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백자대접(白磁대접)

朝鮮15世紀,高10.9口徑21.0底徑8.3

비교적대형에속하는이대접은입술부분이얌전하게밖으로벌어졌으며,운두도적당하며,굽도매우단정하게깎였다.아무런문양이없으며,눈처럼희고눈부신백자유약이전면에입혀졌는데,빙렬은없고,광택이그윽하기가이를데없다.곧게선굽은다리굽형태로,굽다리바닥의유약을훑어내고모래를받치고구웠다.굽안바닥에는유약을긁어내어[대(大)]자를써넣었다.

조선전기에는많은백자대접이여러가지용도로제작되었지만,이대접만큼미적으로뛰어난것을찾는다는것은아마도불가능할것이다.그정도로이대접은기형·유색·태토(胎土)등에서나무랄곳이없는조선백자의백미(白眉)이다.

백자(白磁)

우리나라에서백자가제작되기시작한것은고려시대부터였으나,본격적으로전성기에접어든것은조선이건국된이후의일이었다.조선시대에는아무런문양이없는백자를비롯하여,청화(靑華)·철화(鐵畵)·진사(辰砂)·상형(象形)·양각(陽刻)·상감(象嵌)백자등이있고,드물게음각백자(陰刻白磁)도있다.

청화백자는조선초기부터중국의경덕진(景德鎭)청화백자의영향을받아제작되기시작하였다.<백자청화송매문호(白磁靑華松梅文壺)>는조선초기의청화백자를대표하는걸작가운데하나이다.아담한기형에산수화풍으로그려진청화문양이멋있기그지없다.17세기의청화백자의암흑기를거쳐,18세기의청화백자는유태색(釉胎色)이맑고깨끗한설백색(雪白色)을띠고있으며옅은청화안료로문양을그렸다.

이시기의작품중에는품격이높은작품이많다.<백자청화화조문호(白磁靑華花鳥文壺)>도그가운데하나이다.19세기에는다양하고많은양의청화백자가제작되었지만,기형들이부분적으로과장되어균형이깨지거나필선이굵어지고문양의도안이도식화(圖式化)·의장화(意匠化)되어전체적으로18세기의청화백자에비하여품격이떨어지는편이다.

철화백자는15세기중엽부터만들어지기시작하였으나,17세기에접어들어그생산량이급격히증가하여17세기말기까지백자의주류를이루게되었다.17세기의철화백자에는매우회화적인수법의문양이그려진것이있는데이것들은광주의관요에서제작된것이다.그리고반추상화(半抽象化)된초화문(草花文)이나자유분방하고해학적인모습의운룡문(雲龍文)등이그려진것들은지방가마에서만든것이다.

粉靑沙器덤벙文壺
朝鮮15∼16世紀,高13.9

토기인화문합(土器印花文盒)


統一新羅8世紀,總高21.0cm高12.5cm

口徑15.2cm底徑9.4cm蓋高9.0cm蓋徑15.9cm

높이가서로다른발형(鉢形)의몸체와뚜껑을가진전형적인통일신라중기의인화문합(印花文盒)이다.낮은굽이부착된몸체는비교적높으며,입술부분에뚜껑받이턱이있다.낮은보주형(寶珠形)꼭지가달린뚜껑은반구형(半球形)에가깝다.뚜껑과몸통의바깥면에꽃·리본·구슬등의모양을닮은다양한형태의문양들을인화기법(印花技法)을사용하여베풀었다.밖으로크게벌어진굽에는이중의동심원무늬가한줄돌려져있다.

청동’무인’명소종(靑銅’戊寅’銘小鐘)

高麗13世紀,高25.0口徑15.0

용뉴는13세기에제작된일반적인종들처럼고개를들어앞을바라보고있으며,벌어진입안에는여의주가물려있지않다.용뉴뒤에붙은짧은음통(音筒)은아무런장식이없이간략화되어의미없는장식물로전락되었음을볼수있다.

천판(天板)외면에는사각의연판과내부에화문장식이첨가된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가높다랗게솟아있고이와붙은상대(上帶)에는띄엄띄엄화문을배치하고그사이를당초문으로연결시켰다.이와달리하대(下帶)는화문없는연당초문으로장식하고그하단부에한줄의연주문이첨가되었다.

상대아래붙은사각의유곽대는간략한당초문으로장식하고내부에간략화된아홉개씩의작은종유(鐘乳)를배치하였다.종몸통의앞·뒤두곳에는구름위에앉아합장한모습의천인상(天人像)을장식하였다.이천인상사이를번갈아가며연과(蓮顆)와연판문(蓮瓣文)으로장식된당좌를앞·뒤두곳에배치하였다.

몸통의한쪽여백면을택해7행40여자의음각명문을새겼다.이를통하여공주(公州)의수연원(修淵院)이라는곳에서6근을들여무인년(戊寅年)10월에제작한것임을알수있다.간략화된용뉴와음통,그리고도식화된제작문양등으로미루어1278년에제작한것으로추정된다.

銘文:

公州地修淵院/縣於小鐘同心/造成者縣縣/慶元大明縣之/如願成就之信入/鐘六斤匠人/朗縣戊寅十月日

석란도대련(石蘭圖對聯)

李昰應(1820∼1898),朝鮮1887年,絹本水墨,各1.5cm×40.8cm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으로보다잘알려진석파(石破)이하응(李昰應)은구한말의격동기에파란많은생애를살았던인물이지만,그의정치적이력못지않게묵란화(墨蘭畵)의일인자로도널리소개되어있다.

그는자신이겪은삶의격정들을토로해내듯묵란화에몰두하여석파란(石破蘭)이라는독창적인난그림을형성하였다.이하응의묵란은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1786∼1856)의서예적필묵법에기초하고있으나,쉽게모방할수없는고도의필력과문기(文氣)가함축되어있음을감지할수있다.

난잎을그릴때세번의굴곡을주는삼전법(三轉法)과활달하고예리하게끝나는서미(鼠尾)의선묘가특징적이다.묵란과함께어우러진괴석도눈여겨볼만한데,그의묵란에괴석이등장하는것은60세이후의작품들에서찾아볼수있다.

또한만년(晩年)의작품으로갈수록괴석의비중이커지고형태도다양화하는경향을보였다.이작품은이하응이68세되던해(1887년)에그린것으로시서화(詩書畵)일치의격조를갖춘석파묵란도중의수작(秀作)이라할만하다.

이처럼이하응의묵란화는구도와필묵법등에서독특한화풍을창출하여중국의난그림과는현저하게구별되는조선적인묵란화의한전형을이루었다는점에서의의가크다고하겠다.화면에쓴제시(題詩)에는묵란에서느낄수있는흥취와묵란을그리는노년(老年)의심경을표현하였다.

畵譜有怒蘭喜竹之句화보에노란(怒蘭)과희죽(喜竹)이라는구절이있는데
何謂而書耶무엇을두고쓴말인가?
余則曰不然나는그렇게생각하지않는다.
凡畵必引興而作무릇그림은반드시흥취를끌어와서그려야하는데
興者須與喜一般흥이란모름지기기쁨과같은것이다.
現吾寫蘭四十年지금내가난을그린지사십년이되었는데
每引意輸情늘의중을끌어와서(정을)그림에투영시켰다.
況今韻人所求하물며요사이시인들이구하는것은
豈可不以和意寫之也어찌의중(意中)에화합(和合)하는것으로그리는것이아니겠는가?
但年老筆拙畵不入極者多나이들어운필이졸렬해져그린것이극치에들어가지못한것이많다.
是愧是悚이것이부끄럽고송구스러울뿐이다.

시주(詩酒)


苧本水墨,23.3cm×22.2cm

항아리를든채공손히서있는시동(侍童)과의자용도자기인돈(墩)에걸터앉아물끄러미시동을바라보는고사(高士)의모습이활달하고도자연스러운필치로묘사되었다.이러한화면의구도는인물을중심으로하여배경묘사를단순화한조선중기소경인물도(小景人物圖)의전형으로서많이취해졌다.

강약이조절된필선(筆線)을빠른속도로구사하여인물의자태(姿態)에생동감과긴장감을더해준다.필력과묘사력이겸비된이경윤인물화의진수(眞髓)를잘보여주는작품이다.화면에는최립의찬시와함께화첩의내력을알수있는발문이적혀있다.

空中兮爲軒窓하늘을처마와창으로삼았으니
詩酒兮安能使之雙시와술로하여금어찌짝을이룰수있으리
可見者兮隨以一缸볼수있는것술항아리하나뿐이건만
不可見者兮滿腔볼수없는것가슴에가득차네

我國名畵多出宗英目今如石陽正梅竹鶴林守昆季水石亦殊絶者也洪斯文自北來多得鶴林散畵於流落中持以示余索題詠觀其寫人物尤逼眞要皆非凡俗風骨也余不曾見鶴林公或者此中有不覺自肖其狀者耶


(우리나라의이름난화가는종실(宗室)에서많이나왔는데,현재석양정(石陽正)의매죽(梅竹)과학림정(鶴林正)형제의수석(水石)그림이가장빼어나다.홍사문(洪斯文)이북쪽지방으로부터오면서,유랑(流浪)생활중에흩어진학림정의그림을다수구하여나에게보여주었다.그제영(題詠)을살피고,그린것을보니,인물이더욱사실에가깝고모두가범속한풍골(風骨)이아니었다.내일찍이학림공(鶴林公)을만나본적은없지만,혹시이그림안에자신도모르는사이에스스로자신의모습을그린것은아닐까)

송하노승도(松下老僧圖)

金弘道(1745∼1806以後),朝鮮18世紀,

紙本水墨淡彩,1.3cm×24.8cm

김홍도는몇점의노승도를남겼는데,이노승도들은대개그가만년(晩年)에실행하고자했던,그래서극락왕생하고자했던바램이담긴그림으로해석되고있다.화면좌측에쓴[백세노두타(百歲老頭陀)]의화제(畵題)로보아,어쩌면이노승은노년기에이른김홍도자신의모습을그린것이아닌가생각되기도한다.

인물의선묘는농담의변화를고려함으로써유연하고부드러운조율을살리려하였다.소나무둥치의반복되는곡선의선묘와성근솔잎의표현에는김홍도의시원스런필치가잘나타나있다.화면우측으로드리워진소나무는단조로운구도에변화를주면서노승에게로시선을유도해준다.

멍석을깔고앉아염주를돌리는노승의표정에는한치의필획이라도가감(加減)할수없는긴장감이흐르고있는듯하다.무아경(無我境)에잠긴노승의모습을담담하고도그윽한화격(畵格)으로이끌어낸김홍도노년기화풍(畵風)의완숙미가돋보이는작품이다.

용의미학전

白磁靑華龍文甁BlueandWhitePorcelainBottle
寶物786號朝鮮15世紀高25.0㎝湖巖美術館所藏

白磁靑華彩龍文甁


BlueandWhitePorcelainBottle


朝鮮19世紀,高26.7㎝,개인소장

白磁靑華龍文壺BlueandWhitePorcelainJar


朝鮮17世紀,高35.3㎝,국립중앙박물관소장

白磁鐵畵龍文壺WhitePorcelainJar

朝鮮17世紀,高27.2㎝,호림박물관소장

龍頭寶幢Gilt-bronzeBannerStaff
國寶136號高麗10∼11世紀高104.3㎝湖巖美術館所藏

靑磁飛龍形注子CeladonPitcher


高麗12世紀高24.3㎝國立中央博物館所藏

雲龍圖DragonandCloud
朝鮮19世紀115.2㎝×112.7㎝

http://www.horimmuseum.org/



호림박물관잘몰랐는데참볼게많습디다

힘찬하루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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