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 류 근 ( 2008-12-02 오전 11:22:34 )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직 아픈 사람이 있어 내 청단풍잎 같은 손바닥으
로 그의 이마를 짚어줄 수 있으면 좋으리. 문득 겨울을 맞은 나무처럼 삶
의 지붕이 쓰라린 사람일 때엔 낮은 데서 빛나는 종소리 한 줌의 무게로
다가가 그의 가슴을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으리.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
은 깊어진 음성으로 먼 눈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으리. 손
금이 마주치는 순간의 평화와 안식을 얹어줄 수 있으면 좋으리. 그러나
아아, 그 아프고 쓰라린 사람이 영원히 나여서 단 하루라도 돌아가 그의
손끝에 내 이마와 어깨 눕힐 수 있으면 좋으리. 멀고 깊은 눈나라에 고요
히 갇힐 수 있으면 좋으리.
– 부치지 못한 편지  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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