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과 <어떤 개인 날> 사이

무진기행(1964)김승옥

일요일오전93.1.kbs1fm.9시~11시까지하프로연주되는
Satie의Gnossienne5번을배경으로[무진기행]을여행했다.
글읽는사이사이어울리는선곡또한좋았다.
(참고로매주토,일은오디오북시간…잊어버릴때가더많치만…)

오디오북의장점은귀만열어놓으면
두손과두눈…때로는두다리까지자유로운점이다.

네쪽의조각과네쪽의조각이1mm오차없이만나야하는
난이도가꽤높은조각잇기도같이했다

아들잠자는시간이라단파라디오에헤드폰을꽂고…

엽서..엽서…김경미시인의엄선된밑줄긋기라
무진의안개처럼흐릿해져있던오래전기억을조금씩일깨우게해주었다.

방송이끝나고앞을살펴보니오른쪽왼쪽이뒤바뀌어있다
피가거꾸로치밀어올라올일이다
아침나절내내공들인작업이말짱헛일이되었으니

뜯기싫어밀쳐두고다른새조각에핀을꽂았다.
좀쉬어야하나…
같은실수를자꾸반복할때가많은요즈음이다

그래도후회없는날이었다.
무진기행을했으니…
…………..

방송이끝나고소설전문이없나검색해보니낯익은표지까지찾아진다
원문을다읽은시간,정확하게53분.
(오타가더러발견되어가끔멈칫거린시간까지합하여…)

지난4월[문인시각전]이열렸던평창동영인문학관
오프닝행사로정현종시인과작가오정희씨의낭송회가있던날
당신자리가아닌듯벌쭘하게서계시던김승옥선생을가까이에서뵈었다.

거대한산맥뒤에숨어계신듯한희미한웃음을웃고혼자서계실때

"예전에무진기행아주감명깊게읽은독잡니다"

다가서서그한마디왜못했을꼬…
용기가없는것도죄가될때가있다.

몇년전에뇌졸중으로쓰러지신후
지금까지언어장애를겪고계신다는사실을
한참후인요즘에우연히알았으니

세상사아무도모를…
혹시….

많이지친나날들이다

………….

다시맘다잡고…
내게강같은평화있기를…

#[무진기행]그시절을기억하고져…
1.
버스가산모퉁이를돌아갈때나는<무진Mujin10km>라는이정비를보았다.그것은옛날과똑같은모습으로길가의잡초속에서튀어나와있었다.내뒷좌석에앉아있는사람들사이에서다시시작된대화를나는들었다.

"앞으로십킬로남았군요."
"예,한삼십분후에도착할겁니다."
……………
"무진엔명산물이…뭐별로없지요?"
그들은대화를계속하고있었다.

………………..

무진에명산물이없는게아니다.나는그것이무엇인지알고있다.그것은안개다.
아침에잠자리에서일어나서밖으로나오면,밤사이에진주해온적군들처럼안개가무진을삥둘러싸고있는것이었다.무진을둘러싸고있던산들도안개의의하여보이지않는먼곳으로유배당해버리고없었다.안개는마치이승에한이있어서매일밤찾아오는여귀가뿜어내놓은입김과같았다.해가떠오르고,바람이바다쪽에서방향을바꾸어불어오기전에는사람들의힘으로써는그것을헤쳐버릴수가없었다.
손으로잡을수없으면서도그것은뚜렷이존재했고사람들을둘러쌌고먼곳에있는것으로부터사람들을떼어놓았다.안개,무진의안개,무진의아침에사람들이만나는안개,사람들로하여금해를,바람을간절히부르게하는무진의안개,그것이무진의명산물이아닐수있을까!
M1R.Strauss/바이올린소나타Eflat장조op.18의2악장/
바이올린:PinchasZukerman피아노:MarcNeikrug(9’04")
그렇다고무진에의연상이꼬리처럼항상나를따라다녔다는것은아니다.차라리나의어둡던세월이일단지나가버린지금은나는거의항상무진을잊고있었던편이다.
………….
그런데오늘이른아침,광주에서기차를내려서역구내를빠져나올때내가본한미친여자가그어두운기억들을홱잡아끌어당겨서내앞에던져주었다.그미친여자는나일론의치마저고리를맵시있게입고있었고팔에는시절에맞추어고른듯한핸드백도걸치고있었다.얼굴도예쁜편이고화장이화려했다.그여자가미친사람이라는것을알수있는것은쉬임없이굴리고있는눈동자와그여자를에워싸고서서선하품을하며그여자를놀려대고있는구두닦이아이들때문이었다.

"공부를많이해서돌아버렸대."
"아냐,남자한테서채여서야."
"저여자미국말도참잘한다.물어볼까?"

아이들은그런얘기를높은목소리로하고있었다.좀나이가든여드름쟁이구두닦이하나는그여자의젖가슴을손가락으로집적거렸고그럴때마다그여자는여전히무표정한얼굴로비명만지르고있었다.그여자의비명이,옛날내가무진의골방속에서쓴일기의한구절을문득생각나게한것이다.
M2Scriabin/몽상op.24/
EvgenySvetlanov(지휘)러시아국립교향악단
3.
우리는별로거품이일지않는맥주를마셨다.

"제약회사라면그게약만드는데아닙니까?"
"그렇죠."
"평생병걸릴염려는없겠습니다.그려."

굉장히우스운익살을부렸다는듯이직원들은방바닥을치며오랫동안웃었다.
M3Puccini/opera[나비부인]중’어떤갠날’/sop.RenataScott(4’37’)

사람들이박수를쳤다.여선생은머뭇거렸다.


"서울손님도오고했으니까.그지난번에부르던거참좋습디다."조는재촉했다.

"그럼부릅니다."

여선생은거의무표정한얼굴로입을조금만달싹거리며노래를부르기시작했다.세무서직원들이손가락으로술상을두드리기시작했다.여선생은<목포의눈물>을부르고있었다.<어떤개인날>과<목포의눈물>사이에는얼마만큼의유사성이있을까?무엇이저아리아들로써길들여진성대에서유행가를나오게하고있을까?그여자가부르는<목포의눈물>에는작부들이부르는그것에서들을수있는것과같은꺾임이없었고,대체로유행가를살려주는목소리의갈라짐이없었고,흔히유행가가내용으로하는청승맞음이없었다.

그여자의<목포의눈물>은이미유행가가아니었다.그렇다고<나비부인>중의아리아는더욱아니었다.그것은이전에는없었던어떤새로운양식의노래였다.그양식은유행가가내용으로하는청승맞음과는다른좀더무자비한청승맞음을포함하고있었고,<어떤개인날>의그절규보다도훨씬높은옥타브의절규를포함하고있었고,그양식에는머리를풀어헤친광녀의냉소가스며있었고,무엇보다도시체가썩어가는듯한무진의그냄새가스며있었다.

그여자의노래가끝나자나는의식적으로바보같은웃음을띄우고박수를쳤고그리고육감으로써랄까,나는후배인박이이자리에서떠나고싶어하는것을알았다.나의시선이박에게로갔을때,나의시선을박은기다렸다는듯이자리에서일어났다.누군지가그에게앉기를권했으나박은해사한웃음을띄우며거절했다.

"먼저실례합니다.형님은내일또뵙지요."

조는대문까지따라나왔고나는한길까지박을바래다주려고나갔다.밤이깊지않았는데도거리는적막했다.어디선지개짖는소리가들려왔고쥐몇마리가한길위에서무엇을먹고있다가우리의그림자에놀라흩어져버렸다.

"형님,보세요.안개가내리는군요."

과연한길의저끝이,불빛이드문드문박혀있는먼주택지의검은풍경들이점점풀어져가고있었다.

"자네,하선생을좋아하고있는모양이군."내가물었다.박은다시해사한웃음을띠었다.

"그여선생과조군과무슨관계가있는모양이지?"
"모르겠습니다.아마조형이결혼대상자중의하나로생각하고있는거같아요."
"자네가그여선생을좋아한다면좀더적극적으로나가야해.잘해봐."
"뭐,별로…"

박은소년처럼말을더듬거렸다.

"그속물들틈에앉아서유행가를부르고있는게좀딱해보였을뿐이지요.그래서나와버린거죠."

박은분노를누르고있는듯이나직나직말했다.

"클래식을부를장소가있고유행가를부를장소가따로있다는것뿐이겠지,뭐.딱할거까지야있나?"

나는거짓말로써그를위로했다.박은가고나는다시<속물>들틈에끼었다.무진에서는누구나그렇게생각하는것이다.타인은모두속물들이라고.나역시그렇게생각하는것이다.타인이하는모든행위는무위와똑같은무게밖에가지고있지않은장난이라고.

밤이퍽깊어서우리는자리에서일어났다.조는내가자기집에서자고가기를권했다.그러나다음날아침에잠자리에서일어나서그집을나올때까지의부자유스러움을생각하고나는기어코밖으로나섰다.직원들도도중에서흩어져가고결국엔나와여자만이남았다.우리는다리를건너고있었다.검은풍경속에서냇물은하얀모습으로뻗어있었고그하얀모습의끝은안개속으로사라지고있었다.
M4Beethoven/현악4중주곡C장조op.59-3의2악장(9’43")/
AmadeusStringQuartet
"밤엔정말멋있는고장이에요."여자가말했다.

"그래요?다행입니다."내가말했다.

"왜다행이라고말씀하시는줄짐작하겠어요."여자가말했다.

"어느정도까지짐작하셨어요?"내가물었다.

"사실은멋이없는고장이니까요.제대답이맞았어요?"
"거의."

우리는다리를다건넜다.거리서우리는헤어져야했다.그여자는냇물을따라서뻗어나간길로가야했고나는곧장난길로가야했다.

"아,글루가세요.그럼…"내가말했다.

"조금만바래다주세요.이길은너무조용해서무서워요."

여자가조금떨리는목소리로말했다.나는다시여자와나란히서서걸었다.나는갑자기이여자와친해진것같았다.다리가끝나는바로거기에서부터,그여자가정말무서워서떠는듯한목소리로내게바래다주기를청했던바로그때부터나는그여자가내생애속에끼어든것을느꼈다.내모든친구들처럼,이제는모른다고할수없는,때로는내가그들을훼손하기도했지만그러나더욱많이그들이나를훼손시켰던내모든친구들처럼.
M5Scriabin/피아노협주곡의2악장Andante(8’31")/
피아노:V.Ashkenazy,
LorinMaazel(지휘)LondonPhil.orch.
4.
……………….
"앞으로오빠라고부를테니까절서울로데려가주시겠어요?"
"서울에가고싶으신가요?"
"네."
"무진이싫은가요?"
"미칠것같아요.금방미칠것같아요.서울엔제대학동창들도많고…아이,서울로가고싶어죽겠어요."

여자는잠깐내팔을잡았다가얼른놓았다.나는갑자기흥분되었다.나는이마를찡그렸다.찡그리고또찡그렸다.그러자흥분이가셨다.

"그렇지만이젠어딜가도대학시절과는다를걸요.인숙은여자니까아마가정으로숨어버리기전에는어는곳에가든지미칠것같을걸요."
"그런생각도해봤어요.그렇지만지금같아선가정을갖는다고해도미칠것같은생각이들어요.정말맘에드는남자가아니면요.정말맘에드는남자가있다고해도여기서는살기가싫어요.전그남자에게여기서도망하자고조를거예요."
"그렇지만내경험으로는서울에서의생활이반드시좋지도않더군요.책임.책임뿐입니다."
"그렇지만여긴책임도무책임도없는곳인걸요.하여튼서울에가고싶어요.절데려가주시겠어요?"
"생각해봅시다."
"꼭이예요.네?"
M6Mozart/피아노와바이올린을위한소나타Bflat장조K.454/
피아노:ClaraHaskil,바이올린:ArthurGrumiaux(21’53")
"무슨일입니까?"
"자살시쳅니다."

순경은흥미없는말투로말했다.

"누군데요?"
"읍에있는술집여잡니다.초여름이되면반드시몇명씩죽지요."
"네에."
"저계집애는아주독살스러운년이어서안죽을줄알았더니,저것도별수없는사람이었던모양입니다."
"네에."
……………

"무슨약을먹었는지모르지만지금이라도어쩌면…"

순경에게내가말했다.

"저런여자들이먹는건청산가립니다.수면제몇알먹고떠들썩한연극같은건안하지요.그것만은고마운일이지만."
M7R.Strauss/horn협주곡2번Eflat장조(19’53")/
horn:HermannBaumann,
KurtMasur(지휘)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관현악단
"속도모르는박군은그여자를좋아한대."

그가말하면서빙긋웃었다.

"박군이?"

나는놀라는체했다.

"그여자에게편지를보내어호소를하는데그여자가모두내게보여주거든.박군은내게연애편지를쓰는셈이지."

나는그여자를만나보고싶은생각이싹가셨다.그러나잠시후엔그여자를어서만나보고싶다는생각이되살아났다.

"지난봄엔그여잘데리고절엘한번갔었지.어떻게해보려고했는데요영리한게결혼하기전까지는절대로안된다는거야."
"그래서?"
"무안만당하고말았지."

나는그여자에게감사했다.

시간이됐을때나는그여자와만나기로한,읍내에서좀떨어진바다로뻗어나가고있는방죽으로갔다.노란파라솔하나가멀리보였다.그것이그여자였다.우리는구름이낀하늘밑을나란히걸어갔다.

"저오늘박선생님께선생님에관해서여러가지물어봤어요."
"그래요?"
"무얼제일중요하게물어보았을것같아요?"

나는전연짐작할수가없었다.그여자는잠시동안키득키득웃었다.그리고말했다.

"선생님의혈액형을물어봤어요."
"내혈액형을요?"
"전혈액형에대해서이상한믿음을가지고있어요.사람들이꼭자기의혈액형이나타내주는…그,생물책에씌어있지않아요?꼭그성격대로이기만했으면좋겠어요.그럼세상엔손가락으로꼽을정도의성격밖에없을게아니에요?"
"그게어디믿음입니까?희망이지."
"전제가바라는것은그대로믿어버리는성격이에요."
"그건무슨혈액형입니까?"
"바보라는이름의혈액형이예요."

우리는후덥지근한공기속에서괴롭게웃었다.나는그여자의프로필을훔쳐보았다.그여자는이제웃음을그치고입을꾹다물고그커다란눈으로앞을똑바로응시하고있었고코끝에땀이맺혀있었다.그여자는어린아이처럼나를따라오고있었다.나는나의한손으로그여자의한손을잡았다.그여자는놀라는듯했다.나는얼른손을놓았다.잠시후에나는다시손을잡았다.그여자는이번엔놀라지않았다.우리가잡고있는손바닥과손바닥의틈으로희미한바람이새어나가고있었다.

"무작정서울에만가면어떻게할작정이오?"

내가물었다.

"이렇게좋은오빠가있는데어떻게해주겠지요."
……………….
나는내게서달아나버렸던여자에대한것과는다른사랑을지금의내아내에대하여갖고있었다.그러면서도나는구름이끼어있는하늘밑의바다로뻗은방죽위를걸어가면서,다시내곁에선여자의손을잡았다.나는지금우리가찾아가고있는집에대하여여자에게설명해주었다.어느해,나는그집에서방한칸을얻어들고더러워진나의폐를씻어내고있었다.어머니도세상을떠나간뒤였다.이바닷가에서보낸일년.그때내가쓴모든편지들속에서사람들은<쓸쓸하다>라는단어를쉽게발견할수있었다.그단어는다소천박하고이제는사람의가슴을호소해오는능력도거의상실해버린사어같은것이지만그러나그무렵의내게는그말밖에써야할말이없는것처럼생각되었었다.

M8Enescu/Cantabileetpresto(6’27")/
flute:IrenaGrafenauer,피아노:MichaelGrandt

늦은아침이었다.이모는전보한통을내게건네주었다.엎드려누운채나는전보를펴보았다.<27일회의참석필요.급상경바람영>.<27일>은모레였고<영>은아내였다.나는아프도록쑤시는이마를베개에대었다.나는숨을거칠게쉬고있었다.나는내호흡을진정시키려고했다.아내의전보가무진에와서내가한모든행동과사고를내게점점명료하게드러내보여주었다.모든것이선입관때문이었다.결국아내의전보는그렇게얘기하고있었다.나는아니라고고개를저었다.모든것이,흔히여행자에게주어지는그자유때문이라고아내의전보는말하고있었다.나는아니라고고개를저었다.모든것이세월에의하여내마음속에서잊혀질수있다고전보는말하고있었다.
M9Puccini/opera[나비부인]중’어떤갠날'(4’14")/
AndreKostelanetzorch.

그러나상처가남는다고,나는고개를저었다.오랫동안우리는다투었다.그래서전보와나는타협안을만들었다.한번만,마지막으로한번만이무진을,안개를,외롭게미쳐가는것을,유행가를,술집여자의자살을,배반을,무책임을긍정하기로하자.마지막으로한번만이다.꼭한번만,그리고나는내게주어진한정된책임속에서만살기로약속한다.전보여,새끼손가락을내밀어라.

나는거기에내새끼손가락을걸어서약속한다.우리는약속했다.

그러나나는돌아서서전보의눈을피하여편지를썼다.
갑자기떠나게되었습니다.찾아가서말로써오늘제가먼저가는것을알리고싶었습니다만대화란항상의외의방향으로나가버리기를좋아하기때문에이렇게글로써알리는것입니다.간단히쓰겠습니다.사랑하고있습니다.왜냐하면당신은제자신이기때문에,적어도제가어렴풋이나마사랑하고있는옛날의저의모습이기때문입니다.저는옛날의저를오늘의저로끌어놓기위하여있는힘을다할작정입니다.저를믿어주십시오.그리고서울에서준비가되는대로소식드리면당신은무진을떠나서제게와주십시오.우리는아마행복할수있을것입니다.

쓰고나서나는그편지를읽어봤다.
또한번읽어봤다.
그리고찢어버렸다.

덜컹거리며달리는버스속에서나는,어디쯤에선가,길가에세워진하얀팻말을보았다.거기에는선명한검은글씨로<당신은무진읍을떠나고있습니다.안녕히가십시오>라고씌어있었다.

나는심한부끄러움을느꼈다.

M10Ravel/현악4중주곡F장조의4악장(5’59")/NuovoQuartetto

Satie/Gnossienn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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