채
원고지를채워나가던그는,그러나어머니와딸의생계를책임져야할가장으로서
가난을더이상견디지못하고「현대문학」에연재를시작했다.
올릴작가사진을찾다가네이븐지엠파슨지이런걸찾았다.
일일히올리지않아도되겠다.휴살았다.
P.S
고등학교때제가다니는학교에저를찾아오셨던이야기
놀멘놀멘(계속)하겠습니다
그때토지를쓸요량으로답사차들리셨던것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