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ng & Edin Karamazov (Lute) – John Dowland – Come Again

Sting & Edin Karamazov (Lute) – John Dowland – Come Again

[ESSAY] ‘별 볼일 없는 VIP’ – 김헌용. 서울 경원중학교 영어교사

나는 짝사랑에 빠졌다. 15살 소년이던 나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은 선생님과의 만남. 한 반에 학생이 10명도 안 되는 ‘맹학교(시각장애인 학교)’였다. 선생님이 보여준 관심은 내게 언제나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 짝사랑은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보다 내 인생에서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 왔다.

나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다. 5살 무렵 어머니와 형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배운 글자를 공책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갔다. 그런 일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매우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엇에 부딪혔는지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나를 치료하기 위해 독일까지 데려갔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2배로 확대 복사한 글자나 큰 사물만을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의 시력을 가진 공식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1급 시각장애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중학생이 되고서야 시각장애라는 것이 정말 나에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런 고민들을 같은 시각장애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

그 시기에 그 선생님을 만났다. 새벽녘에 일어나 선생님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번호를 누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한 버튼은 끝내 누르지 못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곤 했다. 앞이 안 보이는 나를 들뜨게 한 것은 그 선생님의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다정다감한 목소리였고 마음이었다. 그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던 영어 과목을 지금 내가 커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됐다는 게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짝사랑이 차지하고 있던 내 마음속엔 현실적인 고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너도 할 수 있어"라던 그 선생님의 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사범대학에 들어가 부전공으로 영어교육을 택했다. 그러고는 영어의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나는 TEPS 918점과 토익 975점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인데 대단하네"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헌용이가 이제 선생님보다 영어도 잘하네"라고 해주신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에게 장애란 인생을 할퀴고 지나가는 아픔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싸움도 아니었다. 열차가 선로를 살짝 바꿔 다른 열차보다 조금 더 먼 길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었다. 어차피 종착역은 같다. 돌아가는 그 길에는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은 마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다. 바위틈에 핀 화려하지 않은 꽃들도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존재를 발견하는 일과도 같다. 이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나는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거쳐 작년에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됐다. 서울에서 시각장애인이 일반학교 교사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일반 아이들을 가르치느냐고 놀라워한다. "시각장애인이 못 가르치기 때문에 안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 가르쳐 본 시각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못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내 대답이다. 나는 그 편견을 깨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그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수업이 쉽지는 않다. 협력교사가 배치돼 교재 배포를 도와준다. 교재에 실린 그림 설명까지 모두 컴퓨터에 입력하면 음성으로 전환되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교과 내용을 통째로 외워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웃음 소리다. 그 따뜻했던 선생님이 내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나는 별 볼일 없는 VIP"라고 농담을 한다. 눈이 안 보이니 ‘별을 볼일 없고’, 영어로 ‘VIP’라는 말은 visually impaired person(시각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의 준말이라고 설명해준다.

나는 쑥스럽게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안녕. 나는 VIP인데, 너희들도 같이 VIP석에 앉아보지 않겠니? 겨울 밤도 길어졌는데 별 볼일 없는 내게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설명해보렴."출처 <–

Joshua Bell with Sting and Simon Mulligan Live from Lincoln Center

5 Comments

  1. 김선경 보나

    12/01/2011 at 02:20

    스팅과 에딘 카라마조프…
    너무 좋네요…
    참나무 덕분에, 오늘 감미로운 선물을 받은 느낌…   

  2. 참나무.

    12/01/2011 at 02:40

    스팅 공연 가고싶었는 데
    아쉬워서요…
    중국 여행 깔끔한 후기 참 좋았어요..^^
    .   

  3. 산성

    12/01/2011 at 12:04

    이제사 차분히 둘 다 들었습니다.
    오늘 날씨와도 참 잘 어울립니다.스팅~

    류트 연주하는 에딘 카라마조프,
    이름때문에도 은근히 특별해지는데요.

    요즘 맹렬하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만 연구(?)하는
    누군가가 있어서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해 보라는 젊은 선생님
    이미 온몸으로 보여주고 계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4. 산성

    12/01/2011 at 12:06

    아니…음악 듣고 있는사이
    달을 어디로 보내버리셨습니까…

    크게해서 보느라고 애썼는데요.
    너무 아름다운 사진!

    다시 보여주세요…

       

  5. 참나무.

    12/01/2011 at 15:09

    .., ….올렸어요…방금…^^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