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까지오면거진다왔다는생각에마음이홀가분해진다.
이마루턱에서보면야트막한산밑에
올망졸망초가집들이들어선마을이보이고
오른쪽으로넓은마당집이
내진외가로아저씨뻘되는분의집이다.
이집에는나보다한살아래인,
열세살되는누이뻘되는소녀가있었다.
실상촌수를따져가며통내외까지할절척(切戚)도아니지만
서로가깝게지내는터수라,
내가가면여간반가워하지아니했고,
으레그소녀를오빠가왔다고불러내어인사를시키곤했다.
그때만해도시골서좀범절있다는가정에서는
열살만되면벌써처녀로서의예모를갖추었고
침선이나음식솜씨도나타내기시작했다.
집문앞에는보리가누렇게패어있었고,
한편들에서는일꾼들이보리를베기시작했다.
나는사랑에들어가어른들을뵙고수인사겸
이런이야기저런이야기로얼마지체한뒤에,
안건너방으로안내를받았다.점심대접을하려는것이다.
사랑방은머슴이며,일꾼들이드나들고어수선했으나,
건너방은조용하고깨끗하다.
방도말짱히치워져있고,
자리도깔려있었다.
아주머니는오빠에게나와인사하라고소녀를불러냈다.
소녀는미리준비를차리고있었던모양으로
옷도갈아입고머리도곱게매만져있었다.
나도옷고름을매만지며대청으로마주나와인사를했다.
작년보다는훨씬성숙해보였다.
지금막건너방에서옮겨간것이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일꾼들을보살피러나가면서
오빠점심대접하라고딸에게일렀다.
조금있다가딸은노파에게상을들려가지고왔다.
닭국에말은밀국수다.
오이소박이와호박눈썹나물이놓여있었다.
상차림은간소하나정결하고깔밋했다.
소녀는촌이라변변치는못하지만많이들어달라고
친숙하고나직한목소리로
짤막한인사를남기고곱게문을닫고나갔다.
남창으로등을두고앉았던나는
상을받느라고돗자리길이대로자리를옮겨야했다.
맞은편벽모서리에걸린분홍적삼이비로소눈에띄었다.
곤때가약간묻은소녀의분홍적삼이.
나는야릇한호기심으로자꾸쳐다보지아니할수없었다.
밖에서무엇인가수런수런하는기색이들렸다.
노파의은근한웃음섞인소리도들렸다.
괜찮다고염려말라는말같기도했다.
그러더니노파가문을열고들어왔다.
밀국수도촌에서는별식이니맛없어도많이먹으라느니
너스레를놓더니,
슬쩍적삼을떼어가지고나가는것이었다.
상을내어갈때는노파혼자들어오고,
으레따라올소녀는나타나지아니했다.
적삼들킨것이무안하고부끄러웠던것이다.
내가올때아주머니는오빠가떠난다고소녀를불렀다.
그러나소녀는안방에숨어서나타나지아니했다.
아주머니는"갑자기수줍어졌니,얘도새롭기는."하며미안한듯
머뭇머뭇기다렸으나이내소녀는나오지아니했다.
나올때뒤를흘낏훔쳐본나는
숨어서반쯤내다보는소녀의뺨이확실히붉어있음을알았다.
그는부끄러웠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