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에담긴자판기블랙커피를들고그녀에게다가갔다.
그뒤에도그분은같은옷차림으로여러차례매장을찾아왔다.
그녀의방문이잦아지기시작한어느날,나는그녀를위해큰머그잔을하나구입해서매장에갖다놓았다.
나중에그녀가피아니스트였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
“당신이커피를담아준그큰머그잔을영원히잊지못할거예요.”
그날그녀가선물한니콜라예바의바흐와스비야토슬라브리히테르의슈베르트음반을종일들었다.
4.어느날그녀가혼자왔다
늘남편과함께매장에오셨고,남편은꼼꼼하게새음반을확인한뒤1~2장의신보를구입해서돌아가곤하셨다.
남편의일방적인클래식음악사랑으로티격태격하는여느부부의모습과별다름이없었다.
부인이보기에남편의음악사랑은병적인수준이었다.
남편이음반을고르는동안그녀는매장소파에앉아서주변사람들에게전화를걸었고,
그러던어느날부터부부의모습이보이지않았다.
부인은겉보기에변함이없었지만,심경의변화라도있었는지혼자서매장을찾아와음반을구입했다.
남편이너무나사랑했고새로운음반이나올때마다무조건모았던음악은
산부인과원장이신그분은음반에대해웬만한매장직원들보다더많이알고계셨고,
그분은오실때마다늘브람스의삶에대해이야기를해주셨다.
“브람스이야기를할때마다자네의그눈빛이너무도애절해서매장을찾을때면내마음이뿌듯했네.
이음반을들을때마다원장님을잊을수없었다.
하루는“이많은음반들을어떻게하시려고모으세요?”라고물었다.
그러던어느날전화가걸려왔다.“원장님께서얼마전에돌아가셨다”는말씀이었다.
며칠뒤매장옆오디오가게에서음반1장에1000원씩받고2만5000장을모두처분했다는말이들렸다.
어렵게구입한그음반은더이상수입이되질않았다.
음반점에서일하면새음반주문과재고관리부터매장청소까지많은일이뒤따른다.
“폐반인줄알았는데다시나오는군요.정보감사합니다.”
“이제아기가돌이지났겠군요.얼마전배부른모습을보았는데.”
“지난달추천해주신음반을지인(知人)에게선물했어요.너무좋아하더군요.”
오늘도오전10시에음반점의문을열고거리를내려다본다.
TheWell-TemperedClavier
Book1PreludesandFuguesNos.1~Nos.12
BWV846~BWV857
JorgDemus,piano
(1953-1954Westminster)
형광등형체희끄무레남아있듯이,
눈그치고길모퉁이눈더미가채녹지않고
허물어진추억의일부처럼놓여있듯이,
봄이와도잎피지않는나뭇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