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 이태준

까마귀-이태준단편소설

"호―"
새로사온것이라등피에서는아직석유내도나지않는다.

닦을것도별로없지만전에하던버릇으로그렇게입김부터불어가지고어스레해진하늘에비춰보았다.

등피는과민하게도대뜸뽀―얗게흐려지고만다.

"날이꽤차졌군……."
그는등피를닦으면서아직눈에익지않은정원을둘러보았다.

이끼앉은돌층계밑에는발이묻히게낙엽이쌓여있고상나무,전나무같은상록수를빼어놓고는

단풍나무까지이미반나마이울어어떤나무는잎이라고하나도없이설―멍하게서있다.

‘무장해제를당한포로들처럼’하는생각을하면서그런쓸쓸한나무들이이구석저구석에묵묵히섰는것을그는등피를다닦고도다시한참이나바라보다가야자기방으로정한바깥채작은사랑으로올라갔다.

여기는그의어느친구네별장이다.

늘괴벽한문체(文體)를고집하여독자를널리갖지못하는그는한달에이십원남짓하면

독방을차지할수있는학생층의하숙생활조차뜻대로되지않았다.

궁여의일책으로이렇게임시로나마겨우내그냥비워두는친구네별장방하나를빌린것이다.

내년칠월까지는어느방이든지마음대로쓰라고해서정자지기가방마다문을열어보이는대로구경하였으나

모두여름에나좋은북향들이라너무음습하고너무넓고문들이많아서결국은바깥채로나와,

상노들이나자는방이라는작은사랑을치우게한것이다.

상노들이나자는방이라하나별장전체를그리손색있게하는방은아니었다.

동향이어서여름에는늦잠을자지못할것이흠일까,겨울에는어느방보다밝고따뜻할수있고

미닫이와들창도다갑창까지들인데다벽장문과두껍닫이에는유명한화가인지아닌지는몰라도

낙관(落款)이있는사군자(四君子)며기명절지(器皿折枝)가붙어있다.

밖으로도문위에는추성각(秋聲閣)이라추사체의현판이걸려있고양쪽처마끝에는파―랗게녹슨풍경이

창연히달려있다.또미닫이를열면눈아래깔리는경치도큰사랑만못한것같지않으니,산기슭에나붓이섰는수각(水閣)과그밑으로마른연잎과단풍이잠긴연당이며그리고그연당언덕으로올라오면서

무룡석으로석가산을모으고잔디밭새에길을돌린것은이방에서내려다보기가기중일듯싶었다.

그런데다눈을번뜻들면동편하늘이바다처럼트이고그한편으로훤칠한늙은전나무한채가

절벽같이가려섰는것이다.사슴의뿔처럼삭정이가된상가지에는희끗희끗새똥까지묻어서

고요히바라보면한눈에태고(太古)가깃들이는듯한그윽한경치이다.

오래간만에켜보는남폿불이다.펄럭―하고성냥불이심지에옮기더니좁은등피속은자옥하게

연기와김이서리었다가차츰차츰밝아지는것이었다.그렇게차츰차츰밝아지는남폿불에

삥―둘러앉았던옛날집안사람들의얼굴이생각나게,그렇게남폿불은추억많은불이다.

그는누워너무나고요함에귀를빼앗기면서옛사람들의얼굴을그려보다가너무나가까운데서

까악―까악―하는까마귀소리에얼른일어나문을열었다.바깥은아직아주어둡지않았다.

또까악―까악―하는소리에쳐다보니지나가면서우는소리가아니라바로그전나무

삭정가지에시커먼세마리가웅크리고앉아그러는것이었다.

"까마귀!"

까치나비둘기를본것만은못하였다.그러나자연이준그의검음과그의탁한음성을

까닭없이저주할필요는느끼지않았다.마침정자지기가올라와서,
"아,진지는어떡하십니까?"
하는말에,우유하고빵이나먹고밥생각이나면문안들어가사먹는다고,

그래도자기는괜찮다고어름어름하고말막음으로,
"웬까마귀들이……?"
하고물었다.

"네,이동네많습니다.저나무엔늘와사는걸입쇼."
"그래요?그럼내친구가되겠군……."
하고그는웃었다.

"요아래돼지기르는데가있습죠거기밥찍게같은게흔하니까그래까마귀가떠나질않습니다."
하면서정자지기는한걸음나서팔매치는형용을하니까마귀들은주춤하고날듯한자세를가지다가

아래를보더니도로앉아서이번에는’까르르……’하고GA아래R이한없이붙은발음을하는것이다.

정자지기가내려간후,그는다시호젓하니문을닫고아까와같이아무렇게나다리를뻗고누워버렸다.
배가고팠다.

그는또그어느학자의수면습관설(睡眠習慣設)이생각났다.사람이밤새도록그여러시간을

자는것은불을발명하기전에할일이없어자기만한것이습관으로전해진것뿐이요,

꼭그렇게여러시간을자야만될리는없다는것이다.

그는이수면습관설에관련하여식욕이란것도그런것으로믿어보고싶었다.

사람은하루꼭꼭세번씩으레먹어야될것처럼충실히먹는것이나

이것도그렇게많이먹어야만되게되어서가아니라,

애초에는수효적은사람들이넓은자연속에서먹을것이쉽사리손에들어오니까

먹기만하던것이습관으로전해진것뿐이요,

꼭그렇게세끼씩이나계획적으로먹어야만될리는없을것같았다.

그런데,사람이잠을자기위해서는그처럼큰부담이있는것은아니나먹기위해서는,

하루세번씩먹는그습관을지키기위해서는얼마나큰,얼마나무거운부담이있는것인가.

그러기에살려고먹는것이아니라먹으려고산다는말까지생긴것이아닌가생각되었다.

‘먹으려구산다!평생을먹으려구만눈이뻘개허둥거리다죽어?그건실로인간의모욕이다.’
그는쓴웃음을지으며지금자기의속이쓰려올라오는것과입속이빡빡해지며눈에는자꾸기

름진식탁이나타나는것을한낱무가치한습관의발작으로만돌려버리려노력해보는것이다.
‘어디선가루날은예술가는빵한근보다꽃한송이를꺾는다고,

그러나배가고프면?하고제가묻고는그러면그는괴로워하고훔치고혹은사람을죽일지도모른다.

그렇더라도글쓰기를버리지는않을게라고했다.

난배가고파할줄아는얄미운습관부터아예망각시켜보리라.

잉크는새것이한병새벽우물처럼충충히담겨있것다,원고지도두툼한게여남은축쌓여있것다!’

그는우선그문앞으로살랑살랑지나다니면서’쌀값은오르기만허구……

석탄두들여야겠는데……’를입버릇처럼하던주인마누라의목소리를십리나떨어져서

은은한풍경소리와짙은어둠에함빡싸인,이산장호젓한방에서옛애인을만난듯한

다정스러운남폿불을돋우고글만을생각하는데취할수있는것이갑자기몸이비단에싸이는듯,

살이찔듯한행복이었다.

저녁마다그는남포에새석유를붓고등피를닦고그리고까마귀소리를들으면서어둠을기다리었다.

방구석구석에서밤의신비가소곤거려나올때살며시무릎을꿇고귀한손님의의관처럼

공손히남포갓을들어올리고불을켜는것이며펄럭거리던불방울이가만히자리잡는것을보고야

아랫목으로물러나그제는눕든지앉든지마음대로하며혼자밤이깊도록무얼읽고

무얼생각하고무얼쓰고하는것이다.그래서아침이면늘늦도록자곤하였다.

어떤날은큰사랑뒤에있는우물에올라가세수를하고나면산너머로오정소리가울려오기도했다.

그러다가이날은무슨무서운꿈을꾸고그서슬에소스라쳐깨어보니밤은벌써아니었다.

미닫이에는전나무가지가꿩의장북처럼비끼었고쨍쨍한햇볕은쏴―소리가날듯쪼여있었다.

어수선한꿈자리를떨쳐버리는홀가분한기분과여기나와서는처음일찍깨어보는호기심에서

그는머리를흔들고미닫이부터쫙밀어놓았다.

문턱을넘어드는바깥공기는체온에부딪히는것이찬물같았다.

여윈손으로눈을비비며얼마나아름다운아침일까를내어다보았다.

해는역광선이어서부신눈으로수각을더듬고연당을더듬고잔디밭길을더듬다가그실뱀같은잔디밭길에서다.그는문득어떤여자의그림자하나를발견한것이다.

여태꿈인가해서다시금눈부터비비었다.확실히여자요,또확실히고요히섰으되산사람이었다.

그는너무넓게열렸던문을당황히닫아버리고다시조그만틈으로내어다보았다.
여자는잊어버린듯오래도록햇볕만쏘이고서있다가어디선지산새한마리가날아와

가까운나뭇가지에앉는것을보더니그제야사뿐발을떼어놓았다.

머리는틀어올리었고저고리는노르스름한명줏빛인데고동색스웨터를,아이업듯,

두소매는앞으로늘어뜨리고등에만걸치었을뿐,꽤날씬한허리아래엔옥색치맛자락이부드러운

물결처럼가벼운주름살을일으켰다.빨간단풍잎하나를들었을뿐,고요한아침산보인듯하다.

‘누굴까?’

그는장정(裝幀)고운신간서(新刊書)에처럼호기심이일어났다.

가까이축대아래로지나가는것을보니새양봉투같은깨끗한이마에눈결은뉘어쓴영어글씨같이차근하다.꼭다문입술,그리고뾰로통한콧봉오리에는여간치않은프라이드가느껴지는얼굴이었다.

‘웬여잔데?’
이튿날아침에도비교적이르게잠이깨었다.

살며시연당쪽을내어다보니연당앞에도잔디밭길에도아무도사람이라고는보이지않았다.

왜그런지붙들었던새를날려보낸듯그는서운하였다.
이날오후이다.그는낙엽을긁어다가불을때고있었다.

누군지축대아래에서인기척이났다.

머리를쓸어넘기며내려다보니어제아침의그여자다.

어제그옷,그모양,그고요함으로약간발그레해진얼굴을쳐들고사뭇아는사람을보듯얼굴을

돌리려하지않고걸음을멈추고섰는것이다.이쪽은당황하여다시머리를쓸어넘기며일어섰다.

"×선생님아니세요?"
여자가거의자신을가지고먼저묻는다.
"네,×××입니다."
"……"
여자는먼저물어놓고더말이없이귀밑까지발그레해지는얼굴을폭수그렸다.

한참이나아궁에서낙엽타는소리뿐이었다.

"절아십니까?"
"……"

여자는다시얼굴을들뿐말은없다가수줍은웃음을머금고옆에있는돌층계를히뜩히뜩올라왔다.

이쪽에서는낙엽한무더기를또아궁에쓸어넣고손을털었다.

"문간에명함붙이신걸루알었에요."
"네……."
"저두선생님독자예요.꽤충실한……."
"그러십니까?부끄럽습니다."

그는손을비비며여자의눈을보았다.

잦아든가을호수와같이약간꺼진듯한피곤한눈이면서도겨울별같은찬광채가일어났다.

"손수불을때시나요?"
"네."
"전이집정원을저이집처럼날마다산보와요,아침이문……."

"네!퍽넓구좋은정원입니다."
"참좋아요……어서때세요."

"네,이동네계십니까?"
"요개울건너예요."

이날은더이야기가나올새없이부끄러움도미처걷지못하고여자는돌아가고말았다.
그는한참뒤에바깥한길로나와개울건너를살펴보았다.거기는기와집,초가집여러집이

언덕에층층으로놓여있었다.어느것이그여자가들어간집인지짐작조차할수없었다.

이날저녁에정자지기를만나물었더니,

"그여자병인이올시다."하였다.

보기에그리병색은아니더라하니,

"뭐폐병이라나요.약먹느라구여기나왔는데숨이차산엔못댕기구우리정자루만밤낮오죠."하였다.

폐병!그는온전한남의일같지않게마음이쓰였다.그렇게예모있고상냥스러운대화를

지껄일수있는아름다운입술이악마같은병균을발산하리라는사실은상상만하기에도우울하였다.
그러나그다음날부터는정원에서그여자를만나인사할수있는것이즐거웠고,

될수만있으면그를위로해주고그와더불어자기의빈한한예술을이야기하고싶었다.

그래서그여자가자기의방문앞으로왔을때는몇번이나,

"바람이찹니다."
하여보았다.그러나번번이,
"여기가좋아요."

하고여자는툇마루에걸터앉았고손수건으로자주입과코를막기를잊지않았다.하루는,
"글쎄괜찮으니좀들어오십시오."
하고괜찮다는말에힘을주었더니여자는약간상기가되면서그래도이쪽에밝히따지려는듯이,

"전전염병환자예요."
하고쓸쓸한웃음을지었다.

"글쎄그런줄압니다.괜찮으니들어오십시오."
하니그제야가벼운감격이마음속에파동치는듯,잠깐멀―리하늘가에눈을던지었다가살며시들어왔다.

황혼이었다.동향방의황혼이라말할때의그여자의맑은눈속과흰잇속만이별로또렷또렷빛이났다.

"저처럼죽음에대면해있는처녀를작품속에서생각해보신적계세요,선생님?"
"없습니다!그리구그만정도에왜죽음을생각허십니까?"
"그래두자꾸생각하게되어요."

하고여자는보일듯말듯한웃음으로천장을쳐다보았다.한참침묵뒤에,
"전병을퍽행복스럽다했어요.처음엔……."
하고또가벼이웃었다.

"……"

"모두날위해주구친구들이꽃을가지구찾어와주구,그리구건강했을때보다여간희망이많지않어요.

인제병이나으면누구헌테제일먼저편지를쓰겠다,누구헌테전에잘못한걸사과하리라

참벨벨희망이다끓어올랐에요……병든걸참감사했에요.그땐……."

"지금은요?"
"무서워졌에요.

죽음두첨에는퍽아름다운걸루알었드랬에요.언제든지살다귀찮으면꽃밭에뛰어들듯언제나

아름다운죽음에뛰어들수있는걸기뻐했에요.그런데이렇게닥뜨리고보니겁이자꾸나요.

꿈을꿔두……."
하는데까악―까악―하는소리가바로그전나무삭정가지에서인듯,언제나똑같은거리에서울려왔다.

"여기나와선까마귀가내친굽니다."

하고그는억지로그불길스러운소리를웃음으로덮어버리려하였다.

"선생님은친구라구꺼정!전이동네가모두좋은데저게싫어요.

죽음을잊어버리면안된다구자꾸깨쳐주는것같어요."

"건괜한관념인줄압니다.흰새가있듯검은새도있는거요.

소리맑은새가있듯소리탁한새도있는거죠.취미에따라까마귀도사랑할수있는샌줄압니다."

"건죽음을아직남의걸로만아는건강한사람들의두개골을사랑하는것같은악취미겠지요.

지금저헌텐무서운짐승이에요.

무슨음모를가지구복면허구내뒤를쫓아다니는무슨음흉한사내같이소름이끼쳐요.

아마내가죽으면저새가덥석날러와앞을설것만같이……."

"……"

"죽음이아름답게생각될때죽는것처럼행복은없을것같어요."

하고여자는너무길게지껄였다는듯이수건으로입을코까지싸서막고

멀―거니어두워들어오는미닫이를바라보았다.
이병든처녀가처음으로방에들어와얼마안되는이야기를그의체온과그의병균과함께남기고간날밤,

그는몹시우울하였다.

‘무슨말을하여야그여자를위로할수있을까?’
‘과연그여자의병은구할수없는것일까?’
‘어떻게하면그여자에게죽음이다시한번꽃밭으로보일수있을까?’

그는비스듬히벽에기대어이것을생각하다가머릿속에서무엇이버스럭거리는소리를들었다.

가만히이마에손을대니그것은벽장속에서나는소리였다.

그는벽장을열고두어마리의쥐를쫓고나무때기처럼굳은빵한쪽을꺼내었다.

그리고한손으로는뒷산에서주워온그환약과같이동그라면서도가랑잎처럼무게가없는

토끼의배설물을집어보면서요즘은자기의것도그렇게담박한것이틀리지않을것을미소하였다.

‘사람에게서도풀내가나야한다.’

한철인소로의말이생각났으며,사람도사는날까지극히겸손한곤충처럼

맑은이슬과향기로운풀잎으로만만족하지못하는것을,그운명이슬픈생각도났다.

‘무슨말을하여주면그여자에게새희망이생길까?’
그는다시이런궁리에잠기었고그랬다가문득,

‘내가사랑하리라!’
하는정열에부딪히었다.

‘확실히그여자는애인을갖지못했을거다.누가그벌레먹는가슴에사랑을묻었을거냐.’
그는그여자의앉았던자리에두손길을깔아보았다.

싸―늘한장판의감촉일뿐체온은날아간지오래였다.

‘슬픈아가씨여,죽더라도나를사랑하면서죽어다오!애인이없이죽는것은애인을남기고죽기보다

더욱슬플것이다……오래전부터병균과싸워온그대에겐확실히애인이있을수없을게다.’
그는문풍지떠는소리에덧문을닫고남포의불을낮추고포―의슬픈시「레이번」을생각하면서,

"레노어?레노어?"
하고,포가그의애인의망령을불렀듯이슬픈음성을소리쳐보기도하였다.

그덮을것도없이애인의헌외툿자락에싸여서,

그러나행복스럽게임종하였을레노어의가엾고또아름다운시체는,

생각하여보면포의정열이상으로포근히끌어안아보고싶은충동도일어났다.

포가외로운서재에앉아밤깊도록옛책을상고할때폭풍은와문을열어젖뜨렸고

검은숲속에서는보이지도않는까마귀가울면서머리풀어헤친

아름다운레노어의망령이스르르방안한구석에들어서곤하였다.

‘오오!나의레노어!너는아직확실히애인을갖지못했을거다.

내가너를사랑해주며내가너의주검을지키는슬픈애인이되어주마.’
그는밤이너무나긴것을탄식하며어서날이밝기를기다리었다.

그러나밝는날아침의하늘은너무나두껍게흐려있었고거친바람은구석구석에서몰려나오며

눈발조차희끗희끗날리었다.온실속에서나갸웃이내어다보는한송이온대지방꽃처럼,

그렇게가냘픈그처녀의얼굴이도저히나타나기를바랄수없는날씨였다.

‘오,가엾은아가씨!너는이렇게흐린날,어두운방속에누워애인이없이죽을것을슬퍼하리라!

나의가엾은레노어!’

사흘이나눈이오고또사흘이나눈보라가치고다시며칠흐리었다가눈이오고그리고날이들고따뜻해졌다.

처마끝에서눈녹은물이비오듯하는날오후인데가엾은아가씨가나타났다.더창백해진얼굴에는

상장(喪章)같은마스크를입에대었고방에들어와서는눈꺼풀이무거운듯자주눈을감았다뜨면서,

"그간두어번이나몹시각혈을했어요."하였다.

"그러나……."
"의사는기관에서터진피래지만,전가슴에서나온줄모르지않어요."
"그래두의사가더잘알지않겠어요?"
"의사가절속여요.의사만아니라사람들이다날속이려구만들어요.돌아서선뻔―히내가죽을걸

이야기허다가두나보군아닌체들해요.그래서벌써부터난딴세상사람처럼따돌리는게저는슬퍼요.

죽음이그렇게외로운거란걸날죽기전부터맛보게들해요."
아가씨의말소리는떨리었다.

"그래두……만일지금이라두,만일……진정으루사랑하는사람이있다면그사람의말만은곧이들으시겠습니까?"
"……"
눈을고요히감고뜨지않았다.

"앓으시는병을조곰도싫어하지않고정말운명을같이따라하려는사람만있다면?"
"그럼그건아마사람이아니겠지요.저헌테사랑하는사람이있긴있어요……절열렬히사랑해주어요.

요즘두자주저헌테와요."
"……"
"그는정말날사랑하는표루내가이런,모두싫어허는병이걸린걸자기만은싫어허지않는단

표루하루는내가슴에서나온피를반컵이나되는걸먹기까지한사람이야요.

그렇지만그게내게위로가되는줄아세요?"

"……"
그는우울할뿐이었다.
"내피까지먹구나허구그렇게가깝게해두그는저대로건강하구저대루살아가야할준비를하니까요.

머리가조흐면이발소에가고,신이해지면새구둘맞추구,

날마다대학도서관에다니면서학위받을연구만하구있어요.

그러니얼마나저허군길이달러요?전머릿속에상여,무덤그런생각뿐인데……."

"왜그런생각만자꾸하십니까?"
"사람끼린동정하구퍼두동정이안되는거같어요."
"왜요?"
"병자에겐같은병자가되는것아니곤동정이못될겁니다.그런데어떻게맘대루같은병자가되며

같은정도로앓다,같은시각에죽습니까?뻔―히죽을사람을말로만괜찮다,

괜찮다하구속이는건이쪽을더빨리외롭게만만드는거예요."
"어떤상여를생각하십니까?"

그는대담하게이런것을물어주었다.그렇게하는것이그아가씨의세계에접근하는것이될까하였다.
"조선상여는참타기싫어요.요즘금칠막한자동차두보기두싫어요.하―얀말여럿이끌구가는

하―얀마차가있다면……하구공상해봤어요.그리구무덤두조선무덤들은참암만해두정이가질않어요.

서양엔묘지가공원처럼아름답다는데조선산수들이야어디누구의영―원한주택이란그런감정이나요?

곁에둘수없으니흙으루덮구그냥두면비에패니까잔디를심는것뿐이지꽃한송이심을데나꽂을데가

있어요?조선사람처럼죽은사람의감정을안생각해주는사람들은없는것같아요.괜―히그듣기싫은

목소리루울기만허고까마귀나뫠들게떡쪼가리나갖다어질러놓구……."

"……"

"선생님은왜이렇게외롭게사세요?"
그는아무대답도하지않았다.

그여자에게애인이없으리라단정한자기의어리석음을마음아프게비웃었고

저렇게절망에극하여세상욕심이라고는털끝만치도없는거룩한여자를애인으로가진

그젊은학도가몹시부러운생각뿐이었다.

날은이미황혼에가까웠다.연당아래전나무꼭대기에서는아직,그탁한소리로울지는

않으나그우악스런주둥이로그검은새들이삭정이를쪼는소리가딱―딱―울려왔다.

"까마귀가온게지요?"
"그렇게그게싫으십니까?"
"싫어요.그것뱃속엔아마별별귀신딱지가다든것처럼무서워요.

한번은꿈을꾸었는데까마귀뱃속에무슨부적이들구칼이들구시퍼런불이들구한걸봤어요.

웃지마세요.상식은절떠난지벌써오래요……."

"허허……."

그러나그는웃고,속으로이제까마귀를한마리잡으리라하였다.

그배를갈라서그속에는다른새나조금도다를것이없는내장뿐인것을보여주리라.

그래서그상식을잃은여자의까마귀에대한공포심을근절시키고,

그래서죽음에대한공포심까지도좀덜게해주리라마음먹었다.

그는이아가씨가간뒤에그길로뒷산에올라물푸레나무를베다가큰활을하나메었다.

꼿꼿한싸리로살을만들고끝에다는큰못을갈아촉을박고여러번겨냥을연습하여보고

까마귀를창문가까이유혹하였다.

눈위에여기저기콩을뿌리었더니그들은마침내좌우를의뭉스런눈으로두리번거리면서도내려와그것을쪼았다.

먼데것이없어지는대로그들은곧날듯날듯이어깨를곧추세우면서도

차츰차츰방문가까이놓인것을쪼며들어왔다.방안에서는숨을죽이고조그만문구멍에

살촉을얹고가장가까이들어온놈의옆구리를겨냥하여기운껏활을당겨가지고쏘아버렸다.

푸드득하더니날기는다날았으나한놈이죽지에살이박힌채이내그자리에떨어졌고

다른놈들은까악까악거리면서전나무꼭대기로올라갔다.

그는황망히신을끌며떨어진놈을쫓아들어가발로덮치려하였다.

그러나

까마귀는어느틈에그의발밑에들지않고훌쩍몸을솟구어그찬란한핏방울을눈위에

흩뿌리며두다리와한날개로반은날고반은뛰면서잔디밭쪽으로덥풀덥풀달아났다.

이쪽에서도숨차게뛰어다우쳤다.

보기에악한과같은짐승이었지만그도한낱새였다.

공중을잃어버린그에겐이내막다른골목이나왔다.

화살이그냥박힌채연당으로내려가는도랑창에거꾸로박히더니쌕―쌕―하면서

불덩어리인지핏방울인지모를두눈을뒤집어쓰고집게같은입을딱딱벌리며대가리를곧추들었다.

그리고머리위에서는다른놈들이전나무에서내려와까악거리며

저희가족을기어이구하려는듯이낮게떠돌며덤비었다.

그는슬그머니겁이나기도했으나뭉어리돌을집어공중엣놈들을위협하며도랑에서

다시덥풀올려솟는놈을쫓아들어가곧은발길로멱투시를차내던지었다.

화살은빠져떨어지고까마귀만대여섯칸밖에나가떨어지며킥―하고뻐들적거렸다.

다시쫓아가발길을들었으나그때는벌써까마귀는적을볼줄도모르고덮어누르는죽음과싸울뿐이었다.

그는두근거리는가슴으로이검은새의죽음의고민을내려다보며그병든처녀의임종을상상해보았다.

슬픈일이었다.

그는이내자기방으로돌아왔고나중에정자지기를시켜그죽은까마귀를

목을매어어느나뭇가지에걸게하였다.

그리고어서그아가씨가나타나면곧훌륭한외과의(外科醫)나처럼그검은시체를해부하여

까마귀의뱃속에도다른날짐승과똑같이단순한조류(鳥類)의내장이있을뿐,

결코그런무슨부적이거나칼이거나푸른불이들어있지않다는것을증명하리라하였다.

그러나날씨는추워가기만하고열흘에한번도따뜻한해가비치지않았다.

달포가지나도록그아가씨는나타나지않았다.

날씨는다시풀어져연당에눈이녹고단풍나무가지에걸린까마귀의시체도

해부하기알맞게녹았지만그아가씨는나타나지않았다.

하루는다시추워져싸락눈이사륵사륵길에떨어져구르는날오후이다.

그는어느잡지사에들어가곤작(困作)한편을팔아가지고약간의식료를사들고다나온길인데

개울건너넓은마당에는두어대의검은자동차와함께금빛영구차한대가놓여있는것이다.

그는가슴이섬뜩하였다.

별장쪽을올려다보니전나무꼭대기에서는진작부터

서너마리의까마귀가이광경을내려다보며쭈그리고앉아있었다.

‘그여자가죽은거나아닌가?’
영구차안에는이미검은포장에덮인관이실려있었다.

둘러섰는동네사람속에서정자지기가나타나더니가까이와일러주었다.

"우리정자루늘오던색시가갔답니다."

"……"
그는고요히영구차를향하여모자를벗었다.
"저뒤에자동차에지금오르는사람이그색시하구정혼했던남자랩니다."
그는잠자코그대학도서실에다니며학위얻을연구를한다는청년을바라보았다.

그청년은자동차안에들어앉아,이내하―얀손수건을내어얼굴에대었다.

그러자자동차들은영구차가앞을서며고요히굴러떠나갔다.

눈은함박눈이되면서펑펑쏟아지기시작하였다.

그자동차들이굴러간자리도얼마안있어덮어버리고말았다.
까마귀들은이날저녁에도별다른소리는없이그저까악―까악―거리다가

이따금씩까르르―하고그GA아래R이한없이붙은발음을내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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