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멕혀드는 그런 날이다. 비로소

철도 없고 변덕스런 사람처럼

예측 불허인 날씨가 연일 계속되더니

이제야 본격 가을 날씨인 것같다

흐린날,

비 오시는 날도 제법 법률처럼 되어간다

한강변과 서울숲 산책이

조락과 결실의 계절이란 말 실감하며

곁을 지나칠 땐 참 많이 부끄럽다

이런 말도 한 두번이 아니라 식상해서

다신 않아야지 하면서 또 하게 되고

ㅡ이른 봄 연둣빛 새 순 돋아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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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가지 않겠단 서울숲 근처 카페도

내가 아쉬워 다시 들어가게 된다

‘더치 커피 기구가 있어서’ 핑계를 대며

어젠 집에서 한끼 밥도 안먹고 하루를 보낸 날이다

여행기간 빼면 근래에 없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울집 남자 사라지고 없었다.

시리얼 타먹고 나간 흔적만 있고,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아닌 척 해도 수영대회 때문에 신경을 쓴 모냥이다

곤히 자는마누라 잠 깨우지 않고 살짝 출근했단다

뭐 요즘 자주 있는 일이다 – 부끄럽지만…;;

한강변, 늘 같은 길은 변함없는데

조금씩 달라지는풍광 살피는 일도 재미지다

능소화는 사라지고

담쟁이 넝쿨은 갈색이 많이 보인다

붉은 유홍초 나팔꽃이 지천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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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표적같은 빨간꽃이

가차이 가면 낙엽 물든잎이다

멀리서볼 땐좋아도

다가가면 실망인 사람처럼

그래도 괜찮다 다 괜찮다

꽃이면 어떻고 잎이면 어떠랴

다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지 ( 도토리 님 죄송.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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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앞

작은 새가 죽어 있던 곳엔 파라솔이 있어서

베낭 던져 두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032.JPG

이른 시간인데도 모닝 셋트가 안되는 이유를

어제 처음 알게 된다

시월부터 개시한다네

– 설명 좀 달아놓으면 누가 잡아가냐 말이지

나이먹어 뻔뻔해져서 내용까지 물어봤다

( 빵 + 커피해서 4000원이면 커피 한 잔 값도 아니되니

서울숲 산책 후 수영장 가기 전에 자주 이용할 것 같아서. . .

아이들 학교 보내고 딸이랑 즐기던

조벅의 아침 브런치가자주 생각나겠다. . .)

아침은 블루베리 머핀과 커피로 해결하고

점심은 수영장 회원들께 추어탕을 내가 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달고

좀 멀어도 맛난집에서 먹은 게 좋다해서

근처에도 있지만 한 구역 정도 먼 데까지 일부러 찾아갔다

소문대로 빈 테이블 생길 틈이 없다

요담에 남편이랑 가 보기로 결정봤다.

제목은 잊었지만 위치는 아니까

저녁은 또 부대찌개 먹은 지 한참 됐네 그러며

내 생각을 묻는다 – 나야 좋지만 속엣말은 않고

방부제 천지 삐가리인 국적 불명의 그 찌개를 왜 좋아하는지

나같으면 ‘중국산은 취급안합니다’ 가

변함없이 걸려있는 가차운 집앞 식당’ 에서

서더리 탕이나 대구탕이면 좋겠다니까

뭐가 먹고싶으면 몸 안에서 그게 필요해서 신호를 보내는 거라 우긴다

엄마가 했던 말 알려줬더니 이제 더 자주 써먹는다.

따뤄주는 청하 반 잔도 넙죽 받아마시고

얼마 전엔 백세주도 마셔봤고,

이러다 정말 술꾼되겠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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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칸나 곁을 지날 때 마다

최정례 시인의 칼과 칸나꽃 생각이 자주 나곤 해서

이번 청담 시낭독회에 시인이 낭독할 것같더니

예감이 맞았다.ㅡ 방금 확인했다

첨 만나는 최정례시인, 와 닿는 시들이 많아

어떤 이야길 해 주실지 내일이 많이 기다려진다

바로 옆 일기예보 칸 14도C / 23도C

오늘도 가을스러워 더신난다

제목대로 시가 읽히는 가을이어서더 좋고

냇물에 철조망 / 최정례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흐르는 강물이다

 어제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닌 것 같다

 조금 바람이 불었는데
 한 가지에 나뭇잎, 잎이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다른 춤을 추고 있다

 저 너머 하늘에
 재난 속에서 허덕이다가 조용히 정신을 차린 것 같은 모습으로
 구름도 흘러가고 있다

 공중에서 무슨 형이상학적 추수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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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옛 애인들은 죽지 않는 걸까요 <–내일 시인께서 낭독하실 詩 안내, 바로가기

Legends Of The Fall (가을의 전설 OST)

6 Comments

  1. 쥴리아스

    20/09/2011 at 00:19

    놀랄만치 빠른 안정이시군요… 바지런하셔서 안정도 빨리 찾을 수 있으시나 봅니다… ^^   

  2. summer moon

    20/09/2011 at 01:47

    ‘詩가 멕혀드는 그런 날이다’
    와, 이거 그대로 멋진 詩입니다!^^

    아주 가끔 (그러는 제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가을이 없는 곳에 살고 있는게 다행이란 억지를 부린답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유난히 흔들리면서 살았던 기억이 나서요.

    그런데 이젠 가을이 많이 보고 싶어요,
    가슴 깊이 바람이 파고 들어도 괜찮을거 같구요.

    언제….가을에 참나무님 만나면…
    우리 맛있는것 먹고…아주 마음에 드는 곳에서 커피 마시고…
    칭찬 많이 해주고 싶은 전시 보러가요, 팔짱 꼭 끼고서….^^   

  3. dolce

    20/09/2011 at 04:13

    왜 옛 애인은 죽지 않는 걸까?
    그러니까 마음에 폭탄같은 강력한 흔적을 남기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흔적없이 지나가버린 사람은 많지요……

    그 분의 답을 …. 올려주실거지요? 참나무님….   

  4. dolce

    20/09/2011 at 04:14

    그리고 저 위의 섬머문님
    저도 함께 끼워주시는 거지요????ㅎㅎ

       

  5. 참나무.

    20/09/2011 at 07:15

    레바논 감정 /최정례

    수박은 가게에 쌓여서도 익지요
    익다 못해 늙지요
    검은 줄무늬에 갇혀
    수박은
    속은 타서 붉고 씨는 검고
    말은 안 하지요 결국 못하지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

    나귀가 수박을 싣고 갔어요
    방울을 절렁이며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
    백양나무 가로수 사이로 거긴 아직도
    나귀가 교통수단이지요
    시장엔 은반지 금반지 세공사들이
    무언가 되고 싶어 엎드려 있지요

    될 수 없는 무엇이 되고 싶어
    그들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죽지요
    그들은 거기서 살았고 나는 여기서 살았지요
    살았던가요, 나? 사막에서?
    레바논에서?

    폭탄 구멍 뚫린 집들을 배경으로
    베일 쓴 여자들이 지나가지요
    퀭한 눈을 번득이며 오락가락 갈매기처럼
    그게 바로 나였는지도 모르지요

    내가 쓴 편지가 갈가리 찢겨져
    답장 대신 돌아왔을 때
    꿈이 현실 같아서
    그때는 현실이 아니라고 우겼는데
    그것도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요?

    세상의 모든 애인은 옛애인이 되지요*
    옛애인은 다 금의환향하고 옛애인은 번쩍이는 차를 타고
    옛애인은 레바논으로 가 왕이 되지요
    레바논으로 가 외국어로 떠들고 또 결혼을 하지요

    옛애인은 아빠가 되고 옛애인은 씨익 웃지요
    검은 입술에 하얀 이빨
    옛애인들은 왜 죽지 않는 걸까요
    죽어도 왜 흐르지 않는 걸까요

    사막 건너에서 바람처럼 불어오지요
    잊을 만하면 바람은 구름을 불러 띄우지요
    구름은 뜨고 구름은 흐르고 구름은 붉게 울지요
    얼굴을 감싸쥐고 징징거리다
    눈을 흘기고 결국

    오늘은 종일 비가 왔어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
    그걸 레바논 구름이라 할까 봐요
    떴다 내리는

    그걸 레바논이라 합시다 그럽시다
       

  6. 참나무.

    20/09/2011 at 09:27

    옛 애인은 절대 안죽지요
    과거는 과대포장되어 편집되고…^^
    *
    제가 사는데 도움 안되는 일에만 바지런한가봅니다. 쥴리아스 님.
    *
    팔짱끼고!
    읽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오늘 참 좋았어요 서울의 가을
    낮달까지 떠서 사진은 찍었는데 잘 나왔을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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