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경지까지 언어를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MARIE LAURENCIN (French, 1883-1956) Woman with Mandolin (1940) oil on canvas

나이가 들어 김영태의 산문집 ‘질기고 푸른 빵’을 만나길 참 잘 했다 싶다

젊어서 읽었더라면…책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놓쳤을지도 모르는 부분들이 깊이 와 닿는다

미쳐 넘겨짚지못한것들을새록새록 일깨워 주셔서 다시 음악을 찾아듣는다거나

기술한 예술가들 작품들까지 찾아보느라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 직타는자신없고자유롭게 풀어놔 보고싶은 데 아쉽다

요즘같은 인쇄술이면 기술한 작품들 화보까지 실렸으면

보관가치 충분한 장서로 남았을 것인데

외국어 표기도 고풍스러워어찌나 정이가는지…

# 막간을 이용하여

마리로랑상의 그림은 시같다 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지독한 근시였단다

근시는 바로 앞의 물체는 뚜렷하게 보이지만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대상은 윤곽만 드러나기 때문에

괏슈건 수채화건 언제나 불투명 하게 물에 젖은 느낌이 든다.

그녀가 그린 소녀들의 이목구비는 뚜렷하지않은 선이나 색감으로 인하여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축축하고 습기가 있다.

그리고 카트린느 드뉘브,셀부르의 우산

영화리뷰가 계속되는 데 영화 화면이마치 마리로랑상의 그림 같다고…

몰랐던사실 하나는 쇼팡의 발라드는 ‘미케비치’ 시에 의하여 작곡되었단다

로랑상의 그림이 시 같다고 느낀 이유가 당신의 개인적인 감상만은 아닌 건

시인 아폴리네르와 교우를 가졌기 때문에 대상을 바라보는 눈도

그렇게 신선한 것이 아니었나 추리한다시며…

‘드뷔시 부근’ 쓸 무렵 나는 음악의 경지까지 언어를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라는 시도를 해 보았다.

마치 미케비치의 가 쇼팡의 피아노 선율이 되었듯‘드뷔시 부근’에서 4번 ‘벌판의 바람’ 끝 3행은

렇게 끝난다

너는

아무것도 없는

끝에 조금 묻어 있는 빛갈이여!

나는 여기서 음색의 빛갈(색체)로 표현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이 3행의 경우, 겉멋만 잔뜩 풍기는 날탕 같은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드뷔시 부근’ 찾아보지않을 수 없어서 검색해 봤지만

어름산이의 보행(步行) 시집 목차만 발견된다.

김영태 시인은 화가의 작품에 관한 시를 서너 편 썼는데

누구의 청탁이 아니고남다른 애정과 경외심을 가진 분들이라

평소에도 정신적 지주가 되어서였다 했다.

그 중 한 분이신 박수근 화백이 싸구려 도화지에 연필로 그린 소 그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恨이나 슬픔이란 저런 단순한 소묘에서도 은연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겨졌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이중섭의 황소에 비해 박수근 소는 눈을 꿈벅거리며 내게무언가를 말하는 눈치 같았다. 중략…



-朴壽根 遺作展

김영태

銘筆그림이지만
손때가 묻어 있었다
수근..이라고 그저 한글로
썼다 아이들이 많은, 바람에
헐은 까치머리를 한 아낙네들
두서너 명 한결같이 그저
앉아 있었다
대추나무 밑동에서 조는 샌님
木板, 또 그 옆의
달구지 하나, 이렇게
풀이 죽은 적삼을 입고
坐板엔 해가 설핏하다가 진다
罪 없는 소나
그렸지, 그렇데 그 소가 지금
수근…..이라고 슬프게 말한다

그 외에도 관심가는 수많은 얘기가 실려있어

요즘 잔뜩 빠져지낸다.

그와 그가얘기한 예술가들까지도

* * *

002.jpg

# 병원에서

오늘 남편 병원 정기검진 날,

심전도 하는 시간 옷 받아 들고 지켜야한다

2층 검사실 앞에서 사람들이 많아

한참 기다릴 것같아 커피 한 잔 하고 오겠다하고

내려오면서 층계 주변 그림들에게 눈길이 아니머물 수 없다

003.jpg

1층, 테이크 아웃 가게가보여 주문 줄에 섰는 데

앞의 두 사람이 모두 카푸치노를 시킨다?

이 가게 카푸치노가 맛난가?

– 요즘 거품키스 때문인가?

우리나라 이런 풍조는 뭐라 설명해야하나…

나도 괜히 덩달아 ‘카푸치노..’하고

시간 좀 걸린다 해서 우두커니 서 있기 싫어

입구의 동상 앞에 서본다

005.jpg

이 분의 호가 인제? 성함은 잘 모르겠다.

남편이 119에 실려와 스텐트 시술하고

사이보그 남자랑 산다며 농담하던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단 한 번도 이 동상앞에 서 본 일이 없는데

사람의 관심을 이토록 바꾸는 힘은 어디서 오는걸까

아이구 이럴시간 없는 데,

성질 급한 남자 늦게왔다고 난리버꾸통일텐데…

퍼뜩 정신차리고 주문커피 들고 올라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날 기다리다 옷을 벗어들고 뿔이 잔뜩 나있다

‘좌우지간 못말리는 여자’라며 화를 벌컥낸다.

간호원들 보기 부끄러워 복도 대기실에 나와한짐이나 되는 옷들 개고있는 데

젊은 아빠랑 아주 예쁜 아이가 내 바로옆 의자에 앉는다

5살됐을까 말까한 남자아이도 심전도 검사를 하고 나온 것 같다

-아빠 이런 거 왜하는데?

-응…. 우리 xx이 심장이 건강한지 아닌지 보는거야

-심장이 뭐하는 건데?

-응, 심장은 아주 중요한거지 –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

아이는 좀 힘이 없어보이지만 정말 얼굴이 귀엽게 생겼다

-다 끝나고 뭐 사줄까…뭐 먹고싶니

– …. 음…음…삼겹살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좌우지간 못말릴 여자랑 주윗분들까지왁짜~ 웃음보가 터져버린다

아이들은 정말 천사 자체다…눈빛이 어찌나 맑은지

사람 많은데서 혼찌검 당한 찜찜한맘까지 다 사라져버린다

……………

007.jpg

카푸치노는 맛이없어 결국 몰래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자판기 커피가 나을 뻔 했다

약방의공짜 생강대추차가 훨씬 나았다

내가 커피 입맛이 좀 까다롭긴한가보다

이 무슨 사치일까… 고칠부분이다

줄이자… 줄이자…

가는 길 오는 길에 높히 걸려있던

가슴무너지는 단어 인제대학

이제는 성자 한 분을 배출시킨…으로 꽂힌다

늦게 조간을 읽다 박은주 기자의 기사로 다시 만난다

지나간유행가를 ‘성가’로 바꾸게 하는

이 무서운 힘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태워도 태워도 꺼지지않는 불꽃처럼’

못 살고 가신 분.

제목을 ‘제대학과 裸木’ 했다 지웠다

오늘 또 이야기가 왜 이쪽으로 꺾일까…

8 Comments

  1. 김진아

    27/01/2011 at 08:56

    박은주 기자의 기사..좋았어요.
    흘러간 옛 유행가도 성가로 바꾸는…
    그것의 진정한 종교의 힘.

    바라지 않고, 주는 것..
    계산하지 않고, 줄 수 있는 것들이
    저희들에겐 아직 힘든 부분인가봐요. ^^

    그런데, 전..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거든요.

    누구인가는 그 분들에게서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요.

    ^^

    병원엔 자판기 커피가 맛있어요. 신촌 세브란스 새병원 6층 자판기 커피가 ..
    걔중 제일 맛나요. ㅎㅎㅎ   

  2. 산성

    27/01/2011 at 09:23

    아침신문 놓치는 일이 잦습니다.
    바쁜게 좋다는데 요즘 저의 ‘바쁨’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제대로 읽고 답글 쓰려면
    아침신문 놓치듯 할 것 같아…우선

    한강 풍경보고 거꾸로 올라왔지요^^

       

  3. 겨울비

    27/01/2011 at 10:57

    그날 들고 계시던 김영태 산문집 제목이 뭐였더라 생각이 안 났어요.
    ‘질기고 푸른 빵’이었구나…
    저도 한 일주일은 여울목 비오리와 산문집 끼고 다녔습니다.
    짧은 시들 읽다보면 김종삼시인도 생각나고…
    끝없이 이어집니다.

    바깥어른이 행복하시고 건강하셔야 언니가 자유로우실테니
    이제 함께 안부를 살피게 됩니다.^^   

  4. 참나무.

    27/01/2011 at 12:16

    네..그런 분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겠지요
    저도 언젠가는 누구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병원나들이도 잠깐 틈을 내시는 여유, 참 좋았어요 진아씨…^^
    가급적 커피도 줄일 예정이랍니다.

    이태석 신부님 열애 연주 하시기 전에 반주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길다린 하얀 깃 ( 그걸 뭐라 하나요)을 어깨 뒤로 넘겨버리며
    씽껏 웃으시는 모습이 왜그리 좋든지요…
    그런 마음이 수단에 성당 대신 학교를 지은 정신은 아닌가했답니다

    김영태 시인의 시집 몇 권이나 가지고 계신가요

    산성님 겨울비 님?

       

  5. 소리울

    27/01/2011 at 23:36

    저 그림 물속에 잠긴 것 같은 슬픈 분위기의 그림.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러 12대문을 거쳐서 들어가 봤을 때의 감동 같다.

    맹인이 유치환의 색조 가득한 시 편지를 낭송하던 때의 감동같기도 하고…
    어제 전혜숙 엄마가 돌아가셔 현주랑 장례식장 다녀왔다.
    아마 우리 교수 친구도 같은 두려움이 있을 거다   

  6. 참나무.

    28/01/2011 at 02:56

    지금 군감자 먹구있어…찐감자로 시작했는데…;;

    그 많은 그림 중 하필 물에 잠긴거라니 하샘 맘 짐작이 갑니다그려…;;

    긴병 않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 친구들이 ‘축 사망’ 했더든가

    ‘환자는 천국 환자가족은 지옥’이란 치매라는 병, 요즘 백신개발도 했다는데…

    파킨슨씨 병 앓은 친구는 올해 8년째…
    혜숙이 엄마처럼 …이 죄를 어이할꼬…!

    뵌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풍진 세상 소풍끝내신분
    부디 평안하셨으면…기도나 하리다…

       

  7. summer moon

    28/01/2011 at 04:24

    오랫만에 다시 보는 마리 로랑셍의 그림들도 반갑고
    김영태님의 산문집도 읽어보고 싶고
    ……
    참나무님 글은
    너무 너무 좋구요 !!!!!!

    삼겹살 먹고 싶다는 꼬마 자꾸만 생각이 나요.^^   

  8. 참나무.

    28/01/2011 at 05:16

    파킨슨씨 병 앓는 친구 –> 친구엄마 –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어제 병원 가기 전에 달님 포스팅 동영상 보고 나갔는데
    꼭 노래하는 여자애 닮은 남자아이였어요
    제발 심장에 큰 탈 없기를 기도했답니다…아이 아픈 거 어찌 볼 수 있겠는지요

    요즘 대한민국은 이태석 신부님 때문에 파문이 일고있답니다
    종교의 벽도 초월하여 어제는 조계사에서도 ‘울지마 톤즈’를 상영했다데요

    그래서…자꾸 그 쪽으로 맘이 쏠린답니다
    마침 사이트도 있어서…제 맘 편하려고
    참 이기적이다 하면서 말이지요

       

Leave a Reply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