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산보를 떠나다(ver. 1.2)

기다리는것이오지않을때

글쓴이:유리알2007-01-29오후3:08:26

“더예쁜옷을만들자.”

이는손님이오지않을때허유씨모자가실의에빠져헤매다정착하게된어떤한경지였다.듣는순간부터내내이말은내게화두가되고있다.으레기다리는것들은오지않기마련일텐데,하여튼이낙천적인두사람은그렇게외롭고두려운그시간들을더예쁘고더좋은,그러니까허유씨의표현을빌자면well-made한옷을만드는시간들로바꾸어나갔던것이다.그는사람들이램을찾지않는건‘내옷이미워서’라고생각했단다.그처럼가장근본적인반성을별로하지않는세상이다.단골고객들에게전화를돌리거나가게앞길가에까지옷들을내놓고호객행위는할망정말이다.‘자본’이‘주의’가되어버린요즘세상에서,이들의이런마인드는혹자에게는순진하게만비칠지도모를일이다.그러나내게는그들의방식이지상의순리이자,인간의고결한자존감,예술가의순전함으로만비쳤다.

램의바닥,허유씨의모자이크작품

램의운영은자연스럽게이원화돼있다.물론총디렉션은허유사장의몫이지만,마케팅과생산공정에의참여라든가,숍매니저역할은모두그어머니정영순여사의몫이다.허유사장은디자인의개념이들어가는것에는일일이직접나선다고한다.그는매장내의디스플레이는물론이려니와심지어옷을거는순서까지언제나머릿속에서계획하여그대로실행한다고한다.결벽증에가까울만큼아름다움에천착하는아들의예술적인영감을고스란히살려주기위해그어머니는,가게의운영을위해필요한온갖실무적이고번잡한일들에아낌없이자신을헌신해왔다.무엇보다도고객앞에설때는허유씨를깍듯하게사장님으로예우하면서도,그가험한세상과부딪혀혹상처라도입을때면언제라도따뜻하고자상한어머니로되돌아갔을것이다.그것이바로어머니인것이다.참거룩한사랑이아닐수없다.어머니정영순여사의뒷바라지없이는푸른펜촉같이델리킷한감수성의허유씨도건재하지못했을것이다.어쨌든이런경영방식이야말로,램이문을연이후매출이계속하여상승그래프를그리며성장하게한주요한요인임이확실하다.

램의어머니,잔잔하고뜨거운사랑

어린허유의이야기를좀해야겠다.(이건어머니와단둘이있을때들은이야기인데,본인에게는좀쑥스러운대목일것같아서미안하다.)그러니까허유사장이서너살정도된무렵이었다고한다.한번씩시내로쇼핑을다녀서집에돌아오면,아직말도잘못하는어린사내아이가거실의소파위에올라간다는것이다.그리고는거의한두시간가량을시내에서구경한마네킹들의흉내를내는데,그당시마네킹들은요즘의모던하고절제된마네킹과달리얼굴표정도화장도제스처도과장되어있는지라,그것을따라그대로한참을지칠줄도모르고재현해내는그어린아이를바라보며가족들은배꼽을잡았다고한다.이때부터이미그귀여운어린아이의천진함속에남다른기질이흐르고있었던것이다.

그의유별난면을엿볼수있는일화는또있다.나도유년기에마론인형을참많이가지고놀았는데동년배인허유씨도그랬나보다.그런데나는그인형에옷을만들어입히는일은감히생각해본적이없다.남자아이가,그것도옷을갈아입힐수있는마론인형에흥미를느껴장난감삼았다는것까지는―흔한일은아니지만―그럴수있다치더라도그옷들이마음에들지않으니맘에드는옷들을만들어보자고어머니를조르는일은좀특별한경우가아닐까싶다.하여튼허유씨모자는마론인형의옷만드는일에의기투합했단다.마치오늘날램을예행연습이라도하려했던것처럼느껴지는대목이다.

빨간액자,빨간의자의센스

의상을전공했지만,허유씨는천부적으로그림을잘그렸다고한다.집안에서는2대독자인그를차마그림그리는사람으로키울수는없어서일부러아무런레슨도시키지않았는데도,미술대회에서상을받는일은언제나그의몫이었다고한다.결국대학진학에앞서허유씨는많은고민을했을것같다.그넘치는끼와재능을어떻게외면할수있었겠는가.하지만그는순수미술을택하지않고의상디자인학을선택함으로써자신의기질과부모의기대를적절히조화시키는방법을찾게된다.

허유씨는요즘도수시로외국여행을나간다.특별히기간도정하지않고그냥훌쩍떠난다는데,그가돌아올때는커다란짐보따리를몇개쯤가지고들어오지않을까싶다.램의옷들중에는그렇게외국여행길에서우연히눈에띄어사가지고온옷들도간혹있고,또몹시맘에들어도저히놓칠수없어구입해온희귀한빈티지천으로만든옷들도제법있다.그렇게한정된원단으로만들어져할수없이(?)유일해진옷들을나도좀가지고있다.그러니그옷은자연히하나밖에없는옷이되기쉽다.그러나허유사장은단한번도의도적으로고객들에게“이옷이유일하다.”고강조한적은없다고말했다.그런말들로사람들을현혹하고싶지는않아서라고했다.

램이추구하는정신이뭐냐고물었을때그는그냥‘잘만들어진옷’을만들고싶다고했다.그가생각하는잘만들어진옷이란무엇일까궁금했다.좋은소재를써야하고,패턴에대한연구가아낌없이이루어진옷이어야하며,봉재상태가반드시꼼꼼하고품위있어야만한다는데,그렇게만들어진옷한벌에는최종적으로자신의책임을싣는다고했다.그것이다였다.비록책임을싣는다고소박하게말하였으나그것은‘혼’을싣는다는말과마찬가지로내게는들렸다.그렇게태어난그의옷들중몇벌이지금도내옷장안에서숨쉬고있다.마치『사자,마녀그리고옷장』에나나올법한옷장속판타지를지닌채말이다.

명함!

어떻든,그도램이‘이제’는라벨을붙이고간판을걸때가되었다고이야기한다.램은예술(옷)을창조하고그것을나누고향유하는공간이기도하지만,그의생계가걸린소중한사업체이기도하기때문이다.간판얘기를하면서그가해준최근의이야기가있다.얼마전모일간지에삼청동의상가들을실은약도가게재되었는데,거기램이빠져있었다는것이다.그얘기를전해주면서친구는혹시간판이없어서그런거아니냐고말했다고한다.아무리간판이없기로그래도삼청동상권의원년멤버요,맏형이나다름없건만…….그러나진심으로말하건대그는그일로서운하진않았다고한다.하지만이제는간판을걸고싶어졌다고했다.그동안간판을걸지않은이유는단순했다.좋은이름이생각나지않았단다.라벨을붙이지않은이유역시비슷했고,그의표현대로‘멋있게’보이기위해서그가하는대답이한가지따로있었다.화가가그림을그리고사인을하는것처럼그도자신의옷에라벨을붙이고싶은데,아직그럴만큼만족스런작품을만들어내지못했기때문이란다.

사람들은종종자기자신을과장하기마련이건만허유씨에게서는그런것을찾아볼수가없다.그렇다면그가지나치게겸손해서일까?물론내가보기에그는불필요한우월감이나유아독존식의사고방식을할만큼어리석어보이지는않는다.그러나무엇보다나는그를통해서진정으로자존감있는사람의모습이어떠한가를분명히배우고깨닫게되었다.그는자신의그릇의크기를잘알고있다.많이담아내기위해그그릇부터먼저키우는것이이치라는것도함께말이다.본인이마음먹기에따라서는지금보다훨씬더램을널리알릴수있는능력을가진것으로보이지만,그는그렇게하지않는다.오래전받아두었던그의명함을들여다보면그모든것이상징적으로함축되어있다.

아,옷

그렇다고해서그가삶의뿌리를마냥무시하고고매하고청정한예술가로서만남겠다는아집이있는것도아니다.그스스로간판도달고라벨도만들어붙일때가된것같다고말했듯이,이제올해램에는중요한어떤전기가온듯하다.억지로그러모으고움켜쥐지않아도저절로오는때,그때가그에게온것인가싶다.신이그에게,열심히자신에게주어진길을묵묵히채워나가고있는그에게그그릇을확장시킬기회를주고자함일것이다.

기다림과그리움은옛시인들의영원한은유이기도하다.삶의맨밑바닥그리움이산을이루며파도치는시간들을지나,언젠가허유씨가유유히‘한세상’낚게될날의파장을기대한다.그날에파닥거릴물빛의생생함을.(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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