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거나 재앙의 후유증이거나…. 류 근
제목:재앙이거나재앙의후유증이거나….
작성자:류근
날짜:2006-09-04오전1:36:29
출처:oisoo.co.kr
십수년만에지갑을잃어버렸다.약2년여만에핸드폰을잃어버렸다.세상이갑자기고요해졌다.세상쪽에서아무런소리가들려오지않았다.나또한잇몸을앓고있거나임플란트제거후상당한통증에시달리고있었으므로세상에대고별로말하고싶지않았다.들리는소리없고말하는일없으니참으로사는일이명료했다.위빠사나수행하는남방의승려처럼,내일상의관절들이마디마다독립적으로들여다보이기시작했다.내일상은재앙이거나재앙의후유증이거나,어쩌면둘다를싸안아헛돌고있었다.
잇몸이아물기까지,그래서다시재수술을할수있을때까지내오른쪽저작기능은개점휴업이다.왼쪽어금니로만음식을씹고이빨을갈아야한다.결손치아와함께청춘을견뎌온내경험에의하면,이렇게2~3개월지나고나면왼쪽치아들역시온전치못한상태가된다.한쪽이망가지면,다른한쪽이연좌제로봉변을겪게되는것이다.한명이퇴장당한축구팀처럼,나머지선수들이허덕허덕뺑뺑이를돌아야하는것이다.
아무래도어금니없이세상을버틴다는건우울한일이다.어금니박박갈면서씹어야할일이너무많은데,헛바람휭휭도는잇몸만으로세상을버틴다는건슬프고쓸쓸한일이다.그래도나는살아남아야겠다.어금니가없어도9월이왔고,어금니가없어도세월은흘러간다.아직살아남은왼쪽어금니에기대면서이시절을나는한쪽스피커가고장난전축처럼심플한음색으로살아남아야겠다.빠드득빠드득왼쪽어금니를갈아대면서,오른쪽잇몸의우울한공명을돌비스테레오사운드처럼울려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