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전시장1층에들어서자마자낯익은음악이들려온다
무슨음악이지?그리고또독특한남도사투리..천화백의육성도들린다?
오늘전시(사실은어제..글올리는중)첫날이고또오전이라
도우미들은액자를조심스레닦는모습도보이고다소어수선하다.

1층을다보고지하에내려가모니터앞에앉아있는두어사람을보고서야아하!했다.
검정막도없이오픈된공간,의외로큰스크린이다.
도우미에게상영물시간을물으니대략15분.
제대로감상하기위해선반식(?)의자에앉는다.

시립미술관에가기만하면반드시들리는’천경자의방’에서

온오프수도없이만나본작품들과미공개작품들

사이사이여행하면서찍은화백의실물사진들도잘편집되어흐른다.
스크린뒤로는브로마이드를연상케하는대형걸개사진이걸려있다.

2층에올라가서야흐르는노래가브에나비스타소셜클럽
세쿤도할아버지의’찬찬’이라는걸알아차린다
‘찬찬’이후다른음악이흘렀는지아닌지도무지기억이없지만
그녀의恨에어쩌면좀더가까운’싸이렌시오’를배경음악으로정해본다.

은근히심취한모양이다
얼마만의외출인지
(딸가족들이오고난이후온전히나를위한시간을가져본지가…)

그녀의취향을한눈에알아볼수있게여행하며모아온각종컬렉션들과
애장품들이전시공간중간중간에지루하지않게잘전시되어있다.

즐겨입는초록색한복-깃과치맛자락엔아주독특한그녀가직접그린듯한-을입은
액자속사진과같은한복이걸려있다

직접염색한것같은각종스카프며그녀가좋아하는마릴린몬로

에밀리브론테(폭풍의언덕)고갱고흐프리다칼로와그녀남편디에고를

테마로한각종아트상품들도일목요연하게…
에지간한사람들은소화해내기힘든남방무희들에게나어울릴화관들도괜히친숙하다.

B1,1,2층그리고뒷건물두가헌까지모두천화백작품들이다
아직낙관도없는미완성된드로잉작품이특히많았다
수많은창작과정까지한눈에알수있는각종스켓치들…
특히여러각도에서스켓치한장미나새동물등등

그리고완성된작품곁엔작은스케치가나란히전시되어이번전시회를위해
얼마나많은노력을했는지’총망라’라는단어가자주떠올랐다.
다행한것은맑은정신은아니어도그녀의생시에이런대전시를하게되어무엇보다반갑다.

참많이도그리고열심히한시대를풍미한그녀가부럽기짝이없다.

지하의영상물에그녀의육성이들려주던이야기(정확한지자신은없지만)
인생의좋은시절은무지개같은건아닐까
금방왔다사라지는…
특히꿈같은노랑과초록…청춘의색은더빨리지나간단다.

F.M방송에서초록이그리우면이미청춘과멀어진증거라는데
오늘트렌치코트안에받쳐입은옷이하필연두다.
인터넷에서구입했다며입혀놓고나랑잘어울린다며좋아라하던딸은어제출국했다.

더길어봤자넉두리일것같아이만줄이고갤러리현대에서퍼온
정중헌조선일보논설위원의잘정리된좋은글로마무리해야겠다.

P.S:
아랫글좀-아니마아니-길지만읽어주시면참좋겠습니다

우선인터미션…^^*
(두어번리바이블했지만恨과어울릴것같아서요…)

BUENAVISTASOCIALCLUB

IbrahimFerrer&OmaraPortuondo.Silencio

[작품세계]

‘내생애아름다운82페이지’


-슬픔처럼화사한千鏡子의환상여행-

어느날꿈에서천경자선생을만났다.뉴욕의한아파트창가에서맨해턴거리를내려다보는긴머리의뒷모습을….황혼빛에휩싸인노화가의실루엣은황금빛으로물들었다.그는나비가되었다.한마리호랑나비가되어슬픔처럼피어오르는추억속으로환상여행을떠났다.

극장의빅쇼처럼꾸미는어머니의그림축제그로부터얼마후뉴욕에서전화가왔다.천선생의큰딸이혜선씨의목소리였다.병상의어머니를위해서울에서축제를꾸미고싶다는얘기였다.전시장(갤러리현대)을극장처럼꾸며어머니사진을간판처럼걸고미공개작과미완성작품,대표작과드로잉을한자리에모으고어머니가입던한복과옛사진도함께선보이는빅쇼를열겠다는것이었다.

볼거리가많은화려한그림축제를열어어머니를기쁘게해드리겠다는효심이전해졌다.천선생의근황을물었다.1998년어머니의건강이탈진상태여서뉴욕으로모셨고그해11월서울시에작품과저작권을기증하기위해일시귀국했다가뉴욕에눌러앉으셨다고했다.

피붙이같은작품들을내놓은후한동안몹시허탈해하셨으나차츰안정을찾아백화점에도가고허드슨강변으로스케치도다니셨다는것이다.한동안은집에서미완성작품에채색을하거나마늘,고추,토마토,가지등의채소를색연필이나크레용으로작은종이에그리며소일하시는등기력이쇠하기전까지붓을놓지않으셨다고했다.

그런데2003년봄에뇌일혈을일으켜지금은거동이불편하고말하기도힘든상태라고했다.그래도정신만은놓지않으셔가족들도알아보고표정이나손짓으로의사표현을하신다니얼마나다행인가.혜선씨는“어머니전시회를서울에서한다고말씀드렸더니너무좋아하시며손까지흔드셨다”고전했다.천선생의열정이라면몸은비록이역에있어도마음만은너울너울날아와생애의가장멋진축제를볼것이다.

한복입은새색시시절의자화상공개
갤러리현대가꾸미는’천경자축제’의타이틀은’내생애아름다운82페이지’다.
살아있는전설의화가에게어울리는최상의화제(畵題)가아닐수없다.’내슬픈전설의22페이지’로시작되는천경자의화력(畵歷)은’내슬픈전설의49페이지’를거쳐이제노년의82페이지에이르렀다.그사이슬픈전설은사라졌고그자리를생애의아름다운페이지로채운축제가열리는것이다.

이번천경자선생의전시회는1995년호암갤러리에서열렸던대규모개인전이나2002년서울시립미술관신축개관기념으로열린’천경자의혼’과는성격이다르다.전작업을결산하는회고전도아니고기증작품전도아니지만이제껏열린어느전시회보다의미가큰종합전이다.

어쩌면생전의마지막전시회가될지도모르지만그보다는천경자라는한작가의전모를조망할수있는귀중한자료들을한자리에서볼수있는,결코다시보기힘든기회가될것이다.무엇보다눈길을끄는작품은세월을50년이나거슬러올라간1950년초반의작가일기같은미공개작들이다.

한복을입은새색시시절의고운모습이담긴자화상’단장’과막내쫑쫑이를안고아이아빠와단란한나들이를그린’목화밭에서’등은작가의젊은시절화풍을엿볼수있는귀한자료가아닐수없다.처음선보이는미완성작품들과드로잉들은천경자라는화가가작품한점에얼마나공력을쏟았으며얼마나꼼꼼하게기초작업을했는지를읽게해준다.

캐털로그작업을위해펼쳐놓은이런작품들을처음대하던날의전율과감동은말로표현하기힘들만큼벅찼다.여기에’길례언니’,’내슬픈전설의49페이지’,’황금의비’등60년대부터90년대까지의대표적인채색화들이시대별로전시된다니수년전뉴욕에서경험했던반고흐작품전의감흥못지않은환상의축제가될것이다.

긴장감늦추지않으려고한과고독까지사랑해그동안천선생의화업은정한(情恨)·고독·슬픔같은감성적인접근,상징적인주제와환상적인색채같은수사적(修辭的)인접근,또는동양화니채색화니하는장르나재료적인접근으로경도된감이없지않았다.

그러니천선생의작업이90년대중반에이미끝난만큼이제는그간의틀이나고정관념에서벗어나통시적이고종합적인평가작업이이뤄져야한다.슬프다,화려하다,섬뜩하다,환상적이다하는감성적시각못지않게왜그가뱀을그렸고,꽃은그에게무엇이고,어째서그는마녀같은눈동자의여인을형상화했으며,무엇을찾아지구를몇바퀴도는스케치기행을했는지그실체를밝혀낼필요가있다.

그는평생한(恨)의늪에서헤어나지못하고고독을멍에처럼달고살았지만그한과고독은슬픔과외로움에지친탄식이아니라아름답고화려한감정이기도했다.
작가는인생이라는굴곡많은삶속에서작가적긴장감을늦추지않기위해한과고독을죽도록사랑하고매달렸으며결국은순수로걸러진엣센스를작품으로승화시킨것이다.

그런한이나고독또한일상속에녹아들기마련이고느슨해질수밖에없다.그렇게식어가는감성의용광로에다시창작의불을붙이기위해그는아프리카로남태평양으로기행을계속하며끊임없이에너지를충전시킨것이다.그여행을통해남들과는다른자기만의색깔있는그림을그리려고했고그러다보니원근을무시한평면조형이나석채(石彩)등을섞어쓴색채로자신만의화풍(畵風)을일궈내지않으면안되었다.

한마디로화가천경자는독창적인그림을그리기위해신들린듯이세상을살았고일신의행복과평안보다는자학을하면서까지상상력의샘을판작가였다.그결과그는아름답고환상적인색채속에그특유의정한과괴기스러움과4차원의세계를녹여낼수있었다.

현대인의감성을자극하는천경자화풍천경자선생은자신만의독창성을살리기위해평생고민했고마침내문학적상상력과해외스케치여행을통해방법론을찾아냈다.그과정에서그는고독했고가난뱅이화가의고통을겪어야했다.그는동양화단에서따돌림을받으면서도시류에편승하지않았고,사실적인이쁜그림으로인기에영합하지도않았다.

지금당장은벽에걸기조차섬짓한인물화지만시간이흐르면감성을자극하는미래지향적인소재와화풍을찾아세계를방랑하며구도자의삶을살아왔다.그런긴여정끝에그는마침내대중들의사랑을받는’천경자풍(風)’을이룬것이다.

천경자선생의자서전이나수필집을보면그가화가로살기위해얼마나몸부림쳤는가를곳곳에서발견할수있다.개인의삶과화가로서의인생을그만큼치열하게중첩시키려고애쓰고그과정을글로솔직하게고백해놓은작가도드물것이다.그래서그의작품하나하나에는드라마같은이야기가녹아있고생의희열과삶의현장성이생동한다.

모든그림이천경자자신의이야기이자분신이라해도지나치지않는다.
우주마녀금색으로그리고싶어한상상력천경자선생의작가적상상력은매우신비주의적이고때로는4차원적이다.이를테면’내몸이비행접시에담겨금성이나화성으로날아갈것만같은기분을꿈에서느낀다’,’나는홀로우주공간에떠있는것같았다.걷잡을수없는고독이거울을치면서나를울게했다’는식이다.

아름다울수록고독이맺히고그흐믓한고독이즐거워서음미한다는화가,어느때는전생에어느왕조의황후였다고엉뚱한환상에사로잡히는여자,옆에서대포소리가나도무섭기는커녕속이후련하고시원하다는사람이천경자다.늘가난뱅이화가임을자처했지만여류화가라는칭호는그에게고귀하고향기로운단어였고자존심의원천이었다.

회오리바람에꽃보라가날리는듯한누군가의상여가동네를떠나가는광경,큰불이나불덩이가운석처럼튀어오른공포,마을을휩쓴홍수,그잊혀지지않는일들과인생의의식들,그리고꽃,무지개,새,뱀,나비등이이화가를사로잡았다.그리고그환상은나비가되고,먼무지개너머세계로사라지곤했다.이같은태생적기질과무녀같은상상력에젖어살아온천선생은기자들과인터뷰때마다우주의마녀를그리고싶다고말했다.

달콤한맛을다빼고쓴맛이풍기는우주인같은마녀를그리겠다는것이다.“4차원세계에사는여인의아름다움을그려보는것이꿈이에요.눈빛이강하고금분을짙게입혀피부가금빛을띄게하고….”공해와인간성상실의시대에섬뜩하고무서운공포를지닌군상을금속성의색채로표현해보고싶어한그의욕망은여인들의초상에서짙게베어나온다.

판소리가락으로녹여낸정(情)과한(恨)천경자선생의모든작품에는팔자소관이라는작가의한(恨)과정(情)이내면에흐르고있다.’내온몸구석구석에거부할수없는숙명적인여인의한이서려있나봐요.아무리발버둥쳐도내슬픈전설의이야기는지워지지않아요.’천경자선생의슬픈전설은크게두갈래다.하나는아끼던여동생의죽음이고,또하나는김씨성을가진남자와면사포를쓰지못한채두아이를낳고살며가슴구비구비쌓인정한이다.

한(恨)이란…깊은우물속에깔린신비한보라색,파아란담배연기가흩어지는분위기,홍두깨에서돌돌풀려나온빛깔,다듬이방망이소리,신경질이섞여화사하게울려퍼진목소리,흥타령곡조,이제는삭아가라앉은소리,무턱대고야산을걸어헤치느라풀밟는소리,그빛깔과소리위에서어섬푸레한을느끼지만한이무엇인지,좋은것인지슬픈것인지나는아직모른다.나에게서사라진그들의영혼은어디로갔고내영혼은어디에서와서한평생살다죽으면어디로갈것인지….’

‘내그림속에다아름답다못해슬퍼진사상,색채를집어넣으려고애쓰고있는것이바로한이다.왜냐하면내인생의어쩌고저쩌고식의그런범상한한이아닌,예나지금이나어쩔수없이불쌍하고아름답고슬픈혈육관계의한같은것,그런것을그림으로써아름다운자연에곁들여승화시키고싶어서이다.’
천선생은쌓인한을자식들과어머니에게쏟았다.

‘나는들판에서포효하는호랑이처럼원색적인사랑을자식들에게쏟아왔다’는그는가족사랑을삶의낙이자인생의최대덕목으로꼽았다.용광로의불처럼타오른아프리카와중남미여정’이국(異國)의정취에젖어,50대나그네의뼈저린고통을삼키며,공원에서극장에서투우장에서정신없이사생했어요.’

천경자선생은46세에서74세까지28년동안열두차례해외스케치기행에나섰다.
당시만해도여자혼자여행한다는것은쉽지않은일이었고실제로여행중봉변도당하고짐을잃어버리는어려움도겪었다.그럼에도그는5년주기로세계를일주하며그림여행을계속했고,이때의결실들이그의후기작품의근간을이루게된다.

쳔경자에게여행이란무엇인가.
미지의사물에대한신비한매력에끌려,또아름다운추억속을헤매며자유를만끽하기위해서라고그는말했다.천씨의화문(畵文)은그래서자유분방하다.그림이인간과자연의표상이라면글에는문학과미술과영화와연극이살아숨쉰다.

천경자스케치기행은1969년남태평양의타히티에서시작된다.프랑스화가고갱이말년을보낸섬,하이비스카스라는정열의꽃이그를맞았다.그곳에서파리로날아가마르소의팬터마임을스케치하고,이탈리아로이동해’로미오와줄리엣’의비극의무대였던베로나를찾고,베니스-플로렌스-폼페이-나폴리를유람하며지중해의풍광에젖는다.1974년3월천경자선생은6개월의긴여정으로아프리카의검은대륙에뛰어들었다.당시그는다음과같은출사표를던졌다.

‘어려운환경속에서아프리카여행을단행하게된광기(狂氣)는오직더살고싶은집념에서였다.나로서는산다는의미가예술이라는용광로에불이활활타올라새로운작품이쏟아져나오는그생활에있고,아프리카의자극과풍물은내마음의용광로에불을붙게하는원동력이되어주리라고믿고있다.그렇게해서화가의생명이연장된다면따라서나라는분신도살수있는것이고그러지못할때나는산다는의미를상실할것이다.’

이디오피아에서시작된아프리카여정은케냐-우간다-콩고-세네갈-모로코와사하라사막을거쳐이집트에서끝이났다.가는곳마다그는이국의풍물들과사람들을정신없이스케치했다.사하라사막의모래위에서는환각에취해모래위를한없이구르기도했다.

아프리카의여인초상과원색이난무하는군무(群舞),피라미드,스핑크스,사막의선인장,꽃,시장풍경등의작품들이이때태어났다.그가남긴작품들은단순한스케치가아니라아프리카대륙의야성과신비가풍토적아우라로녹아들어’천경자풍물화’라는독자적장르를형성했다.

기행을마치고온그는’이번아프리카기행은초현실적이었으며순례자처럼기도하는자세로스케치를했다.맹수를만났을때는미친사진사처럼붓을움직였다’고했다.1974년천경자선생은’재를뿌려도가슴속용광로에서타오르는불길이꺼지지않아’인도와중남미로떠났다.

인도에서그는사자(死者)와생자(生者)가공생하는갠지스강에서넋을놓고그충격의현장을그렸다.멕시코에서시작한중남미기행은페루의쿠스코,아마존을거쳐아르헨티나와브라질로이어졌다.아마존에서는위험을무릅쓰고오지로오지로들어가’금붕어가산소를들이키듯’온갖이름모를꽃들과나비와날짐승들을유희하듯신들린듯스케치했다.

영미여행에서는주로예술가들의흔적을찾아나섰다.불현듯헤밍웨이의집을찾아나섰고’이구아나의밤’의산실인테네시윌리엄즈의생가를방문했으면에드가앨런포의집에서는시상을더듬기도했다.

뉴올리언즈로날아가연극과영화로강한인상을받은’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에나오는전차를찾아내스케치하는집념을보였다.애틀랜타기행은온통마가렛미첼의’바람과함께사라지다’로차있다.그리고영국에서는그렇게도가고싶어한에밀리브론테의고향을찾아’폭풍의언덕’에올랐다.

천경자연구자료로보존해야할스케치와드로잉

이번전시회에는천경자화풍의근간을이룬스케치와드로잉이대거선보인다.대부분작품을구상하기위한밑그림들이지만그자체로작품이되는드로잉들도적지않다.천선생이작업하던압구정한양아파트안방에서간추렸다는드로잉들은누렇게바랜종이에손때가묻어있다.

스케치북에때로는찢어진갱지에작업한꽃과나무와동물과인체데생을보노라면작가가얼마나기초작업에충실했는가를피부로느낄수있다.꽃잎하나하나에,새들의날개마다에작가나름의기호로색깔까지적어놓은흔적에는작가의섬세함이묻어난다.

천선생의이같은데생력은동겨여자미술전문학교시적에기초가닦였다.실물을보고관찰하는능력을기르기위해꽃가지에난잔털까지섬세하게사생하는방법을익힌것이다.

고바야가와교수에게거울보고자화상그리기를연습한그는탄탄한데생력을발휘한’조부상’과’노부’로화가의길에들어섰다.백노지를잘라뱀을그렸던천선생은홍익대교수시절에도스케치나데생등기초에역점을두어가르쳤다.

유럽의여러미술관을돌아보며데생과드로잉의중요성을절감했다는그는해외스케치기행을통해그방면의달인이되었다.천선생의스케치실력은움직이는대상을순간적으로잡아내는유려한속필에서단연두드러진다.

선몇개로대사의특징을예리하게잡아내는속필로스페인의플라멩고춤과투우현장을그렸고,아프리카맹수들을단번에포착해냈다.몰래스케치하다봉변을당한적도많았지만그는비가오든바람이불든때와장소를가리지않고대상을스케치했고,그것들을다시구성해원색의풍물화를완성시켰다.

이번에선보인180점의드로잉들은천경자회화의근간을이루는귀중한자료일뿐아니라기초를무시하는요즘미술교육에귀감이될만하다.따라서이드로잉들은흩어지지않고연구에활용할수있도록누군가일관보관하는것이바람직하다고본다.

완성작못지않은공력을들인미완성작품

‘미완성의작품,미완성의인생이라는말을나는즐겨쓴다.완성이라는것이있을수없다고생각하기때문이지만실상있다고치더라도나는그완성에대해선매력을느끼지않는다.왜냐하면거기에는꿈이없기때문이다.’

작가는누구나미완성작이있게마련이지만천선생에게는유난히미완성작품들이많다.그것은천선생의작업스타일이워낙꼼꼼하고느린데다가한작품과무던한대화를나눠마음에들어야비로소사인을하는완벽성에기인한다.

천선생은구도를잡기전에데생을하고색깔까지정한후에밑그림을그린다.그리고채색을하는데색을칠하다가도구성이마음에들지않으면뭉개버리고다시그려넣기를수없이반복한다.물감은수성(水性)이나불투명과슈를쓰는데유화로그리듯이붓질을중첩시켜밑에서부터은은하게비쳐오르는중간색의미묘한색감으로환상적인분위기를만들어내는것이다.

이번에출품된미완성작품들은서명만안했을뿐완성작이라고해도손색없는구도와색감을보이고있다.슈베르트’미완성교양곡’을듣는것처럼미완의작품들에는또다른매력이담겨있어더욱사랑스럽다.

서울시에저작권까지맡기고미국에서투병중천경자선생은’월간조선’과의인터뷰에서자식들에게작품을주지않겠다고말했다.

“자식들에게는제작품을한점도준적이없어요.연필로스케치한것도주지않아요,앞으로도결코자식들에게작품을넘겨주지않을거예요.뭐라고할까요.자식들에게주면안될것같아요.그러면작품이흩어져버리니까.”

언젠가작품을미술관에기증하겠다던그는1998년채색화와스케치93점을서울시에기증했고일체의저작권도일임했다.현재천씨의기증작들은서울시립미술관천경자실에전시중인데대표적인작품들은그곳에가면볼수있다.

채색화로는’내슬픈전설의22페이지’,’환상여행’,’화병이된마돈나’,’이탈리아기행’그리고작가가가장아끼던’생태’가포함돼있다.전시장한쪽에는천선생이작업할때쓰던화구들이진열돼있다.

천선생은피붙이처럼아끼던작품을기증하고지금뉴욕에서투병중이다.
천선생님서울축제에꼭오세요.
필자가천경자선생일만난것은1976년부터다.당시조선일보문화부기자였던필자는천선생을서교동자택으로찾아가’산실의대화’라는기사를썼다.천선생은필자를친동생처럼아껴주었으며절필을선언하고뉴욕에가계실때는작가의심경과근황을친필로쓴편지를보내주시기까지했다.올들어부쩍천선생생각이났다.그러더니이런서문까지쓰게된것이다.광화문에서의천선생모습이떠오른다.

가을이던가,빨강색투피스를입고빨강색뾰족구두를신고잠자리같은큰안경에커다란백을들고누군가를찾는것같은표정의천선생은마치서양여배우처럼화사했다.그날우리는복청이라는일식집에서점심식사를했는데천선생은낮술한잔에거나해시종손으로입을가리며웃던기억이떠오른다.천선생은멋을아는분이셨다.때로는그로테스크한의상에가는담배를피우며눈물을글썽이던일도많았다.

필자에게화가천경자선생은최상의취재원이었다.기사를써달라고부탁하는게아니라기자가찾아가취재하고싶게만드는진정한예술가였다.판소리와육자배기를들으며눈물을주루룩흘리는감성에구수한전라도억양으로풀어내는사설은그냥한편의드라마같았다.

아코디언처음배울때의어색함으로시작한글씨기라고겸손해하지만그의글은솔직담백하고정과한이절절히깔려있어많은독자들의인기를모았다.자서전’내슬픈전설의49페이지’와수필집들은다시읽어도천선생의체취가손에잡힐것같은실감을준다.

-정중헌(조선일보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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