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위에서한노인이손에무언가를쥐고있다.짐바브웨의전통악기인은비라다.엄지손가락으로튕겨연주한다고하여일명엄지피아노로알려진악기다.갖고싶다고하니흔쾌히주고떠난다.단돈몇푼을안겨주었지만미련없이갈길을가는그의뒷모습에서초원위의성자를본다.초탈한모습이다.마시빙고를떠나려니그노인의모습이자꾸만아른거린다.버스에몸을싣고짐바브웨제2도시인불라와요로향했다.중간정류장마다과일등먹을거리를손에든상인들이창가로목을들이민다.
오후에도착한불라와요는바쁘지가않다.시민들이한가롭게거리를산책하는모습에서여유가느껴진다.빅토리아폭포행기차를타려면시간은아직많아남아있다.시립미술관격인불라와요내셔널갤러리를찾았다.전시품엔가격표가붙어있고12개의작가스튜디오가함께있어작업실도구경할수있다.작가와직접가격을흥정할수도있어컬렉터들에겐매력적이다.
이날도서구관광객들이스튜디오를찾아작가와흥정을벌이는광경을볼수있었다.적극적으로대중에다가서는미술관모습이다.큐레이터가작가와작품소개는물론판매까지알선한다.오후5시에문을닫는갤러리를나서니가로등이하나둘불을밝힌다.
◇은데벨레여성의예술적감성을한국화로풀어낸김종우의‘여인’.
불라와요기차역에서빅토리아폭포행밤기차에몸을실었다.끝없는초원위를달리는기차는중간역들에서쉬었다가기를반복하면서어둠속을질주했다.
불빛한점없으니암흑에빠져드는착각을불러일으킨다.기차여행은언제나낭만적이게마련.이웃침대칸에선흥겨운노랫소리가끊이질않는다.
대학에서가구디자인을전공한다는호주청년은100일간아프리카를여행중이라했다.홀로아프리카배낭여행중인일본청년도눈에띈다.한데어울려춤판을벌였다.
기차는지쳐쓰러진그들을침대에누인채아침으로달려갔다.정차역마다원숭이들이어슬렁거리며눈길을준다.14시간달린끝에빅토리아폭포역에도착했다.
역인근숙소에짐을풀고잠시눈을붙였다.현지인가이드가잠베지강의석양뱃놀이가일품이라며잠을깨운다.저녁놀을바라보며즐기는간이선상파티다.간단한음료와주류가제공된다.짐바브웨의춤과노래가흥을돋우고하마와악어떼가배를따른다.잠베지강너머로해가진다.흐르는물과함께시심도흐른다.
밤이찾아왔다.허름한숙소엔음료와맥주등을파는구멍가게가하나딸려있다.그앞에서세계각지에서온젊은이들이맥주병을비우고있다.술기운이오를무렵구멍가게에선힙합음악이흘러나온다.젊은이들이음악에맞춰몸을흔든다.특별한조명과무대가없어도젊은이들의움직임은바람에나부끼는나뭇잎처럼현란하다.아프리카에서음악은초원위의바람같은것이다.
침대에몸을던졌다.폐철로만든가면등장식이이채롭게눈에들어온다.단순하지만시각적호소력이대단하다.숙소벽면에그려진문양과어우러져예사롭지가않다.커튼문양도마찬가지.원색의능란한조합이놀랍다.이지역을삶의터전으로삼고있는은데벨레족의타고난예술적감성이느껴진다.은데벨레족이색채의마술사로불리는이유를알것만같다.벽에그려진은데벨레문양을살펴보던김종우작가는“검은색과흰색으로원색을깊게조율하는기법이놀랍다”고평했다.
◇원주민들이‘천둥치는연기’로불렀던빅토리아폭포.
문득춤판에서원색옷차림으로어우러지던흑백청년들의하모니가은데벨레의색채혼합의뿌리라는생각이든다.아프리카를여행하다보면초원위에원색의옷을입고나무그늘에앉은여인의모습이환상적으로느껴질때가많다.바로은데벨레색채의어울림이다.서구작가들을매료시킨것도바로이런것일게다.
은데벨레사람들의벽장식디자인과구슬세공장식의색채·패턴은다채롭다.기하학적인구성에꽃,뱀,새그리고작은동물들까지녹여내고있다.요즘엔알파벳문자,숫자,빌딩,비행기등이소재로사용되기도한다.기하학적인문양이단순한것같으면서도원색의조화로모던한느낌을준다.유럽작가들과디자인계가주목하는이유다.
은데벨레족이호전적인주변종족과맞서생존할수있었던것도이런예술적전통이구심적역할을했기때문이다.400년전부터은데벨레어머니들은딸에게현란한색과기하학적인무늬로벽이나몸을치장하는것을가르쳐왔다.‘칼’대신‘색’으로종족을지켜온것이다.
잠비아와짐바브웨의국경을흐르는잠베지강래프팅에도전했다.단애가아찔하다.검은빛을내는돌이조각처럼서있다.급물살과서너시간겨룬끝에도착한곳엔통가족의터전이있다.각종돌과나무로만든조각상품을좌판에벌여놓고호객행위를한다.여행객의옷,신발과자신들의상품을바꾸자고조르기도한다.
아프리카를여행할땐옷과신발등을여분으로가져가물물교환의재미를맛보는것도좋다.물에젖은냄새나는양말마저벗어달라기에할수없이벗어주니목거리하나를주며이젠티셔츠를벗어달라고야단이다.자칫벌거숭이가될판이다.공산품이부족한아프리카에서흔히볼수있는풍경이다.비로소내가너무많은것을소유하고있음을깨닫는다.
빅토리아폭포앞에섰다.물보라가물안개가되어피어오른다.떨어지는물을바라보고있으려니폭포계곡으로빨려들어갈것같다.장엄하다.물보라가‘자연의성수’처럼몸을적신다.우비도없이폭포주위를거닐었다.온갖삶의찌꺼기들이씻겨지듯정신이맑아진다.물줄기가물보라에얼굴을살포시감춘다.존재의실상도그러하리라.피어오르는물안개가계곡의바위들을감싸안고부유하듯떠다닌다.폭포수떨어지는소리가큰북을두드리듯멀리퍼진다.자연의리듬이다.원주민들이‘천둥치는연기’라했다하지않은가.
리빙스턴의동상이폭포를내려다보고있다.앞서가던화가김종우가몽유도원도를그린안견이이자리에섰다면또다른명작을남겼을것이라고말한다.햇살이물줄기를화폭삼아오색무지개를그려놓는다.빅토리아폭포가구름을만들어내는공장같다는화가권순익은용오름처럼솟구치는힘에전율이느껴진다고말했다.
폭포수가천길낭떠러지로내리꽂힌다.힘찬붓질같다.물의퍼짐과솟구침은동양화의수묵을닮았다.옷이흠뻑젖도록두작가는서너시간을걸었다.무릉도원화폭속을거니는양마냥신났다.오늘만큼은신선이다.작가들의화폭도벌써빅토리아폭포수로채워졌다.
불라와요(짐바브웨)=편완식기자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