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책들안에는꼬물거리는벌레도살고책곰팡이로실내공기도안좋아요.”
결국거실과안방벽을빙둘렀던책장들이거의철거됐습니다.
책들은박스에넣어져베란다구석의컴컴한창고로들어갔지요.
책들은집안의‘공적(公敵)’으로몰릴때가많았습니다.
몇년전에는제가출근한틈을타,
아내가‘변색되고먼지덮인’기준으로책들을대대적인숙청이있었지요.
그때는“남편밥벌이의도구를너무괄시하지말라”며저항했습니다.
그뒤암묵적휴전의세월이흘렀지요.
이번에는상황이달랐습니다.
“이좁은아파트에서보지도않는당신책들이차지하는면적을따져봐요.”
아내는아파트면적당가격과내책들이깔고앉은면적을계산한뒤,
“2억원이넘는다”고선언했습니다.
헌책가격시세로모두20만원도안될책들이,이중에는일년내내한번도
손길을받지않는책들이2억원의공간을까먹고있다는것은말이안되지요.
속이뜨끔할즈음,“평생안볼책들을왜쌓아둬요.
그것도욕심이고허세지”라는질책까지들었습니다.
좁은아파트에서잠깐방심하면책들은늘어납니다.
때가되면밭에서김매듯이한번씩책들을현관밖으로솎아줍니다.
그래도책들은쌓이지요.
마치생물체가번식하는것처럼.
아무것도안갖추고살아도,
세월이흐르면살림살이가한트럭이삿짐이되는것과비슷한이치지요.
솔직히책들의면면을따져보면다버려도됩니다.
시간의흐름속에살아남을책은별로없습니다.
그럼에도지금안보는책들을선뜻버리지못하는것은,
언젠가내가좀더한가해질때면,볼지모른다는기분때문이지요.
하지만우리삶에서지금못하는것은대부분나중에도못합니다.
“내일내일”하다가종말이오는것이지요.
매일쏟아져나오는책들을따라잡기도힘든데,
무슨정성으로먼지속에쌓아둔과거책들을들추어읽을까요.
옛날책은활자도작고변색되고퀴퀴한냄새도납니다.
저는“남겨줄것도없고이책들을아이들에게유산으로물려줄까?”라고했다가,
자식들의비웃음을샀습니다.
‘요즘젊은친구들이책을읽지않는다’는식의개탄에는동조할의사가전혀없습니다.
한번가면다시못오는청춘시절을책속에파묻혀보내는것은
삶에대한예의가아닌것같습니다.
세상에는책보다재미있는게널려있지요.
출판업계가들고일어날지모르나,
책이란인생의재미있는일들이시들해질때쯤읽는것이지요.
혹은불가피해서읽는것입니다.
사실책을안읽어도잘살며,성숙한인간이되는데도전혀지장이없습니다.
독일의철학자쇼펜하우워(1788~1831)는이렇게말했지요.
“우리들의머리가독서를하고있는한,
그것은사실타인이만들어놓은사상(思想)의운동장에불과하다.
남이만들어놓은발자국만따라가는격이다.
이는마치늘말을타는사람이스스로걷는것을잊어버리는것과같다.
책을많이읽어바보가되는것이다.
그러므로때로는멍하니시간을보내는것이거의하루종일을독서로보내는사람보다는낫다.
왜냐하면그시간동안스스로생각하는능력을기르기때문이다.”
중국의장자(莊子)도책을‘알맹이가빠진지게미(糟粕:조박)’쯤으로봤지요.
책에는이미박제된것만들어있는데,
책에만매여그속을맴도는것을경계하는것이지요.
책의굴레에매이는것은차라리책을읽지않음만못합니다.
혹시그동안책을너무경배(敬拜)해왔고,
실체가아닌책의환영(幻影)만을봤던게아닐까요.
이제책에대한콤플렉스에서벗어나십시오.
지금까지생업에바빠책안읽는‘성인’을위한변명이었습니다.
책을뽑아든자녀들에게는이쪽지를읽히지는마십시오.
추석연휴로다음주‘토일(土日)섹션’은쉽니다.이점독자들의양해를구합니다.
즐거운연휴보내십시오.
발행일:2007.09.22(최보식기획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