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청담 시낭독회

(. . . . . . .)

지난 유월 오빠가 집 앞 계단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가 잡아 지고 왔던 자루

그는 우리에게 아이스케키를 사다 준 것이었는데

자루 속에는 젖은 얼룩과 막대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 슬픔의 자루 / 최정례 시집 ‘레바논 감정’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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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낭독된 시는 아니지만 이 시의 배경이 궁금하여

좀 더 자세히 묻고싶었는데 경황이 없어 질문을 못했다

최근에 피붙이 오빠를 잃은 친구가 생각나서

위로에 서툰 나는 단 한 마디도 못하고

‘세월만 가라 가라’ (최승자) 할까… 하고 넘겼지만

시인이 위대한 이유는 읽는 사람들의 사적인 감성을

대신 끌어내는 특별한 능력 때문은 아닐까

더러는 시대적 배경까지 업히는 경우도 있다고

시인은 자신의 시를 예로 들었다.

외국에서 번역된 ‘냇물에 철조망’은

표지에 철조망이 그대로 그려져 있어서

이건 아니다 싶어 거절하여 다른 그림으로 바꿨다던가?

외국인이어서 철조망 하면 ‘분단’을 쉽게 떠올렸지 싶다

시인은 한용운 ‘님의 침묵’을 예로 들기도 했다.

청담 시낭독회 이전의’레바논 감정’은나에겐 암호였다

레바논 전쟁까지 확대 해석 하면서

아무리 읽어도 와 닿지가 않았다.

시인도 그런 질문을 더러 받았는지

레바논 국가랑은 아무 상관없다며

사적인 아픈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이후. . .

배경 설명 없이 시를 읽는 일은

공부않고 현대 미술을 보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었다

시를 함부로 낭송할 일도 아니고. . .

시인은 대학에서 ‘시’를 강의하는 분이라

그 쪽으로물꼬를 잡았으면당신에겐 유리했을텐데

청담에 오는 이들은대부분 그냥 시 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강의 내용을 ‘私的’으로 돌려

이번에 참석하신 분들은 다시 시를 찾아 읽으면 쏙쏙 베어들지 싶다.

더구나 시인이 된 동기까지 구체적으로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셔서

청담은 이제 시의 탄생 배경은 물론

시의 확실한 해석을 위하여 시인들의 사적인 얘기도

들을 수 있어좀 더 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것 같다

지난 번 천양희 시인도

‘… 다른 장소랑은 다르게 왜 아픈 상처까지 솔솔 다 풀게 되었을까’ 하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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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청담을 마치고 나는’진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밀도 높은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이남호?)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최정례시인은 오랜 시간 켜켜히 쌓인 깊은 상처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축약된 단문으로 들려줘서

오히려 더 깊이 다가와 상상력을 증폭시켰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난 솔직히 최정례 시인을 잘 몰라 틈나는 대로 시들을 찾아 읽었다.

대부분의 시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잉글버트 험퍼딩크 ‘플리즈 릴리즈 미…’가 흐를 것 같은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웅덩이 호텔 캘리포니아’

또는 ‘굳세어라 금순아’가 깔려있는 ‘눈발 휙휙’

다만 ‘레바논 감정’ 이란 시는 빼고

도대체 레바논 감정이 뭔지 궁금했지만

아무리 읽어도 감이 오지않았다

그 바닥에 속하지 않은 나는 시인도 잘 몰랐으니

그 어마어마한 ‘레바논 감정’을 알 수가 있었겠는지

자신의 뜻을 거침없이 펼쳐보일 수 있는

예술가들의 용감한 도전은위대하고 아름답다

시인의 말씀 급히 메모했는데 제대로 옮길 수 있을지…

욕망 때문에 슬프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을 낙서처럼 쓰면서

경험을 창조해보려는 노력과 의지를 형상화 하고

질기게 끌고 갈 때 사랑의 감정도 발전한다고. ..

나를 통하여 다른 이를 묘사하는 일도

도닦는 방법이라셨던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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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펼쳐보는시들은확실히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천사’를 다시 읽어본다

시인이 죽으면 흔적조차 없어질 그 천사는

시인을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환상이라 실제랑은 다를 수도 있지만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그 천사에게 전달 하려고

쓰고 또 쓴다 하던.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례 시인을 떠올리면

초현실주의 그림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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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밤 닷 되를 심어 싹이 나고 잎이 날 것을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구운 밤 닷 되를 심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무쇠로 소를 짓고 무쇠소가 쇠나무 산의 풀을 다 먹도록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무쇠로 소를 짓고 구운 밤 닷 되를 심는다. 그 소가 쇠나무 산의 쇠풀을 다 뜯기를 기다린다. 무쇠소가 무쇠 풀을 뜯고 구운 밤에서 싹이 나기를 믿기 이전에, 구운 밤 닷 되를 심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일, 이것을 나는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철조망에 싹이 나고 잎이 날 때까지 밤나무에 주렁주렁 수박 덩이가 매달릴 때까지 시에 몸 대고 나를 캐내고 나를 파묻으며 꾸역꾸역 갈 것이다.

죽은 당신이 깨어나 내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을 것이다. 가버린 시간이 거슬러 흐르다 탑이 될 수 있으리라고도 믿지 못한다. 어느 날 시간은 나에게 대항하여 칼을 휘두를 것이다. 나는 결국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지금스쳐지나는 것들을 향한 내 사무침이 내 속에서 그치지 않기를, 가버린 것들을 향한 이 무모한 집착도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으로 잇대어지기를, 그 모두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되기를 기다린다.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백지 위에 닻을 내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기를 희망한다.

– 시집 뒷장에서

14 Comments

  1. 겨울비

    25/09/2011 at 00:37

    끝 마무리 후기로 쓰셔야 하는데요.^^
    누구 이어받을 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슬픔의 자루>
    제게 깊이 와 닿은 시라고 시인에게 말했었습니다.

    철조망이 있어도 흐르는 물처럼
    우리 작은 청담의 마음이
    어디로든 흘러들기를요…

       

  2. 참나무.

    25/09/2011 at 00:54

    강물처럼 천천히…어디로든 흘러가게

    …그래서
    드뷔시 방금 심었어요…
       

  3. 佳人

    25/09/2011 at 07:07

    오늘 산 위에서 <레바논 감정> 시를 다시 읽었어요.
    자연광, 환한 햇살 아래 고스란히 드러난 활자를 읽는 재미가 컸어요.
    시인에게 직접 시의 배경 설명도 들었으니 더욱 실감하면서
    그 전에 읽히지 않아 어렵다고 투덜거렸던 시평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하면서
    읽었어요.
    시인의 말씀이 강렬했던가 자꾸 곱씹게 되네요.

    감정도 진화한다는 시인의 깨우침이
    독자의 안목도 키워주는 특별한 낭독회로 다가왔어요.
    매 회 마다 새로운 기쁨이예요.

    애 많이 쓰셨어요..^^   

  4. 참나무.

    25/09/2011 at 08:18

    ‘아름다운 비행’을 좀 전에 봐서 말랑말랑해져있답니다.

    함축된 표현이라 씹을만하지요…^^
    이젠 기억력도 자신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속기라도 배울걸, 미쳐 담지 못하고
    놓친 말들도 많고 제가 쓰고도 못알아 먹겠는 메모가 더 많아 아쉽네요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들은 길게 늘리지 않던데요…^^

    감정도 진화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목사님 말씀, 얼굴에 은혜로음이 묻어나야 한다고
    저도 얼굴 한 번 훔쳐봐야겠어요…^^

    주일은 푸욱 쉬셔야하는데…    

  5. 산성

    26/09/2011 at 03:52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말씀이 궁합니다.
    열거되는 단어들이 당황스럽고
    행간 읽기조차 고단해 그저 가만 앉아 있기만 했던…
    도대체 레바논 감정이라니…하며.
    긴 설명에도 여전히…;;

    시는 그리움의 소멸
    내 그리움이 소멸하는 순간들…
    그걸 붙잡아 둔 것이 시,또는 시집..이라고
    ‘시인의 말’ 중에서.

    여전히 정리가 안됩니다.
    아직 진화중인가 봐요. 공부 중이란 말씀…이지요.

    맨 마지막 사진!

    비슷합니까…다시 나가야 해서요.
    긍정적이지 못하지요? 여전히…;;

       

  6. 참나무.

    26/09/2011 at 04:14

    그 날 다른 일이 세 건이나 있어서 못올 뻔 하셨잖아요
    산성님이 청담에 안오시다니 –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몸이 피곤하면 뭔들 들어오겠는지요
    오죽하면 시인의 자리에도 안오시고

    저도 초현실주의 그림이면 몰라도
    시는 글쎄요 –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도 나간다셔서…;;

    얼른 다녀오시라고 저도 급히올립니다.
       

  7. 레오

    26/09/2011 at 04:17

    꼭 집어낸 표현을 쓰셨어요~
    ( 공부않고 현대미술을 보는..)

    시의 배경을 알고 읽으니
    감 잡을 수없던 ‘레바논 감정’이 쉽게 다가 와요^^

    가을 하늘이 이쁜 월요일
    또 줄거운 한 주~~보내세요   

  8. 참나무.

    26/09/2011 at 05:04

    그 날 두 분 자리에 끼고 싶었는데
    -예물도 보고싶고 . . .언제 시간내주셔요 꼭 눈요기라도 하게요..^^
    잎사귀 하늘하늘 옷 입고 다니는 사람, 복수혈전을 해야하고…

    제주 여행 다시 하고싶어요
    레오 님 행보 따라…

    맞습니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
    힘 팍팍 냅시다아~~^^*   

  9. dolce

    26/09/2011 at 23:21

    어떤 이들은 예술은 느낌이라고 그냥 느끼라고 하지만
    (설명해도 못알아 들을까봐 ???ㅎㅎ)
    그 배경을 알면 확실히 그 작가의 깊숙한 곳까지 닿을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시든 음악이든….

    왜 나는 최정례님을 나이 지긋하신 분으로 생각했을까요?
    레바논을 저도 같이 생각했습니다. 하필 왜 레바논?
    선입관을 가진다는 것이 이렇게 무관심으로 까지 가거든요.

    좋은 시인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데 공감입니다.
    구운밤을 심어 새싹나기를 기다리더라도
    무언가를 한다는 시작을 한다는 것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님과 참 어울리네요. 저도 동참….
       

  10. 참나무.

    27/09/2011 at 00:11

    최정례시인 1955년생, 결혼을 빨리해서
    벌써 시어머님- 우리를 당혹케 한 일이었지요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선 아니고 사석에서 들은 얘깁니다만
    아드님 결혼식장에서 축사를 하는 시간에
    ‘내 아들의 효도는 3살 까지였다…’는 의미심장한 얘길 했다더군요
    해석은 글쎄요…요건 극히 사적인 부분이라…더 이상 묻진마셔요…^^

    맞습니다 뭔가 ‘시작’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제 포스팅을 열심히 읽으셨군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저도 노력해야겠다…싶은 시인의 말이어서
    길지만 올렸답니다.   

  11. dolce

    27/09/2011 at 08:21

    그러니까 A 받았네요. ㅎㅎ

    내 아들의 효도는 3살까지 ….아 궁금하네요..ㅎㅎ   

  12. 참나무.

    27/09/2011 at 11:58

    넵 그 이상입니다
    그리고 효도 이야기는 요담에 조용히…이해하시길바랍니다…^^*   

  13. 도토리

    28/09/2011 at 08:33

    A+++ 후기를 읽노라니
    최정례 시인.. 다시보입니다.

    다음에는 청담에 꼭 끼도록 하겠나이다….^^*
       

  14. 참나무.

    28/09/2011 at 12:56

    아이구 참 송구합니다…;;

    특히나 12월엔 안오시면 정말 손해지요
    찾는분들이 많았답니다 – 자매분이 나란히 오는 경우는 드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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