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찻그릇을 만나는 즐거움

국보115호<청자상감넝쿨무늬완>

미술관청자실에는국보115호<청자상감넝쿨무늬완>이있다.맑은비색유약아래은은하게비치는상감무늬가아름다운이청자완은1159년에죽은문공유(文公裕)라는사람의묘지(墓誌)와함께경기도개풍군에서출토된것이다.연대가알려진상감청자가운데가장오래된유물이며12세기중엽상감청자의발달과정을보여주는미술사연구자료로서유명한작품이다.

그런데이청자완을처음본순간그때부터지금까지필자는앞서말한미술사적인가치이외의가려진다른부분들에대하여개인적인관심을품어왔다.도대체고려때사람들은얼마나차를사랑했기에묘지와찻잔을함께묻는단말인가?이청자완에는어떤종류의차를담았을까?라는우리가미처눈길을주지못한것들에대한의문을청자완의주인공인문공유로부터하나씩풀어보고자한다.

묘지의내용에따르면문공유는고려인종(재위,1123-1146)때의문신으로풍채가당당하고문장에능했다고한다.이자겸이집권할당시유배되기도하였으나1127년복직하였고,1133년묘청의서경천도에반대하여좌천되었으나,후일형부상서와병부상서를역임하였다.즉,자기주장이분명하고학문과예술을겸비한당대의명사였던문공유가죽자그의행적을기리며묘지와함께찻그릇인청자완을마련한셈이다.

이런정황만으로본다면문공유는차를사랑하는다인(茶人)이었던것같다.그리고어쩌면국보115호<청자상감넝쿨무늬완>은그가평소가장아끼던찻그릇이었을지모른다.흔히한국의차문화에대하여우리나라는고려때가장융성했다고말하지만,이렇듯고려인들이썼던찻그릇만전할뿐그들이즐기던차의풍미와정취까지세세히알길은없다.다만,『고려사』나『고려사절요』에적힌바로는고려조정에서국가적행사인팔관회나연등회는물론각종연회에차를마련하였고,다방(茶房)이란관사를설치하여궁중의각종찻일을전담토록하였다.

일반백성들도차점(茶店)에서차를사서마실수있을정도로차문화가매우성행하였다.그런데,여러문집에실린바를보면고려시대음다방식은가루차나잎차를끓여맑은탕으로마시거나,차사발에가루차와탕수를섞어서마시는다유(茶乳)가있었다.한편,고려귀족과문인사회에가장성행했던차의종류는찐찻잎을갈아서틀에넣어찍어낸단차(團茶)였다.차나무의어린싹을따서만든고급단차는차맷돌에갈아고운가루로만들고잘저어서마셨다.

뜨거운물에티백을넣는오늘날로서는헤아릴수없는복잡한과정과법식을갖춰야했다.그렇다면국보115호<청자상감넝쿨무늬완>에는어떤차를담았을까?1123년개성을방문했던송나라사신서긍의『고려도경』에따르면12세기전반경고려의귀족과문인사회에는뇌원차같은토산품은물론중국산고급단차에대한기호가매우높았다.

아마도국보115호인<청자상감넝쿨무늬완>은고급단차를마시는데쓰지않았을까?청자완의곧게벌어진측면은차거품이일어난다유를마시는데매우적합할것이다.그런데맑은다탕역시상감청자완과아름답게조화를이루는것같다.맑은찻물아래은은히드러나는상감청자무늬는차의풍미와더불어고려다인들에게또다른즐거움은아니었을까?

필자:이애령(국립중앙박물관미술부)


출처:[국립중앙박물관]2월박물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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