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음완보(微吟緩步)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 황동규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알 식탁에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창 조금 열어 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노란 유채꽃이
땅의 가슴 언저리 간질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겁없이.

바쁠 때는 분 초를 다투며大路를 달리기까지 하다

요며칠 느려터진 생활을 하고 있다.

시간이 널럴하니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좋은 일은 설거지가 남편 몫이 되어버린 거고 – 글쎄 이게 좋은 일에 속할까만

나쁜일은 낮에 빈둥거리니까

밤에 수이잠을 못이루는 거다

도대체먹는 게 큰 고통이다

약만 아니면 일주일 단식 경험도 있어

굶는 일은 그리 어렵지않은 데

세월도 지내고 볼 일이다

소싯적엔설거지부분이 참으로 부러웠다.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는 ‘애개개…’ 수준의 얘기겠지만

평생 설거지 같은 거 해주지 않을 줄 알았다.

아마 시어른을 오래토록 모셔서 보수적인 경상도 기질이

더 오래 남아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젠 죽도 끓여주고 설거지도 해 주고

나보다 튼튼하여 매일 출근도 하니

천상병 시인의 ‘행복’을 부러워 할 일도 아니다.

미음(^^) 등속을 억지로 밀어 넣는 일 말고는 그리 나쁘진 않지 뭐.

가을과 겨울의 환승역 같은 11월 중 며칠 간 아팠다고

11월 다 간 것도 아니겠고 이리 타발질 할 기력도 있겠다…

8 Comments

  1. 김진아

    16/11/2010 at 10:29

    어제 교보문고에 들렸어요. 성남점..

    반가운 분이 눈에 쏘옥 들어왔어요.

    정호승 시인의 ‘밥 값’ 창비에서 새 시집이 나왔더라구요.ㅎ

    그냥 보기만 해야지…실은 마음속에서 그랬거든요.
    준혁이 생일선물 책한권으로 하겠다고 해서 그 소원 들어주려구 갔던 거라 ㅋ
    근데요…그냥 눈 딱 감고 사버렸습니다.

    질러 버린거예요. 글쎄 ㅎㅎ

    시집을 여러권 읽어 보고, 블로그에서 올려주신 후기로 읽으면서 나름
    제 마음속 똑똑 두드려 보다보니..

    정호승 시인의 시가 더 좋아요. ^^

    참나무님..

    목 감기가 매우 독하죠.
    목이 따끔거려 아파도 억지로라도 드셔야 해요.
    감기는 체력싸움이더라구요.

    요플레나, 차가운 푸딩종류도 괜찮아요.
    목 넘기기에 부드러운 것들로 드세요.

    아이스크림도 괜찮답니다. 감기에 찬것? 그렇지만..
    목감기엔 폐렴증세가 없는 이상 무관하죠.

    중탕 정도의 물도 자주 드시구요.

       

  2. 참나무.

    16/11/2010 at 10:52

    지난 금요일 다른사람들 보다’ 아주’심하다고
    사흘분 약 처방해주시면서 갈아앉지않으면 월요일 수술 운운하시더라구요
    그 때부터 야코가 죽어 지내다가 ,,,

    어제는 좀 더 기다려보자며 아이스크림 얘기도 해 주셔서
    아까는 기운도 없는 데 새로나온 블루베리 스무디 요플래도 사오고 시리얼도 사왔어요
    – 우리집 남자는 우유에 타먹는 ..애들 먹는 얄궂은 거라 명명하는…^^

    도대체 따끔거리기도 하거니와 입맛을 딱 잃엇다 했더니
    제 약이 입맛 떨어지는 약도 있다며 어제 약엔 그건 없다고
    약사 님이 우짜든지 많이 먹어라하더라구요
    혹시 진아 씨 우리동네 약사 님 말 엿들었나요…^^

    정호승 시인 출간소식 저도 듣긴 했습니다
    질렀군요 …아주 자알 하셨어요
    세 아이들 + 밥풀왕자 잘 자라줄겁니다
    이리 현명하신 어머니와 이모님 둔 아이들이니

    생일 늦었지만 축하해요 그냥 여기서…^^
       

  3. 산성

    16/11/2010 at 22:19

    ‘그대 모르는 새에…’

    전 또 무엇을 좀 도와드릴까요…

    새벽바람이 그다지 차갑지 않았어요.

    오늘 하루

    포근한 가을날 될 것 같습니다.

    ‘강물쪽을 향해 창 조금 열어 두고’ 앉으셔서

    유유한 가을 강물 내다보며

    흩어진 기력도 좀 챙기소서…

       

  4. 참나무.

    17/11/2010 at 02:54

    어렵고 강한 것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니
    노래도 안나 게르만이 편해서 좋네요
    누워있기 싫어 앉아라도 있습니다

    화분 흙이 오랜만에 바싹 말라있어 신나하며 물을 잔뜩 주고와
    괜히 저도 기운이 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강은 안개 속의 풍경인데 포인세티아는 진저리치는 빨강이고
    시도 때도없이 피는 게발선인장, 하얀 오션 작은꽃들에게서도 위안을 얻습니다

    우리집 청년은 커피 한 잔 느긋하게 마실 시간도 없는 지
    테이크 아웃 커피 해 달라며 휘잉 나가버리고
    우리집은 이제 제가 황제가 됩니다…^^
       

  5. 소리울

    17/11/2010 at 17:00

    호강이 늘어진 것 너무 기뻐하지 마오. 아직도 청청한 우리집 아저씨는
    우째 조금 괜찬아 지려나 했더니 덜커덕 일저지르고 쌍지팡이 신세니
    그냥 저냥 그대로가 좋다고 말하고 싶소.   

  6. 참나무.

    18/11/2010 at 00:20

    텔레파시가 통했구랴
    와이사수 여남은 개 다림질 하는 데 마침 리빙 t.v 에선
    통영 동피랑, 남해 미조항, 멸치털이도 나오고… 독일마을도 나오더라구

    저사람 들 뭘 모르네…창성의 명소 아라팬션을 빼고…
    아라 크루즈에서 일출 풍광을 담아야하는데, 쯧…;; 했다는…^^

    천선생님 발이야 시간가면 나아지실거고
    그러니 아마죤 갈 꿈꾸는 거겠지 했는 데?
    세상에…아마죤이라니…참…!!
       

  7. 술래

    19/11/2010 at 02:22

    오래 살고 볼일 저희 집에서도 요즘 일어나고 있어요.
    남자들이 나이들면 많이 달라지나봐요.

    커피 내리는것이 대단한 일이던 남자가 요즘은
    살림하겠다고 나서는거 아닌가 싶게 별거 별거 다 하네요.

    장담할일도 낙담할일도 아무것도 없겠구나 남편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참나무님 많이 편찮으신가봐요.
    약 잘 드시고 빨리 회복하세요.   

  8. 참나무.

    19/11/2010 at 14:47

    세상 부부들 나이들면 대부분 조금씩은 중성화 되는 거 맞는 말 같지요…^^

    많이 좋아졌어요
    오늘 첨으로 밥을 맛으로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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