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그 시간의 켜

 

달이 해를 잡아먹던 날 달리고 달려도 ‘걸어도 걸어도’ 조조시간 11시30분까지 선재아트센터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했다. 안국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11시 31분. 계단 두어개씩 건너뛰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도 계획없던 일정이라…영화 상영시간 안 거도 워낙 늦은데다 아파트 입구 노인정 앞에서 중학생 두명이 개기일식 보느라 한참이어서 곁다리로 귀한 구경까지 했으니 더 많이 늦어버린거다.

덕분에 초생달 모양의 해를 보긴했다 -나만 못보면 억울 할 것같아서…선재아트홀 지하…’고양이를 부탁해’ 이후 간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낯설은 컴컴한 극장 안을 더듬거리며 앉았을땐 한참동안이나 꽁꽁 냉방일텐데도 모자 쓴 뒷머리가 거의 젖어 땀방울이 목줄기를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영화이야기는 개봉관에서 내린 후에 다시하기로 하고… 다자이 오사무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랑  ‘블루라이트 요꼬하마’ 에피소드도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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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우리집 남자랑 한강 산책 길에서 만난 담쟁이 넝쿨 보면서 조만간 공간 사옥 들러야지…결심도 하고 해서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기로 했다. 활짝 개인날씨로 개기일식 볼 때는 반가웠지만 영화에다 점심까지 해결하고 발길 닿는대로 화랑 순례까지 한 후여서 공간 사옥 앞에 섰을 때는 햇살이 가장 눈부신 시간이었다. 후진 디카 랜즈에 무슨 풍경이 담기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공간 500호 기념 전시라 해서 몇해 전 갤러리 라 메르에서 열렸던 현대문학 표지화전 처럼 그간의 공간지가 전시되거나 별다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줄 알았는데 데스크 직원의 말로 특별히 전시장에 마련된 건 없다 했다. 외벽에 내부사진이 걸린게 전분가? 아쉬워 예전에 다니던 공연장 문을 혹시나? 밀어봤더니 와우~~스르륵 열렸다

예상도 않았는데…그러나 컴컴해서 그냥 나가려는데 어딘가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살펴보니 계단 아래 공간에서 황병기교수님 모습이 화면 한가득이다. 컴컴한 실내인데다 아무도 없어 다소 해이해진 기분으로 스크린 앞에 앉았다.

화면으론 그간 공간지를 스쳐간 예술가들의 일화랑 축하인사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간지를 꾸민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인터뷰랑 공간지의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계획까지 한 말씀씩 하는 필름이 계속 돌아가는 눈치였다. 냉방도 잘 된 적당한 어둠속에서 이상하리만치 맘이 편안해졌다.

고 김수근선생의 의도대로 내부를 자궁속처럼 꾸며서인지나는 자유롭게 찹찹한 벽에도 기대었다. 긴 벤취에 두다리를 뻗기도 하며 느긋하게 러닝타임도 모른체 다시 황병기 교수님이 한가득 화면에 나올 때까지 맘놓고 쉬었다. 서울 한복판 벌건 대낮에 그렇게 편안한 휴식처가 있을 줄이야…나혼자 그러고 놀고 나올 때까지 사람 그림자도 안보였으니…이글을 쓰는 지금도 그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민망할 정도로 자극적인 제목을 내세운 여성지나 선데이서울도 아닌 종합 예술잡지가 햇수로는 40여년, 통권 500호를 맞이했다는 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거의 힘든 경우라고 영상물에서 누군가 말했다

건축가 고(故)김수근(1931~1986) 공간그룹 대표가 1966년11월 건축과 미술에 대한 종합 월간지가 전무한 문화 풍토를 안타까워 하며 ‘사라지는 문화의 흔적을 기록하자’ 는 의미로 창간한 이 잡지는 건축 뿐만 아니라 미술,무용,연극,음악까지 모두 다루는 종합 문화 예술지로 출발했다.

백남준선생을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모를때 박용구(음악평론가)선생이 생생한 육성으로 비디오로처음 소개한 곳도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였고 황병기 교수님의 설명으로 오래 전에 들었던 *홍신자 사건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어 더 반가웠다.  황병기선생은 홍신자 공연을 기획에서 부터 음악 심지어 프로그램 제작까지 모두 사비로 제작했는데 예상 밖으로 관객이 넘쳐나서 돈까지 버셨단다

 

*홍신자 사건.

국립극장이 명동에 있을때 홍신자씨가 어머니속곳을 입고 뒤로 넘어지는 모습을 공간 표지화에 실었다가 심의에 걸렸다. 고 김수근선생은 발끈하며 모두 수거한 뒤 ‘백지로 나가자’ 하여 진짜 백지 표지로 실렸다. 홍신자교수는 널럴한 샌들에다 속곳바람으로 세계여행까지 하여 화제를 뿌린 건 책으로도 출판되어 대부분 아는 얘기지만…

건축잡지 공간 500호 기념 [장소의 기록, 기억의 재현展]

담쟁이 뒤덮힌 사옥과 대조적인 유리로 된 공간사옥

지하철 3호선 안국역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원서동 현대 빌딩 근처

숨은 그림찾기…좀 어렵지요-*힌트; 좁은거울

필름이 상영되는 곳은 이 문을 열어야 해서-친절도하지…

혹 자투리 시간 나시면 지인들끼리…아니면 혼자라도 ‘외벽에 걸린 내부’도 보고 시원하고 편안한 내부에서 空間의 역사도 알고 추억에 빠져보는 일도 좋을 듯 싶어서요…

건축가 고 김수근(1931-1986공간 그룹 대표)선생이 1966년 11월에 창간한 월간 공간(현재 이름은’SPACE’) 2009년 7월 500호 기념 알찬 프로젝트 덕분에 한 때 방황하던 젊은시절로 잠시 여행한 기분이들어 저는 잠이 다 달아났습니다…

도대체 몇시지요 지금?

P.S:

<공간사옥 외벽에 걸린 한성필씨의 사진작품 how to lie with space>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사옥 내부를 찍은 사진들을 조합했다./공간제공

건물 안이 건물 밖에 붙었네 글;김미리기자기사  <–

만물상 ‘공간’500호-글; 김태익논설위원  <–

  • 500호기념포스트와초대장


 

7 Comments

  1. 데레사

    22/07/2009 at 19:37

    일식사진은못찍었나봅니다.
    나도어제일어공부하는교실창넘어로구경은했는데
    카메라를안가지고가서사진은못찍어서좀아쉬워요.
    ㅎㅎ   

  2. 산성

    23/07/2009 at 00:27

    ‘空間’…공간사랑
    이글자가주는기억들…너무많아…
    가슴한켠이…^^

    젊은…김용배씨…
    드볼작의피아노트리오둠키를연주했던곳.
    김영태씨詩에곡을만드신백병동씨작품발표회도…
    시낭송회들도…

    옆으로넓어…네모반듯하던공간지는
    다어디로갔을까…요…^^

    ‘장소의기록,기억의재현’…展
    말그대로입니다.

    오래전,그서늘하고도아름다운추억의공간으로
    한번가볼랍니다…찹찹한벽에등도기대보고…

    정말감사한마음…^^

       

  3. 참나무.

    23/07/2009 at 04:16

    전찍을생각아예안했는데요…전문가들이오죽잘찍어올릴까싶어어요

    제가볼때는초승달같아보였어요
    찬찬히볼시간은없었지만…   

  4. 참나무.

    23/07/2009 at 04:29

    산정호수…조정권시인도편집장을지내셨더라구요…

    도심한가운데서도편안함을줄수있는공간사랑
    곁을지나치기만해도추억에빠지는장소지요…

    책없앨때제일처음순번이월간진데
    공간은몇번을들었다놨다하다…
    결국…

    그러면서도어젠서점들릴시간없어
    그냥와버린게약간후회되는데요
    기념으로소장해도좋을듯해서말이지요

    산성님관더오래전부터같은공간을스쳤을지도…
    같은추억공유할수있어제가더감사를전하고싶네요..^^   

  5. 김선경 보나

    23/07/2009 at 06:15

    덕분에너무나잘보았습니다.
    덕희님방에도썼지만…
    얼마전공간사옥바로앞건물6층에서내려다보니,창경궁과공간사옥이한눈에보이는것이얼마나멋지던지요…
    그곳을오늘또이렇게나마구경잘했습니다.
    20여년전에는몇년간…공간잡지를매달탐독했던때도있었지요…
    우리나라에김수근님같은분이있었다는것이얼마나다행스러운지모르겠습니다.

    포스트도정말멋지게만드십니다.
    늘감탄입니다!   

  6. 참나무.

    23/07/2009 at 07:30

    김선경보나님은디자인관련사업하시니매달탐독하실만하지요

    앞으론필진으로활동하셔도모자람없는분이라사료됩니다…^^

    서울에세워진국내외대가들작품만주의깊게살펴도공부가많이될것같지요

    어느해부터는영문으로도같이발행된다니만든이들의수고로움이전해지네요

    아무쪼록이번기회에좀더많은분들에게자주읽히는

    자랑스러운저널로오래토록지속되면좋겠습니다.

    아이가방학하면엄마는개학이라던데요즘많이바쁘시지요…^^
       

  7. 참나무.

    25/07/2017 at 18:05

    오래전 포스팅 사진도 다 살려내고
    띄어쓰기도 대강 수정해봅니다.
    벌써 8년전 옛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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