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rahms – Intermezzo Op.117-1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겨울 사랑
고정희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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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생각
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를 아련히 광내며 강 하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휘감고온 바람을 벗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가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흔들며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이 세상 적시는 모든 강물은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으로 뒷모습으로 흘렀습니다

6 Comments

  1. 산성

    22/03/2011 at 19:33

    지금 시간에…음악은 못 듣겠고
    왜 이러십니까…;;
    홍역같은 고정희 시인의 詩들…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 지도 모릅니다…

    ‘이윽하다’란 말 참 이쁘지요?
    (느낌이 은근하다 또는, 뜻이나 생각이 깊다)

    할수 없이
    젊은 글렌 굴드와 새벽커피 한 잔…

       

  2. 참나무.

    22/03/2011 at 22:08

    …먼저 시작하셨잖아요…

    이름만 들어도 무너져 버리는 사람

    용기없어 더 야한 시는 못올리고 …

    다른 분이 올려주시기만 바랄 뿐
       

  3. 산성

    23/03/2011 at 09:51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그렇게 강물속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

    아까운 시인…

       

  4. 푸른

    23/03/2011 at 13:02

    흐~
    은방울 꽃말은 …행복이라네요.   

  5. 참나무.

    23/03/2011 at 16:04

    근데 왜 인상을 쓰셨나요…ㅎㅎ

    이 연주 좋지요
    김선욱 앵콜곡으로 듣던 기억이 있어 자주 듣게되네요   

  6. 푸른

    24/03/2011 at 00:54

    어! 한줄로 긴시의 뎃글 없어졌네유…
    흐~ 저 얼굴은 제눈엔 짖궂은 장난꾸러기 얼굴로 보이는데요?^^~
    물론 음악 좋구요…밖이 차가워서 얼른 화분에 물주고 청소 다끝내고 들어앉았어요.
    이제 커피 한 잔 해야겠군요.
    참나무님도 유쾌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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