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의‘지구위의작업실’⑥]‘미신적음악감상’과‘지적감상’사이
기사입력2009-01-0512:12[신동아]
‘내이름은건이야.마를건(乾),건씨라고나를불러줘….’연애의계절풍이다시불어온다면상대에게요즘이런글발을날리고있을것같다.‘가(감흥)이사망하도다.’감흥없는이마음을연애는이렇게표현하게만들것이다.연민은‘련민’이되고해돋이는‘해도디’로,평상시는‘평상소’로,가소롭다는‘가로솝다’로배배꼬인다.맞춤법에승복할수없는팍팍한기분.그어감의심리학을판독해주고답장을보내줄사람이이젠없다.연애상대가없는건생물학적인현상이고,인류학적으로대범하게그러려니한다.문제는도대체‘가이없는것이다.음악말이다.세상에나!음악이나를울리지도죽이지도않는다는말이다.토요일오전부터일요일밤깊은이시간까지판을돌리고돌리고또돌리고있으나내이름은‘건’이에요.가이는대체오데로갔나?
책상위에방금까지듣던LP박스세트를올려놓아본다.콰르테토이탈리아노가연주한9장짜리모차르트현악4중주전집이다.메이드인홀랜드란글자가선연하게박혀있는필립스오리지널이다.4명의멤버가운데제2바이올린엘리사페그레피가할머니로쭈글쭈글해지기전중년초입의넉넉한표정으로재킷을장식한다.값비싼최고수급연주집이다.전반적으로속도가느릿느릿한제18번A장조,쾨헬(KV)464번을오르토폰주빌리카트리지로샅샅이들었고그직전에섬세하기이를데없는고에츠실버그라도로제17번을완청했다.음악칼럼을줄창쓰던시절이라면무언가말을만들었을것이다.모차르트생애어느시기의작품이고연주자들은무엇을표현하고싶어했고어쩌구저쩌구.그러나나건씨아저씨는지금모차르트조차‘가로소울’판이다.웬일이니?
삶은비(非)가역
읽기싫은데책을읽고,듣기싫은데음악을계속듣는다.살고싶지않을때가있건만계속살아가는것과동일한이유다.좋으면하고싫으면그만두는것이불가능한비가역적영역이인생에있다.가령이순간부터내가책읽기와음악듣기를완전히중단한다면이전까지의생을총체적으로부정하는것이된다.그럼그다음엔무얼하지?땅을파나,산을타나,주식부동산같은재테크쪽으로눈을돌려보나.좋으나싫으나,미우나고우나가던길을계속가고하던일을계속해야만하는영역이있다.그것이비가역이고불가역이며,다른말로팔자고숙명이다.
이번엔컴퓨터옆에바닥부터쌓아올린책들에눈을준다.장하준의‘나쁜사마리아인들’.필경이책을금서(禁書)로지정한국방부덕일것이다.주위사람상당수가이책을읽었거나구입했다.‘참나쁜’신자유주의세계화에대한비평서다.사마리아인들보다는체감숫자가적지만리처드도킨스의‘만들어진신’도상당한독자가있다.누군가망상에시달리면정신이상이라고하지만다수가망상에시달리면종교라고부른다는,진화생물학에입각한강렬한종교비판서다.간혹주경철의‘대항해시대’의독자도목격된다.고교시절의수업으로더이상의학습을끝내고마는것이세계사분야인데근대세계가어떻게형성되었는지새로운시야를제시한멋진책이다.아주드물게독자를만날수있는데,너무도알려지지않아신비로운느낌마저드는저자김상태의‘도올김용옥비판’도있다.3쇄째책이다.꽤여러권나온김용옥비판서의결정판으로봐도될것같다.
전우용의‘서울은깊다’는이른바인문적소양이넘쳐나면이런정도의글맛과함량을보일수있다는사례가될만한책이다.나이좀들고생의무게와근력이부풋한사람이라면마음먹고읽을만하다.여기에홍성욱의‘과학에세이’,서병훈의‘포퓰리즘’,도정일의‘시장전체주의와문명의야만’등도추가된다.출간재출간을거듭한김열규의‘메멘토모리,죽음을기억하라’도있고베르나르앙리레비의‘그럼에도나는좌파다’가또있다.다자이오사무의‘나의소소한일상’은?에릭홉스봄의‘폭력의시대’는?
모차르트에사로잡힌영혼
권장도서목록을만들려는것이아니다.작업실컴퓨터옆에쌓여있는근래읽은책목록이다.정리해보자면첫째,방향도취향도짐작할길없는‘구구리잡탕’이라는것.둘째,문학책예술책이없다는것(다자이오사무책은신변잡기를쓴생활에세이다).셋째,근간의지적동향이반영되어있다는것.내가듣는음악이그렇듯이정처없는독서의실상을쌓여있는책이증명한다.활자에눈을박다가잠시커피놀이를하다가더많은시간은음반을돌리며보낸다.부러워하시든세월좋네타박하시든맘대로하시라.
물론밥벌이하러세군데방송사를부지런히뛰어다닌다.간간이집에들러가족도만나고드물게친구도만난다.‘여인’쪽은주둥이만동동뜬채실체가없어진지오래다.나이들어신체의기계작동이빌빌해지면여인이란공포의대상이된다.기회근처까지가도스스로포기해버린다.그렇다고‘정신스럽고겉멋스러운’플라스틱아니,플라토닉퍼피러브를꿈꾸기에는늙었고낡았다.
요컨대무엇에붙들려서혹은무엇을채우면서살아있는날들을보내고있느냐는것이다.장하준이나도킨스인가.친구거나먼그대들인가.아니면밥벌이방송마이크인가.혹시모차르트인가.빙고!모차르트다.정확히말하자면모차르트들,그것으로채우고싶다는말이다.
잠시주문을외워본다.오블리비아테!좋은기억만남겨두고나쁜기억은사라지게만드는주문.어떤커피숍이름이었는데알고보니해리포터에나오는거란다.이하출전을모르는주문들이다.루프리텔캄!모든것을이루어지게한다.세렌디피티!생각지못한귀한것을우연히발견하게하는행운의주문이다.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걱정마다잘될거야,라는위로의주문.마하켄다프펠도문!슬픔과고통을잊게해주노라.
음악을사랑하지않는연주자들
웬주문들인지짐작이가시는가.일생토록내게는모차르트들이,그러니까온갖작곡가연주가의이름이며존재가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다잘될거야,같은구실을했던것이다.마하켄다프펠도문,슬픔도괴로움도견뎌낼수있게만들었던것이다.클래식음악에전념하기전에는때로밥딜런이,또때로마일스데이비스나존콜트레인이그러했다.루프리텔캄,오블리비아테!그러니까이것은음악의미신적단계다.사랑하는여인에게환상을품는것과흡사하다.음악에앞서음악가들의생이더중요하게여겨지고그들이겪은삶의고통과노고,그들만이느끼고이해한어떤비경이내것으로다가온다.많은것이과장된오해에서비롯될수있지만개의치않는다.고흐나뭉크의생애사실이다른모든회화작품을압도해버리는것과유사한단계다.
대학시절,영어에까막눈인록음악광(狂)을판가게에서만나알고지낸적이있다.그는내게홀(Hall)이라는글자를가리키며힐?하고물었다.네,힐이요,라고나는답변해주었다.그는모든음반을재킷의그림으로판별하고있었다.날마다10여종이상의신보가해적음반(빽판)으로나오던시절이라없는판이없던그때그는모든음반을다듣고모든뮤지션을다알고있었다.그리고내게열심히설명해주었다.불가사의한정보량에믿을수없는소스였지만그의설명을듣고음악을들으면평면이입체로다가왔다.가령그는캐나다3인조록그룹러시(RUSH)의음악을추종하는4대학파가캐나다최고명문대학마다포진해있어엄청나게논쟁중이라고했다.각학파간의논쟁이캐나다대학계의최대관심사라고했다.실제로‘국립캐나다대학교’가존재하는지는모르겠지만러시의음악을토론하는석학들의학술회의장면에대한그의실감나는묘사는가슴을설레게했다.
나는실제로당시숭배하던록그룹슈퍼트램프의풀스오버추어(Fool´sOverture)음반의예술성과사회성에대해그런학계에나가발표할내용을정리해본적도있다.네오레프트를이끄는마르쿠제도등장하고나치히틀러의집단광기도거론하는아주현학적인내용이었을것이다.
‘여인의사랑과생애’
일생토록이미신적단계에서음악을섬기는것은충분히가능하다.신빙성있는지식이나음악학적이해와음악을사랑하는것사이에상당한간극이놓여있기때문이다.간혹만나는연주자들가운데음악을전혀사랑하지않는모습을발견하고놀랄때가있다.그들에게음악은엄마가강요한업보이고숙제처럼보인다.하지만우리네미신음악애호가들은밥안먹고잠안자고때로화장실갈시간도아까워하며음반을돌려왔다.푸르트벵글러는신이고카살스는산신령이고시게티는아버지중의아버지이고뭐그런식.간혹전공자중에도미신음악가가있는데,줄리어드씩이나나온내친구피아니스트김진호는역사상딱세명의피아니스트만존재했다고단언한다.호로비츠와루빈스타인과라흐마니노프.녀석은중국피아니스트랑랑의현란한콘서트를다녀와탄복하는나에게차라리원숭이서커스를구경하라고비아냥거렸다.
미신적음악감상에서음악적요소는소리와연상작용이다.소리,즉사운드는자극이다.피아노의자극과타악기의자극은원리적으로흡사하지만반응은엄청나게다르다.바이올린과비올라,비올라와첼로,첼로와콘트라베이스,이렇게순차적으로규모가달라지는현악기간의감각적차이와그것의앙상블을가닥을추려쾌락으로받아들일때이른바‘미치는기분’에도달한다.듣는귀가뚫린자의기쁨이그것이다.그리고감상자는자유로운연상을한다.센티멘털한감성이주된것이겠지만그연상을대개‘해석’의과정으로이해한다.
이때작품본래의의미와내용에얼마나적실히닿았는지는그다지중요하지않다.독일계예술가곡을들을때특히그러한일이벌어진다.나는슈만의가곡을대단히좋아한다.샤미소의시에붙인연가곡‘여인의사랑과생애’같은경우는남자인내가내노래라고주장하는정도다.하지만슈만이가져온시들,하인리히하이네나뫼리케,뤼케르트,아이헨도르프의시편들을번역으로접하면민숭민숭하기이를데없다.슈만최고의걸작가운데하나인‘이아름다운오월에’의내용을보자.
이아름다운오월에
모든꽃봉오리들이열릴때
내마음속에
사랑이꽃피었네.
이아름다운오월에
모든새들이노래할때
내동경과소원을
그녀에게고백했네.
질풍노도시대로맨티시즘시어의뉘앙스를원어로체득하지못하는한노랫말이주는감흥은참싱거울것이다.이곡에대한전문가의설명을들어보자.
‘짧은전주곡속에서조성은올림바단조와가장조사이에서흔들린다.노래가시작되면서도여전히각화성변화가예기치못한느낌을준다.피아노아라베스크(하나의악상을화려한장식으로전개하는악곡)가먼저독자적으로형성되고,뒤에가창의보선이고안된것으로보인다.열린종지는불확정성작곡법을생각나게한다.종지의풀리지않은딸림7화음은슈만이이곡에서경계와종결을지우면서사전작업을했음을가리킨다.’
알듯말듯한설명이긴한데이것으로노래의감흥을느끼기는불가능에가깝다.가사는싱겁고해설은번거롭기만하다.하지만트렌치코트차림으로노란꽃앞에서있는젊은페터슈라이어의음반을들어보라.어떻게설명할길없는페이소스로숨이막혀온다.당연하지.노래나연주는들어봐야맛을안다는것은강조할필요도없이당연한말이다.그럼에도거론하는것은연상작용의의미때문이다.특정한연상이고착될때그곡은나만의유일버전으로변한다.먼옛날의그녀들가운데클래식음악을애달프게사랑하던그녀가내게말해주었다.영문학과에입학한그녀가철학과강의를신청했는데첫시간,교수는수업에앞서슈만의‘이아름다운오월에’를원어로부르더라고.마틴부버의‘나와너’를번역한표재명교수였다.그런봄날을지금상상이나할수있겠는가.오랜세월이흘렀지만지금도나는슈만의가곡,특히이곡을접할때마다떠오른다.개나리가‘너무하게’(옛친구가많다는뜻으로자주쓰던표현)피어나던봄날의개강식,‘흐윳’길(이대안의가파른언덕길)을넘어도달한여자대학강의실,쑥스럽지만진지한표정으로열창하는철학교수의표정,여고를갓졸업한초롱초롱한동경의눈망울들….(그녀는지금도슈만을사랑할까?)
‘차원높은음악감상?’
미신적음악감상에서탈출하여좀더앞으로나아가는수가있다.곡의정확한내용에대한이해의욕망이생겨날때다.언제까지나상상과환상만으로,그러니까자의적인음악이해에머물러있을것인가.옛날음악학자데이비드랜돌프는음악의‘지적즐거움’이라는표현을썼다.악곡의내용을이해하고듣는사람이느끼는기쁨이바로지적즐거움이다.
지적인음악감상의출발은곡을구성하는여러부분의상호관계를인식한다는뜻이다.다른말로해서형식을이해하는것이고작곡가가고안한악상이변화되고전개되는과정을따라가며듣는것이다.형식의이해란곡에제시되어있는주제와변주혹은미뉴에트,스케르초,론도같은형식의의미를깨닫는것이다.주제와변주는변주곡을열심히들어보면접근이가능하다.가령JS바흐의골드베르크변주곡을열심히들으면깨닫기쉽다.첫부분아리아가30회다른형태로변용되는데3분남짓한짧은아리아의선율을기억하는상태에서들으면꽤선명하게다가온다.주제와변주는각종실내악곡이나소나타양식의교향곡에서아주중요한개념이다.슈베르트의피아노5중주‘송어’의4악장이나현악4중주‘죽음과소녀’의2악장은변주의교과서로여겨도될법하다.랜돌프가특히권하는대목은베토벤9번교향곡의느린악장과합창피날레부분이다.‘환희의송가’주제를연주하는시점부터시작해서마지막악장전체가오케스트라,독창자,합창간의거대한주제와변주로구성되어있기때문이다.
미뉴에트나스케르초같은형식의이해는낱말뜻만으로는파악되지않는다.도저히춤출수없는미뉴에트,전혀장난스럽지않은스케르초가얼마든지있기때문이다.악장형식에대한이해는정확히말해서구조에대한이해를말한다.가령미뉴에트는3부로이루어진형식을뜻한다.각섹션은그안에시작의느낌과종결의느낌을감추어놓고있다.그같은온갖약속과규칙성,그리고그러한규칙의파괴를파악하며음악을즐기는것이지적음악감상이라고할수있다.
사실나도이런식의‘차원높은’음악감상을해보겠다고끙끙거린적이꽤있는데즐거움절반,피곤절반이었다.전자는작곡가에게더가까이다가갔다는기분에서고후자는물론광분상태를벗어나버린다는점에서다.아마도미신단계와지적단계의선택에는각자의기질이크게작용할것이다.어떤방식에도달하든공통적으로필요한사항이하나있다.반복청취의필요성이다.설사곡의구조와형식에대한몰이해속에서라도특정한곡을외울정도로반복해듣다보면생소한곡들로하나하나감상범위를넓혀가는데크게도움이된다.지적인음악감상이란‘음악’을듣는것에초점이있다.반면미신적감상은음악보다그음악의전설과음향을중심으로듣는것이다.‘음악사의뒤안길’식으로전해내려오는유머러스한일화가많은데그중하나가기억난다.
바그너의가극‘트리스탄과이졸데’의초연이있고나서바그너음악의대표적비판자인한슬리크에게바그너숭배자가관람소감을물었단다.
“부분적으로는마음에들었으나부분적으로는전혀마음에들지않았습니다.”
한슬리크의답변이이랬다.어느부분이마음에들지않았느냐고숭배자가다시묻자한슬리크의간명한답변이돌아왔다.
“음악입니다.”
(많이웃어야맞는건데)어쨌든음악과음악의전설이구별되는예화다.
전설의명기에빠져
전설은책과음반재킷의글귀를통해,소리는오디오로접한다.미신적감상자들에게는음악듣는도구에도어떤일치점이있는것같다.바로아날로그의곁을좀체떠나지못한다는것.아무리노력해보고적응해보아도사운드의쾌감은LP의끈적한느낌을따를것이없다.LP냐CD냐하는것은음원추출과정에서접촉비접촉이빚어내는원초적느낌의차이다.덧붙여복잡성이냐단순성이냐의문제도함께한다.카트리지(바늘)가소리를파내는LP는접촉이고복잡이며,광선이스쳐지나가는CD는비접촉이고단순이다.아무리편견을털고공정하게느껴보아도공허한CD사운드에서도취의열광을찾기란힘겹다.사실오디오계에서는이미판정이끝난쟁점이기도하다.
최근에턴테이블을한대더들여놓았다.이제총네대의턴테이블에여섯대의톤암을걸어놓고번갈아가며음반을튼다.먼저턴테이블을구동시키는원리를알아야한다.판이올려지는면을플래터라고하는데이플래터를어떤방식으로돌려주는지에따라음질의성향이크게갈린다.가장초기방식이면서빈티지오디오애호가들이가장선호하는것이아이들러방식이다.모터가고무로된링을돌려주고그링이플래터와맞물려돌아가도록고안된방식이다.아이들러턴테이블에서는아랫도리저역이꽉찬듯무겁고단단하고깊이있는소리가재현된다.단점은우릉우릉하는잡음,소위럼블이발생하기쉽다는것인데그정도문제는소리의깊이감으로감내할수있다.
내가사용하는아이들러턴테이블은1940년대독일에서방송국용으로딱800대를만들었다는EMT927F이다.당대최고급최고가턴테이블로군소방송국들은하위모델인EMT930으로달랬다고한다.지금도전세계애호가들은전설의명기(名器)927턴테이블을최종목표로삼는경우가많다.그야말로‘아기다리고기다리’하여이물건을입수하던때의감격이삼삼하다.여기에997과297두대의롱톤암을부착하여스테레오는EMTTSD15카트리지를,모노는오르토폰의1950년대초반모노카트리지를사용한다.아마도EMT927같은항공모함급턴테이블은다시만들어지기힘들것이다.그때의장인들은이제세상에없으니까.
아이들러방식에서더진화한것으로그후에개발된것이벨트드라이브방식이다.모터와플래터사이에고무벨트를감아돌리는방식이다.아이들러같은리지드방식(고정되어있는)의뻑뻑한느낌으로부터해방되고자플래터를플로팅(띄워놓은)시킨것인데사운드는낭창낭창여리고섬세해진다.거의대부분의턴테이블이벨트방식이라고보면된다.나는미국산VPI의HF4모델을사용한다.VPI사에는T.N.T라고부르는플래그십모델(최상위모델)이따로있다.내게는뼈아픈기억이다.어떤실수로T.N.T값을주고하위품인HF4를구입했던것이다.오디오기기를구입하다보면어이없게옴팡바가지를쓰는경우가종종있다.어쨌거나HF4에SME5톤암을부착해오르토폰주빌리카트리지를사용한다.뭔소리인고하니세상에서제일좋다는숏암에중상급현대카트리지를사용하는거라고알면된다.아주개방적이고울림이커다란사운드로서음흉한EMT쪽과크게대조를이룬다.
한쪽으로치우친인간들
아이들러와벨트방식의장점만취하겠다고개발된턴테이블이있다.모터가아이들러고무링을돌리고그링이벨트에감겨플래터를돌려주는복합방식이다.지난몇년동안국내애호가들에게회오리바람을불러일으켰던스위스토렌스사의TD124가그것이다.한때는영국제가라드301이아니면안되는것처럼여기던시절이있는데그가라드를밀쳐낸놈이바로TD124이다.턴테이블을얹는보디가중요해서내경우는거대한자작나무한그루를통째로적층해좀과한크기의몸체가만들어졌다.롱암으로SME3012R,숏암으로독일클리어오디오사의초현대식티타늄톤암을사용한다.각각SPU실버마이스터,고에츠실버그라도카트리지를사용한다.중립적인사운드라고나할까.토렌스를사용할때면이렇다하게치우친느낌이들지않는다.그만큼안정적이고어찌보면평범한음색으로여겨질수도있다.지금도이베이에꾸준히매물이나오는데그리비싸지않은터라언젠가아날로그에도전하겠다는의지가있다면고려해볼만한턴테이블이다.
모차르트의고향잘츠부르크.
세상에는꼭치우친사람이있다.이TD124턴테이블모터의윤활유로순록의머릿기름이최고라하여그걸한드럼이나구해놓았다는일본애호가의무용담을읽은적이있다.국내애호가한분이TD124모터전용기름을왕창수입했다고광고를했다.나도그걸덥석샀는데그분량이라니….한100년쯤사용하면절반이나쓸까.
턴테이블모터구동방식으로최종의것이면서실패한방식이다이렉트드라이브이다.아무런중간단계없이모터와플래터가직접연결된다.그만큼정밀해야하고기능적으로탁월하다.그런데실패했다.일본의저가품공세때문이었다.다이렉트방식이개발되어EMT사가950모델같은최고급선수를내던시기에일본은값싼보급품턴테이블에다이렉트방식을도입했다.원가절감형보급품에서좋은소리가나올수없다.
다이렉트턴테이블은곧싸구려이고,디스코텍같은데서나사용하는물건이라는등식이성립했다.하지만불굴의의지의소유자가꼭있게마련.LP시대가종말을고하던무렵일본켄우드사의엔지니어들이상상할수있는최고의항공모함급다이렉트드라이브턴테이블을개발해냈다.L-07D모델이다.켄우드측은사용하기에불편한것도극한까지가보기로연구한것같다.기존턴테이블에는없던디스크휨보정장치를개발해판한장트는데모두네번의복잡한단계를거쳐야한다.이괴상하고무겁고불편한턴테이블의장점을찾아내열광적으로추천하는인물이미국최고의오디오평론가켄케슬러다.켄케슬러가주력기로사용한다면굉장한제품이아닐수없다.자국에서버림받고많이만들지도않은물건이미국에서되살아나현재도L-07D동호회와전문사이트가활발히활동중인데나는그런꼴을두고못본다.일본까지가서구해온애호가의물건을최근에덜컥구입하고말았다.화려하다고할까,유연하다고할까,아직은연구중인턴테이블이다.
오디오파일(애호가)이아닌데아직까지이글을읽고있다면당신은대단한참을성을가진사람이다.자신이아는분야를들어유추해보라.한발더들어간세계는말로표현하자면이루말할수없이장황해진다.내가사용하는턴테이블을소개해봤지만사실고급턴테이블에서필수적으로고심하는과정인승압트랜스선택문제,케이블문제,공명(共鳴)차를고려한지지대세팅의문제등은거론도하지못했다.어쨌거나논점은무엇에붙들려서혹은무엇을채우면서살아있는날들을보내고있느냐는것이다.건(乾)씨아저씨로팍팍하게살아가는요즘심경을말했다.음악조차억장을두들겨패지않더라고한탄도했다.더러더러인생도쉬는것을,‘그래들리지않으면듣지않으면되리라’일까.그러다멀어진다.그러다다른길로샌다.음악에몇년몰두하다쉽사리딴청에빠져영영돌아오지못하는사람을여럿봤다.
그래도모차르트는계속되고
프루스트는단풍나무숲사이로두갈래길이있었다고했다.한길을선택해야만했고,그래서가보지못한길을그리워하노라고너스레를떨었다.아서라,가보지못한길이란없다.길이란걸어가야길인것이니길을걷지않은,걸어보지못한사람이많을따름이다.이것저것기웃거린삶은길을걸어간것이아니고뱅뱅제자리맴돌이를한것뿐이다.다만가는길에변주는있을수있다.음악이들리지않을때,건하고곤하고피폐할때변주가있을수있다.그것이음악에서는오디오질이다.오디오에몰두하는동안은음악을들을수없다.오직사운드‘체킹’만이존재할뿐이다.음악은듣다멈추다다시시작하는과정이비교적용이하지만오디오는훨씬복잡하고많은시간을필요로한다.일단물건의위치를움직이는데체력이많이소모되고혼자작업할수없는일이많아만만한지인에게비굴한전화를자주해야한다.과거에는사진작가윤광준이내오디오질의밥이나마찬가지였다.
그가베스트셀러를내고사회저명인사로인생이분주해지자한번모시기가별따기여서아니꼬운마음그지없다.요즘은내가출연하던케이블TV사장과배짱이맞아무려‘사장님’께서운전기사노릇겸짐꾼노릇겸저쪽에서선을붙들고납땜의대기조노릇을하는일이잦다.(그에게삶의축복과평화를!)
당분간줄라이홀은오디오룸에충실해질공산이크다.그것으로삶의시간을채울것이다.그렇게살아왔고그렇게살아갈것이다.그래도모차르트는계속된다.
김갑수시인,문화평론가dylan@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