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산보를 마치다(下)

제목;마녀산보를마치다(下)

글쓴이;유리알

날짜;2007-03-27오후1:31:52

램그리고지역문화


허유씨는브레인팩토리관장에게이색적인제안을받았다고했다.이는아직그가통의동으로이전하기전의일이다.삼청동문화보존에뜻을같이하는이들이모여그취지를살려깃발을달자는것이었다.그러나허유씨는무엇이됐든조직화되고운동(movement)이되는것이내키지않아거절했다고한다.허유씨개인의주관에일면공감이가기도한다.그러나그와관계없이,삼청동이라는지역이갖고있는문화와정신을지켜내는일은그지역에살고있는역시주민들의몫일수밖에없다는생각이든다.그들이지향하는것이무엇이든그들이원하는대로그지역의문화가형성되는일은당연한일이아니겠는가.그런의미에서브레인팩토리관장의시도는아주인상적이다.앞으로는그러한발상이지역사회를주도해가게될것이라고생각한다.

그런생각을나누던도중역시허유씨로부터들은얘기다.부천의어느재래시장에조그만갤러리가하나생겼는데,처음그갤러리를보는시장상인들의눈은별로호의적이진않았다고한다.서민들의생계가걸린시장통에한가롭게미술관이라니,어울리지않는일이긴했을것이다.그러나그갤러리는시장상인들에게무상으로아름다운간판을만들어선물하기시작하면서,지금그곳에새로운변화를불어넣고있다고한다.날이좀더풀리면그곳에가보기로했다.예술이사람들의가장현실적인삶속에어떻게파고들어갈수있는가를직접확인해보고싶다.

램은지금껏소호를이야기하면서우리가주목했던갤러리부류는아니다.그러나그렇다고해서램이소호를새롭게차지한명품매장의부류와같냐면,그건더더욱아니다.램에는자본의때가묻어있지않기때문이다.오히려소호에서사라져갔고,혹은더이전에파리에서사라져버린희귀하고아름다운핸드메이드숍의부류라고해야더적당할것이다.하지만허유씨는앞으로램이어떻게변할지는아무도알수없는일이라고말한다.그가한말의여운을나는이해하기로한다.현실적으로의류산업계에서브랜드가갖는힘은너무나막대하다.따라서램이언제까지나소규모맞춤의상실로남아있기만을바란다는것은,그저사소한내취향에관한얘기로그치고말일이될지도모른다.

이야기를하면서알게된거지만,허유씨는태생적으로분권과균형의식을지닌사람이라는생각이들었다.지금신사동도산공원사거리에서잘나가는숍을운영하고있는그의선배는어차피자본과프레스(press)가몰리는신사동이대세니패션을하려면그곳에서시작해야할것이라고충고를하다가,그와설전을벌이기도했다고한다.그는일체의고급문화가자본을중심으로집결되고전유되는것에반대한다고분명하게말한다.그리고그런생각으로처음삼청동에서램의문을열었다고한다.그런그에게요즘이동네에들이닥치고있는변화는불쾌하고안타까운일일것이다.

디그니티

말이나온김에패션은무엇이고,또패션에서파생되는문화란어떤것일까를좀짚어봐야겠다.그저옷을좋아할뿐패션전문가도아닌내가패션이란이런것이라고말할자격이있는지는모르겠다.그러나옷과신발은말할것도없고심지어작은헤어핀까지도값비싼고급명품으로세팅을해야만직성이풀리는,이른바럭셔리스타일링을완성도있는패션의코드인양호들갑을떠는요즘의세태는우습기만하다.그런획일성이야말로패션문화의빈곤함의극치요,자본주의의천박한일면을드러낼뿐인것이다.

우연한기회에『한겨레신문』의한기사에서아주유쾌한패션의정의를읽었다.하루2만3000명의방문을자랑하는패션블로그(http://thesartorialist.blogspot.com)를운영하고있는패션계전문종사자스콧슈만씨의말이다.

“멋진것보단흥미로워보이는게더중요한거같아요.흥미롭게보인다는건그사람을한번더보게만드는걸의미해요.그건성격이될수도있고,어떤내면적인게될수도있고,헤어스타일이될수도있어요.무엇보다난그사람의전체적인몸가짐과큰관련이있는것같아요.”그는또사람들의외모에서감동을받는때는언제냐고묻는작가에게지체없이‘디그니티(dignity)’라고답했다.즉패션에있어서디그니티를갖춘다는건,‘무엇에도흔들리지않는차분함의경지’라는것.

한여름에검정스타킹에하얀샌들을신고천천히거리를걷는여자를볼수있는곳이서울어디에있겠는가.삼청동이다.몇년전어둑어둑한이거리에서만난그날의오브제가평생내머리에서지워지지않을것같다.나에게삼청동은인터넷을떠도는맛집지도라든가,행인의발걸음을붙잡는말초적이고얄팍한상술의의미가아니다.흥미롭게보이는것이상의,슈만씨의부연대로디그니티를지닌삼청동의모습이야말로내가,그리고삼청동을진심으로사랑하는이들이지켜내고자하는가치일것이다.

맺음


램을통하여삼청동을오랫동안사유할수있었다.내가왜그토록램을마음에들어했을까를다시금생각해보게된다.그리고삼청동과램과내가벌써몇차례의봄을함께맞는동안,우리가고립이라는공통분모를지녔음을비로소이해하게된다.이말많은세상에서고립을자처하지않고는스스로를지켜낼수가없다.세상은끊임없이존재하는모든것들을유혹하고회유한다.그런세상에잠식당해서는아무것도아니다.물론램이유명디자인을카피하지않는것도아니며,내가누군가를흉내내거나그들과타협하지않는것도아니다.삼청동역시한편에서는인사동을모방하고자분주하게움직이기도한다.아무도그미래가어찌될는지는알수없다.또한이후로어떤길을택하든그것은그나름의운명이다.그러나잊지말아야할것은지금껏이들이견지해온자발적고립이야말로이들을특별하고독보적인존재로받쳐주고있는힘이되고있다는것이다.

이글을맺는일이쉽지않았다.처음시작할때와생각이많이달라져서다.트렌드는식상하기마련이고사회운동은또다른권력을낳을뿐이어서,거기에어떤인위적인노력이가미되든그순간부터삼청동거리의30년역사가가진디그니티는사라지게될것이다.그럼에도굳이마무리이야기를해야한다면이렇게말해두고싶다.휘청거리는대로,고독한대로지금존재하는이거리의모습이가장아름다운것이라고.다만거기서언제든그다움을고민했던흔적이발견되었으면한다.고뇌는지향하는것을이끄는힘이되니까말이다.

추신.
당신이누구든마음이허락하는어느날
화동피케이엠갤러리가있는골목끝에
다다라보라.그러면내가만난평화를
들을수있을것이다.그고요함에서린
위엄과평화가그대의지친귀를씻어내
는것을느낄수있을것이다.

삼청동주민허유,정영순

사고싶은램원피스

램에봄이….

즐거웠다,램의찻잔

피케이엠갤러리근처윤보선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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