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나무밑에는라일락나무의고요가있다
바람이나무밑에서그림자를흔들어도고요는고요하다
비비추밑에는비비추의고요가쌓여있고
때죽나무밑에는개미들이줄을지어
때죽나무의고요를밟으며가고있다
창앞의장미한송이는위의고요에서아래의
고요로지고있다
고요-오규원
또먹기만하면서하루를보냈다.아픈것에도다의미가있다지만
해질녘이면삭정이가슴이조인다.풍경들이점점멀어지고무엇이살
아있다는신호인지분별이되지않는다.꿈의제일밑층에살던냉혈
동물이불면증으로신음한다.머리위에두개의충혈된눈을달고
악어한마리집앞의호수에서떠오른다.악어우는소리를밤마다들으
며선잠에서깨어나불치(不治)의냄새로아침까지헤엄쳐간다.
악어는모두혼자산다.짝짓기의며칠과새끼키우는철을지나면
모두혼자서자고먹는다.날카로운3천개의이빨이악어의일생중에
부러졌다가다시생긴다.따뜻한기온에서부화된알은모두수컷이
되고차가운물에서는암컷만나온다.물에서는귀와코와기도를닫
고눈꺼풀하나도닫는다.악어는파충류,그렇게왔다갔다물에서도
땅에서도산다.고국과외국에서오락가락살고있는나도눈감고사
는파충류,또는양서류인가.
<fontcolor=”#828688″size=”2″>악어-마종기
물이빠진거대한연못
오래전눈에박힌풍경이나가지않네
장화신은발들이 몸속을저벅저벅걸어다니네
울컥고이는발자국들,
검고끈적한진흙이삼켜버리네
호미를든손들이
몸속에깊이박힌연뿌리를캐네
숭숭뿌리뽑힌자리마다
진흙이뱀처럼흘러들어스르르문을닫네
장갑을낀손들이
몸속에흩어진잔해를끌어모으네
이토록태울게많았던가
번제를올리듯어떤손이불을붙이네
타오르면서타오르지않는불의중심,
명치끝이점점뜨거워지네
눈이너무매워움직일수가없네
뇌수사이에서썩어가던기억의잎과줄기가
몇줌의재가되어가는동안
장화신은발들이불을둘러싸고서있네
그들이주고받는얘기가들렸다안들렸다하고
누구일까,내몸을재물삼아
마른연못속에서불을피우는그들은
마른연못-나희덕
고통을파내기위해몸을판다.그러나고통은끝나지않는다.
도구가문제가.
생각으로파내던몸을삽으로파낸다.살점이도려내지고피가흐르지만,그래도고통이숨어있는부위를제대로찾아내지못한다.
눈을감으면고통은직선으로온다.직선은차곡차곡쌓이지않고,되는대로엉클어져더아프고,해결할실마리를찾을수가없다.
눈을감았다떴다하며골똘히생각하면,고통은덩어리째떨어진다.의식을예리하게갈아,그칼로고통을자디잘게썰어낸다.
그렇게통점을찾다보면,잠시통증을잊을수도있다.그러나이내고통은다시시작되고,통점은더복잡한머리나마음에있을지모른다.
할수있는건다해봐야한다.우선큰그릇에다머리나마음을부어놓고식탁위에올려놓는다.옷을더럽히지않기위해앞치마를두르고젓가락을집어든다.
그릇에담긴나의뜨뜻한내용물들,그걸마주하고있는머리없는나의손과마음없는나의눈.
통점은분명히있다.할수있는건다해봐야한다\.
통점은있다-채호기
고개를숙이고,주방창문턱에놓고기른
제라늄화분을살피다가
아랫집지층에멈춘눈길을뗄수가없다
시멘트마당쪽으로개발사슴처럼다리를내놓고
방턱에앉아,장맛비를골똘히쳐다보고있는독거노인
등뒤로모시로짠발이누추한살림살이를가리느라
방안에빗금을긋고있다
벌겋게녹이이는우산을당신쪽으로받쳐들고
노인은움직이지않는다
시멘트마당한쪽에는장판을씌운평상이놓여있다
노인은평상에파문이는비를보고있다
나는이사가는집마다볕이들지않아창턱에식물을놓고길렀다
새로이사온집에도주방창문에제라늄화분을하나놓고
빨간꽃망울이맺히는가싶어며칠가슴을졸이다가
꽃잎맺힌자국이떨어져창아래를내려다본적있다
가난한집에는저녁에볕이다모여든다
다세대건축물사이로환한저녁햇살이내리고
박형준-피리
나는네가어디서오는지몰랐지
항상홀연히
너는나타났지
주위에아무도없는시간
그무엇도누구의것이아닌시간
셋집옥상위를서성이면
내마음속에서인듯
달언저리에서인듯
반토막작은울음소리와함께
네가나타났지
너는오직나를위해서인듯밥을먹었지
네밥은사기그릇에서방울소리를냈지
그리고너는물을조금핥았지
오직나를위해서인듯
너는모래상자를사용했지
너를붙잡아두고싶었지만
그럴수없었지
너는작은토막울음소리를내며
순식간몸을감췄지
숨바꼭질을하며졸음은쏟아지고
잠은오지않았지
그건동트기전이었지
우연히나는보았지
두집지붕너머긴담장위로
고단한밤처럼네가걷는것을
그담장에는접근금지경고판이붙어있지
너는잠깐멈춰
내쪽을흘깃보았지
잠깐비칠거리는듯도보였지
너는너무도고적해보였지
오,그러나기하학을구현하는내고양이의몸이여
마저사뿐히직선을긋고
너는순식간소실됐지
그순간사방에서매미들이울어댔지
그순간날이훤해졌지
그순간눈물이솟구쳤지
너는넘어가버렸지
나를초대할수없는곳
머나먼거기서너는오는거지
너는너무도고적해보였지
나는너무도고적했지
란아,내고양이였던-황인숙
비평가가뽑은올해의좋은소설과시
연합뉴스 입력:2007.06.2918:18
현대문학이각각1993년과1994년부터펴내고있는기획시리즈’현장비평가가뽑은올해의좋은소설’과’올해의좋은시’2007년판이29일단행본으로출간됐다. 소설분야에서김윤식,김화영,이남호,박혜경,심진경등5명의비평가들은지난해6월부터올해5월까지각종문예지에발표된신작중ㆍ단편가운데11편을뽑았다.
올해에는이청준의’그곳을다시잊어야했다’,이인성의’돌부림’등문단의대표적작가작품부터박민규의’아치’,백가흠의’루시의연인’,김애란의’도도한생활’등젊은작가의작품이골고루섞여있는것이특징이라고현대문학은설명했다.
이밖에▲고종석의’이모’▲공선옥의’폐경전야’▲김연수의’모두에게복된새해’▲김이정의’그남자의방’▲김태용의’풀밭위의돼지’▲윤대녕의’보리’등이선정됐다.384쪽.1만원.
시분야에서는이광호,문혜원,이혜원등3명의비평가들이시인의치열한정신,감수성의깊이와넓이등의기준에따라75편을선정했다.
책에는나희덕의’마른연못’,남진우의’白石’,마종기의’악어’,박형준의’피리’,오규원의’고요’,이병률의’절연’,장옥관의’꽃을찢고열매나오듯’,채호기의’통점은있다’,황인숙의’란아,내고양이였던’등의시가실렸다.216쪽.8천500원.
Daniil Shaf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