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전 1.

….한여성관람객이2층전시테이블유리칸막이위에주스잔을탁내려놓았다.

"쨍"하는소리에가슴이철렁했다.

유리잔바로아래엔신윤복의’단오풍경'(단옷날목욕하고그네타는여인의모습)이놓여있다.

유리가깨지고주스가쏟아졌다면….중앙일보본문기사참조<–(노파심에서말씀드립니다링크한곳에가셔서기사다읽으시고맨위주소창바로위<-뒤로클릭하시면이페이지로다시옵니다)

혜원신윤복’단오풍정(端午風情)’-혜원풍속도첩中

5월21일전시첫날최순우고택에서열린’혜곡간송’선생의설명회를듣고(2시~4시까지)

총총달려간간송미술관은사람의열기로좁은전시장은미어터질것같았어요.

제가이그림이진열된부근에도착했을때도어떤분이일행에게

그림왼쪽’치마돌돌여인…(아마기생)’쪽을"톡톡!"치면서

‘이여자…섹시해보이도록일부러임신한것처럼배를불룩하게그린거’라는설명을

인터넷에서읽었다며아는체를하고있었으니…

관리에조심또조심해야겠단생각이절로들더군요

마침도우미가뛰어와진열장위에손대지말라고경고는했지만감상자에비해도우미는역부족이었거든요

아래설명들은간송탄신백주년기념문집화보의해설과설명을들은걸토대로

일일이요약할능력도시간도없어이미지찾으면서필요한부분만나름대로편집한겁니다.

아마계속추가할것같습니다…;;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보물제241호

이름이길기도한이보물은이세용선생의설명에의하면보험평가액이대략800억이라하던가요

허나국내유일의*국보제70호훈민정음해례본(1446)과함께

파손의위험때문에해외전시불가판정이내려졌다했습니다.

도록을꺼내고"…에에또…그러면이번에전시된작품중…"하며제일먼저보여준보물이이문병이었으니까요

솔직히저는감도안오지만…피카소작품만비싼게아니라는설명을…

그러면서자녀들에게도시험에나오는문제만주력하지말고좀더우리문화에관심갖도록

이왕이면재미나는비하인드스토리등을많이알려주는게바람직하다는설명을강조했습니다

그래서…어설피…

#기와집일곱채값으로산백자


1936년11월22일,지금의퇴계로경성미술구락부에서골동품경매가있었다.백자명품들이쏟아져나왔다.

가장관심을끈것은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靑華白磁陽刻辰砂鐵彩蘭菊草蟲文甁,보물제241호)이었다.

아름다운곡선의몸매,희고보드라운살결에는들국화몇가지와푸른풀잎이어울려수를놓았다.

그위로나비들이꽃으로날아들고….

풀잎은청화,들국화는진사와철채로그린보기드문명품중의명품이었다.
백자의최고가가2천원을넘지않던시절이었다.사람들의경악속에호가가이어졌다.
간송의대리인으로일본인골동상인溫古堂주인심보(新保喜三)가외쳤다.

"1만원."

일본인야마나카(山中)가다시불렀다.
"1만5백원."

5백원단위로몇차례공방이오갔다.그리고심보가소리쳤다.
"1만4천5백원."

따라부르던야마나카의응수가길어졌다.
"1만4천5백10원."

목소리는힘이없었다.심보가마지막일격을가했다.

"1만4천5백80원."

경락봉이’탕’하고책상을울렸다.이어박수소리가요란하게울려퍼졌다.
당시군수월급이70원,백자값은비싸야2천원,20칸기와집한채가2천원일때였다.

▲간송선생이지켜낸국보제70호훈민정음목판본(유네스코지정세계문화유산)

ⓒ2005샘터

지켜낸일화와이미지출처

#일본인거상(巨商)울린상감청자


고려청자의대표작이자세계적명작으로꼽히는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제68호)은

개성근처에서도굴된이후일본인손에넘어갔다가대구의신창재라는사람이사들였다.

이때값이4000원.그후다시일본인골동상마에다가갖게됐다.

이소식을들은간송은마에다의요구에두말않고2만원이라는거금을주고사들인다.

일본인수집가들은놀라기도했지만자존심이상했다.조선총독부박물관도접촉했으나

엄청난값때문에욕심을접을수밖에없었던물건이었다.이를안일본굴지의수집가무라카미가

간송을찾아와4만원을불렀다.간송의대꾸가속이시원하다.

"이청자보다더좋은물건을나에게가져오면이매병을원금에드리지요."
무라카미는더이상말을붙일수가없었다.
그렇게해외유출위기를넘긴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1962년12월국보로지정되고현재간송미술관에소장돼있다.

간송은귀중한문화재에값을매길수없다하여사들이면서단한번흥정한적이없다고한다.

그런간송을이야기하면서값을따지기는송구스런일이지만(어느신문기사에따르면)이매병의값은

2백50억원쯤이라고한다.

일본으로유출된것을간송이되찾아온도자기명품은이밖에도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제66호),

청자기린형향로(국보제65호),청자오리형연적(국보제74호),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보물제286호),

청자상감국목단당초문모자합(보물제349호),백자박산향로(보물제238호)등국보와보물이숱하다.

청자상감운학매병

#5천석지기전답과바꾼’빅딜’


고려청자의최고컬렉션으로이름높던영국출신변호사존개스비(JohnGadsby)의수장품을일괄인수할때는

5천석지기전답판돈을몽땅쏟아부었다.개스비는영국귀족으로도쿄에와서국제변호사로활약하던중고려청자에

흠뻑빠져수집광이된사람이다.그에게고려청자명품이많다는정보를갖고있던간송은1937년2월일본으로갔다.

국제정세에불안을느낀개스비가수장품을일괄처분하고귀국하려한다는전갈이있었기때문이다.

간송은급히공주에있던땅을팔아자금을마련했다.개스비컬렉션은양과질모두대단했다.오늘날우리

나라의국보와보물이된것만도여러점일정도다.청자기린형향로(국보제65호),청자압형연적(국보제74호),

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보물제286호),청자상감국목단당초문모자합(보물제349호)등이그것이다.

간송은청자10여점값으로10만원을지불했다.기와집50채값이었다.서울로돌아온간송은

소장품들을전시하고보관하기위해서다음해성북동에다보화각(지금의간송미술관)을새로지었다.

청자모자원형연적
동영상으로자세한설명볼수있습니다나중에클릭하세요

청자상감모자합(靑磁象嵌母子盒보물349호)


▲아름드리참나무와뾰주리감나무가어우러진간송미술관중앙정원.

#6.25때의위기일발


"6·25땐북단장아래전효준씨가사시던데로옮겼죠.

북쪽에서온당원으로’기’란사람과서예가’일관’이란사람이와서간송소장품을안전한데로옮긴다는것이죠.

그래손재형씨와제가지연작전을세웠습니다.

우선선별기준에서좋은것은나쁘다,나쁜것은좋다고하고물건을하나가져다가풀었다간아니라고다시싸고,

또목록이잘못되었다고다시하였지요.포장이진행되면서상자를사오라고하는둥목수가없다는둥지연하고…

9·28때까지완전히포장되어서상자에싸여진것은하나도없었죠.

그때보화각지하실에’화이트호스’위스키가궤짝으로있었는데그것을’기’한테날마다자꾸권했죠.

술이취하면우리가사보타지하기쉬웠죠.그리고그속에일본판화로된좋은춘화가있었는데

그는그것을보고좋다고흥얼대면서우리가눈속이는걸모르고매일같이곯아떨어졌습니다.

소전(=손재형)선생과나는참위기일발로살아남았어요.

북쪽책임자인일관이란사람이9·28이다가오자우리두사람에게책임을묻겠다고할때는참아찔했습니다.

그날그들이모두서울에서사라져버렸습니다."

(최순우전국립박물관장이1973년11월간송11주기좌담회에서한말)

"(1.4후퇴때간송은손재형과최순우가포장한대로)그때짠상자로부산피난을했습니다.

피난을울산옆병영으로갔습니다.그리고물건은김승현박사가쓰던영주동별장에보관을했죠.

그리고1953년겨울(10월)에물건이서울에왔는데물건이오자10일뒤엔가그별장에큰불이나서전소했습니다.

그래서하늘이도왔다고했습니다."

(간송의장남전성우씨가같은좌담회에서한말)출처:1930song님의블로그

P.S:

이렇게비화도많은포장한보물들을미국에유학다녀온후장남전성우(화가)씨가

아버님의타계소식을듣고귀국…뜯어보는데에만1년이상이걸렸다니

컬렉션의방대한양을과히짐작할만하지요…그리고전시회가시작되어지금까지…

한가한시간에<--한가한시간에<--한가한시간에<--한가한시간에<--
참고로참고로고로참고로/고궁박물관<–

제가필요해서링크한사이트라복잡해서죄송해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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