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과 Chopin 최후의 유일한 첼로 소나타

. . . . . . .

폭염 주의보가 내린 한 낮

리어 카에 박스 싣고가는 할머니 차림이 보라 일색이다

보라 줄무늬 반바지에 보라 꽃무늬 부라우스

보라 그물 반버선에 보라 플라스틱 스립퍼

세상에나~~

큰 꽃이 달린 챙 짧은 모자도 연한 보라꽃무늬라니

. . . . . . .

졸졸 뒤따라 천천히 걸으며 나는,

전철에서 읽던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 김기택 시인의 시와

또 다른 시인의 새우깡 빈 봉지의 안쪽 살갗은빛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행처럼 긴 詩,

사무원까지 찾아 읽었다

그 박스사업 할머니가

내 정직한 참모습 아닐까 싶어서. . .

’30년간의 長座不立’ 단락에선

꼿꼿이 선 채, 속에서 오래 오래 묵혀

따스해진 말들을 작은 목소리로 흘려내던

시인 모습이 오버 랩 되는 것이었다.

사무원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BR>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

피아노의 시인 쇼팡을

오늘 배경음악으로 깔아볼 참이다

쇼팡이 최후로 남긴, 유일한 첼로 소나타

금호아트홀에서 라이브로 들어 더 인상깊었던

아무렴, 라이브라야 한다니까. . .

Chopin: Cello Sonata In G Minor, Op. 65, B 160

– 1. Allegro Moderato_Jacqueline Du Pré

12 Comments

  1. 네잎클로버

    21/06/2011 at 02:14

    오래 오래 묵혀 따스해진 말들…

    올려주신 음악 들으며
    가만가만 시인의 시를 읽어보아요..

    사무원.. 궁금했었는데
    보라빛과 함께 감사합니다.

    근데 왜 주책맞게 갑자기 울컥해지는지..^^;;   

  2. 참나무.

    21/06/2011 at 02:43

    사무원, 슬픈 시, 울컥해지는 게 정상아닐까요

    오늘 수영 땡땡이 치고 신영음 듣고있답니다.
    영화 정보들 많이 알려주지만 선뜻나서질 못하네요

    ‘사랑을 카피하다’ 상영시간 알아보니 또 저녁 20:20
    코파카바나 볼 때부터 궁금했는데 억울해 하고있는 중입니다
    시간 됐으면 앞 뒤 생각않고 튀어나갔을텐데…
       

  3. 김진아

    21/06/2011 at 03:10

    담아갑니다. ^^

    신촌 다녀와서..다시 조용히 읽고 듣고…그러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4. 도토리

    21/06/2011 at 06:42

    지난 일욜에 코파카바나… 이름 열심 억지로 외워 극장에 달려갔는데 종영 되었다하여 허탈했습니다.
    분명 인터넷상에서는 토 일 오전 10시 20분 상영이었는데…. 예매라도 해 둘껄… 오래오래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먼 극장에는 가볼 엄두 못내고 동네 극장만을 고수하려다 그리 되었습니다..
    에고.. 참참…-_-;;   

  5. 참나무.

    21/06/2011 at 08:41

    성남에서 신촌…너무 먼 거리
    오늘도 많이 더웠다지요
    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시원하게 보냈습니다만   

  6. 참나무.

    21/06/2011 at 11:08

    제가 다 안타깝네요 정말,
    보고나면 참 기분 좋아지는 그런 영화였는데…

    하루도 저물어갑니다 무사하게…    

  7. 산성

    21/06/2011 at 15:40

    빈약했을 시주와 속가의 살림살이
    그 버거운 일상이
    시인의 언어를 통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오늘 폭염속, 삼청동 일대를 돌아 다녔답니다.
    불편한 옷과 불편한 구두
    불편한 일행들에 섞여, 더없이 불편한 하루를 보낸 셈.

    그래도 기억나는 것은
    경복궁 동문 주차장에 만개해 있던 오동나무,
    그곳 직원에게 물어 봤더니 개오동나무라고 합디다만
    한 글자 떼내버리고 싶어요.마음대로…;;

    한낮의 갈증, 여전합니다.

       

  8. 참나무.

    21/06/2011 at 21:26

    개오동꽃도 보라색일까 – 그것이 궁금합니다

    산성 님은 한낮에 또 가이드 고행을 하셨고…^^
    저처럼 로동화나 신고다니시잖고…합니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 중 미명에 바로크 시간,
    쳄발로 소리가 왜이리 좋은지…

       

  9. 산성

    21/06/2011 at 21:27

    아침 준비하면서 잠시 공부했어요.
    오동 나무,개오동 나무,벽오동 나무,꽃개오동 나무…ㅉ

    다 다른 나무란 사실.
    마음대로 ‘개’자를 떼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간동 가실 때 경복궁에 살짝 들러 보셔요.
    입구쪽이라 금새 보이실 겁니다.

    그 나무,멋있습디다!!

       

  10. 참나무.

    21/06/2011 at 21:45

    아이구 참, 다 찾아봤습니다 저도…^^

    지금 부엌에선 멋진 냄비에 죽이 끓고있어요…일어나야합니다

    Hand~~~   

  11. 산성

    21/06/2011 at 22:47

    오동나무…보라꽃
    개오동 나무…흰꽃, 꽃 안쪽에 황색선과 보라색 점
    꽃개오동 나무..,흰꽃, 꽃 안에 2줄의 황색선

    층층나무 꽃처럼 희지 않고 약간 노르스름한 흰색꽃?

    그리고,어젠
    전혀 가이드 노릇 아니고,친한 분들 모임인데도
    늘 혼자 마음으로 따라 다닌답니다.
    그러려면 왜?
    그거이 늘 고민이지요…ㅉㅉ

    오늘 하루도 멋지게 보내시길!!

       

  12. 참나무.

    21/06/2011 at 23:22

    오늘…날씨가 좋아 서울숲 먼저 가려구요

    지금 황제 흘러서 나지오 끼고 ~~ 하필 2악장!

    이따 자작나무 근처에서 전화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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